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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칼럼 > 박노자 칼럼 목록 > 내용   2006년06월29일 제61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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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투사와 국민적 신체 사이

‘땡전뉴스’처럼 ‘땡 태극전사 뉴스’연발하는 언론에 하고 싶은 이야기… 축구실력 프로급이었던 몽양 여운형의 스포츠 사랑 정신을 되돌아보자

▣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 교수 · 한국학

월드컵에 열광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여러 잡념에 잠긴다. ‘광란’의 2002년에 비해 좀 냉각됐지만 아직도 강한 축구 애국주의의 물결을 보면서 슬픈 생각을 떨쳐내기 어렵다. 암흑의 일제 시절에 한-일전의 자리에서 억눌렸던 조선 군중의 집단적 감정이 터졌다는 것, 일본인보다 자전거나 마라톤에서 더 우수했던 엄복동(1892~1951)이나 손기정(1912~2002)이 뜨거운 ‘민족애’의 대상이 됐다는 것, 가난했던 1950~60년대에 스포츠 경기에서의 우승이 대중에게 희망의 횃불이 됐다는 것을 이해하고도 남는다.

이라크독립군과 미군팀이 붙는다면…

현실에서 쓴맛을 보면 가상의 세계에서 재기의 힘을 얻으려 하는 인지상정이라 할까? 불가능한 일이지만 만약 이라크 독립군(언론에서 이야기하는 ‘저항세력’) 투사들이 축구팀을 구성해 미군·영국군·한국군 등 점령군의 팀과 운동장에서 겨루게 된다면, 필자는- 1920~30년대에 조선 대중이 엄복동이나 손기정을 응원했던 심정으로- 이라크 독립운동 팀을 응원할 것이다.


△ 한국의 프로 스포츠에 군사문화가 스며든 것은 박정희 시절이었다. 제1회 박대통령컵 쟁탈 아시아축구대회에 참석한 박정희 대통령이 시축하고 있다. (사진/<대한민국 정부 기록사진집>)

그런데 11위 통상 대국이 된 뒤에까지도 열등감을 씻어내기 위해 국가 대항전에서의 맹목적 애국주의가 필요하다고 계속 변명해도 되는가? 열등감을 씻어내는 차원에서 제3자의 입장을 취해본다면 토고전에서 오늘의 대한민국보다 열등감이 깊어도 훨씬 깊은 토고를 응원해주는 것이 옳았을지도 모른다. 박정희가 지원했던 미국 침략부터 ‘한국 왕자님’들의 화려한 원정 간택(?)을 찬양한 최근 국내 언론의 수치스러운 사태까지 현대사에서 한국에 온갖 상처를 입어온 베트남이 만일 경기장에서 한국과 붙어 열등감 씻어내기를 열망한다면 보편적인 인간의 입장에서 과연 가해자이자 강자인 한국을 배타적으로 응원할 수 있을까?

애국주의 이야기를 접어두고서도 1980년대의 ‘땡 전 뉴스’처럼 ‘땡 태극전사 뉴스’를 연발하는 언론에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또 하나 있다. ‘태극전사’야 그 몸 하나하나로 대한민국 전체를 대표하는 국민적 신체가 됐지만, 과연 이 나라의 대다수 선수, 선수 후보생들이 이처럼 화려한 나날을 보내는가?

필자는 6년 전까지 국내에서 굴지의 체육대학이 있는 곳에서 근무했는데, 점심 먹을 때마다 체대 학생들과 마주쳤다. 한국에 오기 전까지 살아온 러시아의 문화도 민주적이지 않았지만 식당에 열을 지어 ‘행군’해서 들어오고 선후배 순서대로 차례로 앉고 교수가 나타나자마자 일제히 일어났다가 일렬 전체로 착석하는 체대 학생들의 모습을 보면서 착잡한 생각이 들었다. 체육대학만의 문제인가? 입학 직후의 신고식부터 훈련 과정에서의 상습적인 폭언·폭력까지, 대학체육과 군대는 비슷한 점이 많다. ‘붉은 악마’의 밝은 모습이 상징하는 듯한 자유분방한 대한민국, ‘민주화’를 생각나게 하는 캠퍼스 안에서 이처럼 ‘작은 군대’가 존재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 거의 검투사 격이 되어 소속 팀에 무조건 우승을 안겨줘야 하는 소수의 선수를 ‘기르는’ 데 초점을 맞춘 프로 체육 학습 시스템의 구조적 문제라는 것을 누구나 알 것이다.

학교 때에 학생 선수가 되는 청소년들의 상당수는 넉넉지 않은 가정적 배경을 갖고 있는데, 주류 사회가 ‘진정한 남성의 필수적인 조건’으로 보는 대학 학력을 그들에게 안겨줄 유일하다 싶은 방법은 체육특기생이 되는 것이다. 체육특기생이 되는 방법은 결국 지옥 같은 훈련과 운동 지도자에 대한 복종이고, 그 과정에서는 사회와 격리된 생활을 했던 로마 시대의 검투사와 별반 다르지 않은 모양으로 학교에서의 정상적인 공부를 포함한 바깥 세계와 어느 정도 격리돼야 한다. 특기생으로 대입에 성공한 뒤에도 남과 같은 대학생활을 못하고 ‘운동’이라는 작은 세계에서 갇혀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적자생존의 ‘작은 세계’에서 초인적인 투지와 지구력, 그리고 ‘적당한’ 처신으로 모든 장벽을 뚫어 ‘태극전사’의 반열에 오르는 극소수에게 우리는- 그들의 ‘작은 세계’의 이면을 망각한 채- 열광해 마지않는다. 도태되는 이들이 과연 어떻게 되는가를 우리 자신에게 물어보지 않은 채 말이다.

‘북괴’의 성공에 놀라 양지팀을 창설하다

월드컵 이상으로 영어에 열광하는 것이 대한민국이지만, 1984년 5월에 베네수엘라에서 열린 세계 청소년야구선수권 대회에 대한민국의 명예를 지키려고 갔던 학생 선수 22명 중 21명이 입국 신고서에 자기 이름을 영문으로 표기 못했던 촌극이 보여주듯이, 대한민국의 이름을 만방에 알릴 ‘태극의 검투사’들의 학습권은 과거에 여지없이 침해돼왔다. 과연 지금은 이 상황이 본질적으로 달라졌는가? 박지성이야 ‘대한민국 일등 신랑감’으로 꼽히지만 시험으로 검증되는 지식과 바람직한 남성성을 동일시하는 이 사회의 분위기에서, 학습의 기회를 포기해야 했던 무명 선수는 자존을 지키기가 늘 쉽겠는가? 프로 운동 사회가 탈출이 어려운 우승열패의 정글이 되고, 그 정글에서 지배적인 생활양태는 바로 군사문화다. 우리가 과연 이를 다 인식하고 그 체제의 최고 산물인 국가대표팀에 환호하는가?

마침 프로 스포츠 군사화 이야기를 꺼냈기에 그 공고화의 공로(?)가 바로 박정희에게 있다는 것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 극우세력들이 박정희를 ‘산업화의 영웅’이라고 치켜세우지만 박정희 자신은 산업화 못지않게 ‘체육의 전국민화’를 열망하기도 했다. 나라가 꽁꽁 얼어붙은 유신 말기에 “동 행정의 세포 조직이라는 데에 자부를 갖고” 전국 행정 단위마다 “건전한 국민 생활의 상징”으로 선전되는 회원 수 5만여 명의 1천 개 넘는 조기 축구모임들이 생겼다. 지역의 권력자들이 위에서 지시한 대로 “국가에서 요구되는 협동단결의 기본정신”을 “건전한 체력”을 통해 과시할 겸해서 주민 통제와 지위 유지에 필요한 연결망을 축구로 형성했다.


△ 여운형은 스포츠 사랑에 성리학적 관념주의에 대한 반성을 담았다. 그는 대표적인 스포츠 민족주의자였다. 전국축구대회 개회식에서 여운형 회장이 축사를 하고 있다. (사진/ <20세기 한국스포츠 100년>)

태평양전쟁 때의 선전 문건을 한국어로 옮긴 듯한 느낌을 주는 박정희의 연설에서 “국민 체위는 국력의 강약에 직결되는” 문제였으며 “산업개발, 국토방위의 기조, 국위선양의 최적의 수단”이었지만 실제로 ‘국위선양’에 몸바쳐야 했던 이들은 군사훈련과 한 치 다를 게 없는 생활을 견뎌내야 했던, 주로 가난한 가정 출신의 프로들이었다. 1960년대 말의 사실상의 축구 국가대표팀은, 국제 축구에서 ‘북괴’의 성공에 놀라 중앙정보부가 1967년에 창설한 이른바 ‘양지팀’이 아니었던가? 삼군 팀에 소속되거나 군 입대 대상자였던 선수들이 본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강제적으로 스카우트돼 이문동의 중앙정보부 청사에서 합숙생활을 하게 됐고, 대우는 매우 좋았지만 훈련 방식이나 행동 통제는 군과는 별 차이 없었다고 한다. 김형욱 중앙정보부 부장이 1970년에 경질된 뒤 양지팀도 해체됐지만 ‘국가적’ 축구의 군사적 색채도 정보기관들과의 인연도 계속됐다.

그렇게라도 해서 한국 축구를 국제적 수준에 올린 것이 어디 나쁜 일이냐 반박할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지만, 이와 같은 시스템을 배경으로 해서 한-일전처럼 ‘국민적 열망’이 강한 경기에 출전한 선수 개인의 부담과 스트레스 지수를 한번 상상해보시기를. 로마 검투사보다야 덜하지만 과연 본인도 즐기면서 화려한 개인기를 펼치기가 쉽겠는가? 적자생존의 프로 운동 체계에서 주요 팀 선수의 지위까지 올라온 사람에게도 스포츠 군사주의가 심신 파괴의 요소가 되겠지만, 1990년대 초반까지 운동장을 연병장 삼아 중대장 격이 된 교사의 호령과 호루라기 소리대로 사람을 기계로 만들어야 할 군사교육 격의 체육훈련을 받아온 대한민국 각급 학교 학생들은 과연 어땠는가?

스포츠 사랑은 ‘문사 기질’에 대한 반성

식민지 때만 해도 뜻있는 많은 이들이 스포츠 사랑에 반성의 뜻을 담았다. 몸의 움직임을 천시했던 성리학적 관념주의, 배타적 ‘문사 기질’에 대한 반성이었다. 권투, 축구에 프로급 실력을 갖고 1934~37년에 조선체육회를 이끌었던 여운형(1886~1947) 선생은 조선인 각자의 “건강한 몸”이 결국 “강건의 민족 만들기”로 이어질 것이라 생각했던 대표적인 스포츠 민족주의자였지만, 그의 스포츠 인식에는 독립운동가로서의 의지도, 양반이었던 자신의 가문의 과거에 대한 반성의 뜻도 아울러 담겨 있었다. 그런데 우리가 즐겨 보는 월드컵과 같은 프로 스포츠의 ‘꽃’에서는 이와 같은 고뇌의 흔적이라도 찾아볼 수 있는가? 잔혹한 군대식 시스템의 여러 여과 장치를 통과해 돈과 명예를 안게 되는 극소수의 고급 전문가들이 한국 남성의 세계적인 상징이 되어 그 몸이 국민의 집단적 신체처럼 여겨지지만, 그들만큼 성공하지 못한 수많은 이들은 온갖 폭언, 폭력으로 고통받고 좌절을 맛봐야 하고, 대다수 사람들은 마음 놓고 여가 때 운동을 즐길 만한 여유란 없다. 국가 대항전에 흥분해 대리만족을 느끼는 대신, 몸의 ‘움직임 욕구’에 부응해 남과의 경쟁을 의식하지 않은 채 누구나 적당한 운동을 마음껏 즐겨 직접적인 만족을 느낄 수 있는 좋은 시절이 올 것인가? 신자유주의라는 사회적 질병이 치유되지 않는 한 불가능한 이야기일 것이다.

참고 서적:

고광헌, <스포츠와 정치>, 푸른나무, 1988

황병주, ‘박정희 시대 축구와 민족주의’, <당대비평> 19, 2002

체육사상연구회 엮음, <스포츠 반 문화>, 무지개사, 2005

천정환, <끝나지 않는 신드롬>, 푸른역사,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