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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학 ] 2003년03월19일 제451호 

발명에서 발견으로

고중숙의 사이언스 크로키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초등학교 시절 발명과 발견의 뜻을 서로 구별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때의 생각보다 약간 더 세련되게 말하면 발견은 자연에 이미 존재하는 현상을 찾아내는 일이고, 발명은 자연에서는 볼 수 없는 새 대상을 만드는 일이다. 이 구별은 아주 쉬워 누구나 잘 이해한다. 말 그대로 초등학교 수준의 문제다. 그런데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속담이 있다. 그리고 이로부터 곰곰이 생각해보면 뜻밖에도 둘 사이에서 드넓은 회색 지대를 발견하게 된다. 한 예로 원소의 개수가 있다. 지금껏 자연계에서 관찰된 원소는 100종에 못 미친다. 하지만 주기율표에는 더 많은 수의 원소가 올라 있다. 여분의 원소들은 이른바 ‘인공 핵변환’을 통하여 사람이 만든 장치 속에서 생성된다. 과연 이것들은 발견된 것인가 발명된 것인가.

다른 예로는 수학적 원리들이 있다. 중학 과정에서 배워 누구나 잘 아는 유클리드 기하학을 보자. 거기서 나오는 ‘피타고라스의 정리’는 발견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피타고라스는 그 증명을 자축하느라 큰 잔치를 베풀었다. 그런데 이 ‘증명 과정’을 거꾸로 추적하면 더 이상 증명할 수 없는 ‘공리’에 이른다. 실로 유클리드의 위대함은 공리의 ‘구성’에 있지 그 ‘귀결’에 있는 것은 아니다. 공리들이 증명 불가능이라면 그 구성은 발견일까 발명일까 먼저 예로 든 원소의 경우 ‘자연의 실체’이기에 발견에 가깝다. 하지만 공리는 ‘수학적 착상’일 뿐 실체가 아니다. 따라서 오직 인간의 사유체계 안에서만 존재하며, 그런 점에서 보면 발명에 가깝다.

철학적 또는 종교적 측면에서는 더욱 깊이 들어간다. 인간의 발명은 아무리 혁신적인 것이라도 결국 ‘유로부터의 창조’다. 이에 비하여 기독교에서의 창조는 이른바 ‘무로부터의 창조’(creatio ex nihilo)라고 불린다. 하지만 ‘무로부터의 창조’에서 창조의 원천이 무라고 할 때 그 무는 또 어디에서 올까. 인도의 종교들은 아예 무와 유를 동일시한다.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란 <반야심경>의 한 구절은 그 배경에 깔린 헤아릴 길 없는 심원함을 보여준다.

돌이켜볼 때 지난 수세기 동안 인류는 자연환경을 적대시하면서 살아왔다. 그것을 극복하려면 인간 정신을 드높이고 북돋워야 했다. 그리하여 일찍이 자연에 없었던 새로운 현상과 물건을 생성하면 발명이라고 불렀다. 이른바 ‘인간의 창조’였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인간 자신이 자연과 진화의 산물이다. 따라서 그로부터 나오는 모든 육체적·정신적 산물 또한 기본적으로 자연의 산물이다. 이런 상황에서 발명성을 강조할수록 자연과의 거리가 멀어진다. 20세기 말 이후 인류문명은 자연의 극복을 넘어 파괴로 나아가고 있다. 그런 파괴를 발명이라고 볼 수는 없으며 다시금 자연과의 조화를 꾀할 시대에 살고 있다.

발명과 발견은 본질적 차이로 구별되는 절대적 개념이 아니다. 하나의 현상을 두고 어찌 해석·설명할 것인지에 대한 사고의 방식(way of thinking)이자 어찌 생각하며 살아갈 것인지에 관한 삶의 방식(way of life)으로서의 상대적 개념이다. 발명의 역사는 인류를 고양시키다가 오만으로 빠지게 했다. 앞으로 좁은 지구촌은 그 안에서 어떤 모습이 구현되든 자연과 조화할 길을 찾아가는 겸허한 ‘발견의 철학’에 서야 한다.

고중숙 ㅣ순천대학교 교수·이론화학 jsg@sunchon.suncho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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