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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섹션 : 표지이야기 등록 2003.07.17(목) 제468호

[표지이야기] 진화하는 ‘모노가미’

일부일처제의 신화를 벗어난 대안적 결혼제도… 다양한 짝짓기 방식은 행복을 안겨줄 건가

‘떼사랑’이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유림들이 들으면 까무러칠 일이지만, 떼사랑은 ‘일대일 사랑’을 거부하는 전 세계적 흐름을 한글식으로 풀어본 개념이다. 오해하지 마시라. 같은 장소에서 여러 명이 한꺼번에 성관계를 가지는, 그룹성교를 뜻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떼사랑은 독점적인 일대일 관계를 주축으로 형성된 현재의 연애와 결혼제도(‘모노가미’로 불리는 일부일처제)에 대한 하나의 대안으로, 3명 이상이 평등하고 열린 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영어식 이름은 ‘폴리아모리’(polyamory). 모노가미(monogamy·일부일처제)나 폴리가미(polygamy·일부다처제) 모두 독점적 인간관계를 기본으로 하는 데 반해 폴리아모리를 추구하는 이들은 독점적 사랑을 거부한다. 그래서 이같은 경향을 ‘비독점적 다자연애’라는 다소 학술적인 개념으로 정리하는 이들도 있다.

떼사랑 나누며 독점적 사랑 거부?

폴리아모리에는 여러 종류가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3명의 파트너들이 느슨한 관계를 맺고 있는 ‘트라이어즈’(Triads), 한명을 중심으로 두명이 양옆에 붙어 있는 형태의 ‘비’(Vee), 3명의 파트너들이 서로서로 그물처럼 얽혀 있는 ‘트라이앵글’(Triangle), 3명 이상이 모여 집단을 이룬 뒤 섹스를 포함해 여러 가지 사랑을 나누는 하나의 그룹을 형성하는 ‘폴리피델리티’(Polyfidelity) 등이 그것이다.

유럽과 미국 등에서는 이같은 흐름을 공론화하는 흐름이 존재하고 있다. 인터넷 사이트를 운영하고 각자의 경험을 공개해 정보를 공유하기도 한다. 국내에서도 이같은 인간관계를 꿈꾸는 이들이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상태에서 자신들의 생각을 현실에서 실험해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결혼에 가해지는 각종 법적 부담과 사회적 압력을 주로 받는 이들이 이 흐름에 주로 관심을 보이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들은 성별과 나이에 따라 위계를 만들지 않고 평등한 관계를 이루려는 노력과 막힘없는 의사소통을 추구한다. 개인이 원할 때 언제든 즉시 탈퇴할 수 있는 자유도 보장한다.

폴리아모리를 주장하는 이들은 이 제도가 일부일처제의 유일한 대안이 아니며 그것보다 더 우월하다고도 말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 흐름에 동참한 적이 있는 김아무개(35)씨는 “정교한 것 같지만 허구에 불과한 일부일처제를 부여잡고 인간의 본성에 어긋나는 길을 가느니 평등한 인간관계 속에서 독점하지 않은 사랑을 하는 것이 백번 낫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내부에서부터 무너져내리고 있는 일부일처제의 신화는 대안적 결혼관계의 도래를 예고하고 있지만, 폴리아모리와 같은 급격한 변화가 이른 시일 안에 이뤄질 것이라고 믿는 이들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오히려 인류와 지구생명의 역사가 보여주는 다양한 짝짓기를 들여다보는 일이 유익할지 모른다. 여기에는 우리의 역사도 예외가 아니다.

국정교과서 역사책에는 나오지 않지만, 신라는 성생활이 유난히 자유로운 나라였다. 화랑들의 얘기를 다룬 <화랑세기>에 소상히 나타나 있는 신라의 성문화를 보면, 근친간에도 혼인을 했고 유부남·유부녀들끼리도 프리섹스를 즐겼다. 일부일처제를 강조하는 기독교적 윤리나 여성의 정절을 강조하는 조선시대 유교적 윤리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던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1500년 전인 신라의 성문화를 들여다보노라면 “혼인 형태는 그 사회가 이룩한 발전단계에 상응해 나타난다”는 영국의 인류학자 존 퍼거슨 맥리넌의 말은 진리에 속한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인류학에서는 교과서로 통하는 <결혼의 기혼>에서 인류의 결혼형태는 남녀 성비 불균형에서 비롯한 모계혈통 우선의 일처다부제에서 일부다처제로, 다시 일부일처제로 변모해왔다고 주장했다.

일부일처제만을 채택한 나라 많지 않아

이보다 더 여러 단계의 혼인 형태를 거쳤다는 주장도 있다. 즉, 인간사회는 완전한 난혼(전혼)에서 출발해 집단혼, 일처다부제, 일부다처제 등 15개의 과정을 거친 뒤에야 비로소 일부일처제에 도달했다는 견해다.

일부일처제의 역사적 기원에 대해서도 여러 주장이 있다. 과학적 사회주의자였던 엥겔스는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에서 사유재산과 일부일처제의 연관성에 주목했다. 남성이 여성의 성을 통제하면서 상속자를 보호하고 재산상 이익을 확보하기 위해 일부일처제가 필요했다는 것이다. 베블런은 <유한계급론>에서 “적에게서 전리품으로 여성을 약탈하는 행위가 소유권 혼인 형태를 낳았다”고 주장했다.

여러 이론들이 있지만, 한 가지 분명한 점은 일부일처제가 인간의 역사를 포함한 모든 생물의 역사에서 지배적인 짝짓기 방식이었던 적은 한번도 없었다는 사실이다. 이는 특히 일부일처제 옹호론자들의 최대의 적이라고 할 만한 인류학과 진화생물학이 발달하면서 끊임없이 입증되고 있다. 해부학·생리학·행동학 역시 같은 맥락에 위치해 있다.

인류학자 머독은 <사회구조>라는 고전에서 전 세계의 각기 다른 인간사회 238곳 가운데 일부일처제를 유일한 결혼제도로 강요하는 사회는 43곳(18.1%)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또 인류학자 포드와 심리학자 비치가 조사한 185곳의 인간사회 가운데 29곳(15.7%)의 사회만이 공식적으로 일부일처제를 채택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인류학자 미드 같은 이는 “일부일처제는 인간의 모든 혼인제도 가운데 가장 어려운 것”이라고 단언하기도 했다.

진화생물학의 발달은 특히 일부일처제의 입지를 줄여놓고 있다. 진화생물학계에서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종의 1~2%만이 일부일처제로 종족을 보존하고 있다고 결론내린 상태다. 일부일처제의 생물학적 토대가 놀라울 만큼 취약하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규명한 책인 <일부일처제의 신화>(데이비드 P. 버래쉬, 주디스 이브 립턴 지음)에 따르면, 특히 인간과 가장 비슷한 영장류의 경우 이전에는 일부일처제를 따른다고 알려져 있었지만 ‘유전자 지문분석’과 같은 최첨단의 연구방식으로 재검증한 결과 이들 종들도 대부분은 혼외 성관계를 통해 2세를 만들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는 것이다. 진화 생물학계에서 이들 종을 ‘겉치레형 일부일처형’라고 부르는 것은, 인간사회에 비춰봐도 상당히 시사적이다.

혼외 성관계의 확산은 결혼제도 변화 예고

‘중복 짝짓기’(multiple mating) 가 자연상태에서 일반적이라는 사실이라고 해서 동물들의 짝짓기와 인간의 결혼제도를 기계적으로 대비한다는 것은 몰상식한 일이다. 동물의 일부일처제는 생물학의 문제에 머무르지만, 인간의 일부일처제는 그것을 뛰어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20세기 말 급속도로 보편화하고 있는 한국의 혼외 성관계는 일부일처제의 질적 변화 가능성을 예고한다. 몇년 전 소설가 김원우씨는 장편소설 <모노가미의 새 얼굴>에서 이미 한국의 일부일처제가 ‘해로 타입’(같이 살다가 같이 죽는 부부), ‘파탄 타입’(사별하거나 이혼하는 부부), ‘중혼 타입’(겉으로는 결혼생활을 원만하게 유지하면서도 연인을 부부관계 밖에서 찾는 부부) 등 3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인류역사가 말해주는 진리는, 일부일처제가 바람직한 것일지는 몰라도 자연스러운(인간의 본성에 부합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렇지만 행복하고 충만한 일부일처제가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좋은 일부일처제 결혼은 타고나는 게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일부일처제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위한 도서 및 논문 목록]

· 일부일처제의 신화(데이비드 P. 버래쉬·주디스 이브 립턴 지음, 이한음 옮김, 해냄 펴냄)
· 현대사회의 성·사랑·에로티시즘(앤소니 기든스 지음, 배은경·황정미 옮김, 새물결 펴냄)
· 섹스의 역사(토머스 라커 지음, 이현정 옮김, 황금가지 펴냄)
· 나는 이혼하고 싶지 않다(다이앤 보로니·베티 켈리 지음, 최해정 옮김, 제삼기획 펴냄)
· 외도, 결혼제도의 그림자인가(김예속 지음, 형성사 펴냄)
· 변주혜, ‘부부의 성연구: 외도를 중심으로’(성신여대 대학원 석사논문, 2002)
· 남은주, ‘남녀의 외도원인에 관한 연구: 가부장적 가치관과 경험분석을 중심으로’(대구효성가톨릭대 석사논문, 1998)
· 가족은 없다(다이애너 기틴스 지음, 안호용 등 옮김, 일신사 펴냄)
· 나에게는 두 남자가 필요하다(마르티나 렐린 지음, 이용숙 옮김, 마음산책 펴냄)




김창석 기자 kim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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