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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학 ] 2003년03월11일 제450호 

인본원리가 꽃피는 곳

고중숙의 사이언스 크로키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과학은 법칙(law)을 토대로 이뤄지며 건물에 비유하면 주춧돌에 해당한다. 주춧돌이 부실하면 건물 전체가 불안정하게 되므로 대개의 법칙은 엄격한 점검을 거쳐 공인된다. 법칙과 비슷한 말로 원리(principle)가 있다. 원리는 먼저 법칙들 가운데 중요한 것을 가리키는 데 쓰이며, 상대성원리, 불확정성원리, 적자생존의 원리 등이 이에 속한다. 또한 원리는 법칙보다 상당히 포괄적이고 느슨한 개념으로도 쓰인다. 이른바 ‘제1원리’라면 신을 가리키고,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라면 자연현상의 뒷면에 자리잡은 수많은 수학적 메커니즘을 두루 일컫는다. 나아가 ‘토대’와는 반대로 ‘정향’(定向)을 뜻하는 데 쓰이기도 한다. 예컨대 ‘참여정부’가 내세운 ‘4대 국정원리’는 앞으로 5년간 나라의 나아갈 방향을 안내해준다.

자연과학은 기본적으로 이미 있는 현상을 설명하는 학문이다. 곧 현상이 설명보다 앞서는 것이 통례다. 그런데 자연과학에서도 정향 기능이 있는 원리가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인본원리(anthropic principle)로서 말 그대로 풀이하면 ‘인간을 본위로 삼는 원리’라고 이해된다. 그 배경에는 “어찌해서 이 세상에 우리 인간이 살게 되었을까”라는 의문이 깔려 있다. 잠시만 둘러보면 곧 알 수 있듯, 지구라는 생태계는 인간을 위해 참으로 정교하게 꾸며진 장치란 생각을 떨치기가 어렵다. 만일 지구가 태양에 좀더 가깝다면 뜨거운 태양열 때문에 하등생물은 모르되 인간 같은 고등동물은 살아가기 힘들다. 반대로 조금 더 멀리 떨어져 있다면 추위 때문에 그렇다. 지구의 크기도 의미심장하다. 좀더 작았다면 중력이 약해서 호흡에 필요한 대기가 부족해진다. 반대의 경우라면 육상동물의 활동은 많은 제약을 받게 된다. 이 밖에도 지구의 밀도, 대기의 조성, 수륙의 분포, 진화과정 등 인간을 위한 특별한 배려라고 해석될 요소는 매우 많다.

이런 생각으로부터 1950년대에 인본원리가 탄생했다. 처음에는 별 호응을 받지 못했지만 70년대에 들어 과학계에 꽤 폭넓은 반향을 불러일으켰으며 지금껏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리하여 대략 말하자면 “우리 우주는 어딘가에서 탄소를 기초로 한 생명이 진화할 수 있도록 조성된다는 원리의 지배를 받는다”고 보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이를 가리켜 인본원리라고 한다. 일부 학자들은 이 원리에 너무 심취한 나머지 더 강한 믿음을 품는다. 이들은 심지어 “지성적인 정보 관리자가 우주 안에서 필연적으로 출현하며, 한번 존재하면 결코 소멸할 수 없다”라고까지 주장한다. 말하자면 인류 또는 그 이상의 지성적 존재가 우주와 더불어 영생을 누릴 것이라는 뜻이다.

예전의 천문학은 태양계를 넘어설 경우 태양과 같은 항성만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최근의 천문학은 정밀도가 크게 향상돼 아주 먼 외계의 행성도 탐지하게 되었다. 다만 애석한 점은 현재까지 발견된 행성계에는 지구와 같은 환경을 가진 곳이 없다는 것이다. 인본원리가 정말로 우주적 원리라면 우리 지구에서만 구현되라는 법은 없다. 따라서 아직 실망할 단계는 아니다. 앞으로 더욱 개선된 관측이 이뤄지면 곳곳에서 인본원리를 확인할지 모른다. 그때쯤이면 인본원리는 우주의 정향과정에서 꽃핀 우리의 미래를 예시할 수도 있다.

고중숙 ㅣ순천대학교 교수·이론화학 jsg@sunchon.suncho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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