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차승미

인터넷 개발자들에게 유명한 ‘트로잔’(Trojan)이란 커피포트가 있다. 이 커피포트의 이름이 유래한 곳은 영국의 케임브리지대학 컴퓨터학과. 한 실험실 복도에 놓여 있던 이 커피포트는 학생들이 커피 한잔을 마시러 아침마다 들르는 곳이었다. 아침부터 사람들이 한잔씩 가져가다보니 오후 무렵엔 커피가 거의 남아 있지 않아, 커피 마시러 복도까지 나갔다가 허탕치고 오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실험실 사람들이 아이디어를 하나 짜냈다. 커피포트 앞에다가 실험실에 굴러다니는 비디오카메라를 설치해서 그 화면을 인터넷에 띄우기로 한 것이다. 그럼 사람들이 커피가 얼마나 남았는지 복도에 나가지 않고도 알 수 있을 테니까. 화면크기도 작고 1초에 한번 정도 움직이는 초라한 영상이었지만, 그뒤로는 커피를 마시러 갔다가 허탕치는 일이 없어졌다고 한다. 인터넷의 역사에서 이 사건은 ‘최초의 인터넷 원격 감시’로 기록된다. 그 실험실 이름이 바로 트로잔이었다(트로잔 커피포트에 관한 자세한 정보는 http://www.cl.cam.ac.uk/coffee/qsf/coffee.html에서 얻을 수 있다).

그로부터 10년이 훌쩍 지난 뒤 인터넷 생중계는 우리의 일상이 되었다. 인터넷을 이용해 화상회의는 물론이고, 방송까지 보게 됐으니 ‘눈부신 발전’이라 하겠다. 그러나 그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그중 가장 큰 문제는 음란성과 사생활 침해다. 미국의 경우 인터넷 생중계 사이트가 1만여개 정도 있는데, 대부분이 섹스하는 모습을 돈을 받고 생중계하는 포르노 사이트다. 개인의 사생활 침해는 더욱 심각한 문제이다. 직장에서 사원들이 일하는 모습을 상사가 지켜보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탁아소에서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직장에서 부모가 지켜보는 것도 아이들이나 보모의 입장에선 감시가 된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자신의 사생활을 디지털 캠코더에 찍어서 인터넷으로 생중계하는 이른바 ‘웹캠’이 젊은이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는 사실이다. 자기 생활공간에 카메라를 설치해놓고, 먹고 자는 일을 비롯해 모든 일상을 인터넷 홈페이지에 24시간 생중계하는 것이다. 1996년부터 자신의 침실을 인터넷에 공개한 미국의 한 소녀는 하루에도 수백통의 팬레터를 받는 세계적인 ‘웹캠 스타’가 되었다. <트루먼 쇼>나 <생방송 에드TV>가 영화 속의 이야기만은 아니라는 얘기다.

기성세대들은 사생활 공개를 상당히 꺼리지만, 10, 20대 젊은이들은 인터넷 홈페이지에 주소와 휴대폰 번호는 물론,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이력, 가족이나 여자친구의 사진을 자세한 설명과 함께 올려놓곤 한다. 도대체 왜 자신의 일상을 인터넷에 생중계하는 것일까? 전문가에 따르면, 인간관계가 단절된 현대사회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적극적으로 드러내야만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노력’으로 자신의 삶을 특별하게 포장하는 것이란 분석한다.

그러나 굳이 이런 거창한 이유를 달 필요도 없이 ‘그냥 재미있어서’ 그러는 게 아닐까 싶다. 특별할 것도 없고 무미건조하게 반복되는 일상이 카메라에 담겨 인터넷으로 생중계된다고 생각해보라. 그 순간 평범한 일상 하나하나는 특별한 사건이 된다. 어쩌면 지켜보는 사람들보다 더 흥분되는 것은 본인일지도 모른다. 노출증 환자가 아니더라도 말이다.

고려대 물리학과 연구교수 jsjeong@complex.korea.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