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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학 ] 2002년03월06일 제399호 

바퀴벌레에게 배워보렴!

정재승의 과학으로 세상읽기


일러스트레이션/ 차승미
‘라쿠카라차 라쿠카라차 아름다운 그 얼굴/ 라쿠카라차 라쿠카라차 희안하다 그 모습.’ 어린 시절 자주 부르던 이 정겨운 멕시코 민요의 제목인 ‘라 쿠카라차’(La cucaracha)는 스페인어로 ‘바퀴벌레’라는 뜻이다. 흥겨운 멜로디와 정겨운 노래말과는 사뭇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지만, 바퀴벌레만큼 서민들과 오랫동안 함께해온 곤충이 또 어디 있겠는가.

바퀴벌레 하면 떠오르는 영화가 있다. 바로 세상에서 가장 더러운 영화 <조의 아파트>. 뉴욕 빈민가의 더러운 아파트에 사는 ‘조’와 수만 마리의 바퀴벌레들이 주인공인 영화다. 물론 이 영화에 등장하는 바퀴벌레들은 착한 편이다. 조가 사랑에 성공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도 하고, 뉴욕에 공원을 지어주기도 한다. 그래도 이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우리는 진정 바퀴벌레로부터 벗어날 수는 없는 걸까’라는 생각에 잠기게 된다.

바퀴벌레는 약 3억5천만년 전에 지구에 출현해 지금까지 환경에 잘 적응하며 끈질기게 살아왔다. 인간은 겨우 10만년 정도 지구에 살았으니까, 따지고 보면 바퀴벌레가 ‘지구의 임자’인 셈이다. 바퀴벌레의 종류는 약 4천종인데, 우리가 주변에서 볼 수 있는 것은 대략 30종에 불과하다. 다시 말해, 주변에 널린 바퀴벌레들은 실제 바퀴벌레 수에 비하면 ‘새발의 피’라는 얘기다.

인간이 지금까지 바퀴벌레를 없애기 위해서 투자한 연구비는 무려 1조원. 덕분에 바퀴벌레 살충제의 성능은 상당히 좋은 편이다. ‘집안에 사는 벌레’들에 대한 통계조사에 따르면, 예전에는 바퀴벌레, 개미, 흰개미 순이었는데 이제는 개미, 흰개미, 바퀴벌레 순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하지만 아직 안심하긴 이르다. 바퀴벌레 한 마리가 1년에 낳는 새끼의 수는 무려 3만5천 마리. 아무리 살충제가 강력하다 해도 ‘박멸’의 길은 멀게만 보인다. 바퀴벌레는 식탁, 치약, 심지어 본드까지 먹어치우며 우리 몸에서 떨어지는 비듬, 귀지, 털까지 먹기 때문에, 인간이 있는 곳에 바퀴벌레는 항상 존재하게 마련이다.

문제는 생각보다 바퀴벌레가 상당히 똑똑하다는 사실이다. 바퀴벌레는 더듬이로 공기의 흐름을 감지해서 포식자가 접근하는지를 알아낸다. 그런데 이 더듬이의 성능이 아주 뛰어나고, 마치 유체역학 같은 물리법칙들을 잘 이해하고 있는 것처럼 더듬이가 작동을 한다는 사실이 몇년 전 과학잡지 <네이처>에 실린 바 있다. 실제로 1938년 미국 텍사스주 아마릴로 형무소 독방에 수감중인 한 죄수가 바퀴벌레를 휘파람 소리로 훈련시켜, 외부인이 바퀴벌레 등에 담배를 매달면 휘파람을 불어 독방으로 운반해오는 일을 시키다가 적발된 사건이 있었다. 이쯤 되면 바퀴벌레의 지능이 장난이 아니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3억년 동안 갈고 닦여진 번식력과 아무거나 가리지 않고 먹어치우는 식성, 자기 몸의 몇천배 높이에서 떨어져도 끄떡없는 운동신경, 주어진 환경에 맞게 생활패턴을 바꿔가는 적응력. 이런 것들 때문에 바퀴벌레는 박멸은커녕 ‘핵전쟁이 일어나 인류가 멸망해도 살아남을 유일한 생명체’라고 불리는 것이다. 바퀴벌레를 없애는 연구도 중요하지만, 바퀴벌레가 어떻게 3억년 동안 자연에 적응하면서 지구에 살아남을 수 있었는가를 연구해서, 인간도 한 3억년쯤 지구에서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 바퀴벌레와 함께라도 좋으니 말이다.

고려대 물리학과 연구교수 jsjeong@complex.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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