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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 않는' 바르샤바 사람들

제가 새로 이사한 동네는, 오른쪽과 왼쪽이 완전히 대칭을 이루고 있는 신기한 동네입니다. 양편으로 있는 집들의 창문색깔이며 위치, 지붕모양과 입구까지 마치 거울로 비추는 것처럼 똑같이 생겼습니다. 제 동네가 너무 예쁘고 보기 좋아서 다른 한국인 친구에게 자랑을 했더니 전형적인 사회주의 건물이라고 망신을 주더군요. 그러고 보니 제가 사는 곳은 공산주의 시절의 냄새가 많이 나는 곳입니다.

스탈린이 바르샤바에 지어준 것으로 유명한, 사회주의 건축양식의 대표적인 건물인 문화과학궁전도 그리 멀지 않고, 저희 집 동네가 끝나면 바로 연결되는 헌법광장(Pl.Konstytucji)에 있는 MDM 호텔 주변은 사회주의 지상낙원을 건설하겠다는 신념이 온몸에 가득 담긴, 낫과 쟁기를 든 노동자와 굳센 팔뚝의 아낙네들의 조각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바르샤바에 온 외국인들이 많이 찾는 곳은 아니지만, 과거 사회주의 국가에 들어왔다는 생각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재미있는 곳이 아닌가 싶습니다.

[사진] 국립극장에서 열연하고 있는 자마홉스키(Zamachowski). 삼색연작시리즈 중 '화이트'에서의 연기는 슬픔에 빠진 남성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것이었다.

며칠 전 저는 그 공산주의의 흔적이 가득한, 양쪽이 대칭인 저희 동네에서, 이상한 광경을 보았습니다. 해가 진 저녁, 축구경기가 있었는지, 응원팀의 이름이 쓰여진 스카프를 목에 두르고 젊은 아이들이 삼삼오오 걷고 있는 때였습니다. 그들 중에서 키가 큰 남자 하나가 코 밑에 손을 대고 제 쪽으로 걸어오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깨도 들썩이고 있었습니다. 제 앞으로 걸어오는 남자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제가 관심을 가져야할 이유는 없었습니다. 저는 단지 그 사람이 감기에 걸려서 코를 훌쩍 거리고 있다는 생각만 했습니다.

그 남자가 저에게 가까이 다가오자 저는 그가 울고 있다고 느낄 수 있었습니다. MDM 광장에 있는 억센 팔뚝의 노동자 같은 체격을 가진 그 남자는 제 앞을 지나가면서 분명히 소리까지 내면서 어깨를 들먹이며 지나가는 것이었습니다. 그 사람들이 많이 왔다갔다 하는 그 거리에서 남자를 크게 훌쩍거리며 울게 만든 것이 무엇인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 사람은 평소에도 잘 우는 사람은 아니었을 겁니다. 사랑하는 여인과 헤어지면 길거리에서 그렇게 울 수 있을까요, 아니면 재정관계에 문제가 생겨서 어려움에 빠져있었을까요, 사랑하는 가족들 중 누군가 생명을 잃어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울면서 거리를 지나간 한 남성을 본 후, 참 이상한 감정에 사로잡혀있었던 것이 기억납니다.

전 울고 있는 폴란드 사람을 본 적이 많지 않습니다. 길거리에서 목도리를 얼굴까지 칭칭 감고 구걸하는 할머니들이 흐느끼는 소리로 동전을 부탁하던 때 외에는 말입니다. 이전에 살던 하숙집 아주머니 집에서, 치매로 5년이나 고생을 시키던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아주머니와 그 오빠가 우시던 모습을 본 적은 있습니다. 가족 중 누군가가 죽었을 경우 서럽게 우는 것은 문화와 국경을 초월해서 다 같은 모습일 것입니다. 정말 나는 폴란드에서 사람들이 우는 모습을 거의 본 적이 없습니다.

폴란드의 영화감독 크시스토크 키에슬롭스키 감독의 연작시리즈 중 하나인 '화이트'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입니다. 제가 그 영화를 그토록 좋아한 까닭은, 사랑을 잃은 남자의 모습을 너무도 잘 연기한 즈비그니에프 자마홉스키라는 배우 때문이었습니다. 그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자신에게 돌아오는 여인의 모습을 보고 주인공이 주루룩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러나 정말 슬픔에 빠진 그 사람은 끝까지 한번도 눈물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손을 얼굴에 모으고 턱까지 쓸어내리며 희망을 잃은 듯 주저앉기만 할 뿐이었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우는 것보다, 그 사람이 슬픔에 빠져있다는 것을 정말 잘 표현해 주는 모습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개봉된 바 있는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이란 영화에서는 밤늦게 집에 돌아와 식탁에 앉아 울고 있는 여인의 모습이 나옵니다. 울고 있는 여인의 모습을 본 이웃집 소년은 방에 들어가 친구의 어머니에게 묻습니다.

"사람은 왜 우는 거에요?"

친구 어머니가 뭐라도 대답을 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우는 것을 보고, 그런 질문을 하게 된 그 소년과 동질감이 생겼기 때문일까요?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이 무엇에 즐거워하며 무엇에 슬퍼하는지 궁금해지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 소년의 질문만이 기억에 납니다. 저렇게 슬픔을 나누어 가질 수 있는 누군가가 생겼으니 얼마나 가슴이 저리고 애가 탈지 그 느낌이 전해져 왔었거든요. 그런 영화를 보면서 폴란드 사람들은 정말 감정적이로구나 하는 생각을 갖기도 했습니다.

영화와는 다르게 폴란드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을 얼굴로 잘 표현해 주지 않습니다. 그 사람이 나에게 적대감이 있는지 호의를 가지고 있는지 그 사람의 말과 행동만 보아서는 도저히 알 수가 없습니다. 평소에 보는 폴란드 사람들의 표정은 주로 무표정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그가 무표정하다고 사람을 무조건 적대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무표정한 사람들과 관계를 시작하면, 그때 만나는 모습은 사람을 관찰하는 듯 사뭇 진지하고 근엄한 모습입니다. 가끔은 첫인상으로 처음 보는 사람의 시선을 제압하려는 것 같기고 하고, 그 사람을 여러 모로 시험을 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기도 합니다. 그 후 미소를 머금은 얼굴로 그 사람을 다시 보게 되는 것은 아주 어렵습니다. 설사 그 사람과 미소를 머금은 얼굴로 자주 만난다고 해도, 그의 웃음이 호의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정말 결정적인 순간에 미소를 거두고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폴란드인들을 정말 많이 보았습니다. 그 사람들은 아마 감정을 자기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는 우리가 가지고 있지 않는 능력이 있는가 봅니다.

폴란드 사람들은 심지어 서비스 1순위의 자리에서 일을 하면서도 웃음을 잘 보여주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바르샤바에서 최상급에 속하는 호텔에 가도 처음 보는 사람에게 잘 웃어주는 법은 없습니다. 외국인이 처음으로 맞는 공항이나 기차역에 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외국인들은 폴란드 사람들에 대한 좋지않은 첫인상을 가지고 있기 쉽습니다. 단지 외국인이 폴란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탓으로만 돌리기도 무리입니다. 정말로 낯선 이들에게 웃음을 잘 보여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낯선 이들에게 우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더더욱 힘든 일입니다. 울고 있다는 것은, 자신이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외부세계에 공개하는 것이라고 들었습니다. 나도 가끔씩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에게 기꺼이 무언가 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알게 되는 것이 상당히 힘듭니다. 내가 그런 것을 느끼기에는 너무 바보 같이 무디거나, 아니면 정말 그들이 나의 도움 같은 건 원치 않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비록 표정은 그렇다 치더라도 말로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정말 남다릅니다. 가족끼리 사랑한다고 말하고, 서로의 안부를 묻고, 서로의 장점을 칭찬하는 모습 말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할 경우에는, 너무 억지로 한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으니 조심해야합니다. 그래서 가끔씩은 그들의 안부가 지나친 인사치레처럼 보일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다 그렇게 똑같아 보이고 비슷해 보여도 정말 다들 다릅니다. 정말이지 이 나라 사람들은 양쪽으로 거울에 비친 동네 모습처럼 똑같은 감정을 갖고 산다고 생각했는데, 그 거리에서 불쑥 튀어나는 그 슬픔의 남자는 저의 생각을 바꿔보려고 작정한 것 같았습니다. 감정을 잘 보이지 않는 이 나라 사람들도 어딘가에서 남의 도움을 필요로 하며 울고 있을 수 있다는 느낌을 받았으니까요.

사람이라면 가끔은... 그렇게 울고 싶을 때가 있기 마련입니다. 왜 사람들이 나에게 우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지, 그 이유는 저 자신만이 알 것 같습니다. 내가 그들에게 기대어 울만한 든든한 어깨가 되어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바르샤바=하니리포터 서진석 기자 perkunas@netian.com



편집시각 2002년05월23일16시25분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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