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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칼럼 > 강준만 칼럼 목록 > 내용   2006년08월03일 제62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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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사랑타령’은 식지 않는가

60년대 62.6%에서 90년대 82.6%로 증가한 ‘사랑·이별·눈물’을 다룬 유행가… 오늘밤에도 전국 노래방에서 메마른 세상에 대한 저항의 몸부림은 계속되리라

▣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한국 대중가요는 주로 ‘사랑, 이별, 눈물’ 타령이다. 일종의 ‘자기 반영’이라고나 할까? 흥미롭게도 2000년 송대관의 <유행가>(이정심 작사, 최정환 작곡)는 “유행가 노래 가사는 사랑과 이별 눈물이구나”라고 확인해주었다.

반영론과 조작론, 또는 증폭론

그간 대중가요 속 사랑을 분석한 많은 글이 발표됐다. 주로 남녀관계와 사랑 방식의 변화에 초점을 맞췄다. 물론 늘 복고도 있고, 주류 흐름에 저항하는 시도도 있고, 소수파의 취향도 있기 때문에 다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큰 흐름상 보자면 대중가요 속 사랑은 한국 사회 전반의 ‘사랑 변천사’에 근접한다고 말해도 무방하다. 한번 총정리를 해보자.


△ 전체 국민의 90.5%가 1년 동안 평균 7번은 찾아가는 노래방. 노래방에서 부르는 노래의 대부분은 미혼남녀의 사랑을 다룬 것들이다. (사진/ 한겨레 이정용 기자)

대중가요에 묘사된 사랑을 어떻게 볼 것인가? ‘지긋지긋한 사랑 타령’이라고 한마디로 간단히 정리해버릴 수도 있겠지만, 진지하게 답하자면 이만저만 어려운 게 아니다. 우선 엘리트와 대중 가운데 누구의 관점에서 볼 것인지가 문제가 된다. 당연히 비평가의 취향도 검증 대상이다. 비평가가 대중의 관점에 서겠다고 해놓고선(여기까진 ‘진보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계도적이거나 사회개혁적 잣대로 대중가요의 가사 분석에 임한다면? 또 반대로 대중의 반응을 과대평가한 나머지 ‘문화 포퓰리즘’으로 흐른다면? 이 두 가지 경우는 늘 대중문화 논쟁의 쟁점이 되고 있다.

이 쟁점은 ‘반영론’과 ‘조작론’ 사이에서의 고민이기도 하다. 대중문화는 대중의 수요를 반영하는가, 아니면 조작하는가? 물론 아무리 싸워봐야 답은 안 나온다. 정답은 ‘증폭론’이다. 최소한의 것은 반영하되 그걸 증폭시킨다는 것이다. 그 증폭 정도가 작으면 ‘반영론’에 가까울 것이고, 크면 ‘조작론’에 가까울 것이다. 이는 ‘공급’(가요산업, 미디어, 마케팅 등)과 ‘수요’(소비자의 반응이나 소비행태) 중 어느 쪽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느냐에 따라 영향을 받기도 한다.

도대체 누가 대중가요의 가사 따위에 신경쓰는가? 이런 반론이 나올 수 있다. 실제로 여러 조사 결과 가요 소비자의 연령이 낮을수록 가사엔 아예 신경을 안 쓰거나 곡을 먼저 좋아한 다음 나중에 부차적으로 가사를 음미해보는 정도의 관심을 기울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다고 해서 가사가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제작자 입장에선 가사와 곡의 조화에 큰 신경을 쓰는 만큼 가사와 곡은 상호 분리될 수 없으며, 작사가가 세상의 트렌드나 유행을 담아내려고 애를 쓴다는 사실을 무시할 수 없다.

대중가요 속 사랑을 분석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아예 이런 시비를 걸고 나올 사람도 있을 수 있겠다. 노래방 이용 경험이 있는 사람이 전체 국민의 90.5%, 경험자의 지난 1년간 평균 이용 횟수가 7회인 나라에서 대중가요를 탐구 대상으로 삼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람에겐 가수 박지윤의 노래 제목 그대로 ‘가버려’라고 외치는 게 좋겠다.

노래방에 가서 가곡 부르는 사람 있는가? 대학생에서부터 초등학생에 이르기까지 무슨 조사만 했다 하면 상위 애창곡들은 예외 없이 대중가요요, 또 예외 없이 사랑 노래다. 노래 좋아하는 건 아무래도 유전자 탓인 것 같다. 개화기에 선교사로 조선에 왔던 헐버트는 “한국인들은 음악을 매우 좋아하며 어린이들까지도 길에서 늘 노래를 부른다”고 했다. 중국에서도 조선족이 한족에 비해 노래를 훨씬 더 좋아하는 걸 보면 분명히 유전자에 뭐가 있긴 있다.

가장 많이 나온 어휘는 ‘울다’와 ‘눈물’

대중가요 속 사랑은 주로 슬픈 사랑이다. 지난 수십 년간 대중가요에 대해 제기된 비판 중 가장 많은 게 바로 그것이었다. 대중가요가 비관·염세·허무주의를 퍼뜨린다는 비난이 그치질 않았다. 갈수록 가사의 정신 연령이 낮아진다고 개탄하는가 하면 심지어 망국·말세를 우려하는 목소리까지 나왔다. 그러나 수십 년이 지난 지금 멀쩡한 걸 보면, 지금 나오고 있는 비난과 개탄도 기우가 아닌가 싶다.

대중가요 가사의 문법과 어법을 문제 삼는 비판도 적잖이 제기됐다. 말이 안 되는 문법과 어법이 많으며 도대체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는 불만도 있었다. 그러나 그건 감시나 분석을 위한 이성이 작동한 결과일 테고, 진짜 가요 소비자들은 그런 것에 개의치 않으며 오직 감성으로만 가요를 껴안는다는 점을 지적할 필요가 있겠다. 의미가 모호한 가사는 작사자의 의도와는 다르게 읽힐 가능성은 있지만 그게 또 가요의 매력이다.

가요 전문가들은 1930년대를 대중가요의 전성시대로 보고 있다. 레코드 상점 앞에 수백 명이 모여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따라 불러 경찰이 출동하기도 했다나. 김광해가 1925∼45년에 유행한 가요 437곡을 내용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주제별로 ‘사랑’이 전체의 33.9%로 가장 많았고, 다음은 ‘고향’ ‘타향살이’ ‘생활’(삶의 애환)이 각각 16.2%, ‘현실 반영·풍자’12.4%,‘자연’7.6%,‘친일’6.6%,‘육친’3.7%,‘조국애’3.4% 순이었다.‘울다’라는 동사는 전체 437곡의 거의 절반에 가까운 213개의 노래에,‘눈물’‘사랑’이라는 명사는 3분의 1에 가까운 노래들에 나오는 것으로 나타났다.


△ 한국방송의 <전국노래자랑>은 수십 년 동안 국민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아왔다. 지역을 찾아가서 위화감 없이 지역민과 동화되는 방법으로 노래를 따를 수 있는 게 없다.

이에 대해 “일제시대 대중가요가 민족의 정서를 황폐화시키고 시적 표현을 왜곡했다”거나 “유행창가 전반의 의식 세계는 결국 식민지배에의 봉사로 귀결”됐다는 분석이 주류를 이루고 있지만, 나라 잃은 식민지 민중에게 ‘슬픔’을 벗어나라고 주문하는 건 오늘의 관점에서 본 무리한 요구가 아닌가 싶다. 슬픈 노래는 나라 찾고 경제발전을 이룬 뒤에도 계속되는 걸 보면, 이는 일제시대 이전부터 한국인에게 체화된 어떤 한(恨)의 정서는 아닐까?

최상진·조윤동·박정열의 연구는 <가요반세기>(1996·아름출판사)에 실려 있는 749곡의 대중가요를 분석했다. 해방 이후부터 1996년 사이에 유행했던 노래들로, 50년 이전 75곡, 50년대 135곡, 60년대 183곡, 70년대 134곡, 80년대 114곡, 90~96년 108곡 등이었다. ‘사랑’ ‘이별’ ‘그리움’을 주제로 한 노래가 전체의 66%를 차지했으며, ‘사랑’ 노래도 거의 대부분 이미 지나간 과거의 사랑에 대해 노래한 걸로 밝혀졌다. 가사에 나오는 주요 어휘는 ‘사랑, 마음, 눈물, 떠남, 이별, 그리움, 기다림, 추억, 인생, 청춘’ 등이었으며, 가장 많은 빈도 수를 보인 어휘는 ‘울다’(269번)와 ‘눈물’(139번)이었다.

남자건 여자건 기다리고 매달리고…

이지연·신수진의 연구는 젊은 미혼남녀의 사랑 감정을 소재로 하는 노래들이 전체 가요에서 점하는 비중은 60년대에는 62.6%, 70년대에는 63.9%, 80년대에는 73.6%, 90년대에는 82.6%로 증가한 것으로 보았다. 일제시대에서부터 50년대까지는 ‘임을 잃은 사람들의 사랑’, 60∼80년대에는 ‘낭만적 사랑의 정착’이 이뤄진 것으로 분석했다. 90년대 이후는 ‘도발적 사랑의 시대’로 불러야 할지도 모르겠다.

1960년대에 여자 가수가 부른 인기가요는 거의 예외 없이 ‘기다림’과 ‘순종’을 노래했다. 64년 이미자의 <동백아가씨>(한산도 작사, 백영호 작곡)는 “그리움에 지쳐서 울다 지쳐서 꽃잎은 빨갛게 멍이 들었소”라고 했고, 1966년 패티김의 <초우>(박춘석 작사·작곡)는 “너무나 사랑했기에 마음에 상처 잊을 길 없어 빗소리도 흐느끼네”라고 했고, 69년 김추자의 <님은 먼 곳에>(신중현 작사·작곡)는 “님이 아니면 못 산다 할 것을 사랑한다고 말할걸 그랬지 망설이다가 가버린 사람”이라고 했다.

1970년대도 다를 게 없었다. 1970년 임희숙의 <진정 난 몰랐네>(김중순 작사, 김희갑 작곡)는 “그토록 사랑하던 그 사람 잃어버리고 타오르는 내 마음만 흐느껴우네 그토록 믿어왔던 그 사람 돌아설 줄이야 예전에는 몰랐었네 진정 난 몰랐네”라고 흐느꼈다. 70년대를 마감하는 79년 심수봉의 <여자이니까>(최홍기 작사·작곡)는 “사랑한다 말할까 아니야 아니야 말 못해 나는 여자이니까”라고 했다.

남자는 달랐을까? 아니다. 비슷했다. 1972년 배호의 <배신자>(이인섭 작사, 김광빈 작곡)는 “내 청춘 내 순결을 뺏어버리고 얄밉게 떠난 님아”라고 했고, 74년 어니언스의 <편지>(김미선 작사, 임창제 작곡)는 “말 없이 건네주고 달아난 차가운 손 하얀 종이 위에 곱게 써내려간 너의 진실 알아내곤 난 그만 울어버렸네”라고 했다. 77년 샌드페블즈의 <나 어떡해>(김창훈 작사·작곡)는 “나 어떡해 너 갑자기 가버리면 나 어떡해 너를 잃고 살아갈까”라고 했고, 1979년 송창식의 <한번쯤>(송창식 작사·작곡)은 “말 한번 붙여봤으면 손 한번 잡아봤으면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천천히 걸었으면”이라고 했다.

1980년대도 크게 보아선 60·70년대의 전통을 이어나갔다. 84년 임희숙의 <내 하나의 사랑은 가고>(백창우 작사·작곡)는 “이제 그 누가 있어 이 외로움 견디며 살까 이젠 그 누가 있어 이 가슴 지키며 살까”라고 절규했다. 신세대도 다를 게 없었다. 그해에 나온 이선희의 (이세건 작사·작곡)는 “J 난 너를 못 잊어 J 난 너를 사랑해 J 우리가 걸었던 J 추억의 그 길을 난 이 밤도 쓸쓸히 걷고 있네”라고 했다. 이선희는 87년에도 <알고 싶어요>(양인자 작사, 김희갑 작곡)를 통해 “진정 날 사랑하나요 난 정말 알고 싶어요 얘기를 해주세요”라고 매달렸다. 그해에 나온 심수봉의 <사랑밖에 난 몰라>(심수봉 작사·작곡)는 “그대 내 곁에 선 순간 그 눈빛이 너무 좋아… 당신 없인 아무것도 이젠 할 수 없어 사랑밖엔 난 몰라”라고 선언하고 나섰다.

1980년대, 정신우월주의를 넘어서다

남자 가수들도 다를 게 없었다. 1980년 백영규의 <슬픈 계절에 우리 만나요>(백영규 작사·작곡)는 “바람결에 보일 것 같아 그의 모습 기다렸지만 남기고 간 뒹구는 낙엽에 난 그만 울어버렸네”라고 했고, 1983년 해바라기의 <안녕 내 사랑>은 “우리 이제 헤어지면 다신 못 볼 것만 같아요 영원토록 못 볼 것 같아요 꿈속에서 만나거든 다정하게 웃어요”라고 성인군자 같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80년대의 대표적인 ‘사랑 전도사’였던 해바라기는 1985년 <모두가 사랑이에요>에서도 “콧날이 시큰해지고 눈이 아파오네요 이것이 슬픔이란 걸 난 알아요”라고 자기 진단을 내리기에만 급급했다. 또 1988년 유익종의 <그저 바라볼 수만 있어도>(유익종 작사·작곡)는 “작은 그리움이 다가와 두 눈을 감을 때 가슴을 스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오 그저 바라볼 수만 있어도 좋은 사람”이라며 무소유의 자세를 보여주었다. 1989년 나훈아의 <갈무리>(나훈아 작사·작곡)는 “이러는 내가 정말 미워 이제는 정말 잊어야지”라고 자책했고, 같은 해 조덕배의 <그대 내 맘에 들어오며는>(조덕배 작사·작곡)은 “다가가면 뒤돌아 뛰어가고 쳐다보면 하늘만 바라보고 내 맘을 모르는지 알면서 그러는지”라고 애만 태웠다.


△ 한국인들은 노래를 사랑하는 민족이라고 했던가? 이산가족 상봉장에서 감격에 벅찬 남과 북의 가족들이 흥겹게 노래를 부르고 있다.(사진/ 사진공동취재단)

그러나 1980년대엔 동시에 다른 흐름도 나타났으니, 그건 바로 그간의 ‘정신 우월주의’에서 ‘정신’과 ‘몸’의 균형을 취하려는 시도였다. 81년 조용필의 <일편단심 민들레야>(이주현 작사, 조용필 작곡)는 “님 주신 밤에 씨 뿌렸네 사랑의 물로 꽃을 피웠네”라고 했고, 82년 이장희의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이장희 작사·작곡)는 “나 그대에게 드릴 게 있네 오늘밤 문득 드릴 게 있네”라고 했고, 85년 들국화의 <매일 그대와>(최성원 작사·작곡)는 “매일 그대와 밤의 품에 안겨서 매일 그대와 잠이 들고파”라고 했고, 86년 최성수의 <남남>(최성수 작사·작곡)은 “오늘밤만 내게 있어줘요. 더 이상 바라지 않겠어요”라고 꼬드겼다.

또 다른 모습도 나타났다. 81년 조용필의 <미워 미워 미워>(정욱 작사, 정풍송 작곡)는 “잊으라면 잊지요 그까짓 것 못 잊을까봐”라고 허세를 부렸고, 85년 해바라기의 <어서 말을 해>(이주호 작사·작곡)는 “가고 나면 후회할 것을 어서 말을 해 어서 말을 해 어서 말을 해”라고 심리적 압박을 가했고, 88년 변진섭의 <홀로 된다는 것>(지예 작사, 하광훈 작곡)은 “이별은 두렵지 않아 눈물은 참을 수 있어 하지만 홀로 된다는 것이 나를 슬프게 해”라며 상대가 누구이건 구애받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한술 더 떠 1989년 변진섭의 <희망사항>(노영심 작사·작곡)은 “내가 돈이 없을 때에도 마음 편하게 만날 수 있는 여자”라며 돈에 관한 한 남녀평등을 지향하기도 했다.

놀라운 변화는 1990년대부터

놀라운 변화는 1990년대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 바탕엔 인구학적·사회학적·가요산업적 변화가 깔려 있었다. 90년대 이후 가요의 가사와 가요 속의 ‘사랑 변천사’에 대한 본격적인 분석은 다음에 하기로 하자. 오늘밤에도 전국의 수만 개의 노래방에서 ‘사랑, 이별, 눈물’이 수백만 번 외쳐질 것이다. 갈수록 사랑이 메말라가고 변질되는 세상에 대한 저항의 몸부림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