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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버스토리 ] 2001년04월17일 제355호 

[표지이야기] 뒤틀린 역사는 진실을 원한다

일본이여, 우리의 ‘친일파 시대’는 끝났다…통렬한 반성으로 공존의 길을 찾아라



술 취해 행패부리는 자가 술 취했다고 하는 일 없고, 미쳐서 살인한 자가 미쳤다고 하는 일 없고, 흉기 들이대고 금품 훔친 강도가 도둑질했다고 하는 일 없는 법이다. 남의 나라를 강탈한 일본은 끝내 강도 근성을 버리지 못하고 ‘무조건 항복’한 패전 56년 만에 그 더러운 본성을 세계 앞에 드러냈다. 역사 교과서를 새빨간 거짓말로 기록한 그 행위는 일본이 얼마나 사기꾼의 나라이며, 얼마나 비양심이 극치를 이루고 있는 나라인지를 국제적으로 입증하는 것이다.

아무리 흉악한 강도라고 하더라도 제 자식만큼은 강도질하지 않고 바르고 훌륭하게 되기를 바라는 법이다. 그런데 일본은 거짓말투성이인 역사 교과서를 가지고 자라나는 새 세대의 아이들에게 다시 강도질을 가르치려 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 땅을 강탈하고 우리 민족을 억압·참살한 역사를 왜곡한 사실에 분노하기에 앞서 거짓된 교과서로 또 강도질을 배우며 올바르고 참되게 자라나지 못하게 된 일본의 새 생명들을 한없이 가엾고 불쌍하게 여긴다.

독일이 자유를 얻게 된 이유



일본은 들어라.

역사란 진실만을 먹고 사는 살아 있는 생물이다. 역사를 거짓으로 꾸미고 왜곡으로 치장한다고 해서 과거의 잘못과 악행이 가려지고 지워질 것 같은가. 그건 일순간의 치졸한 어리석음일 뿐 역사는 진실을 되살려내 영원으로 간다. 일찍이 세계의 역사가 그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과거는 현재의 아버지이고 미래는 현재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똑똑히 기억해야 한다. 남의 나라를 강탈하고 침략한 추악한 범죄의 과거를 지닌 일본이 세계 속에서 제대로 된 나라로 대접받는 길은 오직 하나밖에 없다. 그것은 과거의 잘못을 진정으로 사죄하고 통렬하게 반성하는 것이다. 세계2차대전 당시에 동맹국이었던 독일이 그 본보기를 잘 보여주었다. 그런데 일본은 그 모범을 본받지 않고 패전 이후 계속 간교한 망언만 일삼아오다가 마침내 교과서 왜곡이라는 새로운 범죄를 저지르고 나섰다.

당시 서독 총리 빌리 브란트는 유대인들과 세계를 향하여 무릎을 꿇으며 진정으로 사죄를 했다. 그 진실된 모습은 얼마나 인상적이고 아름답기까지 했던가. 그리고 그들은 패전의 초토화 속에서 나라를 재건하는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피해보상을 착실히 해나가는 동시에 해마다 사죄를 거듭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독일은 역사의 족쇄에서 풀려나는 자유를 얻게 되었고, 국제사회에서 오늘날의 떳떳함과 신뢰를 얻게 된 것이다.

독일이 실천한 그 진실 앞에서 유대인들은 비로소 ‘용서하지만 잊지는 않는다’는 민족적 동의를 세계인 앞에 내놓았다. 그 진정한 사죄와 관대한 용서는 인간이 피워낸 더없이 아름다운 화합의 꽃이었고, 인류의 미래를 밝히는 등불이었다. 우리 한국인들도 유대인들처럼 그렇게 용서할 아량과 너그러움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일본의 왕은 무릎 꿇어 사죄하기는커녕 역대 장관들 중에서 적지 않은 수가 한-일협정 이후 40년에 걸쳐서 망언들을 되풀이해 우리의 민족 감정만 자극했다. 그리고 과거사 문제가 정치적 걸림돌이 될 때면 교묘하고 애매한 단어들을 짜맞추어 그 위기를 모면하는 교활한 술수를 계속 부려왔다. 그리하여 우리로 하여금 ‘용서하지도 않고 잊지도 않는다’는 민족적 동의에 이르게 만들었고, 마침내 역사 교과서를 왜곡함으로써 한국인들은 가슴가슴마다에 그 동의를 깊이 아로새기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끝없는 망언에서 새 역사 교과서까지


사진/한-일협정 이후 40년 동안 망언을 되풀이해온 일본. 무라야마 전 총리의 사과는 공염불이었다.(GAMMA)


일본은 들어라.

한반도의 역사가 어떤지 아는가. 이 땅의 역사 5천년에 걸쳐서 외침을 1천번 넘게 받아왔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오늘까지 꿋꿋하고 굳세게 살아오고 있다. 그 줄기찬 민족혼과 끈질긴 생명력을 한데 모아 이번 기회에 이성적 분노와 논리적 증오로 양날이 된 칼을 갈아 일본의 심장을 겨눌 것이다. 우리가 이번 역사 교과서 왜곡으로 전 민족적으로 분노하고 증오의 불길을 태워올리는 것을 일시적 흥분이나 한순간의 물거품 같은 것이라고 가볍게 생각하려 했다가는 큰코다칠 것이다. 지금의 한국은 친일파들이 대통령이며 국무총리, 국회의장을 해먹었던 30년 전이 아니다. 그리고 그 시대에 사회 각 분야를 장악하고 있던 친일파 족속들은 그동안 거의 다 죽어 사라졌다. 이제 사회 중추세력이, 처절한 고난의 민족사에 대해서 이성적 분노와 논리적 증오로 무장된 의식의 세대로 탈바꿈했다는 사실을 일본은 잊지 말아야 한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한국의 30대부터 60대까지는 4·19로 이승만 독재를 무너뜨렸고, 온갖 고문을 무릅쓰며 끈질긴 투쟁을 벌여 박정희 유신독재를 자멸케 했으며, 분신까지 불사해가며 10년 동안의 피어린 투쟁으로 전두환·노태우 군사독재를 물리치는 승리의 역사체험을 가진 동시에 역사의 진실을 부활시킨 힘을 가진 세대들이라는 사실이다.

그들은 일본이 우리 민족한테 저지른 만행이 무엇이며, 우리가 입은 피해와 고통이 무엇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이번 역사 교과서 왜곡을 계기로 그 세력들은 일제의 식민지 역사를 다시금 상기하고 곱씹으면서 길고 끈질긴 싸움을 벌이게 될 것이다.

일본은 식민지 지배 36년에 걸쳐서 한국인들을 600만명 이상 죽였다. 불령선인이라고 해서 총쏘아 죽이고, 전쟁터에 끌어가 죽이고, 노무자로 끌어가 생매장해 죽이고, 불태워 죽이고, 정신대로 끌어가 실컷 능욕하고 나서 죽였다. 그뿐만 아니라 쌀을 위시한 농산물, 금을 위시한 광산물, 원시림을 위시한 임산물, 도미를 위시한 해산물까지 36년 동안 줄기차게 약탈해 한반도땅을 황폐화시키는 동시에 한국인의 절대다수를 굶주림에 허덕이게 만들었다. 그리고 한일병탄이 있기 10여년 전부터 자행된 문화재 약탈과 도굴 행위는 패전의 그날까지 계속되었다.

이런 엄연한 역사범죄를 교과서 왜곡으로 덮으려 하다니. 그건 양심이 털끝만치도 없는 파렴치함이며, 스스로의 눈을 찌르는 어리석음이며, 세계 속에서 고립을 자초해 자멸의 무덤을 파는 짓이다.

일본은 한국에 대해서만 그따위 짓을 한 것이 아니다. 몇년 전에, 일본을 대표하는 지성파 정치인이라는 이시하라 신타로는 ‘난징대학살이란 있지도 않은 것을 중국이 조작한 것’이라는 말을 공개적으로 했다. 40여만명을 장작더미 쌓듯 차곡차곡 쌓아 살육한 사진 증거만이 아니라 수없이 많은 목격자들이 있는데도 그런 발언을 거침없이 하는 이시하라 신타로의 용맹이 가상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가 한때나마 소설가였다는 사실이 사람을 더욱 슬프게 만들었다. 그런데 그 다음에 더욱 놀란 것은 그가 일본 최고의 도시이며, 국민의 지적 수준도 제일 높다는 도쿄도 지사로 당선된 사실이었다. 그때 절망감 속에서 일본인들을 다시 보게 되었다. 그런데, 오늘의 역사 교과서 왜곡은 그런 자를 지사로 뽑은 일본인들의 의식에 뿌리를 내리고 있음을 다시 확인한다.

너희가 80년대의 정신을 아느냐


사진/민주당 김영진 의원이 일본 국회의사당 정문앞에서 ‘일본은 반성하라’고 쓴 피켓을 앞세우고 농성을 벌이고 있다.(연합)


일본은, ‘너희 내부의 친일파도 척결하지 못한 주제에 무슨 말이 많으냐’고 우리를 야유하고 비웃을지도 모른다. 또, 일본이 역사 교과서를 서슴없이 왜곡하는 것도 어느 부분 한국 내의 친일파들을 믿고 한 짓일 수도 있다.

우리는 해방과 더불어 완전히 척결했어야 할 친일파들을 단 한명도 처벌하지 못한 채 국가사회 모든 분야에서 그들이 날뛰게 한 사실을 부인하지도 않고 외면하지도 않는다. 그건 분명 우리 민족 성원 모두를 불행하게 만든 비극이었고 비통한 역사 현실이었다. 그러나 그 사태는 우리의 무능이나 무책임으로 인해 벌어진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미국이 저지른 작태였다.

패전 일본을 점령한 미국이 일본의 대부분의 전범들을 냉전시대의 반공 앞잡이로 써먹기 위해 무죄로 풀어놓아주었듯이 미군정은 한국에서도 똑같은 정책을 폈다. 그래서 각종 친일파들은 친미파로 둔갑하여 반공투사가 되는 동시에 모든 분야에서 실권을 장악했다. 그 반역사적 상황 속에서 친일파 척결을 내세우면 바로 빨갱이로 몰려 생사가 오락가락하는 판이었다. 이승만 정권은 그 토대 위에서 탄생했고, 6·25가 터지면서 반공의 탈을 쓴 친일파들의 세력은 더욱더 확고부동하게 되었다. 그런데 4·19로 역사청산의 기회가 오는가 했는데 5·16쿠데타로 박정희 시대가 열리면서 친일파들의 득세는 꽃이 만발하듯 해버렸다. 일본 만군 출신 박정희를 둘러싸고 친일파들은 권력의 향연을 맘껏 즐겼으며, 박정희 독재 앞에서 친일파 척결을 내세우는 건 여전히 생사의 갈림길에 서는 것이었다. 이 엄혹한 상황의 연속을 직시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살인적인 정치상황을 빙자하여 우리의 책임을 회피하려 하거나 우리의 의무를 유기하려 하지 않는다.

일본은 들어라.

우리에게는 1980년대라는 시대가 있었다. 그 시대는 단순히 군사독재 타도의 시대만이 아니었다. 통일운동의 대중화 시대였고, 노동운동의 승리의 시대였으며, 전통문화 복원의 시대였다. 그러나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역사 진실의 부활의 시대였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80년대는 한국사회의 모든 문제점들을 총체적으로 해결해나간 혁명의 시대였다.

당시, 오늘의 군사독재의 근원은 무엇이며, 사회의 제반 모순들은 어디서 비롯되고 있는가 하는 문제제기와 함께 역사 파헤치기는 시작되었다. 그 역사 진실의 부활에 따라 미 문화원은 불타올랐던 것이고, 친일파 척결의 문제는 새롭게 대두하면서 대중 파급을 이루게 되었다. 현 시점에서, 해방 이후 한국 현대사가 수없이 많은 모순 속에서 꼬이고 비틀린 원인이 친일파들을 일소하지 못한 데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한국사람들은 하나도 없다. 그 대중 인식 위에서 30권이 넘을 ‘친일파 인명사전’(가칭) 자료가 완비되었고, 곧 30억원가량의 출판비를 민간차원에서 모금하는 운동이 전개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역사가 진실만을 먹고 사는 생물이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다.

양심적 일본인에게 손을 내민다


사진/시민단체들의 연대투쟁이 본격화되고 있다. 일본 교과서 역사왜곡을 반대하는 서명 캠페인.(박승화 기자)


또 일본은, 한국사람들이 일시적으로 왁자하게 떠들다가 이내 잠잠해지는 ‘냄비 근성’을 가졌으니 염려할 것 없다고 자위하지 말라. 앞에서 잠깐 언급했듯이 친일파들의 시대는 이미 끝났고 이젠 역사의 책무를 스스로 떠맡고자 하는 새 세대들의 시대가 되었다. 80년대를 거치면서 한국에는 크고 작은 시민단체와 사회단체들이 탄생해 지금 2만여개에 이르고 있다. 그 단체의 성원들은 80년대의 투쟁의식과 책임의식으로 무장해 있다.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은 그들로 하여금 일시에 연대하고 단결해 장기적인 총력투쟁을 전개하게 만들 것이다.

우리는 일본에도 양심적인 사람들과 정의로운 시민·사회단체가 적잖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우리는 언제든지 그들과 우의의 손을 잡을 것이다. 아직도 때는 늦지 않았다. 일본은 과거사를 진정으로 사죄하고, 왜곡된 역사 교과서를 다시 올바르게 써라. 그 길만이 일본이 세계 속에서 떳떳이 사는 길이며, 한국과도 좋은 이웃이 되는 길이다.

조정래/ 소설가

조정래(58)

대하소설 <태백산맥>을 시작으로, <아리랑> <한강>의 3부작 장편소설을 썼다.
이념 대립 속에서 벌어지는 인간 군상의 이야기를 그린 <태백산맥>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소설가로 올라섰고, 그에 앞선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대하소설 <아리랑>에서는 훼절한 친일 지식인들의 반민족적인 행위와 가혹한 일제 식민지배의 참상을 고발했다. <아리랑>은 특히 한민족에게 가장 서럽고 장렬했던 시기인 일제시대의 고난과 싸움을 생생하게 그리면서 상처입은 한국의 근현대사를 관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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