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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구촌 ] 2000년08월09일 제321호 

[지구촌] 강자 게르만에 바치는 노래

해머스킨이 내지르는 기계음 속에 감춰진 나치즘… 문화영역에 침투하는 세련된 극우파


(사진/시위 종종 폭력사태가 벌어지기도 한다)


“이 노래는 약자를 위한 게 아냐, 사랑을 구걸하는 저 가엾은 겁쟁이들…. 우와우와, 강자의 노래… 승리의 노래… 피의 노래… 우리는 위대한 게르만의 전사들…. 우리 모두 Wotan(게르만 고대신화에 나오는 최고의 신)을 위해 기꺼이 죽음을….”

몇마디 짧은 음절의 가사가 고막을 찢을 듯한 기계음에 실려 끊임없이 되풀이된다. 나지막이 잠겨 흐르다가 어느덧 큰 소리로 울려퍼지는 외침소리…. “지도자 만세! 히틀러 만세!”

블랙메탈을 나치찬양으로 개조하다

극우성향의 이데올로기로 굳건하게 무장한 록음악. 이른바 네오나치계열의 ‘블랙메탈’로 분류되는 이들 새로운 흐름이 90년대 말 이래 소리없이 독일 젊은이들의 머릿속을 깊숙이 파고들고 있다. 최근 독일 정부는 ‘해머스킨’(Hammerskin)이라 불리는 이들 새로운 흐름의 극우세력이 전국적으로 약 2만명 정도에 이른다고 발표했다. 그간 대도시를 중심으로 외국인들에 대한 크고 작은 공격을 일삼던 ‘스킨헤드’와는 조금 다른 새로운 성향의 극우세력의 존재가 이제 서서히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된 셈이다.

지금껏 ‘스킨헤드’로 불린 극우성향의 젊은이들은 대부분 기존 사회질서에서 벗어나 알코올과 약물 등 그다지 ‘게르만민족답지 못한’ 일탈행동을 보여왔다. 반면에 이들 ‘해머스킨’ 젊은이들은 상당히 절제된 행동과 세련된 용모를 전면에 내세우며 등장했다는 점에서 주목을 끈다. 좀더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다양한 ‘문화영역’에 나치이데올로기를 덧칠하려는 이들이 치켜든 가장 커다란 무기는 바로 음악. 그 가운데서도 젊음과 반란의 상징인 록음악이다. 하지만 이들의 주된 음악장르가 80년대 이래 새롭게 주목받기 시작한 블랙메탈 계열이라는 사실은 이들이 내지르는 강렬한 기계음 뒤편에 감추어진 비밀을 들춰내는 실마리를 제공한다.

기존의 서구문명을 급진적으로 비판하는 메시지를 강렬한 금속성 소리에 실어보내는 블랙메탈은 흔히 사탄에 대한 찬미, 이교숭배 등의 내용을 담은 텍스트로 인해 줄곧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네오나치계열의 록밴드들이 기독교를 정점으로 한 서구문명을 한껏 조롱하는 이 음악장르에서 재빨리 새로운 ‘무기’를 발견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블랙메탈 장르를 특징짓는 급진적 텍스트들은 이제 기독교를 정점으로 한 서구문명을 곧 ‘약자들이 내뱉는 구걸소리’와 동일시하고 ‘오로지 강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철의 자연법칙’을 찬양하며, 나아가 ‘위대한 게르만 민족의 신화를 재건’하려는 해머스킨의 거친 목소리로 자연스레 탈바꿈했다. 블랙메탈 음악의 텍스트에 담겨 있는 세기말적인 문명비판의 메시지가 우생학과 인종주의에 뿌리를 둔 나치이데올로기와 쉽사리 겹쳐진 건 어쩌면 당연한 귀결인지도 모른다.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매체의 등장도 해머스킨이 자신들의 영향력을 키워가는 데 상당히 큰 구실을 하고 있다. 인터넷을 매개로 과거 나치즘과 관련된 다양한 정보와 물품들이 국경을 넘나들고 있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진 바 있다. 특히 해머스킨들이 내지르는 블랙메탈 계열의 음악들은 MP3 등의 파일을 통해 손쉽게 많은 사람들에게 다가서고, 온라인 주문을 통해 은밀히 소비자층을 넓혀가고 있다.

뫼비우스의 ‘용감한 살인행위’


(사진/해머스킨은 세련된 방식으로 문화영역에 침투해 들어가고 있다.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열린 극우청년들의 시위장면)


뿐만 아니라 ‘범게르만전선’이라는 이름 아래 조직적으로 연결된 이들 록밴드들의 ‘게릴라활동’을 뒷받침하는 웹진들도 눈에 띤다. ‘게르만의 힘’ ‘시체에 입맞춤을’ 등 자극적인 제목을 단 이들 웹진들은 이미 30여개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들 홈페이지에는 나치의 문양이 공개적으로 등장하는가 하면, ‘지도자’를 찬미하는 자극적인 음성파일도 이따금씩 모습을 드러냈다 사라지기를 거듭하기 때문에 정부당국과 쫓고 쫓기는 숨바꼭질이 쉴새없이 이어지고 있다.

극우성향의 여러 홈페이지들은 전국에 흩어진 다양한 네오나치 록밴드들의 ‘이름없는’ 콘서트를 조직해내는 ‘번개모임’의 연락수단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한적한 시골마을의 외딴 농가 등에 주말을 맞아 극우성향의 젊은이들이 수십명씩 모여드는 일은 이제 공공연한 비밀로 받아들여진다.

록음악을 통한 해머스킨들의 활동이 단순히 많은 사람들의 머릿속을 나치이데올로기로 채우는 데만 한정되는 건 아니다. 실제로 이들이 내뱉는 가사 속에는 자신들의 강함을 증명하기 위해 약자에 대한 폭력행동에 나설 것을 촉구하는 내용이 명시적으로 드러나 있어 외국인 등 ‘약자’에 대한 물리적인 공격을 이끌어내는 직접적인 동기로 작용하기도 한다. 특히 대표적인 극우성향의 1인밴드 Absurd의 헨드릭 뫼비우스는 자신이 직접 ‘용감한 살인행위’를 저지른 뒤 구속됨으로써 극우성향의 젊은이들 사이에선 여전히 절대적인 우상으로 떠받들어지고 있다.

해머스킨 문제에 정통한 전문가들에 따르면, 뫼비우스의 사례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의 문제가 곧 이들 극우성향의 젊은이들 내부에서도 단순히 블랙메탈 계열의 음악밴드에 머무느냐, 아니면 네오나치 블랙밴드에 포함되느냐를 가르는 가장 일차적인 경계선이라고 한다. 강렬한 록음악에 실린 나치이데올로기는 언제라도 ‘약자’들에 대한 물리적 폭력으로 탈바꿈할 수 있는 셈이다.

해머스킨의 등장이라는 새로운 사회현상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해선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일부에서는 여전히 외국인들에 대한 무차별한 폭력을 일삼던 기존의 ‘스킨헤드’들의 또다른 모습일 뿐이라는 진단을 내놓는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선 그간 ‘극우주의’를 바라보던 사회의 인식틀을 뒤바꿀 시점에 이르렀다는 진단도 나오고 있다.

지금까지 극우주의란 기껏해야 사회·경제적인 배경에서 기인한 일종의 ‘일탈현상’으로 치부되어온 게 사실이다. 특히 사회경제적으로 열등한 처지에 놓인 동독지역의 젊은이들이 높은 실업률 등 현재의 상황에 대한 극단적 거부감을 나타내고 있는 속에서 극우주의 이데올로기가 널리 퍼졌다는 식의 설명이 그간 널리 받아들여졌다.

부랑아 집단에서 새로운 사회운동으로



하지만 해머스킨의 등장이라는 새로운 흐름은 극우주의를 바라보는 기존의 시각을 흔들어놓고 있다는 점 또한 분명해 보인다. 해머스킨 그룹 내부에서 히틀러 등 나치지도자들의 저작과 나란히 ‘좌파이론가’인 안토니오 그람시의 저작이 공공연히 탐독되고 있다는 뜻밖의 사실에 좀더 주목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이 점에서 무척 흥미롭다. 이들은 이미 문화영역에서의 헤게모니가 갖는 중요성에 대해 확고한 믿음을 갖기 시작했으며, 특히 ‘민족해방구’라는 그들의 선전문구에서 알 수 있듯 사회 각 분야에서 극우주의적 헤게모니를 강화하기 위한 일종의 ‘진지전’을 시작한 지 오래다.

대도시의 구석구석을 부랑아처럼 이리저리 몰려다니며 눈에 띄는 외국인들에게 감정에 치우친 물리적 공격만을 헤대던 지난날의 ‘스킨헤드’들과는 달리, 대부분 중산층 출신으로 알려진 이들 신흥 극우세력들은 ‘운동에 의한 운동을 위한’ 극우주의를 부르짖으며 사회구성원들의 머릿속을 서서히 잠식해 들어가고 있는 셈이다. ‘하나의 새로운 사회운동’으로 극우주의를 바라봐야 한다는 조심스런 진단이 점차 힘을 얻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보이지 않는’ 위험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브레멘=최우성 통신원morgen@hani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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