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섹션 : 해외 등록 2001.08.28(화) 17:52

[서진석의폴란드살이] '유진규 몸짓' 바르샤바에 오다

* 이 글은 2001년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열린 국제마임페스티벌에 공식참가한 한국공연단의 8월 24일 공연내용이 담긴 편지형식의 글입니다. 이번 행사는 폴란드에서 처음으로 열리는 국제마임페스티발로 독일, 미국, 프랑스, 스위스를 비롯, '유진규네의 몸짓'이 공식 초청되었습니다.


영아 씨 보세요! 공연 참 훌륭하게 보았습니다. 정말 아주 좋았어요, 사실 오늘 공연장으로 가면서 표가 없으면 어떡하나 고민을 많이 했는데, 마침 버스에서 만난 영아 씨 미국인 친구 미셸을 만나서 자기 이름으로 된 초청장을 주길래 편한 자리에서 영아 씨랑 유진규 선생님([편집자주]춘천국제마임페스티벌 운영자)이랑 만들어내시는 공연을 정말 잘 보았습니다. 대사 하나, 설명 하나 나오지 않는 무언극을 보고 눈물이 나올만한 감동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비로소 오늘에야 깨닫게 되었네요.

[관련사이트]

  • 유진규 공연 동영상
  • 세 번째 꽃, 영혼의 몸짓 '유진규'

    일년 전부터 영아 씨 혼자 가족들과 떨어져서 폴란드 바르샤바에 와서 지내면서 준비하며 고생하는 것을 보면서, 정말 예술가들의 삶이 정말 장난이 아니란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다른 나라와 통하는 것이 많이 다르고, 정말 한번에 끝내도 될 일을 여러 번에 걸쳐서 사람을 힘들게 하는 이 나라의 문화적 환경 때문에 너무 힘들어하는 것도 많이 보았습니다. 정말 수고하셨어요.

    오늘 유진규 선생님이랑 한 공연, 끝난지 4시간도 안됐는데, 폴란드 저녁뉴스 시간에 그 공연 소식이 나왔습니다. 유진규 선생님이 온몸으로 만들어내는 몸짓과 영아 씨가 기도하는 듯 얼굴을 흔들며 만들어내는 묘한 표정이 텔레비젼 화면에 꽉 차더군요. 그리고 폴란드 여자 아나운서의 유진규 선생님에 대한 설명도 함께.

    우리나라라면 유진규 선생님에 대한 설명이 따로 필요 없겠지만, 이곳은 유진규 선생님 뿐 아니라, 한국 마임 자체에 대해서도 구구절절히 할 말이 많아요. 한국의 마임분야를 개척한 사람이라는 설명이 나오는데, 유진규 선생님을 그냥 '인'이라고 부르더군요 알고보니 Jin gyu 라는 영자이름을, 앞 음절만 이름인지 알고 '인'이라고 폴란드식으로 읽은 거였어요.

    이 나라 사람들은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폴란드식으로 생각한다고 믿는 경향이 있죠. 한국인에 대한 정확한 홍보와 안내가 없었던 모양이죠? 그 페스티발 주관을 담당했던 스테판 니쟐콥스키(Stefan Niezialkowski) 씨의 인터뷰에서도 '인'이라고만 하더군요. 좀 섭섭하더라고요. 유진규 선생님에 대한 아낌없는 칭찬을 한 것은 좋았는데....... 이제 폴란드 사람들은 '인'이란 사람은 알아도 유진규 선생님은 모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니쟐콥스키 선생님 한국에도 자주 다녀가셨다면서요..?

    처음하는 마임페스티벌이라, 참가국은 좀 적었지만, 그래도 전부 프로들만 참석한 것 같더군요. 한국팀을 보면 알죠., 영아 씨는 마침 어깨춤을 추는듯한 독특한 동작 때문에 유럽사람들이 신비로움을 느낀다면서요. 정말 그러고도 남겠군요. 흔히 판토마임하면 서양의 우스꽝스러운 광대의 공연,엉거주춤한 포즈로 멋있게 서있는 왠지 어색한 모습, 아니면 웬지 우리와 토양과 상황이 다른 곳에서 발생하여 우리 문화와는 거리가 먼곳으로 생각하기 쉬운데(저 같이 문외한인 경우), 오늘 공연은 정말 그 무언극이 우리나라에서 발생해서 발전한 우리의 문화장르인 것 같은 생각이 들더군요.

    한지와 향, 정한수, 사물놀이, 상여소리... 한국인들이 몸으로 느끼고 표현한 도구들로 동작을 만들어내느니만큼 한국인의 몸짓을 창조하는덴 더없이 좋았겠죠. 한 서린 한국여인들의 소망을 일구어내고자 하는 정성과, 그리고 영혼의 모습과 삶의 모습들을 수많은 대사보다 더 아름답게 표현해낸 것 같습니다.

    폴란드인들이 보고 너무 어려워하거나 생소해 하지 않을까 걱정을 많이 했는데, 역시 몸짓이란 특별한 설명이 필요 없는 언어인가 봅니다. 4번이나 연속으로 이어지는 커튼콜과 공연 후 폴란드인들의 탄성과 감동 섞인 대화가 한국인으로서 가슴을 아주 뿌듯하게 하더군요.

    매년 열리는 바르샤바 국제영화제에서 작년엔 '박하사탕', 재작년엔 '8월의 크리스마스'가 개봉됐는데, 영화 끝난 후 관객들이 다 박수를 치더군요. 이제 한국의 느낌과 생각이 다른 나라 사람들의 것과도 공존이 가능하구나 라고 느낀 순간이었습니다. 이번 공연도 그래요. 지구상에 사는 모든 인간을 하나로 묶을 그 무엇인가가 존재하고 있구나 그런 생각을 심어주는 날이었어요.

    지난 번 영아 씨 친구 미셸이랑 만났을 때, 미셸이 해준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흉내내는 마임의 동작은, 보이지 않는 벽과, 끝이 없이 그냥 당기기만 하는 줄처럼 단순한 행동의 묘사가 전부라는 것이죠.

    사람들은 그 벽의 끝이 어디에 있는지 무슨 이유에 그 자리에 있는지 왜 거기서 헤매야하는지, 그 줄이 왜 힘들게 하는지 그 끝에 무엇이 있는지 왜 당기고 있는지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배실배실 웃으면서 한 동작 흉내만 낸다고요. 그 벽의 고통과 줄의 무게와 그 끝을 보여주기 위해, 미셸은 정말 그 어린 나이에도 이 곳에서 고생을 하며 마임을 공부한다고 했어요.

    영아 씨와 유진규 님의 공연도 그런 미셸의 말을 잘 실감할 수 있는 기회였던 것 같습니다. 슬프고 힘든 인간의 모습 말입니다..... 간단한 표정 솔직히 그런 거야 조금만 연습하면 다 할 수 있겠죠. 그러나 그 슬픔과 고뇌의 끝이 어디인지, 그 끝에 무엇이 있는지 왜 다들 거기서 헤매고 있는지 그 심오한 답변을 몸짓만으로 표현하는 것은 정말 어렵고 힘들죠.

    영아 씨가 그 표현들을 단지 폴란드에서만 배우신 것은 아니겠지만, 일년 여 기간동안 계시면서 이곳 사람들의 느낌을 더 이해하고, 그를 통해 이 사람들의 느낌의 끝과 그 어려운 해답을 나름대로 찾으셨길 바랍니다. 그래서 한국의 이름으로 이런 세계 여러 나라의 마임축제에 참가하실 때, 각국에서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그 해답을 가르쳐 주세요. 과연 이 인류의 아픔의 끝은 어디에 있고, 그 해답은 어디에 있는지 왜 그렇게 살아야하는지.......

    저도 개인적으로 시간이 안 나서 다른 나라 공연단의 모습을 보지 못한게, 정말 너무너무 후회가 됩니다. 기회가 되면 정말 다른 나라의 마임공연도 보러가겠습니다. 하지만 '유진규네 몸짓' 공연을 보지 못했으면 정말 평생 후회했을 뻔 했어요. 그 자리에 참석한 한 폴란드 친구도 그런 이야기를 하더군요. 자기 친구들을 많이 데리고 오지 못해서 정말 후회가 된다고.

    화요일이면 춘천으로 가셔서 다시 주부로 돌아가시겠죠. 언제 다시 만날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 글을 통해서 작별인사 대신합니다. 정식으로 인사 한번 못 드렸지만, 유진규 선생님께도 안부 전해주세요.

    바르샤바에서 노영아 씨를 알게 된 것을 정말 행운으로 생각합니다.

  • [편집자주] 마임[mime] : 연극·연기의 한 형식. 어원은 그리스어의 미모스(mimos)에서 유래하며 '흉내'를 뜻한다. 원래는 촌극 등 잡극(雜劇)을 의미하였으나 오늘날에는 팬터마임과 같은 뜻으로 언어를 사용하지 않고 몸짓과 표정만으로 표현하는 연기를 가리킨다. 특히 발레에서는 마임 또는 밈이라고 하여 무용과 함께 2대 요소를 이룬다.

    바르샤바 = 하니리포터 서진석 기자 seok_pl@yahoo.com 홈페이지 http://my.netian.com/~perkunas

    http://www.hani.co.kr/section-014007000/2001/08/01400700020010828175201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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