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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사회 > 사람과 사회 기사목록 > 기사내용   2007년04월26일 제65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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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사 그만두고 다 나와라”

<중앙일보> 전 사진기자 오동명의 새로운 인생 … 60살까지 꿈을 잡도록 해주었으니 “홍석현 회장에게 고맙다”

▣ 김영배 기자kimyb@hani.co.kr
▣ 사진·정수산 기자jss49@hani.co.kr

“이런 글을 쓰기에 앞서 많이 주저했다. 나도 먹여살려야 하는 처자식이 있는데, 사주에게 반기를 드는 듯한 행동을 할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달에 한 번 ‘휴대폰 없는 날’

‘언론탄압이라고 주장하기에 앞서’라는 제목을 단 그의 글에는 ‘기자’이기에 앞서 밥벌이를 해야 하는 ‘생활인’의 염려가 묻어났다. 그러면서도 “사주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며, <중앙일보>의 장래가 걸린, 그리고 정도(正道)를 걸어야 하는 신문의 입지가 걸린 문제이기 때문에, 사표를 쓸 각오가 아닌, 퇴사할 결정을 하고서야 비로소 이 글을 쓰게 되었다”는 결연한 의지를 밝혔다.


1999년 11월4일 <중앙일보> 본사 안에 나붙은 사진부 오동명 기자의 대자보는 ‘생활인’의 걱정대로 그의 인생 행로를 온통 바꿔놓았다. 한 달 전쯤인 그해 9월30일 탈세 혐의로 소환되는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당시 사장)을 향해 40여 명의 기자들이 도열한 채 “홍 사장, 힘내세요”라고 외치는 ‘희대의 코미디’를 비롯한 사주 비호 행태를 비판한 대자보가 족벌언론 내부에서 용인되기는 어려웠다. “신문사 사장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들춰진 많은 비리마저도 기자들이 앞장서 ‘언론탄압’이라는 미명하에 감춰두고 막으려 든다면, 우리가 그렇게 오랫동안 바라고 바라던 진정한 언론의 독립은커녕, 단지 글씨 박힌 신문지 제조업체 직원으로의 전락을 우리 스스로가 자초하는 꼴이 되고 말 것이다”는 절규는 그 혼자만의 외로운 목소리로 잦아들었다.

“사표 낼 때는 (회사 내부 분위기가) 좀 바뀌리라 기대했다. 그렇게 되면 복귀할 생각도 있었는데…. 술자리에서 사주를 비판하던 이들이 오히려 똘똘 뭉쳐 앞장서 비호에 나서는 걸 보고 안 되겠다 싶었다.” 고정 수입처를 잃어버린 초기 그에게 도움의 손길을 뻗친 이는 평소 알고 지내던 한 기업인이었다. ‘대자보 사태’를 보고 걱정돼 전화했다가 퇴사 소식을 전해듣고선 자기 회사 일을 좀 도와달라는 배려성 부탁을 해왔다. 제일기획에서 시작해 <국민일보>를 거쳐 <중앙일보>에 이르기까지 줄곧 해온 사진 촬영 일이었다.

여기서 나오는 고정 수입과 가끔 들어오는 강연 요청, 월간지나 인터넷 매체 기고로 그럭저럭 생계를 꾸려갔다곤 해도 생활은 불안의 연속이었다. 회사를 떠난 이듬해엔 이메일 아이디를 ‘몸살’로 삼을 만큼(momsal2000@naver.com) 혹독한 감기를 앓기도 했다. <중앙일보> 시절에 견줘 턱없이 부족한 수입인데다 그나마도 안정적이지 않았다. 월간지 원고료는 제때 들어오지 않는 경우가 많았고, 가끔 펴내는 책은 큰돈으로 연결되지 않았다. 지난해엔 특히 수입이 적어 모아놓은 돈을 까먹으며 버텨야 할 지경이었다. 다행이라면 올 들어 꾸준히 일거리가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4월 중 출판사 두리미디어를 통해 <부모로 산다는 것>을 펴낼 예정이며, 풍수에 관한 책을 발간하는 작업에도 참여하고 있다. 오씨는 이미 <찰칵> <사진으로 세상읽기> <당신 기자 맞아?> <신문소 습격사건> <바늘구멍 사진기> <설마 침팬지보다 못 찍을까> <금요일 저녁에 떠나는 5만원 2박3일> 같은 여러 권의 책을 펴냈다.


△ 오동명씨는 “나는 (특혜) 받은 게 많고 운이 좋은 사람”이란 말을 늘 입에 달고 산다. 새로 둥지를 튼 춘천에서 자전거를 타다 잠시 쉬고 있다.

이번에 내놓는 책 <부모로 산다는 것>은 가족 안에서 부모, 특히 아버지의 역할에 중점을 두고 있다. 부모와 자식 간 대화의 단절을 극복해 친구 같은 관계로 회복하는 길을 모색하는 직·간접적인 체험 사례를 들려준다. 오씨는 “대화하자고 해서 되는 게 아니며 가족마다 사정에 맞는 (대화를 이끌어낼) 어떤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오씨의 경우 한 달에 한 번 ‘휴대폰 없는 날’을 정해놓음으로써 자연스럽게 가족 간 대화가 늘어나는 방법을 썼단다. 사소한 얘기부터 시작해 대화를 이어가다 보면, 분위기가 편해지면서 서로 속내를 털어놓게 된다는 것이다.

아들과 일본 여행, 파리서 그림 공부…

“<중앙일보>에 계속 남아 있었더라면 안주했을 텐데 지금은 꿈이 많다. 그게 차이라면 가장 큰 차이다. <중앙일보> 시절엔 3년에 한 권씩 책을 내자는 정도의 목표만 갖고 있었다. 지금은 60살까지 꿈이 잡혀 있다.” 남은 인생의 꿈을 풀어놓는 대목에 이르자 올해 만 50살에 이른 오씨의 얼굴에 20~30대 청년 같은 설렘이 엿보였다. “탈세 사건을 계기로 창피해서 회사를 떠날 용기를 갖게 됐으니, 이젠 홍석현 회장에게 오히려 고맙게 생각한다. 이건 농담이 아니라 진심이다.”

그의 첫 번째 꿈은 내년에 중학생이 되는 아들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일본 역사기행을 떠나는 일이다. 일본이 포르투갈을 비롯한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인 통로였던 나가사키에서 출발해 도쿄까지 자전거로 이동하면서 일본의 어제와 오늘을 두루 살피겠다는 포부다. “미국 비자가 만료돼 일본을 먼저 선택했다. 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 때 부산에서 배를 타고 시모노세키에 내려 도쿄까지 열차로 여행한 적이 있는데, (아이가) 지금도 그때 얘기를 한다. 우리가 일본에 대해 인정할 건 인정하고, 그러면서 일본을 넘어설 수 있음을 얘기해줄 수 있겠다 싶어 역사기행을 계획했다. 미국 비자 문제가 해결되면 아메리카 대륙을 자전거로 횡단하는 역사기행도 해볼 생각이다.” 내년의 일본 역사기행은 두리미디어에서 책으로 펴내기로 약속했으며, 책 제목도 이미 정해놓았다. ‘그래, 우리가 졌다, 하지만…’.

그는 직장 다니던 시절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손에 댔던 도장 파는 일을 목공으로까지 연결해 얼마 전엔 손수 ‘앉은뱅이 책상’을 만들기도 했다. 아들 선물용으로 하나 만들었다가 입소문으로 전해들은 이들의 요청에 따라 8개쯤 제작해 선물로 돌렸다. 개당 10만원 안팎인 재료비 후원을 받게 되면 더 널리 선물하고 싶다는 꿈은 아직 미완성으로 남아 있다. 그의 명함에 ‘문화 디자이너’란 직함 위에 ‘문화설계-아빠의 선물’이란 문구가 새겨져 있는 배경이다.

일본 역사기행 뒤엔 어쩌면 둥지를 프랑스 파리로 옮길 수도 있단다. 어릴 적부터 갖고 있던 화가의 꿈을 키우고 프랑스어를 공부하기 위해서다. 몽마르트르에서 한참 아래쪽으로 내려오면 서울 인사동보다 훨씬 싼 거처를 마련할 수 있다는 것까지 이미 확인해두었다. “그러다 보면 55~56살쯤 될 텐데 그때는 지중해를 돌면서 여행 중일 것이다. 헌 차를 하나 사서 남유럽과 북아프리카 지역을 돌면서 문화·종교·여행 세 분야로 나눠 취재해 책으로 남기려고 한다.” 신문사 시절의 경험에 덧붙여 세상이 넓다는 걸 아이들한테 들려주고 싶은 게 그의 바람이란다. 그가 60살에 이르러 전시회를 한번 열면 꿈은 일단 완성된다.

현직 기자보다 더 기자다운

‘40대 초반쯤으로 젊어 보인다’는 덕담을 그는 굳이 부인하지 않았다. 이미 그런 말을 많이 듣고 있는지 “마음 편히 사는 게 얼굴에 나타나는 모양”이라며 웃었다. 서울 토박이인 그가 얼마 전 한적하고 풍광 좋은 춘천으로 거처를 옮긴 것도 ‘얼굴 나이’를 끌어내린 요인이리라. “(기자들에게) ‘신문사 그만두고 다 나와라’ 하고 싶지만, 돈벌이해야지, 하하.” 온몸으로 세상과 부딪치고, 또 그렇게 겪은 일을 책으로 펴내는 그야말로 현직 기자보다 더 기자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춘천에 놀러가기로 한 약속을 꼭 지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