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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문화&과학 > 문화 기사목록 > 기사내용   2007년12월20일 제69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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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화 속 꿈틀대는 혼을 느끼는가

미술사의 개념을 상상력으로 재구성한 강우방씨의 <한국미술의 탄생>

▣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그가 안내하는 우리 옛 미술의 세계는 태초의 우주적·신화적 환상을 좇는다. 고구려 벽화와 숱한 불화, 불상 광배 등이 판타지의 체험 무대가 된다. 봉황, 용 같은 신령한 동물의 몸에서 식물의 싹이 쑥쑥 자란다. 그 싹이 스스로 커서 신령한 기운을 흩뿌린다. 연꽃 같은 식물의 가지와 꽃판에서 모든 생물과 우주의 기운, 심지어 부처님과 보살들이 줄줄이 나온다. 모든 생물이 다른 서로의 몸으로도 바뀔 수 있으며, 일점 일획 같은 기운(에너지)으로도 변신한다. 신령한 기운을 받아 세상을 활보하는 생명의 본체들이 구분 없이 갈마들어가는 곳. 그 신령한 기운이 곧 영기로, 온 세상 곳곳에 들어차 있다는 말이다.


△ 평양 진파리 고구려 고분의 사신도 벽화 동쪽에 그려진 청룡.

옛 사람들은 직관했던 도상의 영기

오랜 세월 국립박물관에서 봉직한 불교미술사학자 강우방(전 이화여대 교수)씨가 그렇게 상상해낸 영기화생(靈氣化生)의 세계는 고구려 벽화부터 조선시대 법회에 거는 대형 불상 그림인 탱화에 이르기까지, 우리 미술사 곳곳에 걸치지 않은 곳이 없어 보인다. 고사리 굽은 모양 같은 영기의 싹이 곳곳에 다른 영기의 싹을 틔우고 증식하면서 생명 있는 온갖 만물을 피워낸다. 그 만물들은 다시 강렬한 파동이나 영기로 돌변하는 등 온갖 조화를 부리면서 생명 있음을 증거한다. 부처 또한 그의 옷자락인 천의 끝이 구름 자락 식물 무늬로 변하고, 하늘을 받치는 고구려 벽화의 영웅상에서도 끊임없이 실이나 털처럼 영기가 뿜어져나온다. 국보 78호 반가사유상 머리의 해달 모양 관 옆으로는 매듭 모양의 영기 다발이 치솟는다. 안내자 강씨는 이런 도상이 수천 년간 한국의 전통미술로 이어져 내려왔다고 말한다.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이 자유자재로 서로의 모습을 취할 수 있으며, 강렬한 영기로 자연스럽게 변신하는 활력의 아름다움. 옛 고구려와 신라, 고려인들은 이를 직관했지만, 후대로 갈수록 사람들은 영성을 잃으면서 그것을 단지 장식 형상으로만 보게 되었노라고 강씨는 한탄한다.

강씨의 열변과 한탄은 근간 <한국미술의 탄생>이란 591쪽짜리 개설서와 ‘강우방 예술론’이란 부제를 붙여 낸 에세이 <어느 미술사가의 편지>(이상 도서출판 솔)를 통해 풀려나오고 있다. 권당 9만원인 <한국미술의 탄생>은 고구려 벽화부터 조선 불화까지 무려 26개 항목에서 영기 무늬란 콘셉트로 모조리 해석해놓았다. 에세이에서는 영기문 이론의 당위성과 이런 도상 찾기와 분석에 소홀한 기존 학계의 안일함, 스승·동학에 대한 책망을 털어놓았다. 그는 왜 작심하고 영기문에 매달리는 것일까.


△ 강우방 교수(오른쪽)

그는 90년대 말 국립경주박물관장 재직 시절 ‘에밀레종’으로 유명한 성덕대왕 신종의 윗부분 음통의 용 조각 정면을 보다가 홀연 영기에 대한 단서를 얻는다. 그리고 흔히 도깨비 기와로 알려진 통일신라 기와의 정체는 기실 정교한 용의 정면상이며 입에서 그의 영기를 세밀하게 새긴 것이라는 주장을 내놓았다. 2000년대 초 고구려 고분 벽화의 힘찬 율동적 무늬가 우리 고대 불상의 광배 무늬와 연결된다는 논문을 쓴 그는 2002년 초겨울 전남 영광군 불갑사 대웅전 안에서 문득 결정적 깨달음을 얻었다고 책에 밝히고 있다. “…고개를 드는 순간, 처음 영기로 가득 찬 세계인 불교 건축의 천장이 눈에 잡혔다. 영기가 소우주인 대웅전에 충만하고 있었다. 건물의 안뿐만 아니라 밖에도! 그 환희의 순간은 결코 잊을 수 없다. 덩굴 모양의 영기에서 연꽃, 용, 봉황 등이 화생하는 도상이 건물 안팎을 눈부시게 표현하고 있었다. 한국미술사를 새로이 연구하는 일이 나에게 주어진 사명이었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조선까지 이어진 고구려 벽화의 유전자

책에서 그의 ‘영기문 강령’을 들여다보는데 가장 요긴한 본보기로 언급되는 것을 들자면 서너 가지를 꼽을 수 있다. 그 첫째가 고구려 벽화이며 불상의 장엄과 광배, 절집의 기둥 윗부분의 공포 장식, 단청, 찬란한 고려불화 등이 있다. 최근에는 고대 그리스의 기둥 윗머리 식물 무늬 장식 등도 집착해 연구하고 있다. 예컨대 고구려 벽화는 우주 곳곳에 배어 있고 약동하는 영기를 중요한 인물과 장면의 배경에 독특한 선의 형상으로 그려넣었고, 그것이 영웅, 신인의 옷과 몸에, 사신도의 율동 속에서 계속 변화하는 형태로 나타난다고 쓰고 있다. 이런 고구려 벽화의 영기 도상은 이후 우리 전통 미술사의 유전자가 되어, 백제 왕의 화염 같은 금동 머리 장식에도, 봉황과 용이 영기와 빙글빙글 얽혀 돌아가는 백제 화상전에도, 신라의 말안장 용 무늬에도, 고려 불화와 조선시대 괘불 그림의 부처님 옷자락, 보관의 장엄에도 나타났다는 것이다. 오방색 단청은 이런 영기화생의 유전자가 조선시대에 뒤늦게 활짝 피어난 결실로, 기둥 공포 장식인 설미, 첨차는 단청 도상의 3차원적 재현이라는 견해를 내놓는다. 조선 후기 회화사를 빼고는 모든 장르의 한국미술사를 영기의 생성과 발현 과정으로 해석한 셈이다. 그는 영기가 이뤄내는 무늬는 저급한 장식이 아니라 사상의 발현이며, 인간에 본래부터 깃든 영성을 추상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우주 삼라만상이 비로자나 부처의 화신이라든가, 우주의 혼돈을 딛고 충만한 기와 생명력이 회전하면서 음양의 기운을 조화시켜 만물을 이뤄냈다는 <노자>의 언설 등이 사상적 배경으로 언급된다.


△ 동화사 대웅전의 기둥 위 공포 장식(왼쪽). 강우방 교수는 덩굴 모양의 영기 무늬가 끝없이 올라가는 모습으로 분석했다. 충남 부여에서 출토된 백제 봉황문전(오른쪽). 빙글빙글 도는 영기 속 봉황의 모습을 인상적으로 돋을새김한 걸작이다. (사진/ 국립부여박물관 소장)

기존 학계 쪽은 그의 열정을 납득하기 어려워하는 기색이다. 불화 혹은 조각물의 양식이나 관련 참고 목록을 중시하는 기존 학계의 관행과 다른 것도 이유지만, 상상력과 영감의 지평을 미술사에 필요 이상으로 끌어들이려 한다는 데 대한 의문이다. 이주형 서울대 교수는 “강 선생의 견해는 문인으로서 예술가로서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다. 하지만 미술사는 엄연한 인문과학이며 합리적인 입증을 위한 소통, 설득의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실 영기문 이론을 뒷받침하는 책의 구성이 그렇게 치밀한 짜임새를 갖추고 있지는 못하다. 고려 청자, 한·중·일 동양 삼국 불상들의 광배와 도상 디자인, 단청과 절집의 건축 부재인 공포 부분에 대한 그의 주장과 견해는 곳곳에서 중언부언되고 있고, 심지어 먼저 꺼낸 문장을 똑같이 되풀이하는 경우도 종종 눈에 띈다. 영기문이 없는 숱한 미술 유산들에 대해 설득력 있는 이야기를 풀어내지 못하는 느낌도 있다. 고구려 벽화의 고갱이인 6세기 강서대묘의 사신도 그림 주변과 불교미술의 걸작 석굴암 내부에는 왜 영기문이 거의 보이지 않는 것일까. 강씨는 책에서 “영기는 석굴암의 우주적 공간에 충만해 있다”고만 말한다. 주관적인 확신과 독자 사이의 괴리감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기존 미술사학계의 인정은 받지 못해

미술사는 아름다움을 어떻게 다루는 학문인가. 미술사에는 상상력이 얼마나 개입돼야 적절한가. 영기문의 학문적 근거와는 별도로 미술사 정체성에 대한 고민스런 화두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 <한국미술의 탄생>이다. 학계에서 강씨의 영기문은 관심사로 인정받지 못해온 것이 사실이다. 분명한 것은 작가가 창작하듯이 미술사의 개념을 표현하고 상상력으로 재구성하는, 미술사 연구의 낭만적 극단을 그가 꾀했다는 점(그는 원래 화가 지망생이었다)이다. 그는 복잡한 영기 용 문양이 실그물처럼 바닥에 얽힌 고려시대 청동 대야의 스케치 그림을 열흘 동안 채색하면서 무늬를 찾았고, 요사이도 그리스 신전의 기둥 장식 스케치에 색칠을 하면서 서양 영기문을 찾고 있다. 즐겁고 좋아하는 감정, 곧 파토스가 없는 미술사를 생래적으로 싫어하기 때문이다. “종일 답사해도, 밤새워 일해도 별로 피곤하지 않다. 남은 삶을 밝혀줄 명확한 목표가 생겼다. 예술의 행위 중심에 영성이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