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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이너리티 ] 2000년09월20일 제326호 

[마이너리티] 집단적으로 감행한 커밍아웃

“침묵은 죽음이다” 국내 최초로 열린 동성애자들의 자긍심 퍼레이드와 퀴어문화축제









(사진/9월8일과9일.이틀에 걸쳐 연세대 제2인문관 강당에서 열린 퀴어문화축제.무지개2000.드랙퀸쇼와 전시,토론회 등 다양한 행사가 개최되었다)

“천천히 그러나 또렷하게 말하라. 나는 동성애자다.”

동성애자인권운동의 오래된 명제 중 하나다. 동성애자를 비롯한 성적 소수자들은 스스로에 대해 말함으로써,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냄으로써, 존재를 증명한다. 그전에 그들은 없는 존재다.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나는 게이” 혹은 “레즈비언”이라고 고백하는 일. 성적 소수자들은 그것을 ‘커밍아웃’(coming out of closet)이라고 부른다. 내면의 골방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세상 속에서 드러내는 행위라는 뜻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또다른 차원의 커밍아웃이 있다. 불특정 다수를 향해, 사회를 향해 집단적으로 “우리 여기 있다!”고 외치는 것이다. 표현방법은 성적 소수자들이 거리에서 벌이는 행진일 수도 있고, 한판 흥겨운 축제일 수도 있다. 외국에서 자주 그 둘은 결합된 형태로 나타난다. 올림픽이 열리고 있는 시드니의 마디그라축제는 그 대표적인 예다.

8월 말과 9월 초 한국의 성적 소수자들도 ‘집단적인’ 커밍아웃을 감행했다. 8월26일 서울 동숭동 대학로에서 벌어진 동성애자 자긍심 퍼레이드와 9월8일부터 이틀간 연세대에서 진행된 퀴어문화축제가 바로 그것이다. 둘 다 이땅에서는 ‘최초’라는 꼬리표가 붙은 행사였다. 퀴어(queer)란 남성동성애자, 여성동성애자, 성전환자, 양성애자를 두루 일컫는 말이다.

트럭 위에 올라탄 세명의 드랙퀸

“짱이야! 멋있어요!”

“음… 특이해요. 이상하네요.”

8월26일, 대학로에서 벌어진 자긍심 행진(Gay parade)을 보고 사람들이 보인 상반된 반응이다. 원래 이날 행진은 독립문화축제의 개막행사로 열린 가장행렬의 일부였다. 하지만 하루종일 쏟아진 비로 다른 팀들은 행사 시작 전 모두 돌아가 버리고 유일하게 성적 소수자들만 남아 자긍심 행진을 치르고 있었다. 무엇보다 시선을 끈 것은 트럭 위에 올라 탄 세명의 드랙퀸(Drag queen)이었다. 치렁치렁한 오랜지색 가발에 등이 훤히 드러나는 꽃무늬 원피스, 반짝거리는 금색 부츠로 치장한 드랙퀸. 얼굴은 붉은 립스틱과 짙은 아이섀도로 단장했다. 언뜻보면 영락없는 여성이다. 하지만 이들이 다가서 “안녕하세요?”라고 말을 건네는 순간 사람들은 멈칫 놀란다. 예상치 못한 중저음의 굵은 목소리. 분명 남자다. 여성 옷을 입고, 화장을 한 이들 드랙퀸을 보고 연건동 주민 이기용(42)씨는 심각한 얼굴로 “이상하다”며 말꼬리를 흐렸고, 이화여대 2학년 서주현(21)씨는 “멋있다”를 연발했다.

“내가 즐겁고 남들도 즐겁게 해주면 좋은 거 아니예요?” ‘머프’라고 이름을 밝힌 이 스무살의 드랙퀸은 지나는 사람들에게 사탕과 유인물을 나눠주며 즐거워했다. 당당한 그이지만 멋쩍은 경우도 없지 않았다. 네댓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에게 사탕을 주러 다가서자 아이엄마가 행진 대열 앞의 현수막을 보고 “어서, 가자”며 도망치듯 달아난 것이다. 아이는 사탕이 먹고 싶은 듯 자꾸 뒤돌아봤지만 엄마는 마치 못 볼 것을 봤다는 듯 매몰차게 아이의 손을 끌고 멀리 사라졌다.

앞장선 드랙퀸들 바로 뒤에는 성적 다양성을 의미하는 무지개 깃발과 각종 피켓을 든 50여명의 성적 소수자들이 따르고 있었다. 드랙퀸들과는 달리 그저 평범한 남자, 여자들로 보인다. 단지 얼굴의 무지개 페인팅이 이들이 동성애자임을 확인해줄 뿐이다. 행렬 뒤쪽에서 조용히 걷고 있는 임선영씨와 김명희씨. 스무살 동갑내기인 두 사람은 이런 행사에 참여하는 것이 처음이다. 동성애자인권단체 소속도 아니고 그저 자주 가는 레즈비언 사이트에서 오늘 행진이 있다는 걸 보고 무작정 찾아왔다. 임씨는 “대학로로 오는 동안에도 멀리 떨어져 그저 지켜보기만 하려고 했다”며 “막상 행진을 보니 생각보다 사람도 많고 용기가 나 참여하게 됐다”머 웃었다.

각종 시민단체의 연대인사

하지만 행렬에 끼지 못하고 마치 이성애자인 것처럼 멀리서 지켜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커플이라고 밝힌 남성동성애자 김아무개씨와 정아무개씨는 “아무래도 (행렬에) 끼는 게 부담스럽다”면서도 잠시도 행렬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행진이 벌어진 다음날 퀴어문화축제 사이트에는 ‘멀리서 바라본 퍼레이드’ ‘구경’과 같은 제목을 단 글들이 올라오기도 했다. 남성동성애자 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이벤트부장 천정남씨는 “행사가 있을 때마다 차마 끼지 못하고 멀리서 지켜보는 사람들이 꽤 많다”면서 “특히 나이 드신 분들 중에 이런 분들이 많다”고 전한다. 줄기차게 쏟아지는 빗 속에서 치러진 한국 최초 성적 소수자 자긍심 행진은 6시쯤 마무리되었다.

9월8일, 성적 소수자들은 속속 연세대 제2인문관 강당으로 모여들었다. 남성동성애자 인권단체 친구사이, 여성동성애자 인권단체 끼리끼리 등 20여개 성적 소수자 단체가 두달여 동안 준비한 ‘퀴어문화축제 무지개 2000’이 열리는 첫날이었기 때문이다.

“성적 소수자들의 자긍심과 새로운 세기의 연대를 위한 퀴어문화축제, 무지개 2000의 개막을 알립니다!”

저녁 7시, 사회자의 개막선언과 함께 한국 최초의 성적 소수자 문화축제는 시작되었다. 간단한 행사참가단체 소개가 끝난 뒤 각 시민사회단체에서 보내온 축하메시지가 영상으로 전해졌다. 성적 소수자 단체가 주최하는 행사에 시민사회단체에서 연대인사를 보내오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성적 소수자들이 만드는 공개적인 축제가 처음으로 열리는 것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이 행사가 우리 모두를 정치적으로 올바르게 이끌 것이라 믿습니다.”(전교조 여성위원회 백영애 위원장)

“서구에서 전통적인 운동의 힘이 소진될 때 활기를 힘을 불어넣은 것은 동성애자인권운동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그렇게 되기를 기대합니다.”(민주노총 윤영모 국제부장)

“여성이든 장애인이든 동성애자든 이 나라에서는 소수자들이 축제를 즐기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가 필요합니다. 그것은 바로 전투력입니다. 이번 퀴어문화축제가 세상을 뒤엎는 막강한 즐거움의 파티가 되기를 바랍니다.” (영화감독 변영주)

이어진 축하공연에는 다시 드랙퀸들이 등장했다. 이번에는 한복 차림이다. 온통 반짝이가 박힌 저고리를 입고 분홍치마를 살짝 걷어 올린 채 <삼다도 소식>을 틀어놓고 립싱크를 했다. 다음에는 세명의 드랙퀸이 나와 춤을 춘다. 드랙퀸 쇼는 정확한 립싱크와 그 노래를 부르는 가수와 똑같은 춤동작이 생명이다. 화장이나 의상도 그 노래를 부른 가수와 될 수 있으면 비슷한 분위기로 한다. 대상은 마돈나 같은 외국가수가 될 수도 있고, 이미자 같은 트로트 가수가 될 수도 있다. 똑같이 흉내내기가 아니라면 독창적인 표정이나 무대매너가 드랙퀸의 필수 요소다. 이미 여러 나라에서 동성애자 하위문화로 자리잡은 드랙퀸 쇼는 한국 동성애자행사에서도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단골메뉴다. 퀴어문화축제 홍보부장 문영준(21)씨는 드랙퀸을 이렇게 설명한다.

자원봉사하는 이성애자들도


(사진/8월26일 대학로에서 열린 국내최초 자긍심 행진. 비가 쏟아지는 가운데서도 성적 소수자들은 끝까지 대열을 지켰다)


“드랙퀸이 모두 여성이 되고 싶어하는 남성들은 아닙니다. 모두 성전환자들은 아니라는 얘기죠. 오히려 성적 경계를 넘나 듦으로써 남성성과 여성성이라는 고정화된 이분법을 깨려는 정치적 의도가 들어 있는 겁니다. 이성애 중심사회에 대한 일종의 희롱인 거죠. 남성동성애자 안에서 충돌하는 남성성과 여성성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한 방법이기도 하고요.”관객의 환호 속에 드랙퀸 쇼가 끝나고 인디밴드 ‘운디드 플라이’의 공연이 이어졌다. 이성애자로 구성된 그룹이지만 성적 소수자에 대한 연대의식에서 이 행사에 참여하게 되었다는 운디드 플라이는 동성애자들의 잔치를 “예쁘게 어설프다”고 표현했다.

“이성애자”라고 밝힌 참가자들도 있었다. 연세대 1학년 성민현(20)씨는 “드랙퀸 쇼는 좀 낯설고 어색했다”면서도 “오히려 객석에 앉은 사람들을 보니 일반인과 전혀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성씨는 친구 두명과 함께 행사가 끝날 때까지 자리를 뜨지 않았다. 이성애자가 관객석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퀴어문화축제를 준비하는 자원봉사자 중에도 이성애자가 여럿 섞여 있다. 고등학교 때부터 인권운동에 관심이 많았다는 김아람(20·경원대 2학년)씨가 대표적인 경우다. 김씨는 “처음에는 성격이 어두운 사람들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며칠 같이 일해 보니 다들 밝고 재미있게 사는 것 같다”고 말했다. 사실 처음 퀴어문화축제 자원봉사를 하겠다고 찾아왔을 때는 “이성애자가 여기 왜 왔느냐?”며 탐탁지 않은 눈길을 보내는 동성애자들도 있었지만 행사를 준비하면서 어느새 친해진 사람들도 생겼다. 김씨는 “마음의 벽을 없애기 위해서 다음에도 꼭 자원봉사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첫날 행사가 주로 공연 위주로 채워진 반면, 둘쨋날은 공연과 더불어 이반의 친구들, 주제별 간담회 등 비교적 다채로운 행사가 펼쳐졌다. 행사가 시작되는 오후 3시20분 전부터 연세대 제2인문관 강당 앞은 사람들로 술렁이고 있었다. 강당 입구에 설치된 낙서판에 글을 적는 사람도 적잖이 눈에 띄었고 어느새 전지 3장 분량의 낙서판이 빼곡이 채워져 있었다. ‘새로운 문화창조라는 힘든 일을 하시네요. 꼭 성공하시길’이라고 격려하는 이성애자의 글에서부터 ‘KS, JN아 마음놓고 끼떠는 세상이 곧 올거야’라는 익살스런 동성애자들의 낙서, ‘이성애권력 해체!’라는 과격한 문구까지 참가자들의 다양한 정체성을 보여주는 글들이 적혀 있었다.

강당에 들어서니 전날에 비해 훨씬 많은 300여명이 관객이 자리를 메우고 있었다. 첫 포문을 연 것은 레즈비언들의 퍼포먼스였다. 두 여자 사이의 사랑과 갈등을 무언극으로 표현해 큰 박수를 박았다. 무언극 뒤에는 레즈비언 풍물패 ‘바람소리’의 신명나는 가락이 이어졌다.

‘청소년 동성애’를 놓고 머리를 맞대다


(사진/남성동성애자,여성동성애자,성전환자,양성애자 등 다양한 성적소수자 단체들이 퀴어문화페스티벌의 공동주최자로 나섰다)


오후 6시부터 전교조, YMCA, 친구사이, 청소년 동성애자 모임이 ‘청소년 이반의 현재’라는 주제를 놓고 간담회를 가졌다. 이반은 남성동성애자와 여성동성애자를 통틀어 일컫는 우리말이다. 서울 YMCA 이명화 간사는 “청소년들이 동성애문제를 상담해오면 많은 단체들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라 곤혹스러워하는 것이 현실”이라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저 ‘일시적인 현상이다’ 혹은 ‘나중에 고민해라’고 충고하는 것이 전부라는 얘기다. 전교조 학생생활국 김정욱 부국장도 “청소년 동성애자 문제가 중요하다는 건 알지만 참 건드리기 껄끄러운 문제”라며 답답해하긴 마찬가지였다. 비록 이날 토론회에서 뚜렷한 논의의 진전은 없었지만 청소년 동성애를 놓고 시민사회단체와 동성애자들이 처음으로 머리를 맞댔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었다. 청소년 간담회가 끝난 뒤에는 ‘성적 소수자 인권연대의 가능성 모색’이란 주제의 토론이 벌어졌다. 이 토론회에 참석한 인권운동 사랑방 활동가 최은아씨는 “동성애자들이 먼저 나서서 여성, 이주노동자, 장애인 등 다른 소수자들과 연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행사의 마무리 프로그램은 ‘이반의 친구들’이었다. 이 프로그램은 이성애자와 성적 소수자 사이의 공감의 폭을 확인하고 더욱 넓히기 위해 기획되었다. 먼저 ‘게이를 사랑하는 모임’의 대표 이혜미(25·교사)씨가 나와 ‘이반에게 보내는 편지’를 낭송해 큰 박수를 박았다. ‘게이를 사랑하는 모임’은 동성애자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거나 적극적으로 연대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이번 퀴어문화축제를 계기로 결성되었다. 주로 여성들이 구성원인 ‘게이를 사랑하는 모임’은 8월26일 진행된 자긍심 행진을 직접 촬영, 편집해 선보이기도 했다. 이 프로그램이 끝난 뒤 참가자들이 촛불을 들고 연세대 정문까지 행진함으로써 ‘퀴어문화축제 레인보우 2000’은 마무리되었다. 친구사이 기획부장 강지용(27)씨는 사그라지는 촛불을 바라보며 이번 행사의 의미를 이렇게 얘기했다.

“외국에 비하면 아직 초라한 수준인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남성동성애자, 여성동성애자, 성전환자, 양성애자로 나뉜 성적 소수자들 사이의 연대를 도모하고, 이성애자사회와 대화를 시작했다는 것만으로 이번 행사의 의미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내용도 해가 갈수록 더 알차지겠지요.”

90년대 중반 몇몇 동성애자들이 앞장서 커밍아웃을 하면서 이들의 인권운동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불과 5년 만에 성적 소수자들은 대중적인 커밍아웃의 시대를 맞고 있다. 공개적인 자긍심 행진과 퀴어문화축제는 그 징조다. ‘침묵은 죽음이고, 행동만이 삶이다’라는 동성애자 인권운동의 오래된 명제가 이땅에서도 서서히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신윤동욱 기자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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