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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표지이야기 > 표지이야기 기사목록 > 기사내용   2007년08월09일 제67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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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에 정원을 가꾸다

정의 내리기 위해서는 ‘느낌’이 더 필요한 단어… 생각을 키우고 의견을 나누고 교접하고 옮겨심다

▣ 김창준 애자일 컨설팅 대표


△  김창준 애자일 컨설팅 대표

누가 묻는다. “위키가 무엇인가요?” 가장 쉬운 답변은 기술적 정의이다. “누구나 내 글 남의 글 구분 없이 고칠 수 있고, 글 간의 하이퍼링크가 간편한 웹사이트입니다.” 하지만 저 기술적 설명을 듣고 위키에서 어떤 것들이 가능할지 상상하는 것은 어렵다.

위키의 정의가 어려운 이유는 위키가 여러 가지 얼굴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들을 보면 협동과 지식 조직화라는 두 가지 키워드로 크게 묶어볼 수 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 두 가지 면은 상보적이다. 협동과 지식 조직화라는 위키의 핵심 키워드를 말했지만, 역시 위키가 무엇이냐는 질문의 답에 효과적으로 도달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어렵지만 심오하고 강력하며 유용한 위키의 정의는 ‘위키의 느낌’에 대한 정의이다. 과연 ‘위키적’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위키는 보자기다, 덧대면서 성장한다

위키를 고안한 사람은 워드 커닝햄이라는 프로그래머이다. 나는 이분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다. 수년 전 그 보답의 의미로 작은 선물을 하나 드리기로 했다. 뭘 선물할까 고민 중에 고른 것이 우리나라의 전통 조각보였다. 이어령씨가 보자기에 대해 쓴 글을 인터넷에서 보고 선물에 넣어 보내는 편지에 일부를 인용, 영역해 보냈다. 내가 옮긴 설명을 요약하자면 ‘보자기는 가방과 달리, 싸는 물건에 따라 부피와 형태가 변하고, 싸는 내용과 용기가 일체가 되고, 싸다, 쓰다, 두르다 등 다양한 동사와 연결되는, 융통성과 다기능을 특징으로 하는 탈근대화의 발상이다’ 정도 되겠다. 그리고 이어 내 생각을 덧붙이기를, 이 조각보는 도구이자 예술품이며, 그 생성 과정이 여러 달에 걸쳐 서로 다른 모양과 색깔의 조각천을 조금씩 덧대고 이으면서 성장했고 종(終)적 모습이 처음부터 결정된 채 진행된 것이 아니고 과정 속에서 창발했는데, 이런 것들은 당신이 만든 위키와 통하는 점이 있다, 당신의 위키는 세상을 담을 수 있는 조각보다, 라는 이야기를 해줬다. 워드는 자신의 작업을 이해해줘서 고맙다고 답했다.

분명 위키의 느낌, 위키적이라는 게 있는 듯하다. 다음 단어 쌍 목록을 보면 좀더 감이 올지도 모르겠다.

모더니즘 : 포스트모더니즘, 창조론 : 진화론, 옳은가 : 유용한가/건강한가, 완벽/최선 : 더 잘, 수학적 : 생물학적/심리학적, 나무 : 뿌리, 만들다/건축하다 : 성장하다/창발하다, 둘 중 하나 : 둘 다, in-formation(정보) : trans-formation(변화)

나는 왼쪽 편에 있는 단어보다 오른쪽 편에 있는 단어에서 위키의 느낌이 우러난다. 위키의 맛이라고 할까? 경계를 긋기는 애매하지만 맛을 보면, 아 이건 어느 지방 음식 맛이 난다라고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그런 맛.

이렇게 구차하게 위키적인 것이 뭔지 설명하면 사람들은 반문한다. 아니, 간단하게 여러 사람이 쓰는 게시판이라고 설명하면 되지 왜 그렇게 돌아가세요? 위키를 설명하는 것의 본질적 어려움이 바로 여기에 있다. 위키 자체가 너무도 단순하다는 사실. 위키에는 오히려 부재하는 기능이 많다는 사실.

위키는 기술적으로 보면 퇴보에 가깝다. 너무 단순하다. 프로그램의 길이로 치면, 짧은 위키 엔진(위키를 사용하게 해주는 프로그램)은 4줄이면 된다. 웬만한 게시판 프로그램이 수천수만 줄을 넘는 사실을 생각하면 엄청난 차이다.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면 20분 만에 위키 엔진을 구현하는 동영상이 있을 정도다. 이러한 단순함 때문에 사람들이 위키에서 많은 것들을 보지 못하고 놓치는 경우가 있는 것 같다. 한마디로 위키는 일견 너무 시시해 보인다.

개인 위키, 냉장고 메모판, 사내 게시판

위키가 무엇인가를 설명할 때 어려움을 겪으면(예컨대 상대가 “에이 그게 다예요?”식으로 반응할 때) 내가 위키를 어떤 식으로 쓰는지 설명하는 것으로 대신하곤 한다. 여기에서는 대표적인 세 가지 경우를 들어보겠다.


△ (일러스트레이션/ 장광석)

우선 혼자 쓰는 위키가 있다. 혼자서 쓴다? 그게 위키 맞나? 하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위키 맞다. 전술했듯이, 위키에는 협동과 지식 조직화라는 두 축이 있다. 혼자서 쓰는 위키(개인 위키라고 한다)는 위키의 지식 조직화 기능을 쓰는 것이다. 사실, 좀 어거지같이 들릴지 모르지만 개인 위키에도 협동의 면은 있다. 통시적인 면에서의 협동인데, 쉽게 말해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가 어떻게 협동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해결해준다.

개인 위키는 내 사고의 도구 같은 것이다. 어떤 생각의 씨앗이 생기면 내 개인 위키라는 텃밭에 심고 조금씩 물도 주고 다른 식물이랑 교접도 하면서 키워나간다. 때로는 저장고가 되기도 한다. 친구의 주소를 찾고 싶으면 내 위키에서 그 친구의 이름으로 된 페이지를 들어가면 된다.

최근의 사용 예를 보자. 일본의 미라이공업에 대한 특별 방송을 TV에서 방영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미라이공업은 내가 예전부터 관심을 갖고 있었던 회사다. ‘독특한 회사’라는 위키 페이지를 가보면 미라이공업 같은 독특한 회사들의 목록이 있다. 맨 처음에는 아마 유한양행 하나로 시작을 했지 싶다. 점차 회사를 하나둘 추가해나가서 지금은 주켄공업, 사우스마운틴, 셈코, 뉴먼스오운 등 목록이 알차게 자라났다. 그 목록에서 ‘미라이공업’을 링크로 바꾼다. 그리고 ‘미라이공업’ 페이지로 이동한다. 거기에 방송 다시 보기 페이지 링크를 붙여넣는다. 주말에 시간이 되면 봐야지 하고 생각하면서.

미라이공업은 연간 140일이 넘는 휴가를 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내 ‘독특한 회사’ 페이지에는 내 위키 속의 ‘근로시간’이라는 페이지로 가는 링크가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2007년에 발표한 각국 연간 평균 근로시간 통계자료(참고로 우리나라가 일등이다)로 가는 링크가 붙어 있고, 생각의 단편들이 심어져 있다. 자라나고 있는 중이다. 독특한 회사와 근로시간, 노동 등의 페이지에 있는 글들은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잡종적으로 자라나고 있다. 외부에 옮겨 심을 정도로 울창해지면 블로그에 글을 한 편 써볼 생각이다.

다음은 아내와 함께 쓰는 부부 위키다. 일종의 냉장고 메모판 같은 용도로 위키를 쓴다. 냉장고 메모판보다 좋은 점은 기억 용량이 무한대고 검색도 되고 수정이 용이하다는 점이다. 아내가 괜찮은 유아용품을 인터넷 쇼핑몰에서 본 뒤 부부 위키의 ‘아기용품’ 페이지에 해당 링크를 붙여놓으면 나중에 내가 보고 아내와 이야기를 한다. 부부 위키는 그 자체로 대화 채널을 종결짓는 것이 아니고, 실생활의 대화를 촉발시키고 촉진하며 보조한다.

회사에서 직원과 위키를 사용한다. 이것은 경영학에서 말하는 지식 관리 도구가 된다. 우리가 어떤 회사랑 무슨 일을 했고 어떤 교훈을 얻었는지 등이 기록되어 있고, 우리는 이번주에 얼마나 일을 했고, 앞으로 어떤 계획을 갖고 있는지 등도 기록한다. 동호회 모임에서도 위키를 사용한다. 예컨대, 이번달에는 며칠에 만나는 것이 좋을지를 정하기 위해 이메일로 수십 번 왔다갔다 할 필요 없이 공동의 칠판(위키)에 각자 가능한 날짜에 자기 이름을 써넣으면 된다.

예상치 못한 만남, 행복한 사고

위키는 내 삶의 곳곳에 들어와 있다. 아니 내 삶은 위키라는 실로 짜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생활조차도 위키적으로 할 수 있다. 위키는 예상치 못했던 것들이 서로 만날 기회를 준다. 워드는 이를 ‘행복한 사고’(happy accident)라고 한다. 간학문적 사고를 장려한다. 개념들 간에도 행복한 사고가 있지만, 사람들 간에도 그런 게 있다. 덕분에 나는 예전에는 나 자신이 먼저 선을 그어서 만날 수 없었던 사람과 개념들을 만나게 되었다.

하지만 위키적인 삶이 쉽지만은 않다. 위키를 운영하면서 힘들었던 점은 나를 포함해서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것이었다. 근본적 어려움은 권위 없이 변화를 만들어야 하는 상황에서 출발한다. 위키는 기본적으로 모든 참가자들의 권한이 동일하다. 내가 고칠 수 있으면 상대도 고칠 수 있다. 독재자가 존재하지 않는다. 위키 시스템을 구부리지 않으면서 사람들을 강제하는 것은 어렵다. 눈에 드러나는 리더가 명령을 내리지 않으면서 스스로 그러하게 변화가 일어나게 할 수 있는가. 어려웠지만 그 과정에서 많은 것들을 배웠다.

이렇듯 내가 생각하는 위키적인 삶은 앞서 나열했던 대조 단어쌍 목록의 오른쪽 편에 가깝다. 나는 내 삶이 청사진대로 이뤄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대신 날마다 조금씩 키우고 다듬고 하는 정원 관리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교접도 하고, 옮겨 심기도 하고, 잡초도 뽑아야 한다. 게다가 그 정원에는 나 혼자만 정원사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고, 또 그 정원사들을 통제할 독재권이 나에게 있는 것도 아니다. 나는 이런 독특한 정원 관리 기법을 위키에서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