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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준·강철민"인생은 새옹지마"

1998년 2월. 순천효천고를 졸업한 2명의 대형 투수가 있었다. 당시 이 선수들을 길러낸 사람은 한국야구 최고의 테크니션으로 꼽히는 장호연(전 두산베어즈투수). 프로야구 선수로써 개막전 노히트노런이라는 대기록을 세우고 개막전의 사나이로 꼽혔던 투수였다.

순천효천고에 사령탑으로 앉으면서 그가 만들어낸 첫 작품이 바로 강철민과 조용준이었다. 하지만, 동기였던 두 선수는 모든 면에서 서로 엇갈린 조건을 갖춘 선수들이었다. 강철민이 192cm에 이르는 장신에서 뿜어지는 강속구가 일품이라면 조용준은 176cm의 왜소한 체구로 구석구석 찌르는 제구력을 바탕으로 던지는 투수.

고교를 졸업하면서 강철민과 조용준의 운명은 엇갈리기 시작하였다. 처음 빛을 본것은 강철민. 98년 방콕 아시안게임에 참가하면서 병역면제의 혜택을 받았고, 그 후 한양대의 든든한 에이스로 성장하면서 4년간 아마국가대표를 지냈다.

그에 비해 조용준은 연세대에 진학해서 뒤늦게 빛을 본 케이스. 제구력을 바탕으로 피칭을 하던 조용준의 구속이 140km대를 넘으면서 대학야구 최강 대열에 합류하였다. 그리고 조용준은 나날이 성장해 나갔다. 정대현과 대륙간컵에서 쿠바를 이겼던 것은 그의 기량이 절정에 이르렀음을 보여준 장면.

하지만, 이들의 엇갈림은 이제 시작이었다. 두 번째 엇갈림은 강철민이 고교 졸업 당시 해태(현 기아)에 고졸 우선지명을 받았지만, 모기업의 부도로 강철민의 장래는 불투명했다. 그에 비해 현대유니콘스에 2차로 지명을 받은 조용준은 장래를 보장받은 것이나 다름없는 탄탄대로를 달렸다.

그러나, 신은 결코 이들에게 운명의 장난을 멈추지 않았다. 강철민과 함께 대학야구 양대산맥을 이루었던 조용준은 시드니올림픽 최종 엔트리 선발되는 행운을 안겨주었다. 팀 동료 이현곤과 함께. 하지만, 도핑테스트 거부로 인하여 대표팀에서 박탈되는 운명에 처했고, 결국 그 여파는 이번 야구 월드컵에도 이어지는 비극을 낳았다.

또한 잘나가던 현대유니콘스가 예전처럼 큰 손 노릇을 할 수 없는 위기에 처하면서 조용준의 발걸음을 더욱 무겁게 만들고 있다. 이에 비해 강철민은 4학년에 오르면서 진로에 급반전이 일어났다. 바로 해태타이거즈가 기아타이거즈로 인수된 것이었다.

그리고, 김진우가 7억 2천만원을 받으면서 입단계약을 맺으며 희망을 갖게 했고, 결국 5억 2천만원(기아타이거즈(전신 해태포함) 대졸신인 최고 계약금)에 자신의 종착역에 안착했다. 아직 조용준은 입단에 대한 얘기가 나오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 자신의 경쟁상대인 이대환(동국대4)이 있다는 것이 걸림돌이다.

더구나 상대는 투수왕국 현대 유니콘스가 아닌가. 현재까지는 강철민의 길이 탄탄대로이지만, 다시 언제 뒤바뀔지는 모르는 일이다. 프로에서 대결을 벌여야 하는 이들의 운명이 얄궂기만 하다. 엇갈린 두 선수들의 인생유전에서 우리는 인생은 새옹지마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다.

하니리포터 오윤록 www.yankeesm.pe.kr

편집시각 2001년11월14일11시17분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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