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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없는 설움 '없는' 네덜란드의 주택정책

"올 가을 사상 최대의 전세 파동!", 올 가을에도 집 없는 서민들의 가슴을 졸이게 만들 일이 벌어질까? 주택 보급율이 100%에 이른다는 오늘날도 세입자들은 늘 전월세 값 파동 속에서 가슴 졸이며 살고 있다.

그래서인지 필자는 네덜란드의 축구 수준보다 임대제도가 더 부럽다. 세입자는 평생 임대주택에 살아도 집 없는 사람의 설움이라는 것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한번 임대주택에 집을 얻으면 자기가 떠날 때까지 머물 수 있기 때문이다. 보통 보증금은 없고, 저소득층 서민들을 위해서 월세 보조금까지 주는 네덜란드의 제도를 보고, 어떻게 해서 이렇게 다른 제도가 발전할 수 있었는지 처음에는 이해가 잘 안되었다.

[사진설명] (위사진들)임대주택건설사 100년의 변천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네덜란드 임대주택/ (맨아래)민주노동당의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 운동, 한국은 100년 늦었다.

필자가 살고 있는 집은 방 세 개에 거실과 주방 샤워실과 화장실, 베란다에 지하실까지 딸린 연립주택 2층의 27평 임대주택이다. 전세제도가 없는 나라다 보니, 월세를 얻어 살고 있는데, 보증금 없이 매달 30만원의 월세에, 12만원 정도의 정부의 월세보조금을 받는다. 아내가 시청에 임대주택을 신청하고 2년 동안 기다려 얻은 집 치곤 과분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집 구하기가 힘든 대도시를 제외하고는 이 정도 수준의 임대주택은 이 나라에서는 보통 크기로 여겨진다.

다른 나라들의 주택임대제도와 비교해볼 때 한국의 전세제도는 상당히 특이하다. 집주인은 수단만 좋으면 전세보증금을 굴려서 돈놀이를 하던가, 주식투자를 하던가, 고 이율의 금융상품에 투자해서 매달 받는 월세보다 높은 수입을 올릴 수 있는 장점이 있어서 이런 제도를 선호했는지 모르겠지만, 세든 사람의 입장에서는 기한이 끝나도 집주인이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으면 꼼짝없이 그 집에 묶여 있어야 하고, 집주인이 사업에 망해 집을 처분해서 빚잔치를 하는 경우 전세금을 날릴 수 있는 위험부담도 있다.

그러나 전세를 선호하는 세입자들도 있다. 집주인만 믿음직하면 세입자는 처음에 보증금을 내면 2년 동안은 돈을 더 낼 필요가 없기 때문에 걱정을 덜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큰 문제는 주택 경기가 변할 때마다 세입자들은 너무 올라간 보증금을 구하지 못해 이삿짐을 싸야 하는 것이다.

네덜란드에 처음 와서 아래층에 사는 할머니가 임대주택에서 50년 동안 살았다는 얘기를 듣고 필자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네덜란드에서는 집이 헐리거나 직장을 옮겨서 이사해야 하는 경우가 아니면 세입자는 영영 그 집에 살 권리를 가진다. 한국의 대도시에서 재개발 사업이 있을 때마다 지역의 세입자들이 요구하는 영구임대주택이 네덜란드에서는 백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전 가구의 40%가 임대주택에 살면서도 내 집 없는 설움을 느끼기는커녕, 싼 데다가 저소득층에 임대료 보조금까지 주고, 웬만한 집수리와 관리를 맡아서 해주는 임대주택에서 평생을 사는 사람이 많은 게 실정이다.

네덜란드의 제도는 복지제도가 잘 발전된 유럽에서도 모범으로 꼽힌다. 그리고 그 제도의 핵은 주택조합(Woningcorporaties)이다. 주택조합은 대규모 임대주택을 지어 임대료를 받고 보고와 관리를 맡는 기업인데, 일반 기업과 달리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살만한 주택을 싼 값에 유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공기업적인 성격을 지닌다. 네덜란드에는 전국적으로 약 6백여 개의 주택조합이 전체 주택의 40%에 이르는 2백 5십만 주택을 관리하고 있다.

주택조합은 신규주택의 건설과 관리, 낡은 주택의 철거와 재개발 같은 모든 사업을 자치정부와 협의해서 진행한다. 한국에서는 재개발조합이 낙후지역의 철거와 재개발을 맡아 분양을 하고 나면 해체되고 아파트 관리비를 받고 유지만 하는 관리사무소가 그 유지기능을 맡는다. 그리고 주택의 매매와 임대는 거주주민의 자유에 맡기고 있다.

이에 반해 네덜란드에서는 재개발 사업을 할 때도 임대주택을 많이 짓고 새로 지은 임대주택은 주택조합이 임대도 맡아 집주인 역할을 한다.

네덜란드에서 값싸고 쓸만한 집을 얻으려면 자치 단체에 임대주택 신청을 해야 한다. 그러면 임대주택 신청자 명단에 오르게 된다. 보통 학생들은 여럿이서 침실 하나씩에 주방과 화장실, 욕실을 함께 쓰는 학생주택에서 사는데, 그 때부터 미래를 대비해 임대주택 신청자 명단에 자기 이름을 올려둔다.

이들은 매년 회비를 내고 순위가 올라가길 기다린다. 살만한 집을 구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지역마다 다른데, 암스테르담 같은 대도시에서는 집 구하기가 하늘에 별 따기라서 대부분 2~3년을 기다려 시 외곽에 집을 구하고, 중소도시에서는 2년 정도면 집을 구할 수 있다. 해외에서 이주해온 외국인이나 이혼 등으로 당장 집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서는 주택조합이 따로 여분의 주택을 준비해 두고 있다.

방을 얻으면 직장을 옮기거나 집을 늘려 이사가기 전에는 이사할 일이 없고, 만약 얻은 집이 너무 비싸다고 생각되면 시청에 임대료조정을 요청할 수 있다.

네덜란드에는 집의 가치를 점수로 매긴다. 방은 면적을 따져서 15평방미터면 15점을 주고, 20평방미터면 20점을 준다. 주방도 마찬가지로 평방 미터마다 1점씩 주고, 화장실은 3점, 샤워시설은 4점, 욕조는 6점방 이런 식으로 시설에 따라 점수를 매기는 것이다.

그렇게 합산해보니 내가 사는 집은 107점이었다. 정부는 이 점수마다 임대료 상한선을 정한다. 107점이면 최고 53만원까지 임대료를 받을 수 있는데, 주택조합 30만원만 받도록 가격을 책정했다.

이렇게 차이가 나는 것은 주택조합은 이윤을 많이 내는 것보다 싼 집을 보급하는데 목적이 있기 때문이고, 내가 사는 집이 50년이 넘은 오래된 집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국에서는 50년이 넘은 아파트를 떠올리면 살만한 집인지 의심스럽겠지만, 이곳에서는 튼튼하게 집을 짓고, 잘 관리를 해서 그렇게 낡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주택조합이 아닌 개인 임대업자에게 집을 얻은 사람이 임대료가 너무 높다고 생각되면 점수를 매겨보고 그에 맞는 상한가를 알아볼 수 있다. 만약 점수가 50점이고 임대료가 30만원이라면, 상한가 24만원보다 6만원 비싸다는 계산이 나온다. 세입자는 임대료조정위원회에 임대료 인하를 요청할 수 있고, 위원회는 조사를 해서 사실 확인이 되면 임대료를 6만원 낮추라고 명령하고 임대업자는 그 조치에 따라야 한다.

이런 임대제도의 장점은 저소득층의 생활을 안정시키는 것이다. 지방자치 정부가 임대주택을 관리하는 주택조합과 협의해서 물가인상률 이하로 임대료를 묶어두기 때문에 세입자는 임대료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작년의 임대료 인상률은 2.9%였다.

또 저소득층은 수입과 부양가족 수, 임대주택의 크기 등을 따져서 임대료 보조금을 받는데 나의 경우는 12만원을 받았고, 평균 임대보조금은 15만원이었다. 네덜란드 국민의 40%가 주택조합이 운영하는 임대주택에서 살고 있다. 중산층 일부와 서민들의 대부분이 임대주택에 사는 셈이다.

단점으로 꼽자면 대도시에서 집 구하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직장이나 학교 때문에 대도시에 있는 새 아파트로 전세를 얻으려고 한다면 비싼 전세값을 마련할 수 있어야 한다. 문제는 돈이다. 그러나 네덜란드에서는 신청자 순위에 의해서 집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암스테르담이나 로테르담 같은 대도시의 살기 좋은 동네로 이사를 가려면 오랫동안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매년 이사할 집을 구하느라 거리를 헤매는 세입자들로 북새통인 한국의 전월세 정책과 비교해 볼 때 우리가 수용할 점들이 많다. 87년 6월항쟁 이전까지만 해도 서민들의 복지문제에는 별 관심이 없었던 독재정권의 통치가 계속되어 왔고, 서민들의 정치적 요구를 대변할 정당이 아직도 발붙이지 못하고 있는 현실 속에서 정부는 세입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법률 제정에 태만했던 것이 사실이다.

특히 지역감정을 이용해 기득권을 유지해온 주요정당들은 저질 색깔논쟁과 폭로 비방 공세를 일삼으며 서민들의 민생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 왔다.

이런 가운데에도 신생 진보정당인 민주노동당은 영세상인들과 함께 상가임대차보호법 제정운동을 벌이고, 참여연대 등의 시민단체들과 함께 고리대금업자의 횡포를 막기 위한 이자제한법 부활과 정치권의 암세포인 뇌물을 뿌리뽑기 위한 부패방지법 제정을 위한 운동을 벌이고 있어 주목을 끌어왔다.

그리고 필자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오늘 민주노동당은 전월세가격을 안정시키기 위한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을 입법 청원하고 본격적인 법개정운동에 돌입했다.

민주노동당 조사에 따르면, 한국에서 전월세에 사는 사람은 1천 9백만이 넘는다. 전체인구의 43% 가량이다. 이중에서 전세들어 사는 사람의 절반 이상이 한 집에서 2년도 채 못살고 이삿짐을 싸야 한다.

이런 잦은 이동으로 세입자는 이사비용을 들이고, 거주가 불안해 질뿐만 아니라 물가와 임금 상승률을 넘는 전셋값 오름세를 감당해야 한다. 이는 한국 정부가 네덜란드와는 달리 주택임대제도를 개인 집주인과 시장의 선택에 맡겨놓았기 때문이다.

이제라도 한나라당과 민주당, 자민련이 민주노동당의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에 성실한 자세로 대응해서 법개정에 나서고, 정부가 나서서 대규모 임대주택을 짓고 세입자의 권리를 강화한 모범적인 임대제도를 시행하면 매년 되풀이되는 전세가격 불안은 없앨 수 있을 것이다.

주택은 돈만 있으면 사고 팔고, 세를 얻는 덩치큰 상품이 아니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져야할 둥지다. 국가가 국민들을 위해서 둥지를 짓고 관리하는 것은 당연한 의무다. 네덜란드에서는 상식이 된 이런 주거권이 한국에서는 혹시 사회주의적 발상으로 몰리지는 않을까 우려하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네덜란드 = 하니리포터 장광열/ jjagal@yahoo.co.kr

편집시각 2002년07월26일16시21분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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