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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러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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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어로 배우는 한국인의 폴란드살이③

Slucham (스우함, 원래는 L자에 빗금이 있는 형태. 상점이나 서비스가 이루어지는 곳이라면 가장 많이 들을 수 있는 말 중 하나로, 직역하자면 '난 듣고 있어요.' 그러나 일반적으로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어떻게 오셨어요?'의 의미로 쓰인다.)

폴란드에 오면 일단 육감을 믿어야 한다. 뭔가 이상하면 그곳엔 확실히 무언가 있고, 뭔가 안되는 일이 일어난다. 폴란드에서 조금만 살다보면 그런 능력을 받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일단 은행에 갔을 때나 극장이나 기차역에 가서 표를 살 때, 누군가 일하는 사람은 있는데 사람은 없다 라는 생각이 들면, 가지 않는 것이 좋다. 분명 왜 왔냐는 투로 이상한 눈총을 줄게 뻔하니까. 줄이 짧다는 것에 너무 많은 의미를 두면 안된다. 다른 줄보다 사람이 없는 줄이 있다는 것은 퇴근시간에 밝은 폴란드 직원의 퇴근시간이 가까와오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단 긴 줄에 가서 서야한다. 말 많고 따지기 좋아하는 폴란드인들답게 줄이 줄어드는 시간도 아주 길 때가 있다. 마침내 차례가 되어 그놈의 스우함 소리를 듣는게 그리 반가울 수가 없을 때가 많다.

사회주의 시절 동유럽은 한때 물건 없는 상점, 그리고 끝이 없는 긴 줄 등으로 한국인들의 인상에 많이 남아있었다. 실제로 10년 전만 해도 그런 끝도 없는 긴 줄을 서서 물건을 사는 것은 아주 예사였다. 심지어 퇴근길에 끝이 어딘지 모르는 긴 줄을 만나면 일단 그 줄엔 서야한다. 일반적으로 사기 힘든 것을 파는 것이 분명하므로 일단 줄을 서고 본다. 몇 시간동안의 힘든 줄서기에도 불구하고 물건이 팔리면, 사람들은 자기가 무엇을 가려고 기다렸는지도 모르고 그냥 집으로 돌아간다.. 그런 '전통'과 '역사'에 사람들이 익숙해져 있는 것일까? 사람들은 그래서 아직도 줄서기를 좋아하고, 여기저기 긴 행렬이 보이는 것일까?

답부터 이야기하면, 폴란드 사람들도 줄서기를 정말 싫어한다. 버스나 지하철에서 줄서는 사람을 보는 것은 정말 힘들고, 어디 가서고 줄이 긴 자리에 가면 폴란드 사람들도 (다른 한국사람들이 폴란드어를 못 알아들어서 그렇지) 이를 갈며 짜증을 내긴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사회주의의 잔재 때문이라고 하는 것도 무리가 있다. 문제는 줄서기 뿐이 아니다.

폴란드에서 사업을 하시는 ㄱ 씨, 이런 저런 사연으로 한 관공서에 증명서를 떼러 갔다. 창구엔 사람이 하나 밖에 없다. 그래서 냉큼 그 줄에 선다. 그러자 들리는 소리.

"이봐요! 밖에 나가서 기다려요!.창구엔 한사람 밖에 못들어오는 것 몰라욧?"

무슨 말인지는 모르지만, 폴란드 여자가 눈을 세모 나게 뜨고 하는 소리가 기분 나쁘다. 그래서 일단 나가고 본다.

마침내 안에 있던 사람이 나온다. 언제 들어가나 꾸물대고 있던 ㄱ 씨, 그러는 사이 뒤에 서있던 폴란드 사람이 들어가서 일을 보기 시작한다. 그제서야 아, 앞사람이 나오면 들어가면 되는구나 하고 이마를 친다. 그 사람이 나오자 이제 용기를 내어 들어간다.

"스우함, 뭐하러 오셨어요."

이것 저것 용지를 건네주면서 친절하게 자비를 베풀어달라고 눈으로 애원하는 ㄱ 씨. 무정한 폴란드 직원은 지리에 생소한 ㄱ씨를 여기저기로 보내 이거 내라 저거 지불해라 말하고는 일을 끝낸다. 그 직원의 근무시간은 세 시면 끝난다. 그 사람이 시키는 일을 다 하면 정말 시간에 대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그날은 할 수 없이 집에 돌아가야 한다.

이런 상황을 단순히 공산주의의 잔재라고 보기는 무리가 있다면, 역시 돈에 문제가 있는 것일까? 아니라고 말할 순 없다. 자신이 받는 수당에 비해 자신이 해야하는 일은 너무 많다. 돈이 왔다가는 하는 장소건 어디건 직원을 충분히 고용하고 있는 곳은 그리 많지 않아, 오는 사람만 관리하기에도 여력이 없어, 손님의 넥타이가 예쁜지 어떤지 그런 일에 신경을 써주면서 일할 여건이 없다.

그리고 일처리 가능시간이 너무 짧고 장소가 부족한 것도 이유가 되긴 한다. 관공서나 교육기관의 특수업무를 맡고 있는 곳일 경우 근무시간이 오후 3시를 넘기는 경우가 드물고, 그나마 매일 여는 경우도 없다.

폴란드 대학교의 경우 줄서기가 그 상상을 초월한다. 우리나라 같이 교수들이 각자 연구실이 있어서 학생들을 수시로 만날 수 있는 상황이 안된다. 교수의 직위가 어떻건 중요성이 어떻건 일주일에 한번 정해진 한시간동안만 정해진 곳에서만 학생들을 받는다. 우리나라 같이 전산화된 일처리가 보급화된 것도 아니므로, 여러 교수들을 직접 만나 도장을 수 백만 번 받아야하는 학생들의 고역을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게다가 교수가 개인사정으로 그 시간에 오지 못하는 경우엔.............

다른 곳도 상황은 별 다를 바가 없다. 맡은 일이 끝나도 남은 일을 처리할 수 있는 곳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라서 자기 자리에 머물러서 일을 처리해야한다. 그러니 뒤에 서있는 고객들에게서 오해를 사는 것도 당연하고, 자기 일에 바쁜 와중에 고객들의 서비스를 책임지는 것은 수퍼맨이 아닌 이상 힘들다. 우리나라와 달리 한 사람이 여러 가지의 일을 책임지고 있는 경우도 많으며, 특히 직원수가 턱없이 부족한 관공서나 교육기관의 경우 혼자서 처리해야하는 인원수는 엄청나다. 그런 상황에선 공자님이 일을 하더라도 상황은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여러 가지 상황이 잘 받쳐주는 일자리의 직원들은 우리나라의 서비스와 그다지 차이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좋다. 단지 돈 잘 버는 상급근무자의 경우만 그런 것이 아니다.

바르샤바에서 한참 뜨고 있는 쇼핑센터에 친구와 함께 커피를 마시러간 본인은 폴란드 친구에게서 한가지 질문을 받았다

" 우리나라가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가 된 후 가장 달라진게 뭔지 아니?"

나는 그냥 묵묵무답 가만히 있는다.

"저기 일하는 미화원 아저씨를 좀 보란 말야. 10년 전만 해도 그냥 두어 시간에 한번 와서 쓰레기통이나 비워가면 끝이었는데, 지금은 바닥에 먼지라도 떨어지랴 수시로 쓸고 닦고 하고 있거든."

동유럽의 상징처럼 되어버린 불친절과 불편함, 아마 이런 것도 사라지면 보지 못하는, 나중엔 정말 그리워하는 것이 되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바르샤바 = 하니리포터 서진석 기자 http://my.netian.com/~perkunas

편집시각 2001년06월07일17시34분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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