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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칼럼 > 김수현의 달려라 밴드칼럼 목록 > 내용   2006년09월08일 제62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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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ZM’의 5주년을 축하합니다

영원한 프리랜서를 자처하는 음악평론가 임진모와 비평모임 ‘WAS’… 콘텐츠 사이트 IZM을 꾸리는 정신 “행동은 자유롭게, 사고는 복잡하게”

▣ 김수현 기자 groove@hani.co.kr

한 음반사의 라디오 광고를 듣다가 웃음이 났다. “대중음악 평론가 박은석입니다. 평론가라고 언제나 불평만 하는 건 아닙니다. 특히 이렇게 새롭고 멋진 음악 앞에선 말이죠.” 평론가 집단을 향한 대중의 시선을 유머러스하게 활용한 광고다. 그러나 누가 평론가들을 모함하려는지 물어야 한다. “노래 잘하는 가수만 가수를 한다는 편견을 무너뜨리려고요”라고 말하는 신인가수의 인터뷰를 그 자리서 맞받아칠 권리는 사실 보도를 담당하는 기자에겐 없다. 진지한 충고는 평론가의 몫이다. 그러나 스타는 혜성처럼 나타나건만 평론가는 어디서 떨어진단 말인가.


△ 한국의 대표적인 대중음악평론가 임진모씨. 문화방송 DMB 프로그램 녹음을 마치고 휴식 중이다. 유목민 프리랜서의 일터는 그가 앉아 있는 현장 모든 곳이며, 평론가의 정체성은 말과 글 속에 있다.

더군다나 신춘문예나 문학계간지라는 인큐베이터를 가진 문학평론계가 아닌 대중음악평론계라면. 우린 1959년생 대중음악평론가 임진모가 어떻게 매달 10회 넘게 뉴스에 의견이 인용되는 주요 인물이 됐는지 볼 필요가 있다. 개그맨 지상렬은 라디오에서 평론가 흉내를 내며 “지진모”라 자처한다.

“양치질 3번 하듯 음악 CD 3장”

고1 때 음악평론가가 되기로 결심한 음악 소년은 1984년 <빌보드> <롤링스톤> <타임> <뉴스위크> 같은 해외 잡지가 구비된 곳을 찾아 취직했다. 그곳은 경향신문사였다. 그러나 내외경제신문(현 헤럴드경제)으로 옮겨 퇴직하기까지 방송연예 분야를 담당하느라 음악 관련 기사는 한 줄도 쓰지 못했다. 1991년 음반 제작과 음악 평론에 대한 청운의 꿈을 안고 퇴사한 그는 연거푸 실패를 겪다가 마침내 1993년 아카펠라 그룹 ‘인공위성’의 성공으로 빚을 청산한다. 그리고 그해 수집해둔 자료를 바탕으로 <팝 리얼리즘 팝 아티스트>를 발간하고 대중음악 서적계를 강타했다. “갑자기 스케줄이 폭발했죠. 인공위성과 제 스케줄을 동시에 소화할 수 없어서 기획사 일을 접었습니다.” 2006년 8월29일, 서울 여의도 문화방송 사옥에서 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 프로그램 녹음을 막 마치고 나온 임진모씨가 말한다. 13년이 흘렀다. 올 8월에도 강연과 원고, 방송 등 50여 건의 일을 해치웠다. 너무 바빠 책 쓸 시간도 없다는데 음악은 언제 듣지? “양치질 3번 하듯 음악 CD 3장을 들으려 해요. 이게 있잖아요.” 가방 앞주머니의 휴대용 CD 플레이어를 가리킨다.

꾸준함의 증거는 그가 중심이 된 음악비평모임 ‘WAS’와 콘텐츠 사이트 ‘IZM’(이즘·www.izm.co.kr)에 있다. 여름휴가도 없는 WAS의 토요모임은 1990년대 후반 한겨레문화센터에서 진행한 대중음악 강좌에서 시작됐다.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 위기로 폐강된 뒤 몇몇 수강생의 제안으로 지하를 전전하며 이어졌고, 이후 서울 영등포의 작은 사무실에 정착해 오늘까지 왔다. 토요일 오후 5시 반부터 새벽 2시까지 웹진 의 편집회의와 강좌, 그리고 밥과 술이 이어진다.

딱 5년 전 2001년 8월30일 개설된 IZM의 콘텐츠 생산자는 이 모임의 11명에 방송사·음반사 등에서 활동하는 옛 멈버 9명을 더한 20명이다. 웹진 <가슴>이 인디에, 웹진 (웨이브)가 마니악한 장르에 집중한다면, 은 더 대중적이다. “천사가 나타나 파이낸싱을 해줄지 모르겠지만, 일단 여유를 가지고 자생력을 키우려고 합니다. 기획회의에서 저도 손을 떼고요.” 음악평론가라는 남편의 직업에 ‘절대적 호감’이 없는 아내도 ‘잃어버린 주말’을 이해하고 사비를 붓는 IZM의 운영에 적극 동의해준다. “훌륭한 아내입니다. 정말 감사하죠.” 나이 차이가 나는 ‘WAS’의 동료들에게도 “백번 조아리고 싶다”며 “어깨동무해주는 친구들이 고맙다”고 덧붙인다.

비평의 고민은 ‘이데올로기’에 있다

비평의 고민은 재정 문제보다 이데올로기에 있다. “현영의 음반을 리뷰해야 한다는 압박감과 비평의 미학적 완결성을 추구하는 문제가 동시에 존재하죠. 목표와 방법의 고민이 있고요.” 이는 음악평론을 업으로 하려는가, 취업 뒤의 취미활동으로 하려는가라는 고민과 이어지면서 심각해진다. “비평의 미학을 대중적으로 실현하자고 말하는데 말장난으로 들리려나.” 그가 내린 결론은 ‘행동은 자유롭게 하고 사고는 복잡하게 하자’는 것이다. 숱한 교수직 제의를 거절한 이유도 여기 있다. “활동한 지 10년이 훌쩍 넘었고, 대중의 녹을 먹고 컸는데 타이틀을 버릴 수 없죠. 경제적 안전망이 그다지 매력적이지도 않고요. 소속이 없어야 제대로 된 말을 할 수 있습니다.” 기상 시간의 자유를 넘는 사고와 언어의 자유가 있다. 그는 “영원히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싶다”고 말한다. “노동연구원에서 글을 청탁하고, 문화관광부에서 강연을 요청하죠. 문화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없던 일도 생깁니다. 말글을 갈고닦는다면 프리랜서는 새 영역을 만들 수 있습니다.”

여전히 자가용 없이 몸을 가볍게 놀리며 현장을 누비는 그는 “배순탁이 쓰는 글에 주목해야 합니다” “저같이 오래된 사람 말고 박은석 같은 이를 만나세요”라고 누차 되풀이했다. IZM에서 함께 오래해온 CBS 방송작가 소송근씨는 그를 ‘삼촌 같은 사람’이라 묘사했다. ‘시니컬’ ‘가죽 잠바’ 같은 이미지 대신 양복 입는 평론가의 모습을 보여주지만, 지나치게 심각하지 않고 입담은 개그맨이며 포장마차나 고깃집의 소주 한잔을 좋아하는 서민. 임진모씨는 “피로가 누적된 상태”라고 자신이 진단한 한국 대중음악계에 필요한 평론가다. “요즘 대중음악엔 긴장과 설렘이 없어요. 서태지, 김건모 등과 같은 새로운 별이 필요합니다.” 별은 어디에 있을까? 평론가들은 오늘도 찾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