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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어로 배우는 한국인의 폴란드 살이 ⑤

Czy mowisz po polsku? (치 무비시 포 폴스쿠? 폴란드어 할 줄 알아요?)

폴란드에 가면 폴란드말이 쓰인다. 그건 당연한 이야기. 폴란드어는 영어나 독일어처럼 전세계적으로 많이 쓰이는 말도 아니라, 선뜻 폴란드어를 배우겠다고 달려들기가 상당히 힘들다. 또 그렇다고 거의 4천만의 인구가 사용하는 폴란드어는 중동부유럽어 중에서도 상당히 많은 인구가 사용하고 있는 말이라 무시할 수도 없다. 그런 이유로 폴란드어를 구사하는 한국인들은 많은 특혜를 누리고 있기도 하다.

폴란드어는 러시아어 같이 슬라브어에 속한다. 슬라브어답게 모음이 없이 자음만 연결되어 나오는 음절과 스키 츠키 하는 소리들이 많다. 한국인들이 가장 배우기 어려운 부분 중의 하나이다. 그리고 일단 영어와 독일어에 익숙한 한국인들이 접해보지 않은 어원들의 단어가 많다. 라틴어계의 단어들도 물론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요즘 들어 쓰이고 있는 외래어들도 전부 폴란드어 조어법에 따라 자기 식으로 바꾸어 표현하므로, 현지어를 모르면 간단한 공구이름도 이해시키기 힘들다.

폴란드에 현지 법인을 만든 한국의 한 대기업. 그 대기업에서 처음 해야한 일은 모든 문서에 나타나는 회사에서 쓰이는 연장과 공구이름을 전부 폴란드어로 바꾸어써야하는 것이었다. 우리나라 같은 경우 흔한 드라이버, 드릴, 나사, 볼트 같은 '국제어'들을 사용하므로 영어이름을 보았을 경우 혼동이 많이 생기지 않지만, 폴란드어에 경우 구멍뚫개, 나사돌리개식으로 의미에 따라 현지조어법으로 단어를 생성하므로, 폴란드어에 생소한 한국인들은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느끼는 것이 당연하다. 그 회사는 연장과 공구이름을 폴란드어로 바꾸는데만 수 개월이 걸렸고, 그로 인한 통역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회사마다 거의 그런 현실이므로 폴란드에서 통,번역사라는 직업은 확실히 고용을 보장받은 직업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일이 이렇게 되면 사람들이 영어를 못하는 것도 돈이 드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예를 들어 외국기업이 우리나라에 들어왔을 때는 그런 일로 엄청난 비용을 낭비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비용도 비용이지만, 일을 하기까지 기다려야하는 시간이 너무 길다. 그래서 외래어를 전부 순수현지어로 바꾸는 것은 지나친 억지이며, 어떻게 보면 국제화된 회사업무에 방해까지 줄 수 있는 일이다 라고 생각하는 것도 정말 무리는 아니다.

한국인과 폴란드인 사이에 통역을 하면서 느끼는 것은, 폴란드 현지어가 많아서 법인 설립시 돈이 들고, 회사업무 대기시간이 길어지고 하는 것보다는, 폴란드어의 경우 정말 본인이 특별분야에 문외한이고 배경지식이 없어도 일단 생소한 단어를 들었을 때 이해에 별 무리가 없다는 사실이다. 그런 반면 한국어는 같은 한국어로 듣는다 하더라도 정말 무슨 말인지 이해를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곳에 가다를 대어서 라인을 그은 다음에 직소로 홀을 뚫어서 그라인다로 에지를 처리해 줍니다. 판넬에 가다를 댈 경우 클러치로 꼭 프레스 해야합니다. "

가다라는 것은 바탕을 그리는 틀을 이야기하는 일본말이고, 라인은 줄,선이고 직소는 한자어 같지만 원어로 Jig saw라 불리는 직각톱을 말하고, 그라인더는 사포가 설치된 표면처리기구, 에지는 가장자리를 말한다. 판넬은 판자 그리고 클러치는 두 판자를 눌러 고정시키는 연장이고, 프레스는 누르다는 영어단어이다. 본인 뿐이 아니더라도 이 말을 곧바로 이해하는 사람은 그 분야에 종사한 전문가들이 아니면 없을 것이다. 이 말을 이해하는데 한국사람과 개인적인 이야기를 많이 해야했으며, 그러는 가운데 저 사람은 통역하는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이 아닌가 오해를 살 수가 있어 걱정이 많이 되었다.

만약 이 문장을 폴란드어 식으로 다시 옮긴다면

"이곳에 형틀을 대어서 선을 그은 다음에 직각톱(?)으로 구멍을 뚫어서 사포기계로 가장자리를 처리해 줍니다. 판자에 형틀을 댈 경우 쥐개(?)로 꼭 눌러서 고정해야합니다. "

단지 이런 전문적인 용어들뿐 아니더라도, 한국인들이 아무 생각없이 외래어로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단어들도 이미 현지어로 대다수 바뀌어 쓰이고 있다. DVD 플레이어 같은 경우 'DVD재생기', 하드 디스크 같은 경우 '단단한기억판' 등등.

이쯤 되면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배꼽을 잡고 웃을것이 뻔하다. 헤헤헤 단단한기억판이래! 무슨 북한의 문화어처럼 민족을 교화하기 위한 사상적 배경이 담긴 언어정책이 아닌가 생각을 할지도 모르고...

폴란드 옆의 리투아니아에 경우 리투아니아어언어심사위원회가 있어서, 그 기관은 새로 들어오는 외래어는 전부 리투아니아 현지식으로 바꾸어 보급하고 있다. 그 흔한 햄버거, 샌드위치라는 말도 리투아니아 현지어로 바꾸어 불리고 있고, 그 기관에서는 방송이나 언론에서 쓰이는 리투아니아어를 심사하여 오용이나 저속화를 막고, 심한 경우 벌금까지 징수하는 구실을 하고 있다.

폴란드의 경우는 그런 기관이 있긴 하나 사회적으로 큰 카리스마는 가지고 있지 않다. 특별히 그런 기관이 없더라고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폴란드어 조어법이 우선적으로 쓰이고 있다.

압제의 기간이 길고, 종속의 기간이 길었던 구사회주의 국가이므로 자신들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파괴된 문화를 재건하기 위한 노력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솔직히 이 나라도 남용되는 외래어 때문에 슬슬 말이 나오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 남용정도는 한국에 비해서 그리 우려할 정도가 아니다.

언어란 남이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사용하는 것이다. 언어는 의미를 전달하는 것이고, 언어는 새로 나타나는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새로운 어휘를 계속 만들어나갈 능력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언어로서의 가치가 없다.

폴란드는 우리와 근본적으로 배경이 다르므로 그곳의 언어현실을 보고 배울 것이 없다고 여긴다면 특별히 할말은 없다. 그러나 그런 폴란드인들의 언어사랑과 보전정신이 없었다면, 길고 길었던 압제의 역사 이후에 다시 유럽의 한 부분으로 부강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문화의 뿌리까지 뽑힐 위기를 이기고 다시 일어난, 폴란드를 비롯한 동유럽인들은 새로 밀려들어오는 국제화에 올바로 대처하기 위해 전세계에 관한 연구와 학습도 쉬지않지만, 내부적으로는 자신의 문화적 배경을 강화하고 입지를 굳건히 하는 일도 쉬지않는다. 그리하여 우리나라 같이 맹목적인 서구화와 미국화로 치닫는 국제화는 없고, 순수 우리말로 바뀐 외래어를 보고 우습다고 깔깔대고 웃는 양아치들도 없다.

회사설립시 돈이 들고, 외국인들과 소통이 어렵고, 쓸데없는 통역 비용이 많이 들어서 그냥 외래어를 놔두고 쓰는 것이 옳은가, 아니면 돈을 들여서까지라고 우리 언어의 순수성을 지키고 국제화사회에 대비하여 끊임없이 나타나는 새로운 의미를 전달하기 위한 조어법을 개발하고 보급하는 것이 옳은가. 솔직히 동유럽이 우리보다 경제적 기반이 약하긴 하지만, 국가를 평가하는데 그 기준이 단지 경제만은 아님을 염두에 두고 곰곰히 생각해 보자.

폴란드 바르샤바 = 하니리포터 서진석 기자 http://my.netian.com/~perkunas

편집시각 2001년06월19일16시19분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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