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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경제 > 경제21 기사목록 > 기사내용   2008년02월21일 제69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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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은 삼지모를 배신했다”

김형기 교수 인터뷰… 모임에서 비자금이 과거지사라 해놓고 계속 국가기관 매수 시도

▣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이건희 삼성 회장 일가의 비자금 조성 의혹을 수사 중인 조준웅 특별검사팀이 이학수 삼성 전략기획실장(부회장)을 전격 소환 조사한 것은 특검 출범(1월10일) 한 달여 만인 2월14일이었다. 삼성 특검의 기본 수사 기간 60일의 절반을 조금 넘긴 시점이다.

이 부회장은 명실상부한 삼성의 2인자인데다 삼성 문제의 핵심인 경영권 불법 승계의 총지휘자로 꼽히고 있어 특검의 소환 조사는 재계 안팎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특검은 이 부회장 소환에 앞서 삼성전자 수원 본사를 압수수색하고 이건희 회장 일가의 과세 자료 확보를 위해 국세청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함으로써 이 회장의 소환도 임박했다는 관측을 낳았다.


△ 김형기 경북대 경제학 교수 (사진/ 한겨레21 김영배 기자)

특검 수사가 삼성 문제의 핵심으로 근접해가는 시점에서 <한겨레21>은 ‘삼성을 지켜보는 모임’(삼지모)에 참여하고 있는 김형기 경북대 교수(경제학)를 만났다. 비자금 의혹 등에 대한 삼성 내부의 인식 수준과, 삼성 문제 해법의 실마리를 들어보기 위해서다. 김 교수는 임혁백 고려대 교수와 더불어 노동·시민 사회와 재벌 사이의 ‘사회적 대타협’을 중심으로 한 ‘제3의 길’을 주창하는 ‘좋은정책포럼’ 공동 대표를 맡고 있기도 하다. 인터뷰는 2월14일 오후 경북대 경상대학 신관 김 교수 연구실에서 두 시간여 진행됐다.

첫 회의부터 비공개, 실망했다

삼지모에 참여한 계기부터 들어보고 싶다.

=삼성그룹이 ‘X파일 사태’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한 그해(2006년) 봄이었다. 아마 5월쯤이었을 거다. 삼성 쪽에서 연락을 해왔다.

연락을 해온 이는?

=구조본(전략기획실) 간사를 맡고 있는 장충기 부사장이었다. 평소 안면이 있던 사람이다. 접촉하고 있는 인사들을 거명하며 이번엔 비판적 인사들 중심으로 꾸린다고 했다. 삼성을 옹호하던 사람들은 포함시키지 않고, 쓴소리를 들어서 기업 경영에 반영하고 싶다고 하더라. 처음엔 삼성에 ‘포획’당하지 않을까 싶었다. 삼성을 ‘지켜보는’ 모임이 아니라 결과적으로 ‘지켜주는’ 삼지모가 되지 않겠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들러리를 서면서 국면 전환용으로 이용되고 불리한 여론을 무마시키는 방패막이 되는 거 아닐까 하는…. 한편으론, 사회적 대타협의 담론을 형성해나가는 기회로 삼을 수 있기에 참여하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00% 확신한 건 아니지만, 작으나마 가능성을 실험해보고 싶었다. 참여 인사들의 면면을 봐도 괜찮았던 것 같다.

실제 참여해보니 어땠는가?

=출범하던 해 6월에 열린 첫 모임에 나간 지 얼마 안 돼 ‘연구휴식년’을 맞아 미국 버클리대로 가는 바람에 그 다음 모임들에는 직접 참석하지 못했다. 외국서 이메일로 논의 내용을 전달받고 의견을 내고 그랬다.

삼지모라는 게 어차피 근본적인 한계를 안고 있었다. 지배구조의 일부가 아니고, 그냥 비공식 조직이었다. 또 회의는 비공개였고…. 나는 첫 모임 때 회의를 공개하자고 했다. 적어도 회의 결과는 밖에 알리자고 했다. 그런데 삼지모 내에서 이견이 있어 비공개로 하게 됐다. 첫 모임에서부터 조금 실망했다. 대국민 선언을 하면서 쓴소리 듣겠다고 했으면 그 무게에 걸맞게 무슨 얘기가 오갔는지, 어떤 조치들이 이뤄졌는지 공개할 필요가 있었다.

모임에서 오간 얘기는 어떤 내용들이었는지….

=나는 첫 모임 때 할 얘기는 거의 다 했다. 삼성은 앞으로 노조가 있는 상황을 전제로 경영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노조를 파트너로 삼아 새롭게 경영해야 하고, 무노조 경영 방침을 고쳐야 한다고 했다. 두 번째로 하청업체들을 짜내는 수탈 구조를 획기적으로 바꿀 것을 주장했다. 또 하나는 사회적 책임 부분이었다. 빌 게이츠나 워런 버핏처럼 진정한 사회적 책임 활동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조세 회피 수단으로 장학사업이나 문화사업을 해선 안 된다고 했다. 그런데 이번에 보니 투기를 위한 미술 사업을 했더구만. (웃음)

삼지모는 더 이상 존속될 이유 없어

김용철 변호사의 비자금 계좌 폭로 뒤에 있었던 11월 모임은 김 교수님 제안으로 이뤄졌다고 들었다.

=모임 간사를 맡고 있는 최열 환경재단 대표에게 한번 모여서 설명이라도 들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던 거다. 12월에 열릴 예정이었는데 너무 중대한 사안이 터졌으니 임시 모임이라도 열자고 제안해서 이뤄졌다. 삼성 쪽에서 이학수 부회장 등이 나왔는데, 비자금 문제는 삼지모가 꾸려지기 전의 과거지사라고 해명하더라.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검찰에 ‘떡값’을 갖다준 건 과거사였지만, 문제의 비자금 계좌는 그대로 유지되고 있었다. 현재진행형이었다. 삼성은 삼지모와 대화하면서도 계속 그런 비자금을 통해 국가기관을 매수하려는 시도를 한 거다. 이건 배신이다. (X파일 사태 뒤의) 대국민 선언은 여론무마용이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국민을 현혹, 우롱한 것이고 삼지모 멤버들을 우롱한 거라는 생각이 들더라. 삼지모는 무력화됐다. 삼지모 참여 당시 사회적 대타협을 위한 모티브를 모색해보고 테스트해볼 생각이었는데, 비자금 사태 뒤 그런 기대는 무망한 것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정대로라면 삼지모는 3월쯤에 열릴 수도 있을 텐데, 회의가 소집되면 어떻게 할 것인가?

=비자금 사건이 터진 이상 이런 형태의 삼지모는 더 이상 존속될 이유가 없다고 본다. 다른 형태로 하면 몰라도…. 어떤 형태로든 매듭은 지어야겠지. 11월 비공식 회의 이후, 삼지모 의견을 모아서 삼성에 전달하자고 얘기가 됐다. 시민단체처럼 성명서 내서 될 일은 아니어서 예의주시하고 있다. 삼지모의 본래 취지에 맞게 쓴소리와 제언을 해야 하고, 할 것이다.


△ 이학수 삼성 전략기획실장(가운데)이 2월14일 삼성 특검팀의 소환 조사를 받기 위해 특검 사무실로 들어서고 있다. (사진/ 한겨레 김명진 기자)

언제쯤?

=특검이 진행되고 있으니 그게 마무리되는 시점에 맞춰서 하는 게 맞지 않겠나. 4월쯤이 될 것 같다. 합의되면 삼지모 이름으로 삼성에 전달하고, 공표할 생각이다. 만약 합의가 안 되면 내가 삼지모 회원으로서, 또 사회적 대타협을 주장했던 경제학자로서 개인적인 입장이라도 표명할까 한다. 그렇게 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비자금 문제로 불거진 ‘삼성 문제’의 본질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2세(이재용 삼성전자 전무)에 대한 불법 승계 시도 과정에서 삼성이 국가 권력기관 인사들을 매수하려는 시도를 한 것이 본질이라고 본다. 승계 문제는 사기업 영역의 일이지만, 효과는 공적이고 중대하다. 일개 기업이 아니라 정치·행정·경제·사회·문화 곳곳에 강력한 영향을 끼치는 재벌기업의 경영과 관련돼 있기 때문이다. 국가기관 매수 시도 역시 공권력을 무력화하고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못하게 한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라고 본다.

참여연대 등이 노림수 갖고 있다?

크게 두 줄기로 정리한 삼성의 문제에 대해 삼성 내부의 인식은 어떻다고 보는가?

=11월 모임에서 경영권 승계 문제는 과거사라고 했다. 대국민 사과도 했고 사회에 8천억원을 헌납해서 다 끝난 일인데, 이제 와서 또 새삼 문제를 삼고 있다는 식이었다. 참여연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이런 데서 특정한 노림수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더라. 뭘 노리고 있다고 보느냐고 물었더니 ‘이건희, 이재용 부자가 삼성의 경영에서 손을 떼게 해 기아자동차처럼 국민기업으로 만들려고 한다’고 답하더라. ‘그렇게 하면 삼성은 망한다’는 거였다. 전문경영인이 맡으면 안 되냐고 했더니 ‘이건희 회장 없는 삼성은 생각할 수 없다’고 하더라. 그런 인식은 아마 삼성만이 아니라 국내 재벌들에서 공통적인 것 같다.

삼성에 전달하려는 쓴소리나 제언에는 어떤 내용을 담을 것인지.

=아직 준비한 게 없고 생각을 가다듬어야 한다. 우선, 불법적인 부분은 법적으로 해결하면 된다. 실정법상 이건희 회장에게도 법적 책임이 있으면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건 두말할 필요가 없다. 마찬가지로 모든 관련자들, 범법 행위에 대해선 법으로 처벌하면 된다. 그건 특검에서 철저히 시시비비를 가려서 해결할 일이다.

삼지모 멤버로서 기본 입장은 ‘삼성이란 기업은 살려야 한다’는 것이다. 삼성이 국민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막대하다. 생산 효과, 고용 효과, 브랜드 이미지를 통한 국가 이미지 제고 효과…. 그런데 삼성에는 양면이 있다. 엄청난 부가가치를 내는 혁신의 얼굴과 하청업체를 쥐어짜는 수탈의 얼굴이 있다. 혁신과 수탈의 두 얼굴이다. 또 삼성의 경영진은 뛰어난 기업가에 혁신적인 비즈니스맨인 동시에 국가기관을 매수하는 얼굴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수탈과 매수의 얼굴을 버려야 삼성도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하다고 본다. 중소 하청업체들을 수탈하고 국가기관을 매수하는 얼굴로는 글로벌 기업으로 거듭날 수 없다. 삼성의 임원 전체가 국민 앞에 석고대죄해야 한다. 진정한 반성이 필요하다.

삼지모는 삼성을 지켜보며 살리자는 모임이다. 삼성이란 기업을 살리는 관점이어야지, 기업 총수를 살리는 게 중심일 수 없다. 삼성을 살리는 관점에서 총수의 거취는 부차적인 종속변수다. 이학수 부회장을 비롯한 삼성 경영진은 총수만 지키려고 한다. 이건 심각한 문제다.

오히려 대타협의 계기가 될 수도

삼지모 활동 과정에서 느낀 한계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대타협에 대한 확신과 소신은 여전한가?

=삼성 비자금 사건이 오히려 대타협의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대타협은 생존의 위기에 몰렸을 때 이뤄질 수밖에 없다. 개별 기업으로서 삼성은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져 있다. 삼성이 살아남으려면 ‘야누스적 얼굴’의 한 부분을 잘라낸 다음에 타협을 해야 한다. 노조를 인정하고 진정한 의미의 독립적인 사외이사들을 영입하는 것 같은 지배구조 개선을 이루는 게 타협의 전제다. 지난번 X파일 사태 때처럼 돈 얼마 내놓고 형식적인 사과를 하는 걸로는 안 된다. 그 다음 2세 경영 문제에선, ‘혈족이라야만 된다’는 생각을 과감히 버려야 한다.

타협이라면 주고받는 것인데, 삼성이 얻는 것은 뭔가?

=살아남는 거지. 잘못하면 삼성, 죽을 수 있다. ‘엔론 사태’ 뒤 미국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눈여겨봐야 한다. 환골탈태의 각오로 석고대죄하지 않으면 타협이 아니라, 투쟁의 대상이 된다. 비자금 은폐를 시도하고 팩트(확인된 기본 사실)조차 부정하고, 증거를 인멸하는 태도로 가면서 여론을 호전시켜 모면해보려는 자세로 가면 타협을 이룰 수 없다.


‘삼성을 지켜보는 모임’이란

각계 인사 7명과 핵심 임원 참여, 활동 실적 별로 없는 편

‘삼성을 지켜보는 모임’(삼지모)은 삼성그룹이 ‘X파일’ 파문 뒤인 2006년 2월 대국민 사과를 할 때 외부의 쓴소리를 듣겠다고 한 데서 비롯된 모임이다.

그해 5월에 출범한 삼지모에는 각계 인사 8명이 참여했으며 지금은 7명으로 이뤄져 있다. 김형기 경북대 교수(좋은정책포럼 공동 대표), 방용석 전 노동부 장관, 신인령 전 이화여대 총장, 이정자 녹색미래 대표, 최열 환경재단 대표, 최학래 전 한겨레신문사 사장, 황지우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이 그들이다. 초창기에 참여했던 안병영 전 교육부 장관은 개인적인 이유로 중도에 그만뒀다.

삼지모는 출범하던 해 6월 첫 모임을 연 뒤 지금까지 분기별로 모두 여섯 차례 모임을 가졌다. 삼성 쪽에서는 이학수 부회장(전략기획실장)을 비롯해 전략기획실 핵심 임원과 계열사 사장 등 7~8명이 참여하고 있다. 이건희 회장을 빼곤 삼성의 핵심 인사들은 모두 망라돼 있다.

참여 인사들의 화려한 면면에 견줘 삼지모는 이렇다 하게 내세울 만한 활동 실적이 별로 없는 편이다.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 고백으로 불거진 비자금 사태 뒤에도 삼지모 차원의 명시적인 의견은 없었다. 들러리에 불과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의사결정권을 갖지 않는 비공식 기구라는 점에서 애초부터 어느 정도 예상된 바였다. 삼성그룹 전략기획실 관계자는 “그룹 쪽에선 외부의 목소리를 듣는 창구 구실로 생각했는데, 참여하는 인사들은 최고 의사결정 기구처럼 여긴 것 같다”며 양쪽 사이의 괴리감을 털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