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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사회 > 사람과 사회 기사목록 > 기사내용   2007년05월17일 제66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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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민주노총입니다

현장 조직력을 복원하기 위한 전국 현장대장정, 노동운동의 새로운 작풍이 될 것인가

▣ 거제=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5월9일 오전 거제도 옥포에 자리잡은 대우조선해양. 드넓은 조선소 한쪽 퀀셋 간이막사에 여성 노동자 4명이 둘러앉아 잠시 쉬고 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노란 작업복을 둘러입은 채 눈·코·입만 빠끔히 내놓은, 조선소에서는 보기 드문 여성 노동자들이다. “하시는 일이 뭐예요?”(이석행 민주노총 위원장) “커버링이요. 장비 포장하는 일입니다.” “일한 지 몇 년 됐어요?” “저는 몇 년 안 됐어요. 신입사원입니다.” “그럼, 여기서 어느 아주머니가 제일 대빵이에요? 작업복을 보니 이분이 대빵 같은데….” 이 위원장이 작업복에 때가 가장 많이 묻은 여성을 지목했다. “근데 이쪽 아주머니는 복면을 쓴 품이 꼭 옛날 검객 같아 보여요….” 웃음이 터진다.


△ 민주노총의 조직력을 현장에서 결속한다. 5월9일 거제 대우조선소에서 현장 노동자들을 만나고 있는 민주노총 이석행 위원장(왼쪽).

이들은 사내 협력업체 소속, 즉 하청 비정규 노동자들이다. “민주노총, 아세요? 여러분이 민주노총 조합원은 아니지만 힘을 보태주십시오. 우리가 비정규직과 하청 노동자들을 위해 싸우고 있지만 사실 힘이 부쳐요.” 복면 속의 여성 노동자가 즉각 받는다. “그래도 일 안 하면 우리는 당장 잘려요.” 이 위원장이 명함을 꺼내 건넸다. “어려운 일 있으면 저한테 연락주세요. 참, 텔레비전에 제 얼굴 자주 나옵니다. 나오면 박수 한 번 쳐주세요.” 까르르, 여성 노동자들이 또 한 번 웃었다.

“밤에 죽고 아침에 다시 살아나는” 강행군

민주노총 이석행 위원장이 지난 3월26일부터 8월14일까지 전국을 도는 ‘현장대장정’을 진행하고 있다. 지도부-현장 간부-현장 조합원 상호 간의 신뢰와 결합력을 강화하고 현장 조직력을 복원하기 위한 이번 대장정은 현장 노동자들 속에서 노동조합운동의 대안을 함께 모색하는 프로젝트다. ‘힘있는 민주노총’을 내건 현장대장정은 민주노총 창립 이래 처음이다. 3월26일 새벽 인천 송내역 새벽 인력시장을 찾아간 것에서부터 시작된 대장정은 인천·경북·대구 지역을 돌고 4월29일부터 경남 지역 순회가 진행되고 있다. 대도시 지역별로 일주일 정도씩 머물면서 여러 사업장을 방문해 현장 노동자들을 만나고 있는데, 경남 지역의 경우 창원·마산·진해·김해·양산을 거쳐 5월8일 밤 거제에 도착했다. 이어 통영·진주·하동으로 이어지는 강행군이 계속될 예정이다.

대장정에 돌입한 지 한 달 보름 가까이 지났다. 하루 동안 많게는 10군데 현장을 찾아가는, 그야말로 “밤에 죽고, 아침에 다시 살아나는”(이 위원장) 강행군 탓인지 이 위원장의 목소리는 이미 잠겨 있었다. 민주노총 현장대장정팀은 이 위원장을 비롯해 대여섯 명인데 다들 이미 지친 표정이 역력했다. ‘짱돌’이란 별명이 붙은 작은 체구의 이 위원장은 이날 오전 대우조선 현장을 돌기 전에 신고 있던 등산화부터 바짝 조여맸다. 이 위원장의 놀라운 체력과 끈기 그리고 특유의 ‘고집’이 무리하고 빡빡한 일정을 끌어가는 원동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고하십니다. 민주노총 위원장입니다. 어딜 그리 바삐 가십니까?” 자전거를 탄 조합원이 잠시 멈췄다. 여기저기 쿵쾅거리는 작업장 소음 때문에 두 사람의 짧은 대화는 잘 들리지 않았다. “아, 작업장 연락병이군요.” “맞습니다. 대장정 일정 잘 마치고 건강하십시오.” 대우조선 작업장 곳곳을 걸어 돌아다니며 현장 노동자들과 악수하고 잠깐 동안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 계속됐다. “무척 덥죠? 수고하십니다.” 시퍼런 불꽃을 뿜어내면서 선박 외벽을 그라인딩하고 있던 노동자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얼굴에 두꺼운 마스크를 쓴 그는 네팔 출신 이주노동자였다. 검게 기름때가 묻은 장갑을 낀 그의 손을 맞잡은 이 위원장은 “건강 조심하시고, 힘내십시오”하면서 포옹까지 나눴다. 등에 붙은 ‘함께 내딛는 큰 걸음, 민주노총 현장대장정’이란 글귀가 선명했다.

물론 반갑다고 악수를 자청하는 노동자가 있는가 하면 무관심한 표정을 짓거나 외면하는 노동자도 있었다. “고생 많습니다. 민주노총 위원장입니다. 민주노총에 바라고 싶은 것이 있으면 말씀해주세요.” 젊은 비정규직 노동자 네댓 명은 민주노총 위원장이란 말에 약간 흥미를 느끼는 듯했지만 곧 무관심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민주노총, 별로 믿음이 안 가요. 사실 제대로 하는 게 없잖아요.” “우린 대우조선 노조가 내는 홍보물만 접하지 민주노총이 하는 일은 아는 게 없어요. 비정규직을 위한 싸움을 하고 있다는데 그런 동기에는 관심없어요. 도대체 민주노총이 총파업을 해 얻은 것이 뭐 있나요?” 이 위원장이 다른 노동자들을 만나러 발걸음을 돌리자 이들은 제각각 민주노총에 대한 불신을 털어놨다. 또 다른 하청 노동자 정인철씨는 “민주노총이 힘있는 조직인지 아닌지 잘 모르지만 뭉쳐야 한다는 건 분명합니다. 그런데 기업들이 비정규직을 마구 쓰는 흐름을 노동조합이 싸워서 역류시킬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주로 중소영세 사업장 방문


△ 이석행 위원장을 비롯해 민주노총 현장대장정팀이 방문한 곳과 만난 사람들. 경북 일반노조 천막농성장, 대구 고령의 쓰레기 하치장 노동자, 경주 지역의 한 중소사업장, 영남대 시설노동자들(사진/ 위부터·민주노총 제공)

“민주노총의 조직력을 현장에서 결속한다”는 현장대장정의 슬로건이 말해주듯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과 고용불안 속에서 현장의 힘은 크게 약화되고 있다. 한국 노동조합운동은 기업별 노조체제 아래서 민주노총 중앙의 힘은 취약하고, 현대자동차 등 몇몇 대공장 노조의 힘은 강한 편이었다. 노동조합운동의 힘은 ‘강한 중앙’과 ‘강한 현장’이 결합될 때 극대화된다. 하지만 대공장 현장마저 고용불안 속에서 힘이 급속히 약화되고 있고, 총파업 선언이 매번 종이호랑이에 그치는 등 민주노총의 지도력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이날 이 위원장이 방문한 대우조선 노동조합의 경우 대의원 60여 명 중 절반 이상이 회사 쪽 성향이라고 한다. 비정규직 급증에 따라 현장에서 파업 위력도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대우조선노조 관계자는 “현장 노동자 2만5천여 명 중 직영 정규직이 40%, 협력업체 비정규직이 60% 정도인데, 민주노총의 파업 지침에 따라 일부 작업장의 공정을 죽인다 해도 비정규직만으로도 작업이 거의 정상적으로 이뤄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우리한테 해줄 수 있는 것도 없으면서 왜 파업으로 일도 못하게 하느냐”고 불만을 터뜨리는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많다. 저조한 파업 참가율도 ‘현장 붕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지표다. 대우조선 노동조합은 고육지책으로 대의원들을 동원해 점심 시간에 식당을 점거하는 게릴라 파업을 조직하기도 한다. 밥 먹는 줄을 길게 세워 오래 기다리도록 하는 방식으로 한두 시간 동안 비자발적인 파업을 유도하는 것이다.

대우조선소를 돌고 있던 이 위원장에게 먼저 찾아와 악수를 청한 조합원 김준호씨는 “세상 많이 변했다”며 “예전에는 다 같이 동참해 싸웠지만 지금은 비록 생각은 있어도 막상 파업에 나서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의장팀 작업장에서 만난 박형철씨는 한국노총과 정책 공조를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현장 조직력이 와해되고 있어요. 모여서 깡통 한 번 흔들어도 불법이 되는 세상 아닙니까? 힘은 약해지고 단결은 안 되고…. 한국노총과의 공조를 통해 힘을 합쳐야 합니다.” “예, 여러 가지 고려해야 할 점이 있긴 하지만 동지의 말을 새겨듣겠습니다. 저를 버리더라도 현장을 복원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이 위원장) 대우조선소에서 25년째 일하고 있다는 정규직 조합원 이아무개씨는 이 위원장과 악수를 나눈 뒤 기자에게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겠다는 민주노총의 방침이 과연 올바르고 현실적인 것인지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처럼 노동 현장에서는 분열과 고립이 가속화되고 있고, 이는 노동조합운동을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현장대장정팀이 주로 방문하는 사업장은 대공장보다는 민주노총 중앙과의 소통이 적거나 어려웠던 중소영세 사업장들이다. 천막농성장 방문·지역 노조간부들과의 간담회·장기투쟁 사업장 출근선전전 참여·지하철 청소용역 여성노동자들과의 간담회·구속노동자 경찰서 방문 면회·산재노동자 위로방문·김치공장 노동자 방문…. 이 위원장은 인천 구월중학교를 방문해 학교 비정규직 문제를 놓고 교장과 면담하고, 새벽 2시에 대우자동차 야간작업조 현장을 찾아가기도 했다. “중소기업 노동자들은 사장보다 더 공장을 걱정하고 있어요. 파업에 나서면 임금 손실로 수십만원씩 까진다고 불만을 제기하는 노동자들도 많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습니다.” 현장대장정팀이 조직된 ‘조합원’만 만나는 건 아니다. 이 위원장은 대구참여연대를 방문해 시민사회단체와의 연대를 논의하고, 마산에서는 어시장에서 쓰레기를 치우는 노동자들을 밤늦게 만나고, 경남외국인노동자상담소를 방문하고, 독거노인 아침 도시락 배달에도 참여했다.

“체 게바라에게 영감을 얻었다”

현장대장정팀은 다들 침낭을 메고 다니는데 주로 현장 노동조합 사무실 소파에서 잠을 잔다. 회의실 바닥에 스티로폼을 깔고 누워 잘 때도 있고 천막농성장에서 밤을 지샐 때도 있다. 대구 달성군 명곡동에서는 한 조합원의 집을 숙소로 잡아 명곡동에 거주하는 민주노총 조합원들과 밤늦게까지 간담회를 갖기도 했다. 이 위원장은 “여관 등지에서 잠을 자면 나태해질 수도 있고, 밤새 소주잔을 기울이며 지역 노조 간부와 조합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면 가장 진솔한 얘기를 들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또 “나만큼 현장을 잘 아는 사람이 없다고 교만을 떨었는데 너무 몰랐다는 것을 새삼 확인하고 있다”며 “현장의 정서를 고려하지 않은 채 총연맹 중앙에서 (파업) 지침 하나만 내려보내 문제를 해결하려는 방식에 대한 불만이 가장 많았다”고 말했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처음에는 참가에 미온적이던 연맹과 산별조직들이 차츰 대장정에 동참하고 있다. 이 위원장의 진정성이 지역의 노동조합 간부들과 현장 조합원들한테 서서히 영향을 주면서 확산되고 있다”며 이번 대장정이 노동운동의 새로운 작풍을 만들어낼 것이라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이날 “현장대장정은 체 게바라에게서 영감을 얻었다”고 말했다. 4개월간 8천km의 중남미 대륙 여행 속에서 라틴아메리카의 현실을 직접 보고 느끼며 민중들의 삶 속으로 들어간 체 게바라를 다룬 영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처럼 이 위원장의 현장대장정은 다소 낭만적인 구석도 엿보인다. 그러나 결코 ‘여행’은 아니다. 민주노총은 나중에 현장대장정 백서를 만들고, 대장정에서 들은 현장 노동자들의 요구를 수렴해 민주노총의 사업계획에 반영할 예정이다.


대선 독자후보 선출을 묻는 길?

현장대장정은 ‘개방형 민중참여 경선제’ 주장과 무관하지 않아

민주노총 이석행 위원장이 벌이고 있는 현장대장정은 민주노총의 대선 정치 방침과도 무관하지 않다. 민주노동당의 대선 후보 선출 방식과 관련해 ‘개방형 민중참여 경선제’를 줄곧 주장해온 이 위원장은 이미 “민주노총의 독자적인 대선 후보를 선출할 수도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 위원장은 이번 현장대장정 과정에서 민주노총의 대선 독자후보 선출에 대한 현장 조합원들과 노동조합 간부들의 생각도 수렴하고 있는 중이다. 사실상 독자후보 선출 방안에 대한 조합원들의 동의를 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5월9일 이 위원장은 “민주노총이 민주노동당을 통해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꼭짓점을 딴다(완성한다)는 원칙에는 변함이 없다. 나는 수단과 방법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며 “민주노총 조합원들의 경우 꼭 민주노동당 당원이 아니라도 대의원대회를 통해 민주노동당을 배타적으로 지지하기로 결의한 사람들이다. 즉, 당원으로서 권한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당원만 참여하는 직선제 방식으로는 조합원들의 의사를 제대로 반영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이 위원장은 이어 “조합원들이 당의 주체이고, 이들한테 대선 후보 선택권을 줘야 한다. 당원이 아닌 조합원도 있지만 상당수가 세액공제 방식을 통해 당에 정치자금을 내는 등 당에 기여해온 사람들이고, 이런 점이 존중돼야 한다”며 “민주노총에서든 당에서든 주인인 조합원이 대상화되지 않고 주체로 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이 위원장이 주장한 개방형 민중 경선제는 민주노동당 대의원대회에서 이미 부결된 바 있다. 이에 대해 이 위원장은 “당대회를 재소집해 대선 후보 경선에 민중이 참여하는 길을 열어라”고 계속 요구하고 있다. 이 위원장은 “당에 민주노총의 요구를 계속 전달하겠지만 민주노총 독자후보를 선출하는 방식도 내부적으로 고민하고 있다”며 “독자후보를 내서 당 경선에 내보낼 수도 있고, 경선 출마를 밝힌 세 사람(권영길·노회찬·심상정) 중에서 한 사람이 민주노총 후보로 나서는 방식도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위원장은 민주노총의 독자후보 선출 논란과 관련해 “내가 (노동자 계급의) ‘제2의 정치세력화’를 말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민주노동당을 통해 꼭짓점을 딴다고 말했듯, 민주노동당 외에 또 다른 ‘대안적 정치 대표체제’를 추진하는 건 아니라는 얘기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독자후보 선출과 개방형 민중 경선제 요구는) 이번 대선에서 당원들이 민주노동당에 적극 투표하도록 만들기 위한 것”이라며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의 관계에 근본적인 변화가 있는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