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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문화&과학 > 문화 기사목록 > 기사내용   2006년10월26일 제63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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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도전>, 한국형 쌩얼

시청자와 무한히 공감하며 현실과 오락의 경계선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 버라이어티쇼에서 리얼리티쇼로의 변화 속 ‘잃어버린 고리’로 자리매김해

▣ 강명석 대중문화평론가

“여러분은 한국 최초의 리얼 버라이어티쇼 <무한도전>을 시청하고 계십니다!”

문화방송 <무한도전>에서 사회자 유재석이 하는 이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무한도전>은 기존 버라이어티 오락 프로그램의 포맷으로 시작했으되, 이제는 리얼리티쇼로 변한 기묘한 존재다. <무한도전>은 출연자들에게 매주 기존 버라이어티쇼와 크게 다르지 않은 콘셉트를 부여한다. 때론 아이들 복장을 하고 학교에 가서 놀기도 하고, 뉴질랜드로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 <무한도전>은 버라이어티 오락 프로그램에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성격을 차츰 더하며 ‘한국형 리얼 버라이어티 쇼’로 진화해왔다. 이효리가 나왔던 <무한도전> 초기의 모습(사진/ 문화방송 제공)

하지만 그들은 그 안에서 ‘리얼’한 모습을 보여준다. 뉴질랜드에서는 자신들이 실제로 생각하는 출연자들의 모습을 롤링페이퍼를 통해 폭로하고, 뉴스 형식을 패러디한 ‘무한뉴스’에서는 <무한도전> 출연자들의 <무한도전> 바깥의 활동을 다루었다. 특히 실제로 그리 친하지 않은 정형돈과 하하를 친하게 만들려는 코너였던 ‘친해지길 바래’는 파격적인 시도였다. 지금까지 시청자 앞에서는 웃고 떠들었던 출연자들이 알고 보니 ‘유재석 라인’이니 ‘정준하 라인’이니 하면서 각자의 인간관계를 따지고, 하하가 정형돈에게 한 것처럼 때론 술을 마시고 무례한 문자를 보내는 실수를 저질렀다는 것이 공개된다. 이를 통해 <무한도전>은 현실과 오락, 버라이어티쇼와 리얼리티쇼의 경계를 무너뜨리면서 그 양쪽의 재미를 ‘무한하게’ 결합한다.

연예인 사이 ‘어색한’ 순간을 담다

기존 오락 프로그램은 게임쇼를 제외하면 시청자에게 ‘짜고 한다’는 인식을 지울 수 없었다. SBS <일요일이 좋다>의 ‘X맨’은 아무리 실제 연애라 주장해도 그것이 각본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당연하지’처럼 연예인들이 서로 비난하는 형식의 프로그램에서도 늘 농담임을 강조하는 자막이 뜬다. 또 리얼리티쇼는 전개를 예측할 수 없는 긴장감은 있지만 한국 시청자는 그것이 일정 수위를 넘으면 곧바로 불쾌해한다. SBS <도전 성공시대>의 ‘내일은 모델 퀸’에서 한 출연자가 다른 출연자를 질투하는 모습이 보이기만 해도 그 출연자는 순식간에 ‘비호감’으로 찍힌다. 그런데 <무한도전>은 기본적인 콘셉트는 가벼운 오락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시청자가 부담 없이 볼 수 있지만, 그 밑에 깔린 리얼리티쇼적인 배경이 시청자를 긴장시킨다. 시청자는 때론 슬랩스틱 코미디에 가까운 촌극까지 벌이는 출연자들의 모습에 즐거워하다가도 출연자들의 실제 사생활이 드러나는 순간 약간 긴장한다. 아무리 버라이어티쇼로 포장돼 있다 해도 단둘이 남게 되자 할 말이 없어 어색하게 시간만 보내는 하하와 정형돈의 모습은 그것이 시청자가 모르는 연예인의 진짜 현실일 것이라는 느낌을 준다.

이런 독특한 스타일이 가능한 것은 시청자가 <무한도전>을 믿기 때문이다. 아무리 그들이 텔레비전 바깥의 실제 모습을 보여준다 해도, 시청자는 그들이 어떤 극단적인 ‘선’은 넘지 않을 것이라는 심리적인 마지노선을 깔고 있다. 그것은 <무한도전>이 어느 날 갑자기 태어난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을 두고 시청자의 의견에 맞춰 진화해왔기 때문이다. 출연자는 거의 같지만 <무한도전>은 ‘무(리)한 도전’과 다르고, ‘무(리)한 도전’은 ‘무(모)한 도전’과 달랐다. ‘무(모)한 도전’은 야외에서 ‘인간과 지하철 간의 100m 대결’ 같은 것을 ‘무모하게’ 벌이는 프로그램이었고, ‘무(리)한 도전’은 스튜디오 안에서 ‘거꾸로 말해요 아하’ 같은 간단한 게임을 하면서 그 사이에 유재석, 박명수, 정형돈 등을 놓고 누가 가장 잘생겼는지 시청자를 상대로 설문조사를 하는 ‘무리한’ 요구를 했다.


△ 정형돈과 하하의 ‘친해지길 바래’는 연예인의 ‘쌩얼’을 보여주었다. 출연진의 무모한 도전에는 리얼리티가 살아 있다.(사진/ 문화방송 제공)

‘무(모)한 도전’에서는 비교적 게임에 집중하던 출연자들이 ‘무(리)한 도전’에서는 설문조사 등을 통해 자신의 실제 모습과 오락 프로그램 안에서의 캐릭터를 뒤섞기 시작했고, <무한도전>은 이를 바탕으로 리얼리티쇼를 가미했다. <무한도전>은 처음부터 시청자를 자신들에 맞게 적응시키려는 대신 오랜 시간을 두고 시청자와 교감하며 그들보다 조금씩 앞서나갔다. <무한도전>은 한국 시청자가 요구하는 선을 유지하면서 ‘은근슬쩍’ 변화를 주면서 지금의 모습으로까지 발전한 것이다. 지금의 <무한도전>은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주말 버라이어티쇼 같지만 실상은 여섯 명의 고정 출연자가 무슨 일을 어떻게 벌일지 모르는 리얼리티쇼이자, 프로그램 이름이 조금씩 바뀔 때마다 콘셉트도 함께 변하는 한국형 시즌제 오락 프로그램이다.

콘셉트 가져오기 바쁜 쇼들은 참조하라

이는 현재의 한국 오락 프로그램들이 놓친 것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케이블 방송을 통해 해외 리얼리티쇼가 들어와 인기를 얻고, 최근에는 본격 오락전문 채널을 표방한 tvN까지 개국하면서 한국 오락 프로그램은 버라이어티쇼에서 리얼리티쇼로 급격하게 변화하는 중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한국 리얼리티쇼들은 현재 한국 시청자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들이 생각하는 리얼함이 무엇인지 생각하지 않은 채 해외 리얼리티쇼의 콘셉트를 가져오는 데만 급급했다. 그래서 리얼리티쇼를 표방하면서도 설정만 더 자극적일 뿐, 오히려 시청자에게 작위적이고 비상식적이라는 비난을 받기 일쑤였다. <무한도전>은 바로 그 과도기적 과정에서 한국 오락 프로그램이 놓친 ‘잃어버린 고리’를 찾았고, 그것은 그 어디서도 유래를 찾기 힘든 ‘한국 최초의 리얼 버라이어티쇼’를 탄생시키는 결과로 이어졌다. 물론, 한국도 언젠가는 리얼리티쇼가 정착될 것이고, <무한도전>도 흘러간 프로그램이 될지 모른다. 그러나 그때까지 이 빛나는 과도기적 작품은 한국의 가장 진보적이면서도 대중적인 오락 프로그램으로 남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