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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사회 > 사람과 사회 기사목록 > 기사내용   2007년06월21일 제66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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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치려 하지말고 돌봐주세요

‘호스피스-완화의료’ 통해 ‘품위 있는 사별’을 준비하는 말기암 환자와 가족들

▣ 글 김소희 기자 sohee@hani.co.kr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t@hani.co.kr

해마다 12만 명이 암 발병을 한다. 또 6만5천 명이 말기암으로 사망한다. 사망 원인 부동의 1위다. 환자와 가족은 마지막까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본다. 하지만 방법이 별로 없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병원에서 유명한 의사의 진료를 받거나 있는 돈 없는 돈 끌어모아 할 수 있는 모든 치료를 받아본다. 그래서 사망 2개월 전 의료비가 전체 의료비의 50% 이상을 차지한다.

말기암 환자의 절반 가까이는 이렇듯 병원 의료에 집착한다. 의료계에서는 이런 상태를 ‘무의미한 연명 치료’라고 부른다. 나머지 절반은 각 가정에서 대체요법에 매달리거나 아예 방치된 상태로 지낸다.


△ 위암 말기인 채홍기씨가 성바오로병원 호스피스 병동에서 돌봄을 받고 있다. 환자뿐만 아니라 가족의 고통과 불안까지 아우른다는 점에서 채씨는 더 늦기 전에 이곳에 와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집에서 먼 병원에서 임종맞는 환자들

6월13일 오후 서울 청량리 성바오로병원 호스피스 병동. 꽃들로 둘러싸인 성모 마리아상 바로 앞 병실에서 웃음소리가 들린다. “형부, 계속 앉아 계시네요. 기분 어떠세요?” 이틀 전 이곳에 온 환자 채홍기(66)씨와 가족이 얘기를 나누고 있다. 처제 최미정(41)씨는 “처참한 마음으로 삐뽀삐뽀 타고 왔는데, 오신 첫날 형부가 아주 달고 깊은 잠을 주무셨다”고 말했다. 채씨는 올 1월 위암 말기 판정을 받고 여의도 성모병원, 연대 세브란스병원 등에서 3차에 걸친 항암치료를 받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이별을 준비할 때가 됐다고 여긴 채씨는 가족의 의견을 받아들여 이곳으로 왔다. 가족도 못 알아보고 인공호흡기를 낀 채 차디찬 응급실 바닥에서 이별하는 일만은 피하자는 심정이었지만, “웃으면서 헤어지기 위해 가족 모두 노력하고 있고 그럴 수 있을 것”이라고 처제 최씨는 말했다. 그래도 ‘기적’을 바라는 마음 한 자락을 놓기는 힘들다고 했다.

말기암 환자와 가족에게 ‘품위 있는 사별’은 그 자체가 기적일지도 모른다. 말기암 환자의 50% 이상은 집에서 멀리 떨어진 병원에서 임종을 맞는다. 10년 전에는 10% 안팎이 그랬지만 해마다 더 늘어 이렇게 됐다. 대부분 기약 없는 입원 치료 기간을 거친다. 암환자 한 명 있으면 집안이 거덜난다는 말처럼, 이 기간에 환자와 가족은 경제적·정신적·육체적으로 매우 힘들다. 동시에 3차 의료기관을 이용해야 할 다른 급박한 환자들의 치료 기회를 차단하기도 한다.

자연스럽고 존엄한 죽음은 불가능한가. 이를 위한 제도가 ‘호스피스-완화의료’이다. 남은 생이 6개월 미만인, 항암치료도 더 이상 효과 없는 말기암 환자와 회복 가능성 없는 말기 만성질환자 등이 대상이다. 의료행위를 포함해 환자와 가족의 고통과 불안까지 아우르는 전인의료로, 사별 1년 뒤까지 남은 가족의 정서를 챙긴다. 우리나라는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호스피스 서비스를 시작했다(1965년 강릉 갈바리 호스피스). 하지만 수십 년째 제도화 논의만을 반복하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 이를 이용하는 말기암 환자는 5%에 그친다. 국가의료 제도도 뒷받침이 안 되고 환자와 가족, 의료인들의 인식도 큰 걸림돌이다.

‘회생’과 ‘연명’의 가능성 구별 안해

대표적인 것이 ‘회생 가능성’과 ‘연명 가능성’을 구별하지 않는 것이다. 환자 본인에게 쉬쉬하며 숨이 붙어 있는 순간까지 의료(기술)적인 처치를 하는 것을 자식 된 도리라고 여긴다거나, 그렇지 않으면 안락사를 시킨 것처럼 여긴다. 의료인들도 자기 환자를 호스피스 병동으로 보내면 실력 없는 의사 취급을 받을까 걱정하고, 실제 그런 대접을 받기도 한다. 6월12일 대한암협회가 마련한 ‘호스피스 제도화를 위한 방안 마련’ 토론회에서 강주성 건강세상 네트워크 대표는 “유언도 없이 가족 손도 제대로 못 잡아보고 햇빛 한 줌 못 본 채 약물과 투석에 찌든 상태에서 죽음을 맞는” 환자들의 상황을 전하며 “불필요한 연명치료를 중단하기 위해 의료인들이 나서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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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복지부가 지난 2년에 걸쳐 호스피스 서비스를 이용한 이들에게 물어보니, 절대 다수는 일반 병동에서 지낼 때보다 △경제적 부담 감소(94.6%) △환자와 가족의 정서적 부담 감소(95.1%) △가족 구성원 갈등 감소(93.4%)를 경험했다고 말했다. 또 83.1%가 “다른 사람에게도 권유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교계에서 운영하는 병원과 일부 종합병원 등에 호스피스 병동이 마련돼 있으나, 호스피스-완화의료 전문의가 상주하는 병원은 성바오로병원이 유일하다. 의료 현장의 변화는 왜 이리 더딜까. 서울대병원 암센터 허대석 교수는 “우리의 의료가 돌봄(care)이 아닌 치유(cure)에 비중을 두고 있어서, 완치 가능성이 없다면 관심을 기울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우리의 건강보험 제도는 검사나 시술, 투약 등 행위별 수가 체계가 중심이다. 환자와 의료인의 만남은 ‘계산’되지 않는다. 그래서 많은 의사들이 상담보다는 처방전 발부에 시간을 보내고, 환자는 환자대로 장비와 기술에 의존하는 ‘대형병원 집착증’이 점점 심해진다. 그 결과 1, 2차 병원의 병상은 텅텅 비어도 3차 병원은 응급실 바닥까지 발 디딜 틈 없는 왜곡된 의료전달 체계가 가중된다. ‘돈벌이 의료’도 한몫한다. 영안실은 호텔급으로 갖춰놓고도 임종실이 있는 3차 의료기관은 거의 없다. 이런 모든 이유들이 합해져 자기공명영상(MRI), 컴퓨터단층촬영(CT) 같은 고가 장비의 국민 1인당 설치 비율은 세계 10위권 안에 들 정도로 암의 진단·치료 과정은 발달했지만, 암환자를 위한 호스피스-완화의료 수준은 최하위인 ‘불안정한’ 상태가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또 개별적인 의료비뿐만 아니라 국가 의료비도 과다 지출된다(표 참조). 허대석 교수는 “3차 의료기관의 ‘무의미한 연명치료’로 낭비되는 재원을 절약하면 가정에서 제대로 진료도 못 받고 임종하는 소외된 환자들의 지원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호스피스 관련 표준화 작업도 복잡

우리나라 의료법에는 아직 호스피스에 대한 규정이 없다. 지난 4월 만들어진 ‘말기암 환자 전문 의료기관 지정 기준 제정안’이 처음으로 호스피스 시설·인력·장비 기준 등을 정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의료기관에서 처지와 형편에 맞게 병상을 따로 꾸려 운영해왔다. 2004년 보건복지부 실태조사 결과 74개 의료기관에서 호스피스를 운영하고 있지만, 시설과 서비스는 천차만별이다. 보건복지부는 올해 전국 23개 호스피스 기관에 10억5천만원을 지원했으나, 대체로 장비 구입이나 시설 보수 비용 등으로 4천만~5천만원씩 나눠가진 게 전부이다. 보건복지부 암관리팀 박경훈 사무관은 “당장은 호스피스 서비스를 하는 의료기관에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면서 “호스피스-완화의료에 대한 포괄적 보험급여 수가 개발을 위해 각각의 행위에 대한 표준화 작업을 시작한 상태”라고 말했다.


△ 호스피스 제도화를 위한 방안 마련 토론회에서 강주성 건강세상네트워크 대표는 “말기암 환자의 무의미한 연명치료중단을 위해 의료인들이 나서달라”고 호소했다.

표준화 작업이 그리 녹록지는 않다. 제대로 된 호스피스팀은 의사·간호사·사회복지사·사목자·자원봉사자는 물론 약사·영양사·상담사·가정관리사까지 포함된다. 목욕 서비스와 영적 치유를 한다면 ‘비용’을 어떻게 표준화할지, 호스피스 기관은 소득을 어떻게 보전할지, 정부의 재정지출 규모는 어느 정도가 될지, 그 과정에서 이해관계자들의 충돌은 어떻게 해결할지 넘어야 할 산이 첩첩으로 있다. 한국 호스피스-완화의료학회 이사장인 가톨릭의대 홍영선 교수(종양내과)는 “말기 암환자에 대한 호스피스 건강보험 수가 제정과 지급은 의료비를 줄이면서도 환자와 그 가족의 삶의 질을 높일 것으로 기대한다”면서 ”다른 의료행위와의 형평성도 고려해야 하나 무의미한 치료에 따른 과다 지출을 막고 효과적인 호스피스 돌봄을 위해서는 출발부터 타당한 수준의 수가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주성 대표는 “정책을 세울 때 사람이 아닌 돈이 중심이 될 경우 노인요양법처럼 정작 도움이 필요한 이들은 소외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우려한 뒤, “죽음에 대한 가치관과 개념을 ‘이동’시키는 일이므로 전 사회적인 지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호스피스 병동에서 일하는 이들은 “당장의 문제는 병상 부족도 보험급여 적용이 안 되는 것도 아니다”라고 입을 모은다. 더 큰 문제는 환자들이 “너무 늦게 오는 것”이다. 성바오로병원 호스피스 병동 조운자 팀장은 “호스피스 취지를 살리려면 통상 3~6개월 정도 남은 시점부터 돌봄이 필요하나, 우리 병원만 해도 환자들이 평균 1주일 정도를 남겨놓고 온다”고 말했다.

두 말기암 여성의 만남

6월 초 이 병원에서 며칠 사이로 세상을 뜬 나순희(36)씨와 신금옥(58)씨는 예상보다 삶을 정리할 시간을 더 가졌다. 나씨는 인근 ‘청량리 588’에서 일했던 ‘아가씨’다. 얼굴이 숯처럼 까맣게 되고 복수가 가득 찬 상태에서 친구에게 업혀 왔다. 어릴 때 부모에게 버림받은 뒤 부박하게 살아오며 제 한 몸 돌보지 못한 결과 30대 중반에 간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신씨는 먹고사느라 바빠 가출한 둘째아들의 소식도 10년째 모르고 지내던 중이었다. 폐암 말기였다. 두 사람은 모녀처럼 살갑게 지냈다. 모두 이곳에 ‘실려올’ 때 일주일을 넘기기 어려운 상태였으나, 신씨는 한 달 가까이 살았고 나씨는 3주 동안 평화로운 시간을 보냈다. 조운자 팀장은 “두 사람이 서로에게 희망이 되는 것을 보았다. 거울처럼 바라보며 자기 상처와 화해하는 듯도 했다. 마지막 날까지 하루하루 기쁘게 지냈다”고 전했다.

호스피스(hospice)는 라틴어 ‘손님’(hospes)에서 유래했다. 중세 성지순례자들이 하룻밤을 쉬어가는 곳이라는 뜻이었다. 십자군전쟁 당시 부상자들이 이곳에서 치료받다 사망하면서, 임종을 앞둔 이들의 안식처로 불리게 됐다. 왔다가 떠나는 이승의 삶을 ‘손님’의 삶이라 한다면, 호스피스는 그 길목에서 지친 몸과 마음을 쉬는 곳이다. 앞서 최미정씨는 “호스피스는 죽으러 가는 곳이 아니라 마지막까지 잘 살러 가는 곳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천사는 하늘나라에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우리 가족 모두 경험하고 있다”고 말했다.


“보건진료소 활용 고려할 만”

우리보다 호스피스 서비스 늦게 시작한 일본·대만도 10년 이상 앞서나간 현실

영국 등 영연방 국가들은 호스피스 선진국으로 불린다. 1960년대 초반부터 국가보장 의료제도의 한 축이 되어 국민 대부분이 원하면 호스피스 돌봄을 받을수 있는 제도와 시설이 마련돼 있다. 아시아권에도 홍콩에서는 암 사망자의 65%가, 싱가포르에서는 74.9%가 호스피스 돌봄을 받고 있다. 우리보다 호스피스 서비스가 늦게 시작된 일본(1981년 시작)과 대만(1990년 시작)도 지금은 우리보다 10년 이상 앞선 것으로 평가받는다.

특히 대만은 임종을 앞둔 환자의 90% 이상이 호스피스의 가장 발전된 형태인 가정 호스피스 돌봄을 받는다. 대상자도 암이나 에이즈 환자뿐만 아니라 모든 질환자이다. 2000년 논란 끝에 자연사법이 통과되면서 호스피스-완화의료 제도가 탄력을 받기 시작했는데, 전 사회적 합의가 쉽지 않아 의원입법의 형태로 시작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이를 위해 전국적으로 7년에 걸친 연구 끝에, 가정 호스피스를 시행하면 말기암 환자가 종양병동에서 삶을 마무리하는 것보다 64.2%의 비용을 절감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 과정에서 호스피스 의료보험 수가도 마련됐다.

일본에서는 1998년부터 후생성에서 완화의료 병동 승인 기준을 마련해 수가를 지급했고, 2002년부터는 병원 단위의 완화의료팀에 포괄수가제를 적용하기 시작했다. 병원 호스피스 대상은 암과 에이즈 환자, 가정 호스피스 대상은 모든 질환자로 혼용된 형태다. 일본은 전국에 분포된 6천여 방문간호소(Visiting Nurse Station)에서 가정 호스피스를 제공하고 있다. 연세대 간호대학 이정렬 교수는 “우리나라 농어촌 지역에 분포돼 있는 보건진료소를 가정 호스피스 제공처로 활용하는 것을 적극 고려할 만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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