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섹션 : 해외 등록 2001.06.04(월) 17:18

[서진석의폴란드살이] '우린 일보다 퇴근이 중요하다'

폴란드인들의 Do widzenia!(도 비제니아. 해가 진 저녁을 제외하고 하루 종일 사용할 수 있는 작별인사. 일반적인 유럽말이 그렇듯, 의미는 다음에 볼 때까지..)

폴란드는 매력있는 나라이다. 영토로 봤을 때도 동유럽에서 가장 넓고, 인구도 비교적 많아, 자체 시장이 아주 크다. 노동생산성도 서유럽에 비해 아주 낮지만, 그렇다고 교육열이나 교육상황이 다른 나라보다 열악한 것도 아니다.

이런 여러 가지를 감안했을때, 한국인들은 폴란드에 많이 진출해있다. 작게는 두명에서 크게는 거의 수 백명까지 이르는 다양한 한국업체들이 폴란드에 진출해 있다. 그런 이유로 폴란드는 유럽에서도 드물게 한국의 인지도가 일본을 앞서는 나라가 되었다. 그리고 폴란드는 한국을 제외하고도 외국투자의 물결이 많이 몰려드는, 외국회사에 인기 있는 시장이 되었다.

많은 회사들이 폴란드에 진출해 짭짤한 재미를 보고 있다고 한다. 그렇지만 그렇지 않는 회사들도 있다. 폴란드에 진출해 별로 재미를 보지 못하고 돌아간 한국인들의 말을 빌면, 폴란드는 노동력은 쌀 지 몰라도 노동효용력 차원에선 아주 열악하다.

효용력이니 이런 말을 좀 쉽게 바꾸어 이야기하면, 폴란드 사람들은 일을 안한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그 사람들이 감나무에서 감이 떨어지길 바라며, 안주하는 그런 게으름뱅이라는 이야기도 아니다. 폴란드인들은 정말 '집에 갈 시간을 잘 챙긴다'는 이야기이다.

폴란드에 진출한 어느 한국인 회사, 퇴근시간이 되려면 멀었는데, 한국인 앞으로 한 폴란드인이 머뭇머뭇 거리며 하는 말.

폴란드인 P: "저 오늘 집에 좀 일찍 가보겠습니다."
한국인 ㄱ씨: P의 눈을 빤히 쳐다본다, 퇴근시간도 아닌데 왜 가려고 하나 하는 의미의 눈길.
P:"저 내일이 우리 아들놈 생일인데, 오늘 들어가서 부인이랑 생일상을 차려줘야 되거든요."
ㄱ씨: P의 눈을 살며시 피하면서, 고개를 내젓는다. 가려면 가라는 말.
P:도 비제니아!

아들 생일잔치한다고 회사를 조퇴하는 P도 P지만, 그렇다고 두말 없이 직원을 보내는 한국인도 이상하다고? 이런 일은 여기에서 아주 빈번히 일어나기 때문에, 뭐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물론 퇴근시간을 지키지 않고, 일찍 퇴근을 하면 일당을 그만큼 손해본다. 그래도 P씨는 아들 생일상을 차려주기 위해 집에 간다.

폴란드는 세금제도나 사회보장제도에 관한 법률이 아주 복잡하다. 휴가에 관한 것도 그렇다. 1년에 한번 주어야하는 유급휴가를 빼고서도, 한국인들은 추가로 폴란드인들이 챙겨먹는 휴가날수를 세느라 머리가 빠진다.

일단 우리나라보다 휴가일수가 길어서 일년에 최소 18일이다. 여성들 같은 경우 그 외 아이들 교육을 위해 일년에 2일간 유급휴가를 가질 수 있다. 그렇게 어린 아이가 아닐지라도 아이가 아프면 직장에 나가지 않는다. 그냥 감기에 들어 콜록거리더라도 의사에게 가서 진단서를 받아오면 떳떳하게 쉰다.

의무적 유급휴가를 그 해에 받지 않으면 무효가 되거나 그런 것은 없다. 매해 다음 해로 연기되어 더 긴 시간으로 쌓여가는 것이다. 3년 직업 학교에 다니는 것도 직업으로 인정해 직업학교를 졸업하고 취직한 사람들은 3년간 휴가를 몰아서 먹을 수가 있고, 또 직장을 옮겼다고 하더라고 전 직장에서 휴가를 못 챙겨먹었으면 다음 직장에서 그 휴가기간을 챙긴다.

공휴일은 많이 없지만, 한번 공휴일이 걸리면 화끈하게 쉰다, 부활절, 노동절, 크리스마스, 새해 등은 휴일 당일 앞뒤로 3,4일 정도를 연이어 쉬기 때문에, 이 기간 폴란드 출장을 오는 것을 극히 삼가야한다. 비행기를 타고 오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도, 자기는 휴가 중이라는 이유로 얼굴도 내보이지 않는다. 어떤 일을 맡은 책임자가 휴가를 가 있으면 그 일은 자연히 공석이 된다. 그 일을 포기하던가, 아니면 그 사람이 휴가에서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야한다. 휴가 떠난지 얼마 안됐다면 엄청난 인내력이 있어야한다. 사랑은 오래 참고 언제나 온유하며...

근무일 중에도 퇴근시간은 칼처럼 지킨다, 아무리 자기 일이 많이 남아있다 하더라도, 퇴근시간이 되면, 옷을 갈아입고 경쾌하게 '도 비제니아' 외치며 집으로 간다. 직업에 따라서 퇴근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은 직업인들도 많이 있긴 하지만, 폴란드인을 고용하고 있는 한국인들의 말로는 폴란드인들은 일보다 퇴근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

게다가 8시간 근무면 7시간 반을 일에 투자하기를 바라는 한국사람들에겐 폴란드사람들은 출근 후 차 마시고 신문 보는 시간이 상당히 길어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상관이 있거나 말거나 느긋하게 차를 마시고 신문을 보는 그런 행동은 한국인이 언뜻 이해하기가 힘들다. 아무래도 일거리는 많아 죽겠는데...그러니 노동력이 아무리 싼들, 거기서 얻는 효율은 아주 떨어진다는 말이 나온다.

폴란드 사람들도 그런 사실을 아주 모르는 것은 아니다. '별 보며 출근해 별 보고 퇴근하는 한국인들을 보고 나라 경제를 좀 발전시켜라'는 말을 들으면, 하나 같이 그렇게 돈들 벌어서 뭐하나 하는 반응이 나온다. '한국사람들은 일하다 죽는다매?' 솔직히 폴란드에서는 과로사, 피로누적 등의 단어를 들어본 일이 많이 없는 것 같다. 피로회복제 같은 것도 많이 없다.

직장에서 퇴근한 폴란드인들은, 우리나라 사람들 같이 단란주점이나 포장마차를 전전하며 술 담배로 찌든 몸을 상관 욕을 하면서 달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아내와 아이들이 있는 집으로 달려가, 저녁을 함께 먹고, 그리고 집안일에 매달린다. 망치를 들고 창고를 고치고, 방을 고치고, 마당을 다듬고, 그리고 시간이 마시면 보드카도 좀 마시긴 한다.

휴일에 사람들은 우리나라 같이 텔레비젼 앞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주말농장에 가서 야채를 재배하거나, 이웃집과 친척을 방문해 대화로 시간을 보내거나, 별식을 만들어 가족들을 대접한다. 텔레비젼에도 우리나라 같이 주말 황금시간 같은 개념은 없다. 폴란드에서 유일하게 휴일없이 영업하는 곳은 꽃집이다. 폴란드에 와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여기저기 많이 들어선 꽃집이 기억에 많이 남을 것이다. 손님을 방문하는데 꽃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게 그리 이상한 것은 아니다.

아파트에 사는 사람이 아니라면, 현재 살고 있는 집을 직접 지은 경우인 경우가 많다. 주말마다 휴일마다, 그 사람들은 자신이 짓고 있는 집터에 가서 자녀들과 벽돌을 하나하나 올리면서, 자신의 집에 대한 애정도 같이 쌓아나간다.

폴란드에는 자동차 정비소 보기가 힘들다. 한가한 시간에 폴란드 사람들은 차 밑에 기어들어가 직접 차를 정비한다. 한국의 남자들 치고 그 차 밑에 고개를 디밀어 본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하긴 워낙들 바쁘니까.

솔직히 폴란드엔 놀 곳이 없다. 기껏해야 좀 화려한 시설의 오락실과 극장, 볼링장 정도, 폴란드 사람들 참 놀지 모르네 하고 핀잔을 줄지 몰라도, 솔직히 다른 여가가 필요 없기 때문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억지로 조성해 놓은 인공적인 공원이 아니라, 정말 자연적인 공간에서 그들은 인간적인 휴식을 즐긴다. 직장에서 도 비제니아 하고 작별인사를 던지고 나와서, 그들은 가족들과의 관계로 돌아가는 것이다.

부처님 눈에는 부처님만 보인다고, 폴란드 사람들은 일 좋아하는 한국사람들 눈에 한심한 사람들로 비치는 것이 당연하다. 그래서 한국사람들은 만나면 하나 같이, 퇴근을 일보다 잘 하는 폴란드 종업원 욕을 하다가도, 결국엔 많이들 이러한 결론에 이르게 된다

"맞아, 우리가 이상한 건지도 모르지. 그렇게 사는게 올바른 건지도 몰라"

피로에 누적되어, 자기 생활을 도저히 가질 시간이 없이 회사에 목숨 걸고 살아야하는 한국인 여러분, 이번 주말엔 가족들과 집을 함께 지어보시죠! Do widzenia! 다음에 또 만나요!

바르샤바 = 하니리포터 서진석 기자 http://my.netian.com/~perkunas

http://www.hani.co.kr/section-014007000/2001/06/01400700020010604171801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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