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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사회 > 사람과 사회 기사목록 > 기사내용   2007년05월10일 제65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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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멀고 불은 가까웠네

또다시 터진 서초구 비닐하우스촌 화재…화장실 지원도 못받고 신음하는 아랫성뒤마을

▣ 글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그날 아침 기자의 휴대전화에는 한 통의 문자가 찍혀 있었다. 비닐하우스 지역 빈민활동을 하고 있는 송파 지역 시민단체 활동가가 보내온 문자에는 “서초구 비닐하우스에 불이 났대요”라는 짤막한 사연이 적혀 있었다. 아무리 황당한 사건도 자주 겪다 보면 무덤덤해진다. “또야!” 태연히 아침을 먹었고, 출근했고, 바쁘게 처리해야 할 기사들을 다 넘긴 뒤에 마을을 찾아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사건이 터진 지난 4월16일에서 정확히 16일이 지난 5월2일이었다. 늦봄 가는 비에 촉촉이 젖은 폐허 더미 속에서 주민들은 뚱한 눈으로 기자를 맞았다.


△ 화재로 쑥대밭이 된 서울 서초구 비닐하우스촌 아랫성뒤마을. 서초구청은 주민들의 생필품 지원 요청을 외면했다.

화훼마을·안골마을…지겹게 이어지는 화재

마을의 이름은 ‘아랫성뒤마을’이라고 했다. 마을 위쪽으로 ‘윗성뒤마을’이 있다. 4월16일 새벽 2시40분께 난 불로 마을에 사는 32가구 가운데 13가구가 완전히 불탔다. 주민들은 나무로 임시 건물을 지어놓고 꾸역꾸역 하루하루를 때우고 있다. 서초소방서 화재조사팀에서는 “화재가 방화로 의심된다”고 말했고, 방배경찰서 강력4팀에서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감식을 맡겼는데 아직 결과가 안 나왔다”고 했다. 섣불리 판단하기는 이르지만 누군가 마을에 불을 질렀을 가능성이 있는 셈인데, 주민들은 “땅 주인이 2006년 12월에 ‘땅을 비워달라’는 명도소송을 제기했다”고 말했다. 집은 잿더미가 됐고, 방화범의 소행임을 입증할 뚜렷한 증거는 없다.

그동안 정말 ‘지겹게’ 화재가 발생했다. 지난해 10월7일 서울 송파구 화훼마을에서 난 불로 비닐하우스 35동 168가구의 집이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전소됐다. 추석 다음날이었다. 갑작스런 화재의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2명이 숨졌다. 화훼마을에서는 1990년대 이후 네 번이나 불이 났고, 그때마다 마을은 폐허로 변했다.

2003년 1월 서초구 안골마을에서는 “나가달라”는 땅 주인의 퇴거 명령이 있은 뒤 방화로 의심되는 8차례의 불이 나 주민 심아무개(73)씨가 숨졌다. 2004년 가을 기자가 찾았을 때 주민들은 마을 입구에 폐쇄회로텔레비전(CCTV)을 설치해놓고 규찰을 서고 있었다. 그해 12월에는 철거 투쟁이 한창이던 서울 용산구 용산동5가 19번지 주변 쪽방촌에서 방화로 인한 불이 났다. 철거 투쟁은 사그라졌고, 주민들의 집을 밀어낸 터에는 화려한 용산 시대의 도래를 상징하는 대형 주상복합주택 파크타워의 뼈대가 우뚝한 모습을 뽐내고 있다. 왜 자꾸 방화가 터지는 것일까. 이유는 간단할 수도 복잡할 수도 있다. 어찌됐든 그들이 터 잡고 선 곳은 금싸라기인 강남과 용산의 땅이었다.

김형선(51) 성뒤마을 화재대책위원장이 성뒤마을로 이사온 것은 1998년 무렵이다. 그전까지는 인테리어 시공 사업을 했다. 그는 1997년 ‘IMF 위기’의 직격탄을 맞았다. 거래처에서 받아든 어음을 제때 현금화하지 못해 부도를 냈고 싼 집을 구하기 위해 허둥대다 성뒤마을과 인연을 맺게 됐다. “여기가 밖에서는 어떻게 볼지 모르지만, 참 살기 편하거든요. 집집마다 텃밭도 가꿀 수 있고 이웃 사이에 우애도 좋고.” 그의 가족은 갑작스런 불로 몸만 빠져나왔다. 고등학교 3학년인 아들은 교복도 챙기지 못했다. 장점순(84) 할머니는 “이제 나는 어떻게 하냐”며 울었다. 마을 곳곳에는 “죽여라 죽여, 다 죽여. 서초구는 주거대책 강구하라”고 쓰인 펼침막이 걸려 있다.

구청쪽 “지원할 근거가 없다”

불은 났지만 국가는 마을에서 멀었다. 주민들은 마을에서 직선거리로 150m쯤 떨어진 119안전센터에서 불이 난 지 30분이 지난 뒤에야 출동했다고 말했다. 마을 주민 김수영(52)씨는 “소방서에서만 제대로 출동해 불을 껐으면 이런 참사로 이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참다 못한 주민들이 소방서로 뛰어갔죠. 셔터가 닫혀 있었어요. 그나마 소방차가 도착했는데 길을 잘못 들어 엉뚱한 곳으로 출동해 있고. 정말 이건 너무하다고 생각해요.” 주민들은 불이 났을 때 마을 상황을 담은 1분41초 분량의 동영상을 인터넷에 올렸는데, “소방차가 왜 물을 안 뿌리냐”는 주민들의 다급한 음성과 “그런다고 불이 꺼지는 게 아니다”라는 소방관의 음성이 나란히 녹음돼 있다. 서초소방서에서는 “신고 4분 후에 현장에 도착해 2시간이나 걸려 힘겹게 불을 껐다”고 말했다.

서초구청은 주민들의 고통을 외면했다. 주민들은 구청 쪽에 △긴급 생활 지원 △화재 진상 규명 △안전한 주거대책 마련 등 3가지를 요구했다. “일단은 당장 살아야 하니까 간이 화장실, 취사도구, 헌 냉장고, 생필품 등을 지원해달라고 했죠.” 김형선씨가 말했다. 구청 쪽의 반응은 “지원할 근거가 없다는 것”이었다. 간이 화장실은 여러 사람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공원 등에 놓는 것이기 때문에 주민들의 주거지에 둘 수 없고, 취사도구나 생필품 등은 주민들이 기초생활보장 수급권자가 아니어서 지원할 근거가 없다는 응답이었다. 동사무소 쪽에서 “쓰레기 봉투는 지원할 수 있다”고 했지만, 그나마 “담당자가 자리에 없어 나중에 가져다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간이 화장실은 물론 쓰레기 봉투도 아직 지원되지 않고 있다. 주민 13가구는 이웃 마을 주민이 빌려준 간이 화장실 1개에 기대 아침마다 화장실 전쟁을 치른다.

화재 진상 규명과 주거대책 마련에 대한 답변도 예상대로였다. 화재 원인을 밝히는 것은 구청이 아닌 경찰서의 몫이고, “주민들은 임대아파트 지원 대상이 아닌 것”으로 결론났다. 규정을 꼼꼼히 따지는 공무원들을 탓할 수는 없겠지만, 느닷없는 불행과 맞닥뜨린 사람들의 처지에서 ‘규정’만 되뇌는 공무원들을 지켜보는 일이란 난감한 노릇이다.

주민들은 막다른 골목에 몰려 있다. 임대아파트는 주민들에게서 멀어 보이고, 잿더미를 치우고 새로 건물을 짓는 것도 어려워 보였다. “아무래도 무허가 건물이니까 건물을 지으면 땅 주인에게는 강제 이행금을 부과하고, 건물은 철거해야겠죠.” 서초구청 관계자가 말했다. 애초 명도소송을 냈던 땅 주인도 하루빨리 주민들을 몰아내기 위해 서두를 것이다. “결국 이대로 싸울 수밖에 없어요. 어찌됐든 버틸 때까지는 버텨야죠.” 주민들이 말했다.

“임대 아파트가 가장 나은 대안”

화해의 지점은 없는 것일까. 화훼마을 주민들은 애초 터에 다시 비닐하우스로 집을 지었고, 안골마을 사람들은 임대아파트를 찾아 나갔으며, 용산5가동 주민들은 오랜 철거 투쟁에 지쳐 뿔뿔이 흩어졌다. 아랫성뒤마을 사람들은 어느 길로 가게 될까. 오랜 시간 비닐하우스 빈민활동을 해온 박순석 천주교빈민사목위원회 선교사는 “임대아파트에 주민들을 흡수하는 게 가장 나은 대안”이라고 말했다. 서초구청과 서울시의 태도 변화를 이끌어낼 때까지 주민들은 버틸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