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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섹션 : 과학 등록 2003.01.29(수) 제445호

[과학] 과학기술=경제성장?

과학을 수단으로 여기는 인수위의 과학기술관… 과학주의 경계하고 시민 참여 확대해야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1월22일 12대 국정과제를 발표하면서 ‘과학기술 중심사회 구축’을 하나의 항목으로 포함시켰다. 세부항목은 △과학기술자 사기 진작과 과학기술 인력 양성, △연구개발비의 투자확대, △기술혁신·새산업 육성, △일자리 창출 등 4대 항목이다. 얼핏 보아도 이 항목들은 인수위가 과학기술에 대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철학과 향후 추진방향을 어렴풋이나마 짐작하게 한다. 미래사회에서 과학기술은 국가의 사활이 걸린 중요한 분야다. 따라서 과학기술 분야에 많은 자금을 투자해 한편으로 기술을 혁신하고 새로운 산업을 육성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최근 이슈화된 이공계 기피현상을 극복하면서 과학기술자들의 사기를 진작하고 아울러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풀어본 짧은 글에서 핵심어는 ‘육성’과 ‘투자’다. 혹시 다른 이야기를 찾아볼 수 있을까 해서 인수위 경제2분과와 당선자의 정책간담회(1월16일) 자료를 살펴보았지만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분과위가 당선자에게 보고한 주요 내용은 “과학기술 혁신과 성장 잠재력 배양, 동북아 경제중심 국가 건설을 위한 과제”였다. 간담회에서 논의된 내용을 고려하면 인수위의 과학기술관은 결국 “동북아 경제중심 국가 건설을 위한 성장 잠재력”인 셈이다. 한 시민단체가 인수위의 관점을 “과학기술을 경제의 하위범주로 보는 구시대의 통념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한” 사고라고 혹평했듯 투자확대→과학기술 발전→경제성장이라는 박정희 정권 이래 수십년 동안 이 나라의 과학기술 정책을 지배해온 구태의연한 접근방식을 답습하고 있다.

구태의연한 접근, 철학의 빈곤 드러내

현대사회에서 과학기술이 중요하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이야기다. 그리고 최근 사회문제로 떠오른 이공계 기피현상은 사실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라 이미 1970년대 중반부터 과학기술계에서 제기된 문제였다. 과학기술에 대한 투자는 물론 중요하다. 그리고 동북아 경제중심 국가가 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과학기술을 경제발전을 위한 수단쯤으로 생각하고, 투자만 많이 하면 과학기술자들의 사기가 진작되고, 이공계 기피현상이 해결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지나치게 안이하다. 과연 문제가 오직 투자 부족에만 있었을까

오히려 근본 원인은 인수위가 여전히 이어받고 있는 ‘과학기술=경제성장’이라는 도식에서 비롯한 측면이 크다. 경쟁력 제고를 위한 수단적 관점에서 과학기술을 육성하려다 보니 기초과학 지원은 구호로 그치기 일쑤고, 실험실에서 묵묵히 연구에 몰두하는 대다수 과학자들은 소외되고 이른바 잘나가는 분야의 일부 인사들만이 온갖 위원회에 불려다니는 기형적 상황을 낳았다. 오늘날의 이공계 위기는 인문학과 자연과학을 아우르는 기초학문 전체의 위기와 맞물려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눈앞의 이익이나 정치에 휘둘리지 않으면서 자기 분야에 평생 몰두하는 과학자가 존경받고 대우받는 풍토가 조성되지 않는 한, 투자 확대는 소외와 기형성을 강화할 뿐이다. 이제는 경제발전이나 성장을 장기적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 그리고 첫걸음은 과학을 경제발전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협소한 인식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인수위는 과학기술을 경제2분과의 하위항목으로 편입시켰고, 12대 과제 가운데 하나로 ‘과학기술 중심사회’라는 모호한 개념을 제기했다. 경제2분과의 토론회(1월21일) 내용을 살펴봐도 과학기술 중심사회가 무엇을 뜻하는지 분명치 않다. 발표된 토론내용을 통해 유추해보면 “과학입국·공업입국을 해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경험을 살려서 다시 국민적 역량을 모아 제2의 과학기술 입국, 과학기술 혁신을 한번 더 정진해야 한다”는 말을 하기 위한 조어(造語)로 보인다. 물론 아직까지 다듬어지지 않은 개략적 정책 방향을 제시한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앞으로 내용을 채워야 한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기본골격에 해당하는 ‘과학기술 중심사회 구축’이라는 방향 설정은 여러 측면에서 우려스럽다.

먼저 이 방향은 과학기술을 과학기술자들에게만 국한되는 좁은 영역으로 한정시켰다. 지금까지 발표된 내용만을 토대로 할 때 인수위가 생각하는 과학기술은 시민사회와 무관하게 분리되어 있고, 삶의 질이나 문화와도 동떨어져서 오로지 경제발전에만 이어지는 인상을 준다. 그러나 오늘날 과학은 모든 사람들의 삶과 직결되어 있고, 그 나라의 문화적·사회적 맥락과 밀접하게 얽혀 있다. 최근 유럽에서 빚어진 유전자조작식품(GMO) 사태에서 잘 드러나듯, 시민들의 삶의 질과 함께 고려되지 않는 한 독자적인 발전은 생각할 수조차 없다. 인수위는 국민이 참여하는 정치를 실현하겠다는 혁신적인 포부를 밝혔지만, 과학분야는 참여 대상에서 여전히 배제되었다. 최근 영국 상원이 발표한 ‘과학과 사회’ 보고서에서 “이제는 과학기술에 대한 시민참여가 선택이 아닌 필수다”라고 한 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경제2분과가 1월21일 토론하면서 자주 거론한 과학기술 혁신 시스템에는 사회·문화적 측면도 중요한 요소로 포함된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생명·윤리는 부차적 문제가 아니다

또한 이 골격에 따르면 이후 과학기술 정책이 과학주의(scientism)로 흐르지 않을지 우려스럽다. 과학주의는 과학기술이 모든 사회적 의사결정의 척도가 되고, 경제를 비롯해 우리 사회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다는 믿음이다. 그러나 이미 과학주의는 유럽을 비롯한 선진국에서 1970년대 이후 배격된 잘못된 생각에 지나지 않는다. 과학기술이 중심이 되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말은 얼핏 들으면 “과학기술을 정말 중요하게 생각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지 모르지만 정작 과학기술의 발전을 왜곡할 수 있는 발상이다. 과학은 우리 사회의 중요한 분야 가운데 하나며, 다른 분야와 균형 있는 발전이 이뤄질 때만 사회 구성원 모두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다.

최근 인간복제 문제가 불거지고 생명윤리법 제정을 둘러싼 논란이 벌어지지만 인수위는 적극적 입장표명을 하지 않고 있다. 물론 조심스러운 자세는 충분히 이해하지만, 혹시라도 과학기술 중심사회 구축이 윤리나 안전을 부차적 문제로 여기면서 생명공학 기술 발전을 우선시하는 것인 양 생각하는 우를 범하지 않기를 바란다. 아마도 생명윤리법 제정이 새 정부가 결정을 내려야 할 첫 번째 과제일 것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이 판단을 통해 새 정부가 과학기술에 대해 어떤 입장을 선택할 것인지 주목할 것이다.

김동광/ 과학저술가·과학세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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