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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섹션 : 해외 등록 2002.05.17(금) 15:19

[서진석의폴란드살이] '바르샤바'에 길들여지기

일주일 내내 지내보아도, 어떻게 사는지 밥은 제대로 먹는지 안부조차 물어주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이 도시는, 봄이 중반으로 접어드는데, 벌써 여름 같습니다.

하루 종일 후덥지근한 기운이 사람의 기운을 쪽쪽 빠지게 만드는군요. 이 도시에서 산지가 벌써 5년이 지나고, 보고 싶은 가족들은 전화상으로 간혹 목소리로만 만날 수 있는 먼 곳의 사람들이 된지 오래입니다.

그렇게 먼 곳에 떨어져 혼자 살면서 지낸 어언 5년, 이제 왠만큼 이러한 환경 속에서 혼자 지낼 수 있게 된 것을 보면, 참 많이 컸구나 하는 칭찬을 스스로에게 해주고 싶습니다.

바르샤바의 이런 분위기를 상당히 잊고 그나마 차분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 것들은 내가 시간이 날 때마다 글을 쓰고, 그리고 그 글을 나를 모르는 다른 이들과 같이 나누어 볼 수 있는 작은 공간이 생긴 것이었습니다. 이 한겨레 리포터를 비롯한 크고 작은 글마당들 말입이다.

가끔씩 폴란드에 대한 말 같지도 않은 글을 올려서, 잘 웃지도 않고, 나와 별로 친해지려고 하지도 않는 이 나라 사람들에 대한 분풀이를 조금이나마 할 수 있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 나라에 대한 칭찬과 아름다움에 대한 극찬만 가득한 관광안내서에나 나올 만한 그런 뻔한 내용들이 아니라, 이 곳 사람들과 정말 부대끼며 그들의 생활 자체와 그 이면에 숨겨진 여러 생각들을 많지 않은 독자들이라 하더라도 같이 나누어 볼 수 있었거든요.

폴란드 사람들은 정말 상식 밖에 사람들입니다. 분명히 먹혀들어갈 것이라고 믿는 일반적인 신념들도 이 사회에서는 철저히 무시당하기 일수입니다. 이 나라에는 해보지도 않고 안된다고 하는 일이 왜 이렇게 많은지요, 조금만 더 손을 뻗으면 얻을 수 있는 일인데 왜 그 자리에 없다고 하는지요,

문제가 있는 걸 알면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보다 여러 예를 들어가면서 문제 해결이 안되는 이유를 설명하느라 시간을 다 보내는지, 이런 생각은 단지 나만의 생각만이 아니라, 폴란드의 지식인들도 가끔 해대는 말입니다. 동유럽과 서유럽의 차이는 문제가 발생하면 금방 표가 난다고요.

서유럽 사람들은 어서 문제를 해결하고 상태를 원점으로 돌리려고 노력을 하지만, 동유럽 사람들은 더 나쁜 일로 치닫을 수도 있었지만 이 상태로만 끝이 난 것으로도 만족하여 그 자리에서 안주한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자신들은 이세상에서 이루어 놓은 것이 많다고 왜 그렇게 뿌듯해들 하는지 좀 의아스럽습니다.

아직까지 그러한 모습들은 가슴으로는 느끼기 못하고 머리로만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했습니다. 이제 그러한 노력에도 조금씩 신물이 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난 한동안 폴란드에 대한 이 기사를 쓰지 못했습니다.

차라리 좀 다른 주제로 시작을 해서, 어떻게 사는 사람들인지 대충 겉핥기로만 보여주는 기사나 썼으면 좋았을 것을...이렇게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들을 남에게 이해시키려고 한 나의 노력이 얼마나 가증스러워 보였는지 모릅니다.

그러는 사이 나는 바르샤바의 외곽지역에서 중심가로 이사를 하고, 폴란드의 실업율이 20% 이상으로 육박하는 현상을 눈으로 직접 체험하고, 그리고 또 다른 곳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이전보다 폴란드 사회가 더 싱숭생숭합니다.

좀도둑들도 더 늘어나고, 쟁쟁하던 회사에 다니던 주위의 아는 친구들이 갑자기 실업자가 되는 일도 많습니다. 그래도 인터넷에서 접하는 한국의 소식보다는 여러 모로 단계가 낮아서 다행입니다.

새로 이사한 동네에서 출근을 하려고 버스 타는 곳으로 가려면, 지하도를 지나야 되는데, 아침이면 그 지하도에서 새로운 날을 시작하는 폴란드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이 보입니다. 야채 파는 아가씨, 잡동사니 파는 아저씨, 빵 파는 아주머니, 신문가판대 할머니, 그리고 지하도 한가운데서 러시아어로 노래는 부르는 악사 두 사람, 밤새 지친 눈을 부비며 교대를 기다리는 수위할아버지, 아침에만 잠깐 자리를 만들어 속옷을 내놓고 파는 베트남 사람들.

그들 사이를 비집고 버스정류장에 가서 내가 탈 버스를 찾아 바르샤바 시민들과 같이 뛰어다니고 있노라면, 나도 이제 이 사회의 한 부분이 되어서 살고 있다는 강한 느낌을 받습니다. 도저히 이해하지 못할 사람들이라고 이야기하면서도, 나는 그들의 만들어 놓은 조직과 질서 속에서 특별한 어려움 없이 5년을 넘게 산 것입니다.

그토록 가족들은 멀리 있지만, 외롭지 않도록 친아들 같이 돌보아주신 하숙집의 루시아 아주머니도 이곳에 계시고, 그리고 새로 이사온 이 집의 집주인 아주머니도 불편하지 않도록 작은 것이라도 이것저것 챙겨주시는 친절한 분이십니다. 이 집으로 이사오기 전 잠시 살았던 집의 주인 아저씨도 정말 잊을 수 없을 만큼 착한 사람이었던 것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 집에서 살 때 있었던 일입니다. 아침에 잠글 때는 아무 문제 없던 자물쇠가 퇴근하고 문을 열려고 해보니 열리지가 않았습니다. 주인 아저씨를 불러 도움을 청하자, 아저씨가 한다는 소리는 참 기가 막히지도 않더군요.

"옛날하고 수법이 똑같네."
"예? 무슨 소리예요?"

"분명 이 동네 열쇠장이들이 한 짓이예요, 요즘 들어서 일거리가 없어지니까 사람들이 돈을 좀 벌려고 일부러 열쇠를 망가뜨려 놓아요. 거의 매년 이런 일이 생기는데.. 지금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에서 자물쇠가 한꺼번에 고장이 나버렸답니다."

정말 그 일이 있기 전 젊은 녀석들이 아파트 단지를 돌아다니는 일을 본 기억도 났고, 며칠 후 마침내 우리집에는 도둑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큰일이 나지 않은 것은 내가 없는 사이 집주인과 경찰에 일러준 우리 이웃들 때문이었습니다. 정작 경찰은 사건 후 4시간 후에나 도착하긴 했지만요. 없어진 것은 없었지만, 나는 또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해야만 했답니다. 도둑이 한번 든 곳은 계속 든다고 하잖아요.

유럽연합이라는 곳에 가입하기 위해서, 밀물처럼 몰아닥치는 전반적인 사회의 구조조정과 그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젊은이들과 실업자들, 불과 십 수년 전에 경험한 정치변화보다 더 큰 변화를 기다리며 살아나가는 폴란드의 아저씨 아주머니들, 그리고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며 수능시험을 마친 젊은 고등학생들과 티없이 예쁘기만한 폴란드의 꼬마들.

그 속에서 같이 부대끼며 살아가며 그들의 삶의 족적을 따라나가는 나도, 그들과 마찬가지로 심각한 딜레마에 빠져있습니다.

이 나라는 나에게 도대체 무엇인가, 금방 떠나갈 나라니까 맘 놓고 욕을 하고 비판을 해도 상관이 없는 것인가, 아니면 나의 가장 중요한 시기를 보낸 곳이고, 필요한 시기에 나에게 좋은 일을 해준 작은 이들 때문에라도 이 미소 없는 사람들에게 애정을 가져야 하는지 고민을 자주 해보게 되었습니다. 아니면 나라는 인간은 이 사회에 맞지 않는 정말 별종 같은 놈인지도 모릅니다.

바르샤바에서 맞는 밤의 적막함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습니다. 해만 떨어지면 사람 하나 볼 수 없었던 처음과는 달리 이제 밤늦도록 여기저기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 눈에 많이 보이는 게 좀 다릅니다. 앞으로 예측할 수 없는 변화가 생기겠지요. 다행히 요즘 사람들은 문제가 생기면, 그냥 안주하려고만 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주변의 잘 사는 이웃들에게서 조금씩 배우고 있는가 봅니다.

한동안 후덥지근하던 이 봄날의 열기를 잠시 식혀준 오늘 낮의 소나기처럼, 나에게도 시원한 소나기가 한번 지나가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정말 이 나라에 대한 새로운 생각이 마구마구 솟아나올 것만 같거든요.

2002년 늦은 봄날 바르샤바에서...

하니리포터 서진석 /perkunas@net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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