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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신교, 정말 그렇게 대책없는가?

<'개독교에 대한 단상①'을 읽고>

기독교(개신교)는 배타적인 종교이다. 다른 종교의 사상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런 양상이 다른 종교에 없는 것이 아니지만 개신교는 더욱 그 배타성의 색채가 강하다고 말할 수 있다.

더욱이 현재 개신교는 한국사회에서 갖는 모순점도 여러 가지 있다. 교회예산, 즉 헌금자체의 용도면만 보더라도 개신교의 틀 안에서만 돌뿐 사회의 이익을 위해 쓰여지지 않는다. 즉 그들이 말하는 기독교의 중심점인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요.. 소리나는 쾡가리가 되고..., 믿음 소망 사랑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 사랑의 실천이 사회에서 잘 이루어 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면에서만 보면 하니리포터 김태혁기자가 그의 글을 통해 보여준 개신교에 대한 반감은 어느 정도 이해를 할 수 있다. 그러나 김태혁 기자의 주장의 기준이 너무나 획일적이다. 개신교가 한국사회에서 위험수위를 넘고 있다는 주장에 그 논거가 너무나 빈약하다는 말이다.

한국에 이런 말이 있다. “한국의 목사 똥은 써서 똥개도 먹지 않고 목사사모가 1년 동안 흘리는 눈물을 담아 모으면 수 백병이 된다.” 그 만큼 교회사역이 힘이 든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이들이 교회를 이루어 나가는 것은 사명감에서다. 즉 그들이 말하는 소명이다.

아직도 한국 교회의 목회자 80% 이상이 이삿짐을 완전히 풀지 못 하고 년마다 이사를 한다. 정착이 안되어 돌아다닌다는 얘기다. 현재 대교회의 시작은 대부분 천막에서 시작되었다. 또한 지금도 대부분의 목회자들이 굶기를 밥먹듯 하며 목회를 하고 있다. 이런 이들의 모습이 사회에 해악의 존재로 남기 위해 40일 금식을 해가며 그들의 신에게 매달리지는 않을 것이다.

개신교가 가지는 그들의 종교교리를 뜯어 보면 특이한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들은 신약시대의 예수를 믿으면서도 구약시대의 유대인의 모습을 그들의 거울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모세가 이스라엘국민들을 이끌고 가나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사막에서 40년의 여정의 생활을 보내는 동안 수 많은 기적과 이적이 나타났다. 만나와 메추라기사건, 홍해사건, 애굽의 10가지 재앙, 여리고 전쟁 등.. 그러나 유대인들은 늘 그들 앞에 펼쳐지는 미라클에도 불구하고 불평하고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에 매몰되었던 것이다.

즉 이런 모습이 선민족 이스라엘의 모습이었고 또한 지금의 개신교인들은 선택받은 인간들임에도 유대인들과 같은 그 모습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다. 그러면서 늘 자신을 돌아보기를 강건한다.

또한 개신교의 종교 생활을 보면 유별나다고 말할 수 있는 점은 지나치게 많이 모여 기도시간을 수도 없이 갖는 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유별난 기도에는 어느 정도 내용면에서 절차가 있다. 먼저 회개로 시작하고 감사를 하며 소원을 하고 마지막으로는 아멘이라는 믿음의 표현을 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회계를 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지 못하고 그들의 기도가 하늘에 상달되지도 또한 그들의 신이 듣지도 않는다고 생각을 한다. 그들의 회계는 상당히 포괄적이다. 개인적인 사안부터 교회 교단이 저지른 일 그리고 시국에 대한 반성들까지...

그리고 개신교들은 유별나게 타종교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다른 신을 섬기는 이들을 강권하여 기독교로 개종시키려는 모습이 눈에 많이 뛰고는 한다. 그런데 개신교들은 정작 그들이 황당한 종교생활을 하고 있는 것에 그들은 자기들이 종교생활을 한다는 것 자체를 거부한다. 그들에게 있어서 그들의 예수를 믿는 것은 종교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얻는 일인 것이라고 주장을 한다.

즉 예수를 믿는 것은 구원과 관련이 있고 이는 생명을 얻는 것이지 하나의 의례적인 종교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논리다. 예수를 섬기는 모습은 다양할 수 있고 종교도 다양할 수 있지만 생명은 “예수믿음” 거기서만 나온다고 보고 있다. 그들의 타종교 배타성은 여기서 시작이다. (여기서 말하는 배타성은 일반적인 것을 가리키는 것이지 개별적인 사건에 대한 배타성을 말하지 않고 있음을 밝힌다.)

김태혁기자는 <그 누구도 개독교를 비판하지 못할 것이며 사람들 앞에서 개독교에 대해서 한마디 비판적인 말도 못할 그런 파쇼적인 시대가 올 것이다. 아니, 이미 그 시대는 왔다.>라고 단언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주장하기에는 아직도 한국의 개신교가 자체내에서 또는 그들의 종교생활적인 양식면에서 스스로 너무나 많은 제어장치와 통제장치를 가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기독교 정치인들의 비리가 터질 때 회계하는 것은 일례화가 되어 버렸다. 김영삼 정권 당시 부산의 있는 목회자들이 모여 시국에 대한 반성과 회계의 기도를 했다고 한다. 자신들이 저지른 일련의 행동에 대한 반성은 말할 것도 없다.

김태혁 기자가 언급한 실례들로 분명 개신교는 비판 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이런 것이 한 단체가 성장하였을 때 오는 조직성장에 따른 부작용인지 아니면 한국의 개신교가 자체적으로 문제가 있어 고질적으로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하고 있는지 먼저 검토가 되고 논거가 제시되어야 한다. 이것이 김태혁 기자가 이번 주제를 다루기전 거쳐야 할 전제조건이다. 그러나 김태혁기자가 제시하고 있는 논거로는 이런 전제조건의 기준을 설정하기에도 부족하다.

무엇 보다 유감인 것은 김태혁기자 자신의 주장에 너무 비분강개를 하고 있다. 감정이 너무 앞서고 있다는 말이다. 논거가 충분하지 않음은 말할 것도 없다. 글의 제목이 "개독교의 단상 1"이라는 것을 보니 앞으로 이 주제로 계속해서 글을 쓸 계획임을 알겠다. 좋은 비판을 바란다. 그러나 논거가 있는 주장이 균형성 있는 글을 유지시킨다는 사실을 잊지 않기를 또한 바란다.

분명 기자의 비판에 많은 기독교인들도 이에 대한 회계의 기도가 있을 것이다. 물론 일부 몰상식한 기독교인들이 과격하게 행동하겠지만 기자도 한국 개신교의 교단이 100여개 이상이라는 것을 잊지 말기를 바란다. 한 특정교단의 반응으로 모든 교단을 욕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하니리포터 강대진 기자 kangdaejin@hotmail.com


  • '개독교'에 대한 단상 ①



    편집시각 2000년11월21일14시48분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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