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섹션 : 유럽, 러시아 등록 2001.08.06(월) 16:29

[서진석의폴란드살이] 폴란드에서 영화를 보려면

폴란드어로 배우는 한국인의 폴란드살이⑨ - idziesz do kina? (이제시 도 키나? 극장 안갈래?)

폴란드 영화는 아주 세계적인 수준이다(우리나라에서 그만큼 세계적인 수준인 것이 있는지 찾아보자). 폴란드에서 배출한 세계적인 영화감독은 여기서 구구절절히 나열하기 않아도 되리라 믿는다. 헐리우드 영화와 다른, 그리고 유럽의 향기를 지켜나가는 폴란드 영화들은 전세계 영화광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키에슬롭스키 사후 폴란드에도 헐리우드 영화처럼 액션과 스릴을 가미한 흥행위주의 영화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지만, 그에 못지않게 폴란드의 문학작품을 바탕으로한 영화들과 새로운 작품들이 많이 제작되어 많은 성공을 거두고 있다. 애석하게도 키에슬롭스키 같은 깊은 사색과 철학적 배경이 있는 영화들은 사실 보기 힘들어졌다. 문학작품을 바탕으로 한 영화들도 사실은 이전에 영화화된 것들을 다시 제작한 것들이 많다. 그래서 참신성은 많이 떨어지지만, 그동안 발전한 영화적 기술을 바탕으로 더 훌륭하고 아름다운 영화로 탈바꿈해 성공을 많이 거두고 있다.

[사진설명]폴란드 최신 개봉작 "사막과 초원에서"의 포스터, '쿠오 바디스'로 유명한 헨리크 시엔키에비츠가 지은 동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두번째 영화화된 작품이다.

폴란드 영화들과 마찬가지로 폴란드의 극장사업 역시 전환기를 겪고 있다. 최근 1-2년간 대도시 극장계에는 물갈이가 진행 중이다. 불과 십 수 개월만에 수도 바르샤바에만도 상영관 5개 이상의 대형극장이 6개나 생겼다. 상영관 한 두개로 영화를 상영하던 극장은 이제 2류극장으로 전락해버리고, 최신시설과 현대식 기기를 갖춘 대형극장은 마치 햄버거집이 분점 늘이듯 대도시 곳곳에 퍼지고 있다. 기존 극장들도 사태의 심각성을 느끼고 극장을 확장하는 등, 극장간의 경쟁이 아주 매몰차다.

도시인구와 폴란드인들의 근무조건을 볼 때, 이런 극장들의 번성이 과연 얼마나 이익을 거둘 수 있을지 우려감이 생길 정도이다. 폴란드의 극장은 관객이 한 프로당 5명 이하이면, 상영을 하지 않고 관객을 '내어쫓는' 규율이 있곤 했는데, 이제 버젓이 혼자서 큰 극장을 차지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요즘 들어 대도시의 극장은 백화점이나 대형쇼핑가에 형성되는 경우가 많아, 특별히 마케팅에 신경 쓰지 않아도 평일에도 관객들은 항상 들어차기 마련, 그러나 대도시 중심가 '황금자리'에 자리를 잡은, 스크린과 매점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영화관은 사정이 좀 다르다. 영화 외에도 주변 볼거리에 재미를 느낀 관객들은 중심가에서 떨어진 영화관에서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아졌고, 중심가의 범위도 계속 확장되어가고 있는 중이라. 기존 극장들은 관객이 거의 없는 채 상영을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래서 요즘 잘 나가는 PC방을 겸업하거나, 관객 두 명이 오면 표를 한 장 공짜로 주던가, 자주 볼 수 없는 비헐리우드권 영화들을 상영하던가 하는 마케팅으로 손님을 끌어모으고 있는 실정이다. 그리고 현재 극장 외 다른 분야에도 많이 문제가 되고 있는 실정이지만, 폴란드에서 돈을 긁어모으고 있는 대형극장들은 전부 소유권이 외국에 있는 것이 많다.

영화관의 영화는 그런대로 한국인들의 시간을 보내며 즐길 수 있는 상황이 된다. 영어만 제대로 알아들을 수 있다면, 훌륭한 환경에서 영화를 즐길 수 있다. 그러나 텔레비전은 사정이 다르다. 텔레비전에서 상영되는 영화와 TV시리즈물은 전부 '원어'로 방송되는데, 성우 한사람이 모든 배우의 대사를 단조로운 목소리로 읽어가면서 내용을 전달한다. 과거 우리나라 변사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되는데, 다른 점은, 변사는 각자 배역에 따라 목소리를 약간 변형하기도 하고, 또 감정도 같이 넣어서 극적인 장면을 더 연출하곤 했지만, 여긴 그게 아니다. 마치 국어책을 읽듯 모든 배역의 대사를 읽어내리고, 영화를 보다보면 이것이 어느 배우의 대사인지 알아들을 수 없는 경우도 있다. 두 사람이 빠르게 주고 받는 대사는 그냥 침묵으로 일관. 원어라도 들어야지 작정하고 TV를 켜면 원어는 그 단조로운 '변사'의 소리에 뭍혀 전혀 들리지가 않는다.

비디오 테이프의 경우도 마찬가지. 단조로운 목소리의 성우가 읽어내려가는 비디오 역시 외국인들이 주말을 한가롭게 보내는데 아무 도움을 못준다. 바르샤바에 있는 한국 비디오 대여점. 그곳에서 한국영화와 한국산 외국영화들을 대여할 수 있는데, 한국 사람 외에도 영어권 손님들이 아주 많다. 한국비디오는 자막이 나와 원어를 알아듣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기 때문에, 한국비디오대여점은 외국인 사이에서도 인기이다. 게다가 한국엔 개봉일자가 빨라서 현재 바르샤바에서 개봉중인 영화를 비디오로 볼 수가 있기도 하고...

그렇다고 폴란드의 더빙실력이 형편 없거나 그런 것은 아니다. 만화영화나 가족영화들은 극장에서도 보통 더빙되어 상영된다. 어린아이를 둔 외국인들은 어린이영화들은 거의 폴란드어 더빙으로 상영되어 울상을 짓곤 한다. 아이들이야 그림만 보아도 좋다니 상관 없지만,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는 어른들은 곤욕이 아닐 수 없다. 극장에서 상영되는 가족영화의 더빙수준은 아주 좋다. 게다가 폴란드의 영화음향기술도 과히 세계적이니, 더빙기술이 형편 없어서라는 말은 일리가 없다.

폴란드를 제외한 다른 동유럽국가들이나 러시아의 경우, 원어 위에 대사를 읽어가듯 하는 경우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남녀가 배역을 번갈아가면서 약간의 감정을 섞어서 연기하듯 하는게 보통이다. 그런 면에서 폴란드는 좀 심한 편이다.

그래야 하는 이유는...정작 폴란드 사람들은 그게 더 좋다는걸 어쩌랴. 그렇게 TV영화를 보는 나도, 사실 그 나름대로 멋이 있어 보이기도 한다.

바르샤바 = 하니리포터 서진석 기자 http://my.netian.com/~perkunas

http://www.hani.co.kr/section-014007501/2001/08/01400750120010806162901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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