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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학 ] 2002년04월24일 제406호 

중력에 맞서는 ‘바이오 섬유’

전투기 비행복의 역사 바꾸는 리벨레… 생체 모방한 거미줄·전복껍질 섬유도 개발

유럽 4개국(영국·독일·이탈리아·스페인)이 공동으로 개발한 ‘유로파이터’. 이 최신예 전투기는 미국 보잉사의 ‘F15K’, 프랑스 다소사의 ‘라팔’, 러시아 로스보르제니에사의 ‘수호이 35’ 등과 함께 한국의 차세대 전투기(F-X) 사업에 참여했다. 유로파이터는 제공권 장악을 위한 공대공 전용 요격기로 개발됐다. 그런 까닭에 지대공 공격력이 떨어져 예선에서 일찌감치 밀려났다. 그럼에도 머지않아 미그-29나 팬텀, 토네이도 등을 대체할 만한 전투기로 평가받고 있다. 요즘 유로파이터사는 전용 비행복 선정을 놓고 고민에 빠졌다. 스위스 라이프서포트시스템사가 전투기 조종사용 G-비행복으로 ‘리벨레’(Libelle·독일어로 잠자리를 뜻함)를 개발해 유로파이터에 공급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도대체 리벨레가 어떤 비행복이기에 유로파이터사가 선택을 놓고 골머리를 앓는 것일까.

노멕스·케블라로 중력을 거부한다

99000 현재 전투기 조종사들이 입는 G-비행복은 50여년 동안 거의 변하지 않았다. 전투기의 성능 개선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군의 주력 전투기였던 ‘P-51 무스탕’ 조종사들의 비행복을 지금도 입는 셈이다. 유인 전투기에는 최소한 두명이 탑승해 한명은 조종과 무장발사를 맡고, 다른 한명은 목표물을 찾는다. 이들은 때론 중력의 9배 정도의 압력을 견뎌야 한다. G-비행복은 산소 마스크의 압력과 동일한 압력으로 가슴이나 다리 부위를 감싸주는 공기주머니가 달려 있다. 이런 비행복을 착용하지 않는다면 조종간을 갑자기 당기는 순간 혈관이 파열되거나 허파와 심장 등이 손상될 수 있다. 아무리 G-비행복을 착용해도 중력을 완전히 흡수하지는 못한다. 그래서 전투기 비행사들은 밀폐된 시뮬레이터에서 ‘저압실 비행’을 되풀이하면서 중력에 적응하게 된다.

최근 선보인 리벨레는 전혀 새로운 기술로 개발됐다. 라이프서포트시스템사 연구진은 독성이 없는 불연성 액체로 중력을 완전히 흡수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불연성 액체는 유방 성형수술에 이용되는 실리콘에 특수 기밀재료를 섞어 만들었다. 이 액체는 5cm 두께의 채널을 통해 팔과 다리, 몸통을 지나가도록 했다. 문제는 액체를 주입할 섬유를 찾아야 하는 것이었다. G-비행복의 성능을 결정짓는 섬유는 어떤 압력에서도 늘어나지 않는 재질이어야 한다. 연구진은 듀퐁의 방향족 아마이드 중합체 섬유인 방화 ‘노멕스’(Nomex)와 고강도 ‘케블라’(Kevlar)를 적절히 배합하는 방법으로 특수섬유를 개발했다. 중력의 급격한 변화에 견디도록 수평으로는 질기면서도 수직으로는 유연한 혼방직물을 만들어낸 것이다. 리벨레 테스트에 참가한 전투기 조종사들은 탁월한 성능에 갈채를 보내고 있다.

G-비행복의 역사를 바꿀 것으로 보이는 리벨레. 만일 노멕스와 케블라 등의 첨단섬유가 없었다면 ‘중력 거부’ 비행복은 상상에 그치고 말았을 것이다. 이처럼 가벼우면서도 질긴 뛰어난 첨단섬유는 산업재해 방지를 위한 산업용 보호복 소재로 각광받고 있다. 노멕스는 순간적인 고열 화염에 강해 작업복이 타거나 녹아 떨어지지 않아 소방복으로 널리 쓰이고 있다. 케블라로 만든 보호용 바지는 분당 990m의 속도로 회전하는 동력톱을 멈추게 할 정도의 강력한 저항성을 지니고 있다. 3인치짜리 강철 밧줄 1인치의 무게는 9kg에 이르지만 같은 세기의 케블라 밧줄은 2kg이 채 나가지 않는다. 선박용 밧줄이나 자동차 타이어의 강화섬유로 케블라를 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게다가 케블라는 섬유로 뽑으면 고무줄처럼 늘어나는 탄력성을 지녀 총알이 날아와도 충격을 그대로 흡수한다. 케블라에도 문제는 있다. 끓는점까지 가열된 고농도의 황산에서 방적되기에 공정이 복잡하고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는 것이다.

그래서 자연계에 존재하는 신비한 생명체들의 원리를 모방하는 첨단섬유를 개발하려고 한다. 인공섬유의 기술적 장벽을 자연의 힘으로 돌파하려는 것이다. 가장 주목받는 ‘바이오 섬유’는 거미의 실샘에서 나오는 섬유물질이다. 거미줄의 지름은 0.0003mm에 지나지 않지만 같은 두께의 강철보다 강하고 나일론만큼 질기다. 거미의 방적법은 합성섬유를 만드는 방법과 유사해 이를 유전공학적으로 재현하려는 시도가 잇따르고 있다. 캐나다의 넥시아 바이오테크놀로지는 염소의 유방세포에 거미 주전자를 주입해 우유에서 거미줄 성분의 단백질을 모으고 있다. 형질전환 염소만 충분히 확보된다면 인공 거미줄로 G-비행복 소재뿐만 아니라 우주선 밧줄이나 의료용 섬유 등으로 이용될 전망이다.

또 하나의 바이오 섬유 재료는 전복껍질이다. 대부분이 탄산칼슘으로 이루어진 전복껍질은 독특한 구조로 인해 원래의 탄산칼슘 결정보다 무려 3천배 정도 균열저항성이 높다. 마치 합판처럼 겹겹이 쌓인 전복껍질의 ‘탄성’(외력에 의하여 변형을 일으킨 물체가 힘이 제거되었을 때 원래대로 되돌아가려는 성질)은 강력한 접착물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복껍질을 구성하는 미세한 탄산칼슘의 결정 판구조들이 외부 충격을 흡수하는 수많은 단백질 분자들에 묶여 있는 것이다. 이 단백질 분자들은 충격을 방지하는 용수철 구실을 하면서 분자가 외부의 자극에 반응하면서 풀림과 조임 상태를 되풀이한다. 전복껍질의 분자 구조와 원리를 유전공학적으로 응용하면 케블라처럼 견고하고, 실리콘 탄성체처럼 단단한 신소재를 합성해낼 것으로 보인다.

바이오 섬유에 지능을 부여하는 연구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오스트레일리아 울론공대학의 지능폴리머연구소는 외부 온도변화에 적응하고 신체 손상을 막는 지능형 의류를 개발하고 있다. 전자센서가 외부 날씨의 상태에 따라 직물 섬유가 모양을 변화시켜 착용자의 체온을 유지하도록 명령하는 것이다. 지능형 섬유가 G-비행복으로 개발되면 전투기가 고공에서 사고가 발생할 경우 조종사를 보호하는 것도 가능하다. 조종사가 탈출하는 과정에서 순간적으로 얼어버리는 사태를 방지하기 때문이다. 리벨레의 경우 특수 기밀재료에 증류수를 섞어 탈출 사태에 대비하고 있다. 언젠가는 착용 가능한 컴퓨터가 비행복에 결합돼 다목적 임무수행 장비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무인 전투기 개발 잇따라 시장 불안


사진/ 최신 무인 전투기 모델들. 보잉사의 X-45A(위)와 사브사의 '샤크'(아래).


이처럼 G-비행복의 성능을 높이려는 차세대 섬유 개발이 한창이지만 미래가 확실하게 보장된 것은 아니다. 아군이 위험에 노출되지 않고도 삼엄한 방공망으로 보호되는 전략 요충지에 들어갈 차세대 무인 전투기가 개발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미국의 보잉사는 지능형 무인 전투기 ‘X-45A’를 내놓았고 스웨덴의 사브사는 무인 스텔스 전투기 ‘샤크’(Sharc) 프로젝트를 공개했다. 미국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은 원격 조종이 가능하고 유인 전투기로는 불가능한 곡예비행까지 수행하는 무인 전투기 개발에 나섰다. 이런 무인 전투기는 유인 전투기보다 비용이 저렴하며 조종사를 훈련시킬 필요도 없다. 아무리 G-비행복 성능이 뛰어나도 무인 전투기에서는 무용지물이다. 물론 첨단 무인 전투기가 지능적으로 임무를 수행한다 해도 완전한 작전수행에는 이르기 힘들다. 유인 전투기가 뒷받침되어야만 복잡한 상황전개에 신속히 대응하면서 작전을 마칠 수 있다. 바로 거기가 첨단 G-비행복의 시장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자료: <사이언스 올제> 2002년 4월호.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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