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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스 히딩크'과 미국의 문화패권주의

필자가 일하는 회사에서는 한국에서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고시아'라는 폴란드 여직원이 한 명 있다. 한국어도 꽤 유창하게 하고, 한국문화와 역사적 배경 같은 지식도 상당해서 같이 지내는 한국인들이 옆에서 부담을 느낄 정도이다.

가끔씩 개인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간에 고시아는 한국에서의 여러 가지 경험과 느낌들을, 나는 폴란드에서 경험하는 다양한 문화적 차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대화의 시간을 갖곤 한다. 한국사람들은 지나치게 급하고, 결과를 빨리 요구하고 그리고 현지화하려는 속도과 의욕이 많이 없어보인다는 등 외국인이 보는 한국인의 인상을 잘 보여주는 이야기들이 많아서 나도 배우는 것이 많다.

어느 날인가, 고시아 씨와 나 그리고 우리 회사의 과장님 한 분과 좀 심도깊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는데, 어쩌다 보니 고시아 씨가 한국사람들의 언어생활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었다. 한국사람들은 영어단어를 지나치게 남발하는 경향이 있다는 말이었다. 사실 한국인들이 외국어 단어를 많이 사용한다는 고시아 씨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주위에서 일반적으로 다들 그렇게 쓰고 있으므로, 중요성을 많이들 잊고 사는 것 같다.

그 때 떠오른 것이, 바르샤바에 사는 한국인들이 자주 범하는 실수였다.폴란드에서 쓰이는 언어는 한국인들 사이에서 폴란드어라고 불리지 않고,영어에서 차용된 '폴리시(Polish)' 라는 말로 불린다.

"이거 폴리시로 뭐라고 그래요?..."저 폴리시 할 줄 알아요?"..."한인학교에서 하는 폴리시 수업반은 수업료가 얼마나 해요?"

언제부터, 왜 그런 일이 시작됐는지 모르지만, 이곳에 사는 한국인들 사이에서 '폴란드어'라는 단어는 거의 들어볼 수가 없다. 물론 그것이 잘못이라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래도 한번 ''폴란드어'라고 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요?'하고 살짝 던져본 나의 질문에 과장님께서는 질문으로 답변을 하시는 것이었다.

"스페인어는 '일반적으로' 스패니시라고 하잖아요.'.."......... 그렇죠."...."프랑스어도 프렌치라고 그러고, 덴마크어는 대니시라고 하고 그러는데,폴란드어를 폴리시라고 부르는게 뭐가 문제라는 말인데요."........"사람들이 다 그렇게 쓴다고 그게 맞다는 말은 아니죠, 엄연히 우리말로 폴란드어라는 단어가 있는데, 왜 굳이 폴리시라는 영어단어를 고집해야하는지 모르겠다는 말이죠."

"그래도 한국인들이 자주 사용해서 굳어진 단어를 굳이 바꾸는게 필요할까요?"

그리고 나서 외래어와 외국어의 차이에 관한 열띤 토론이 진행되었는데,솔직히 난 폴리시라는 말이 '우리말로 굳어진 외래어'라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선 도저히 동의를 할 수가 없었다. 폴란드에 사는 한국인들이라는 특정계층에서 쓰이는 속어나, 특수어에 불과한 이 단어가 외래어로 굳어진 일상어라고 생각하는 것은 지나친 무리이다. 단순히 폴리시라는 말을 떠나서도,'스패니시'니 '프렌치'니 '대니시'니 하는 필요 없이 폭 넓게 사용되는 영어단어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이상한 상황을 이상하게 보지않는 이 이상한상황을 전혀 이상하게 느끼지 않는 다른 사람들이 이상한 것인지, 아니면 이상하지도 않은 것을 이상하다고 딴지를 걸어서 사람들을 피곤하게 만드는 내가이상한 것인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모든 일을 둥글둥글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면 인생이 정말 편하고 즐거우련만,난 주변의 일을 가지고 이런 식으로 딴지를 거는 나쁜 습관이 있기 때문에, 번민과 스트레스에 자주 시달려야한다.

한국인들이 쓰는 단어들을 살펴보면, 영어가 우리의 공용어도 아닌데 지나치게 영어단어를 고집한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대표적인 예가 동유럽 여러 국가의 국명을 보면 알 수 있다. 내가 사는 폴란드에서 폴란드는 '폴스카'라고 불리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자연스럽게 영어에서 나온 '폴란드'라는 단어가 사용되고 있다. 에스토니아는 에스티로 불리고, 리투아니아는 례투바로 불린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핀란드는 핀란드 말로 '수오미'라고 한다.

물론 우리나라와 역사적인 관계가 없는 이런 나라들은 미국이나 그 외 영어권 국가들을 통해 정보를 얻는 것이 대부분이므로, 영어로 된 국명을 차용하게 되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렇다고 현재 Korea로 불리는 우리 영어식 국명은 Hankuk이니 이렇게 바꾸자는 말도 아니다. 그렇지만, 우리에게 친숙하게 불리던 중국과 일본의 지명들을, 현지에서 불리는 발음으로 몽땅 바꾸어버린 것을 고려하면 좀 앞뒤가 안 맞는다.

우리에게 친숙한 지명인 천진과 연변이 텐진과 옌볜으로 바뀌어버린 후, 그 두 지명 사이에 연관성을 찾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보아하니 우리나라에는 지명은 현지에서 불리는 발음으로 표기한다는 원칙이 있는 것 같긴 한데, 정작 도시이름들이라 그렇다손치더라도 그 나라를 대표하는 국명은 영어식 단어로 굳어져있다는 것이 항상 마음에 걸린다. 일반매체에서 중국이라는 단어 대신 '차이나'로 기록하는 일도 빈번히 볼 수 있다.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유럽의 국가명은 영어식 단어를 차용하니까, 그게 맞지 않냐고 하면 특별히 할 말은 없다.

며칠 전 네덜란드 친구와 통화할 일이 있었다. 이번 월드컵을 맞아서 한국에 대한 관심이 갈수록 높아져 가고, 또 네덜란드 출신인 히딩크 감독 역시 현지에서 인기세를 타고 있다는 말을 그 친구로부터 들었다. 그러나 그 친구가 못내 아쉬워하는 것은, 네덜란드에 사는 한국인들의 말을 들으면 사람들이 그의 이름을 잘못 알고 있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한국사람들은 거스 히딩크라고 발음을 하지만, 정작 그가 태어난 네덜란드에서 그는 '휘스 히딩크'라고 불린다고 했다. 네덜란드어를 전혀 모르는 내가 할 말은 없지만, Guus라고 표기되는 그의 이름에서 g자는 h자와 비슷한 소리를 가지고 있고, uu로 '어'가 아닌 '위'와 가까운 소리로 발음한다. 한국인들의 그의 이름을 거스 히딩크로 발음하는 이유는, Guus라는 단어는 영어식으로 거스라고 발음하기 때문이다. U라는 글자를 '우'로 발음할 수 있는 국가가 미국이나 영국 외에 또 있을까.

로마식 알파벳으로 씌여있는 글자는 전부 '미국식'으로 읽는다는 잠재의식을 가지고 있는 한국인들은 세계어느 나라에 사는 사람이건, 전부 미국식으로 읽는다. 히딩크의 이름의 경우 무엇이 옳고 그르냐를 따져보다면 영어식으로 '잘못' 발음하는 거스가

아니라, 고향에서 부르는 '휘스' 가 맞다.

한국인에게 알려진 바 없는 폴란드 선수들의 이름은 영어식이 아니라, 폴란드 현지식으로 비교적 정확히 읽혀졌다는데 비해, 한국 사람이 그렇게 사랑해 마지않는 축구감독의 이름은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 참 아쉽다.

이번 월드컵을 통해서 세계에 소개되는 우리나라의 지명의 영어식 표기 역시 그런 아쉬움을 갖게 한다. 모든 지명이 '미국'의 발음조건에 맞추어 표기된 것 때문이다. 월드컵을 관람하러 오는 외국인들이 전부 미국인만은 아니며, 그리고 표기에 사용된 알파벳을 모든 로마알파벳 사용국가에서 동일하게 읽는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예를 들어, Jeonju라고 표기된 단어를 전주라고 읽을 수 있는 사람은 영어사용자 외에는 아무도 없다. Daejon도 그렇고, Incheon도 그렇다. 유럽 국가의 경우 대부분 j 과 ch의 경우 미국영어와는 전혀 다른 소리를 가지고 있다.다 아는 이야기지만, 영국영어의 경우 모음발음에서도 미국영어와 많은 차이를 보인다. 그렇다고 그 많은 유럽국가들의 언어에 맞추어 일일이 다 표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리고 각 나라의 발음 환경이 어떤지 100% 정확히 아는 것도 불가능하다.

한국을 소개하는 책자에서, 적어도 여기에 표기된 글자들이 미국영어에서 나는 소리들을 바탕으로 한 것이며, 외국인들에게 익숙치 않은 글자들의 소리가 어떻게 나는지 간략한 소개라고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전세계의 공용어는 미국영어가 아니니만큼, 비영어권 사람들을 위한 배려가 좀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에서다.그리고 이번 월드컵을 전후하여 한국인들 사이에서 불고 있는 '반미감정'이 문제가 되고 있고 미국의 문화적 경제적 패권주의를 걱정하는 우려의 소리가 자주 들리고 있다. 그렇지만, 적어도 언어습관에서만큼은, 미국영어가

우리의 또다른 공용어로 자리잡고 있음을 심각히 고려해봐야 한다.

한국인들이 아무 생각없이 영어단어를 남발한다는 폴란드 유학생 고시아 씨의 충고를 한번 되새겨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다.

이 기사에 나온 주인공이 자신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여러분들(특히 과장님....)! 제가 특별히 악의가 있거나 다른 의도가 있어서 여러분들 얘기를 실은 것이 아니므로 넓은 이해와 아량을 부탁 드립니다^_^. 사실 다 좋으신 분들이랍니다.

[필자주]거스 히딩크의 이름에 대해서 제가 중대한 실수를 범했음을 인정합니다. 확인을 해보지 않고 그 사실을 첨부한 것은 제 실수였습니다. 본인이 그렇게 원했다면 현지어로 휘스건 거스건 그런 말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독자 여러분께서는 이 기사의 가장 중요한 사안은 그의 이름을 바로 부르기 위한 것임이 아님을 고려하시기 바라며,혹시 거스 히딩크의 이름에 대한 것이 아닌, 다른 사항에서 동의하시지 않거나, 잘못된 주장이 있다고 하시면, 독자의견란에 올려주십시오, 전부 답변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서진석//

폴란드 = 하니리포터 서진석 /perkunas@netian.com /홈페이지 : "http://baltic.netian.com"

편집시각 2002년06월24일10시04분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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