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섹션 : 해외 등록 2001.08.22(수) 18:38

[서진석의폴란드살이] 한국의 수도가 하노이 맞죠?

폴란드어로 배우는 한국인의 폴란드살이(12) skad jestes?(스콩드 예스테시? 어느 나라 출신이에요?)

내가 한국에 잠시 다니러 갔던 어느 해 여름, 우리 옆집 아주머니가 나한테 하시는 말.
"저기 우리 성당에 한 미국 신부님이 왔거든."
"근데요."
"근데 그 미국신부님이 글쎄, 폴란드 미국신부님이래.."
"아니, 폴란드면 폴란드지, 폴란드 미국신부님이 뭐예요?"
"아니, 눈 파랗고 얼굴 하야면 다 미국 사람이라고 부르지, 뭘 그런 걸 가지고..."

우리나라에서는 흑인이건 백인이건 아무튼 좀 다르게 생긴 외국인이 옆으로 지나가면 한결 같이 미국사람이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프랑스도 독일도, 나이지리아도 아닌 오직 미국.

[사진설명]"식사하고 가세요..." 바르샤바 곳곳에 있는 간이베트남음식점

그와 비숫하게 유럽에 나가면 한국인들은 전부 중국인이나 일본인으로 대접받는 일이 많다. 국적을 물어볼 때, 차이니즈나 자패니즈부터 시작하는 것이 보통이지. 코리안? 하고 처음부터 묻는 경우는 정말 손에 꼽을만큼 드물다.

각 나라마다 특이한 환경이 있는 만큼, 폴란드에서는 사정이 역시 또 다르다. 필자가 폴란드 체류허가증 취득건으로 경찰서에서 인터뷰를 했을 때,
경찰: "한국 출신이죠..?"
나: "예, 그런데요.?"
경찰: "그럼 출생지가 하노이겠군요?"
나:"*&%*&??? 아저씨....한국엔 하노이가 없는데요...."

폴란드엔 베트남 사람들이 정말 많이 거주하고 있다. 바르샤바에만도 몇 만 명이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져있고, 주로 길거리에서 베트남 패스트푸드점을 경영하거나, 시장에서 옷장사들을 하는 경우가 아주 많다. 흔히 생각하는 보트피플류의 베트남인들이 아니라, 과거 공산시절 형제국가라는 명목으로 많이 진행된 교류 덕분으로 폴란드에 정착하게 된 사람들이다. 베트남인들은 폴란드에서 동양인을 대표하는 사람들이 되었고, 눈 찢어지고 얼굴 노란 사람들을 무조건 베트남인들로 치부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이 된지 오래다.

바르샤바에 들어오게 되면 일단 중앙역 근처에 여기저기 자리를 틀고 잡은 베트남 패스트푸드점들을 보고 많이들 놀란다. 신문가판대 정도의 크기에 보통 50종류 정도의 음식을 팔며, 값도 우리돈 2500원 정도로 아주 저렴하며, 맛도 아주 좋다. 우리나라 골목마다 교회 들어서는 것처럼, 사람들이 모일 만한 곳엔 꼭 한 두개씩 있을 정도이며, 식당으로 성공하는 경우도 많이 있다.

폴란드 서민들의 생활을 엿보고자 바르샤바의 알려진 시장에 가게 되면, (좀 심하게 말하면) 이곳이 동남 아시아인지, 폴란드인지 구별이 안될 때가 많다. 바르샤바를 가로 지르는 버스와 강 동편에 웬만한 공설운동장 수준의 경기장이 하나가 있는데, 이곳은 폴란드에서 가장 큰 시장으로 바뀌어버린 곳이다.

'스타디움 시장(폴란드식으로 하면 스타디온)' 불리우는 이 곳에서는 옷가지나 음식을 놓고 장사하는 베트남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조그마한 동네 시장이 아니라, 이름과 규모가 알려진 대규모 시장들은 베트남 사람들의 활동무대가 된지 오래다. 한때 폴란드인들이 동양인을 보게 되는 곳은 그런 과거 사회주의권 동남아인들이 전부인 때가 있었으므로, 모든 동양인들을 베트남인들로 치부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폴란드에 사는 베트남 사람들이 전부 시장에서만 일한다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그렇다고 폴란드 어디에나 베트남인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폴란드의 제2의 도시이자 최대의 공업도시인 우츠(Lodz)엔 중동과 아프리카 출신의 외국인들이 자주 보이고, 바르샤바에도 많지는 않지만, 태국, 필리핀 사람을 비롯하여, 물론 중국인들도 많이 살고 있다. 폴란드의 고도 크라쿠프에 가면 북한사람들이 운영하는 한식당도 있다.

그 베트남과 중국인들 사이로 얼굴이 좀더 하얀 일본, 한국인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불과 10년여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폴란드인들이 동남아인들과 동북아인들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도 정말 요즘의 일이다. 아직도 바르샤바 시내에서는 중국영화에서 들었음직한 이상한 소리를 내면서 동양인들을 따라다니는 아이들과, 비교적 '큰' 청소년들을 많이 볼 수 있다. 동양사람들을 보며 찡쨩쫑 하고 이상한 소리를 흉내내며 따라다니는 젊은이들이다. (그 놈의 찡쨩쫑이 무슨 뜻인지 물어보는 엽기적인 인간까지 있다니까.....)

유럽에 동양인이 많은 것이 그리 신기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서유럽에 비교해 볼 때 폴란드의 경제사정이, 아시아의 노동자들이 돈을 벌러 비행기를 타고 많이 올만큼 발전적인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프랑스에 아프리카인들이 많은 것처럼 폴란드가 이전에 해외식민지를 많이 개척해서 그 후손들이 폴란드에 살고 있거나 그런 것도 아닌 것을 감안하면, 신기하지 않을 수가 없는 일이다. 그리고 정말 신기한 것은, 폴란드인들이, 폴란드에 거주하는 외국인들도 서유럽의 외국인과 비슷한 사정을 가지고 폴란드에 왔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사실이다. 사정이 그렇다보니 동양인들을 이유없이 업신여기는 풍조가 전혀 없다고는 말할 수 없다.

꽃 피고 새 우는 숲이 울창한 지역에 있는 폴란드 가정에서 내가 하숙을 했던 때, 집주인 아주머니의 친구분들은 일단 나를 처음 보면 이런 얘기들을 하곤 햇다(불특정 다수의 예!).
"어머, 폴란드에 돈 벌러 왔나보구나..."
"우리집에 유모가 필요한데 너 아는 사람 중에 애기 좀 봐줄 사람 혹시 모르니..?"
"식당은 가지고 있어?"
"너 스타디움 시장에서 장사하는구나..."
"너네들 파는 음식 정말 맛있더라..."
그 말을 들은 우리 아주머니..
"아니. 이 여자들이... 베트남만 있는 줄 아나, 저 총각은 한국사람이야. 한국사람들은 시장에서 장사 안해......"

다행히 이런 현상은 내가 폴란드에 처음 왔을 때보다 요즘 많이 줄어든 것을 느낄 수 있다. 아시아에 베트남만 있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개방 이후 많이들 깨닫게 된 때문이기도 하고, 좋은 차를 타고 다니며, 좋은 집에 사는 아시아 출신의 비즈니스맨들도 최근 들어 많이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폴란드는 그렇다 치더라도 과거 구소련지역에 가게 되면 더 재미있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우즈베키스탄에서 오셨군요."
"블라디보스톡에서 오셨나요?"
"

.........!"

바르샤바 = 하니리포터 서진석 기자 seok_pl@yahoo.com 홈페이지 http://my.netian.com/~perkunas

http://www.hani.co.kr/section-014007000/2001/08/01400700020010822183801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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