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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학 ] 2002년01월30일 제395호 

남성이 피임을 책임진다

초음파 정관수술·먹는 피임약 등 개발… 피임에 적극 참여하려는 의식변화가 관건


사진/ 남성 피임약이 침대에서 효력을 발휘할 날은 언제일까. 남성들의 정관수술이 업그레이드되어 칼을 대지 않는 수술을 받을 수 있다. (김종수 기자)


요즘 직장인 고아무개(36)씨는 ‘정관수술’이라는 말만 들어도 기분이 상한다. 그는 지난 2000년 11월 관할 보건소에서 영구 피임을 위해 정관수술을 받았다. 첫아들에 이어 둘째를 딸을 얻은 뒤 더이상 아이를 갖지 않을 생각이었다. 수술대에 눕기까지 성욕감퇴, 성격변화 등 떠도는 말이 많아 망설임이 적지 않았다. 당시 칼을 대지 않고 특수 고안된 기구를 이용하는 ‘무도(無刀)정관수술’은 알지 못했다. 그는 칼로 피부를 절개해 정관의 일부를 봉합하는 수술을 받았다. 한동안 격렬한 운동을 피하고 조심스럽게 남아 있는 정자만 배출하면 원하지 않는 임신을 영원히 피할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피임을 위해 인터넷으로 콘돔을 주문하고 있다. 다섯 차례나 보건소에 찾아가 정자 검사를 받았는데 장자가 그대로 배출되는 탓이었다. 0.3%에 지나지 않는다는 정관수술의 실패율에 그가 포함됐던 것이다.

이미 많은 피임법이 이용되는 상황에서도 많은 커플들은 ‘완전한 피임’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보건사회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기혼 여성의 절반가량이 한번 이상의 인공유산을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두번 이상 경험한 여성도 20%나 된다. 인공유산은 태아를 살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여성에게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켜 사망에 이르게도 한다. 인공유산이 법적으로 허용되어 비교적 안전하게 시술이 이뤄지는 미국에서도 10만건의 시술이 이뤄지면 12명이 사망한다는 보고가 있다. 사정이 이렇다면 우리나라처럼 인공유산이 법적으로 금지된 나라의 경우 사망률이 미국이나 일본(18명 사망) 등지보다 훨씬 높을 게 틀림없다. 최근 시판이 이뤄지고 있는 응급피임약 ‘노레보정’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 이런 실정을 반영한 것이다. 성관계 뒤 72시간 안에 복용하면 수정란의 자궁착상을 막는 노레보정은 사용횟수가 많아지면 피임률이 급격히 떨어진다는 보고도 있다. 일상적 피임약으로 복용하는 건 피해야 하는 것이다.

원치 않는 임신의 공포는 여성 몫?

현재 우리나라에서 널리 이뤄지는 피임방법은 먹는 피임약이 30%를 웃도는 서구와 사뭇 다르다. 우리나라 기혼 부부의 피임방법은 약 40%(난관수술 25%, 정관수술 15%)가 불임수술이며 자궁 내 장치가 13%, 콘돔이 15%, 먹는 피임약이 2% 정도이다. 이렇게 기혼 부부의 80%가 피임을 선택하고 있음에도 해마다 150여만건의 인공유산이 이뤄지고 있다. 태어나는 아기 숫자의 두배가 넘는 수치이다. 새로운 차원의 피임법이 절실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물론 불임시술이라는 성공률이 높고 영구적인 피임법이 있지만 비약적 확대는 기대하기 힘들다. 최근 미국 존스홉킨스대학 연구팀은 5W의 고주파를 20∼50초 동안 발사해 정관을 막는 초음파 정관차단술을 개발하기도 했다. 이 기술로 수술하면 몸에 칼을 대지 않고 손쉽게 영구피임에 이르지만 복원은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남성들이 손쉽게 사용하는 콘돔도 요즘에는 얇으면서도 질긴 폴리우레탄이나 다른 고분자로 만들어져 감염을 억제하고 성적쾌감을 유지하도록 하고 있다. 그럼에도 성교시에 콘돔을 착용하는 건 여전히 귀찮은 일이다.

그렇다면 의학계에서는 어떤 방법으로 완전한 피임에 이르게 하려는 것일까. 이상적인 피임법은 우선 효과가 좋으며 안전하고 지속적이면서도 쉽게 약효가 제거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성교를 통해 질병이 전염되는 등의 부작용이 없어야 하며 성교 직전보다는 다른 시간에 처치할 수 있는 게 좋다. 이런 접근에 따라 남성들을 위한 먹는 피임약도 개발되고 있다. 사실 그동안 남성들은 성교에 주체적으로 나서면서도 원하지 않는 임신의 고통을 짊어지지 않았다. 그런 남성들을 피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하는 남성용 피임약은 여성용보다 개발이 훨씬 까다롭다. 여성용 피임약은 배란 주기에 따라 생성되는 난세포를 제어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보통 한번의 주기마다 단 하나의 난세포가 생성되기에 조절이 쉬운 편이다. 하지만 남성의 경우 분마다 적어도 1천여 마리의 정자 세포가 생성돼 약물로 제어하는 게 매우 복잡하다.

남성 피임을 겨냥한 획기적인 시도로는 정자의 생성을 정지시키도록 호르몬을 조정하는 방법이 있다. 정자의 생산은 몇 가지 호르몬에 의해 조절된다. 시상하부에서는 생식선 자극-방출 호르몬을 분비하며 이 호르몬은 다시 뇌하수체에서 황체형성호르몬과 여포자극호르몬을 분비하도록 한다. 황체형성호르몬은 성기에서 테스토스테론의 생산을 자극한다. 이 스테로이드계 호르몬은 여포자극호르몬과 함께 정자를 형성하는 줄기세포인 ‘정원세포’(spermatogonia)를 유도해 궁극적으로는 정자를 만든다. 이런 정자 생성 메커니즘을 인위적으로 조절하려는 것이다. 이미 이런 전략에 따라 남성용 피임약이 개발되기도 했다. 영국 에든버그대학 연구자들은 지난 2000년 9월 테스토스테론과 합성용 스테로이드계인 테소게스트렐을 혼합한 먹는 피임약의 임상실험 결과를 발표했다. 이 방법은 100%의 피임 효과를 거둔 것으로 나타났지만 혈액 내 남성 호르몬의 농도가 높아져 고밀도 지질 단백질의 혈중 농도가 낮아지고 여드름이 많아지는 등 부작용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성 호르몬 관련 부작용을 초래하지 않도록 분자를 이용해 생식선 자극 호르몬의 활성을 억제하기도 한다. 체내에는 길항제 구실을 하는 작은 단백질이나 펩타이드들이 있지만 임신을 방해하는 수준은 아니다. 연구자들은 비단백질성 억제제들을 이용해 정자를 직접 건드리지 않으면서 활동을 막는, 외곽을 때려 피임 효과를 노리는 방법을 찾고 있다. 만일 남성들이 생식선 자극-방출 호르몬의 활성을 억제하면 근육 양이나 남성적 성격이 줄어들고 성욕이 감퇴할 수도 있다. 직접 성기에서 정자의 생산을 정지시키거나 성기와 연결되어 있는 부고환에서 새로 만들어지는 정자의 성숙을 억제시키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아직은 정자를 목표로 하는 약물이 혈류를 통해 성기나 부고환에 도착하도록 유도하는 방법이 마땅치 않아 개발이 늦춰지고 있다. 연구자들은 적어도 3년은 지나야 남성 피임약이 침대에서 효력을 발휘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보충약도 함께 복용… 미래엔 면역 피임약

이런 남성용 피임약은 일상적으로 복용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따른다. 게다가 매일 복용하는 피임약과 함께 일주일에 한번 정도는 약효를 보충하고 남성성을 유지하는 호르몬 주사를 맞아야 한다. 정자 생산을 억제하는 약물이라면 특유의 독성으로 인해 발기불능을 일으키거나 정원세포에 악영향을 끼쳐 영구불임을 초래할 가능성도 있다. 그래서 연구자들은 정자의 건강에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 불임 효과가 있는 약물을 개발하고 있다. 미국 노퍽주립대 생화학자 조지프 홀 교수는 정자를 중성화하는 합성물을 만들었다. 정자가 난자를 둘러싼 단백질을 찾지 못하도록 정자의 눈을 멀게 하는 것이다. 난자가 정자의 진입을 허용하게 하는 효소를 일종의 미끼로 사용하는 속임수를 발휘하는 것이다. 영국 레스터대학 연구자들은 사정 직전 고환에서 정자를 정액으로 내보내는 수정관을 관장하는 세포단백질을 제거하는 방법으로 피임 효과를 노리고 있다. 유전자 조작으로 특정 세포단백질을 제거하면 수정관이 크게 수축돼 정자가 정액으로 배설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렇듯 남성용 피임약 개발이 도처에서 이뤄지고 있지만 실용화는 단언하기 힘들다. 여성용 피임약보다 까다로운 기작의 남성용 피임약은 더욱 많은 부작용이 우려되는 탓이다. 그렇다고 피임에 대한 책임을 여성에게 계속 떠맡길 수는 없는 일이다. 지금도 여성들은 각종 호르몬제와 더불어 정자가 난세포로 접근하여 수정되는 것을 직접 억제시키는 질내 삽입링에 첨가하질내 삽입링, 제거가 간편한 질내 호르몬 함유 삽입물, 성병 예방 기능이 첨가된 살정자제 등의 개발로 피임에 대한 책임을 강요당하고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남성들의 의식변화와 함께 한번 복용으로 1년 이상 효과가 지속되는 획기적인 면역피임 백신이 개발돼야 한다. 현재 남성의 생식선 자극-방출 호르몬을 저해하는 백신의 임상실험이 이뤄지고 있고, 정자를 서로 엉키게 하거나 난세포로 헤엄쳐 오지 못하도록 면역반응을 유도하는 백신도 개발중에 있다. 면역 피임약이 미래의 산아제한을 주도할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래도 그것을 누군가 선택해야만 효력을 발휘할 수 있다.

도움말 주신 분

한국성과학연구소 이윤수 소장

김수병 기자 hellios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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