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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학 ] 2002년05월02일 제407호 

학문의 뿌리가 뽑히고 있다

기초학문 근간을 흔드는 이공계 위기론… 부분적 진단·처방보다는 사회적 문제로 접근

최근 과학기술계의 가장 큰 이슈는 이공계 위기론일 것이다. 몇년 전부터 이공계 대학원 진학이 미달사태를 빚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더니, 최근에는 대학 입시의 자연계열 응시자 비율이 급격히 떨어지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이제 이공계 위기론은 과학기술계를 넘어 심각한 사회적 문제가 되었다. 최근 인터넷 사이트에는 대덕연구단지의 아버지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자식이 이과나 공과에 가겠다는 이야기라는 농담 아닌 농담까지 회자하고 있다. 공부하기 힘들고, 애써 공부해도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합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현실이 낳은 자조 어린 한탄인 셈이다.

대덕연구단지 아빠들이 가장 두려운 것


사진/ 이공계 위기는 기초학문의 위기로 이어진다. 이공계 연구자들은 상대적 박탈감을 절감하고 있다.


이처럼 상황이 예사롭지 않자 언론에서도 잇따라 특집기사를 내고 있다. 정치가들을 포함해서 그동안 과학기술계와 음으로 양으로 관계가 있는 사람들은 저마다 나서서 한마디씩 목청을 높였다. 이공계 위기론에 대한 진단과 해법도 다양하게 나오고 있다. 그동안 이 주제를 특집으로 다룬 잡지와 신문의 큰 주장들만 훑어보아도 ‘과학기술자 우대풍토를’, ‘과학기술자들을 사회의 중요한 직위에 임명할 수 있도록 관련법 개정’, ‘과학자의 적극적 정치 참여 필요’, ‘국민의식 개조, 국민과학화운동 정치적 차원으로 승화해야’, ‘해외두뇌 유치 적극 나서야’, ‘과학교육 내실화 종합대책 마련 시급’ 등 경제적 처우, 사회적 지위, 국민의식, 교육, 법률 등 우리 사회의 거의 모든 분야에 걸친 문제점과 대책들을 망라하고 있다. 이런 진단과 처방들은 해당 영역에서는 나름대로 의미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처럼 다양한 문제 제기에서 드러나듯 이공계 위기론은 부분적인 진단과 처방으로는 치유하기 힘들 정도로 사회적 뿌리가 깊다.


사진/ 한 이공계 대학 연구실 모습.


많은 과학기술자들이 주장하는 공통적인 요소는 현실적 조건이다. 학창시절에 함께 공부한 비이공계 친구들이 더 많은 연봉을 받고 사회의 요직에 오르는 것을 지켜보아야 하는 것도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나마 스스로를 지탱해온 국가의 미래를 위해 과학기술을 연구한다는 자부심도 과학기술에 대한 상대적 경시풍조로 지켜나가기 힘들게 되었다고 호소한다. 그동안 누적된 불만과 상대적 박탈감이 워낙 컸기 때문에 이런 주장이 상당한 설득력을 발휘해 과학기술자들 사이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더구나 얼마 전까지도 모든 사람들이 들어가고 싶어하던 이공계 주요 학과가 요즈음 잘 나가는 의대나 한의대의 입학성적보다 훨씬 낮아졌다. 심지어 미달까지 우려해야 하는 사태가 빚어져 자존심 문제로까지 발전하고 있다.

과학기술자들이 느끼는 이런 감정은 많은 사람들이 수긍할 만한 것이다. 하지만 최근 논의가 심화하면서 과연 이런 문제가 이공계에서만 나타나는 특수한 현상인가라는 물음이 제기되고 있다. 사실 비이공계에서는 이미 오래 전에 인문학의 위기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고, 인문학과 사회과학 분야 박사들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이른바 고학력 실업자들에 대한 논의도 간간이(지금의 이공계 위기론처럼 크지는 못했지만) 불거져나왔다. 이공계에서 실력 있는 학생들이 돈 잘 버는 의대 계열로 몰리듯이, 비이공계에서도 많은 학생들이 전공과 관계없는 고시로 몰리는 사태가 빚어져왔다. 게다가 그동안 애써 시장으로부터 초연한 듯한 인상을 풍기던 대학들이 몰려드는 신자유주의의 물결 속에서 발벗고 시장원리를 들여오면서 기초학문이 설자리를 잃은 현상도 이미 새로운 이야깃거리가 아니다.

요즈음 아이들이 자기 뒤를 이을까 걱정한다는 대덕의 아버지들이 대학에 들어갈 때는 주위에서 부러운 눈길을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철학이나 문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수십년 전에 그 전공을 선택할 때부터 부모들과 한바탕 설전을 벌여야 했다. 따라서 그 본질을 파헤쳐보면 이공계 기피현상을 통해 제기된 위기론은 이미 예고된 것이었다. 우리 사회 전반에 널리 퍼져 있는 이른바 ‘돈 되는 분야가 최고’라는 무분별한 시장원리가 대학을 지배하고 확산되면서 기초학문 전체가 흔들리게 된 것이다. 이런 이해를 바탕으로 대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이번에 이공계 위기론이 불거진 직접적인 계기는 수험생들의 두드러진 자연계열 기피현상이다. 하지만 과학기술자들이 느껴온 소외감과 상대적 박탈감의 뿌리는 무척 깊다. 특히 우리 사회에는 역사적으로 뿌리깊은 사농공상의 위계적 전통질서가 깔려 있다. 또한 소수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이공계 출신들이 사회적 의사결정에서 중요한 지위에 오르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그런 면에서 최근 밑에서부터 자생적으로 활발한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는 과학기술자들의 사회세력화와 조직화는 무척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이러한 움직임이 설득력을 갖기 위해서는 연구자나 공학자뿐 아니라 좀더 넓은 계층이 겪는 소외와 상대적 박탈의 문제까지 포괄해야 할 것이다.

시민사회의 폭넓은 문제로 확산해야

요즘 산업역군이라는 칭호가 무색할 만큼 형편없는 대우를 받고 있는 기술자들의 문제는 매우 심각하다. 이는 기능올림픽에서 높은 성적을 거둔 우수한 기술자들이 힘들게 익힌 기술을 포기하고 전업하는 경우가 많은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또한 아직도 교수와 학생 사이에서 전근대적 위계체계가 온존하는 이공계 대학과 대학원의 수직적인 연구환경 문제도 예외일 수는 없다. 비교적 정도가 덜한 비이공계 학생들과의 사이에서 느끼는 상대적 소외감 극복을 위해 해결해야 할 중요한 과제이다. 물론 이러한 과제들을 한꺼번에 해결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이공계 위기론을 둘러싸고 펼쳐지는 이번 논의를 과학기술자들이 주도한다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모처럼 과학기술자들이 스스로 우리 사회 과학기술계의 문제점을 제기한 소중한 기회의 장이 열린 것이다. 그런 만큼 그동안 쌓인 불만을 털어놓는 분풀이에 그치거나, 몇 가지 임시방편의 조치를 얻어내는 정도로 끝내서는 안 될 것이다. 이공계 위기론을 기초학문의 위기나 과학기술계 여러 계층들의 소외문제로 넓히는 게 필요하다. 이 문제가 이공계 연구자나 공학자의 문제를 넘어 사회적 문제화할 때 더 큰 힘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근본적인 대책을 세우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 전체의 목소리가 되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시민사회의 많은 집단과 인식을 함께하고, 공동으로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김동광/ 과학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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