이번호목차 지난호보기 독자마당 기사에대한의견

한겨레21 구독신청 sitemap

e-Book
표지이야기 특집 정치 경제 사회 국제 문화/과학 인터뷰 스포츠/건강 사진/만평 칼럼 독자마당
Home > 칼럼 > 김연철의 냉전의 추억 > 내용   2008년04월17일 제706호
통합검색  검색
‘북괴’라 안 부르면 군기 떨어진다?

남북관계 진전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남북호칭사’… 1972년 7월4일 드디어 ‘이름’을 부르게 되다

▣ 김연철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교수

‘내가 너의 이름을 부르기 전에 너는 하나의 괴뢰에 불과했다. 내가 너의 이름을 불렀을 때, 비로소 대화가 시작됐다.’

대화가 없었던 냉전시대, 남과 북은 서로를 ‘괴뢰’(傀儡)라고 불렀다. 괴뢰는 인형이라는 뜻이다. 중국 남북조시대에 시작돼 송대에 성행했던 인형극 놀이를 ‘괴뢰희’라고 부른다. 괴뢰는 뒤에서 조정하는 괴뢰사의 손동작대로 놀아난다. 분단이 되면서 남과 북은 자신만이 유일한 합법 정부이고, 상대는 외세에 놀아나는 꼭두각시라고 본 것이다.


△ ‘서로 상부의 뜻을 받들어….’ 대화의 시작이 곧 대결의 종식은 아니었다. 자주·평화·민족대단결이란 통일의 3대원칙을 제시한 1972년 7·4 공동성명서에서도 남과 북은 서로의 체제를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사진/ 보도사진연감)

웃지 못할 ‘괴뢰’ 사건

괴뢰는 상대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괴뢰는 쳐부수어야 할 대상이고 무찔러야 할 상대였다. 1950년대 바로 이 무시무시한 단어 ‘괴뢰’를 잘못 써서 낭패를 본 사건이 있었으니, 그것은 ‘<동아일보> 오식 정간 사건’이다. 1955년 3월15일치 <동아일보> 1면에 ‘괴뢰 휴전 위반을, 미 중대시’라는 기사가 실릴 예정이었다. 그런데 그만 조판공의 실수로 괴뢰라는 활자가 ‘고위층 재가 대기 중, 한-미 석유협정’ 앞에도 첨가되고 말았다. ‘괴뢰 고위층’이 돼버린 것이다. 당시 고위층은 대통령을 포함하는 표현이었으니, 졸지에 이승만 대통령을 괴뢰로 만들어버린 셈이다. 서슬 퍼런 시대에 웃지 못할 실수의 대가는 무기 정간 처분이었다. 물론 한 달 만에 풀렸지만 말이다.

상대를 인정하지 않는데, 어떻게 대화를 할 수 있겠는가? 대화는 이름을 불러야 시작할 수 있다. 남과 북이 이름을 부르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남북 대화를 시작하면서다. 남북공동성명을 발표했던 1972년 7월4일, 기자가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에게 물었다. “앞으로 북괴라는 용어 및 호칭, 김일성이라는 호칭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나?” 이 부장은 대답했다. “우리가 북한 괴뢰니 하고 북한에서는 남조선 괴뢰니 하는 용어는 다른 좋은 표현으로 바꾸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마침 이 시각 서울 성북 전매소 판매계 직원 이병진씨는 담배 가게에서 텔레비전으로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흥에 겨워 “잘한다. 이제 ‘김일성 만세’를 불러도 누가 잡아가겠느냐”고 말했다. 웬걸, 이씨는 바로 잡혀갔다. 담배 가게에 함께 있던 시민이 신고했기 때문이다.

대화를 하려니 이름은 불러야 하고, 이름을 부르니 적대의 현실과 충돌하고. 물정 모르고 한마디 했다가 잡혀간 공무원 이씨처럼 세상이 갑자기 혼란스러워졌다. 공동성명이 채택된 다음날, 문화공보부는 “종래 북괴로 부르던 것을 북한으로 호칭하고, 김일성에 대한 중상·비방을 삼갈 것”을 지시했다. 이후 모든 언론과 정부의 공식 홍보물에서 ‘북괴’는 사라지고 그 자리를 ‘북한’이 차지했다.

7·4 남북공동성명은 ‘금지된 상상력’을 풀어버렸다. 7월5일부터 국회가 열렸다. 신민당의 김수한 의원은 “방북해서 김일성을 만나면 나를 잡아갈 것이냐”고 물었고, 김영삼 의원은 “침략자로 규정하고 원수로 삼았던 북한을 하나의 정권으로 대등하게 인정한 것이냐, 아니냐”라고 물었다. 나아가 김상현 의원은 “북한을 DPRK, 즉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한발 더 나아갔다. 겨우 열 달 전인 1971년 8월23일 김철 통일사회당 당수가 “북한을 사실상의 정권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기자회견에서 주장하다 반공법으로 구속되었는데도 말이다.

1991년에야 공식합의서에 정식 국호 사용

그러나 당시 상황에서 이름은 달라졌지만, 적대의 현실은 변하지 않았다. 박정희 정권은 당시의 혼란을 ‘대화 있는 대결시대’로 정리했다. 대화는 하지만 대결 상황은 변함이 없다는 뜻이다. 상대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는 7·4 남북공동성명 합의문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상대의 체제를 인정할 수 없었던 당시에 과연 합의의 당사자를 무엇이라고 적었을까? ‘서로 상부의 뜻을 받들어 이후락, 김영주’이다. 국명도 직함도 없다. ‘상부’라니, 왜 이렇게 표현했을까? 상부의 이름, 즉 박정희와 김일성만 적을 수는 없고, 결국 대통령과 주석이라는 직함을 같이 적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상대를 인정하게 된다. 상대를 인정하지 않기 위해서는 직함을 쓸 수 없었다.

대화의 시간이 끝나고, 대결이 재개되자 ‘북괴’는 다시 돌아왔다. 1989년 첫 새벽에 문익환 목사는 ‘잠꼬대 아닌 잠꼬대’라는 시에서 “난 그들을 괴뢰라고 부르지 않을 거야”라고 외쳤지만, 여전히 그렇게 부르는 사람은 적지 않았다. 1991년이 되어서야 남북은 공식 합의서에서 정식 국호를 사용한다. 1991년 12월13일 합의하고 이듬해 2월19일 발효된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에서 드디어 ‘대한민국 총리 정원식’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무원 총리 연형묵’으로 적었다. 1991년 9월 남북은 유엔에 각자 회원국으로 가입했고, 상대의 정치적 실체를 분명하게 인정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그러면 이후 우리 사회에서 ‘북괴’는 사라졌을까? 언론이나 정부의 공식 홍보물에서는 사라졌으나, 여전히 군의 문서에는 남아 있었다. 군에서도 사라진 것은 2000년 남북 정상회담 이후의 일이다. 사실 군에서 북괴라는 호칭이 사라지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1989년 첫 발간된 국방 백서에서 ‘북괴’를 ‘북한’으로 표기했지만, 군내의 반발은 만만치 않았다. 북괴라는 용어를 포기하면 군 장병들의 사기가 떨어진다는 주장이 거셌기 때문이다.

1998년 10월29일 열린 국방부 국정감사에서 ‘북괴’ 표현이 다시 논란이 되었다. 장을병 의원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물었다. “옛날에 북한 정권이 수립되던 당시에 소련의 괴뢰라는 뜻이었는데, 지금 그 본체인 소련은 없어져버렸어요.” 인형을 조작하는 사람이 없어졌는데도 인형극은 계속됐던 것이다. ‘괴뢰’는 정상회담 이후인 2000년 6월30일 국방부의 문서에서, 그리고 2001년 8월11일 합동참모본부의 대내외용 문서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사라진 상호 비방의 말 다시 등장

남북의 상호 비방이 가장 격렬하게 이뤄진 곳은 휴전선이다. 전쟁이 끝나고 비무장지대가 만들어졌지만, 그곳에서는 또 다른 비난 전쟁이 하루도 거르지 않고 계속됐다. 비수 같은 증오의 말이 멈춘 것은 2000년 정상회담 이후다. 2차 장성급 회담 합의에 따라, 2004년 6월14일 밤 남북한은 각자 마지막 선전방송을 내보냈다. 대북방송의 마지막 말은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기원하면서 그동안 우리 자유의 소리 방송을 들어준 인민군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무궁한 행운을 빕니다”였다. 그렇게 대결의 시대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북쪽 역시 밤 11시가 넘어 “통일의 그날 우리 만납시다”라고 방송했다. 그렇게 증오의 시대는 막을 내렸다.

그런데 2008년 현재 ‘안녕’이라고 이별을 고했던 상호 비방이 다시 나타나, ‘안녕’ 하고 인사한다. 다시 안 와도 되는데.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다시 ‘역도’니 하는 비난이 등장한 것이다. 36년 전 7월4일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은 기자회견에서 “중상·비방하지 말자고 한 것은 그저 헐뜯고 욕하는 것은 삼가자, 다시 말하면 우리끼리의 추태를 남에게 보이지 말자는 단적인 표현이다”라고 말했다. 추태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얼마의 시간이 또 흘러야 된다는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