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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문부식과 '광기의 시대'

지난 13일 조선일보에 실린 "82년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 주도한 문부식씨 '동의대 사건 민주화 인정은 납득할 수 없다"는 제목의 인터뷰로 지식인, 운동 사회에서 논란이 된 바 있는 문부식씨를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문부식씨는 1982년 3월 18일의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속칭 부미방)으로 구속되어 사형선고를 받았다가 6년 9개월만인 1988년 12월 석방된 바 있고, 석방된 지 7개월만에 '한미문제연구소사건'으로 다시 구속되어 1년 6개월형을 선고받고 만기출소했다. 문부식씨는 현재 도서출판 '삼인'의 주간과 계간 [당대비평]의 편집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시집으로 [꽃들](1993년)이 있으며 지난 8월 19일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서/광기의 시대를 생각함]을 발간했다.

다음은 문부식씨와의 일문일답

-지승호 -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서/광기의 시대를 생각함]은 어떤 책인가요?

=문부식- 광주에 대한 이야기에서부터 시작하지만, 어디까지나 그것은 '광주사건' 자체에 대한 것이 아니라 그 역사적 비극에 대한 기억과 관련된 것입니다. 포스트 군사독재 이후의 광주의 기억이 어떻게 변형, 통용되어 왔는지가 한 단락이고, '민주화 운동 보상과 관련해 과거의 희생과 상처들을 어떻게 대면해야 될 것인가?, 어떻게 치유하고 회복할 것인가?'하는 것과 우리 사회의 반공주의가 얼마만큼 지성을 불구화시키고, 사람들을 파괴했는지에 대한 내용들이 있습니다.

-지승호 - 조선일보 인터뷰 때문에 논란이 많습니다. 어떻게 된 겁니까?

=문부식 - 선택적 인터뷰는 아니었습니다. 책이 나왔을때 그것이 제대로 읽힌 뒤에 서평이 쓰여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피상적인 소개에 그치는 경우가 많습니다.출판사하는 입장에서 언론사를 다르게 대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제 의견에 대해 역사문제연구소가 공개토론회를 계획했고, 저는 그전에 책이 나오리라고 생각했는데, 출간이 늦어졌습니다. 책에는 동의대 사건과 관련된 글이 9개가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토론회에서 언급되었는데, 그것보다 더 현명한 방안이 있었지 않나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어쨌든 공개토론회에 한겨레, 조선일보 두 신문사 기자가 왔었는데, 예민한 사안이라 책이 나오기 전에 이야기하지 않았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책이 나온 후였다면 아마 토론의 전개가 달라졌을 것입니다.

그 기사 내용은 공개토론회에서 나온 얘기가 대부분이었는데, 조선일보 기자가 전화로 기사화 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혀왔습니다. 그러나 제가 책이 나온 후 했으면 좋겠다고 부탁을 해서 기사화가 보류되었는데, 토론회 관련 기사가 한겨레 신문에 먼저 보도가 되었습니다.

기자는 현장취재한 것을 기사로 쓸 권리가 있기 때문에 가능하면 정확한 이야기가 전달되었으면 해서 인터뷰에 응하게 되었습니다. 조선일보에 인터뷰가 실림으로서 논의가 빗나가거나 왜곡되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기사화를 막을 수 없다면 보다 정확하게 전달해야겠다는 뜻에서 인터뷰에 응한 것이지, 의도적으로 조선일보를 일부러 선택한 것은 아닙니다. 조선일보에 실림으로서 민주화 운동을 왜곡하고, 비판하고, 그것의 정당성을 공격하는데 쓰인 정치적 효과 등을 생각하면 그 발언에 대한 책임을 회피할 생각은 없습니다.

책 때문에 인터뷰를 한 것인데, 그 부분에 집중해서 기사화되었고, 기자 역시 '제목이 그렇게 나온 것이 아쉽고, 미안하다'고 얘기했습니다. 부분을 확대해서 집중했고, 문화면 기사임에도 제목이 사회면 기사처럼 나간 것에 대해 그 기자분이 유감의 뜻을 밝혀주시긴 했습니다.

-지승호 - 출판사를 하는 현실을 말씀하셨는데, 출판사를 하시는 분들의 경우 ‘책을 팔기 위해서라면 영혼이라도 팔 수 있다’는 식으로 절박하게 말씀하시기도 합니다.

=문부식- 어, 그 정도로 이야기한 것은 아닌데.(웃음) 다 그렇지는 않다고 봅니다. 의도적으로 거래를 한다든지 그런면에서 이야기한 것은 아닙니다.

-지승호 - 저도 그런 뜻으로 말씀드린 것은 아니었습니다. 지식인으로서 조선일보에 기고하거나 인터뷰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문부식 - 서평은 자기들이 알아서 하는 거지만, 인터뷰까지 할 필요는 있느냐 그러시는데, 조선일보의 권력에 대한 견제, 저항이라는 측면에서 안티조선 운동의 가치는 높이 평가합니다. 저의 불철저함, 타협적인 태도이기도 하겠지만, 일부러 의도적으로 조성하거나 제안하지는 않겠지만, 책을 낸 해당 필자, 해당지식인의 의사가 그렇지 않다면 ‘하지 마십시오’라고 말하는 것도 어색하거니와 ‘출판사가 그렇게 할 수 있느냐’ 라는 생각도 가지고 있습니다.

같이 작업을 해서 책을 냈지만, 필자의 판단에 맡길 수 밖에 없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인터뷰보다는 서평을 선호합니다. 하지만 그 건은 현장발언이었고, 거기에 대해 비교적 정확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응한 것입니다. 책에 쓴 것을 필자가 나서서 다시 이야기하는 것이 저는 좀 어색해서 인터뷰를 선호하지는 않습니다.

-지승호 - 어떤 분은 ‘조선일보는 극우 언론이며 이 신문에 기고, 인터뷰를 하지 않겠다는 소신을 어긴 것’이라고 비난하기도 하는데요.

=문부식 - 해명하고, 사과하라는 이야기는 저도 들었습니다. 만약 입장의 변화라면 사과해야겠지만, 그 전에 그렇게 얘기한 바 없습니다. 조선일보를 극복하자, 조선일보 제 몫 찾아주기 운동에 대한 것은 이미 당대비평 12호에 입장을 밝힌 바 있습니다. 조선일보 기고, 인터뷰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공방에 의문을 갖기도 하구요.

불철저함인지 몰라도 여러 매체 중 하나로 대하고 있습니다. 아마 그 이야기는 변희재씨와 했던 ‘비평과 전망’ 인터뷰 때문에 나온 것 같은데, 아마 그 제목 때문에 ‘당대비평의 편집위원들은 조선일보에 인터뷰, 기고를 하지 않지 않겠느냐?’(웃음)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저와 당대비평을 일치시키거나, 당대비평이 하나의 입장으로 통일되어 있다고 간주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일부러 피해가면서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고, 결정적인 차이에 대해 확신을 못하겠습니다. 당대비평 내에서도 여러 가지 입장이 있습니다.

조선일보 기고를 한다고 해서 같이 일을 못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 인터뷰 역시도 필요에 의해 제목을 뽑은 것 같더군요. 제목이 전체적인 이야기 내용에 맞춰지기 보다는 적당한 선정성이 포함되어 왜곡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편집자는 논지에 접근하려는 성실성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점에서 괴리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논지의 핵심을 집어내려고 노력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기사 제목을 보면 조선일보 기고나 인터뷰를 하지 않는다는 선언처럼 나와있지만, 내용을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전향이나 항복한 것은 아닙니다.(웃음)

-지승호 - 그렇다면 언론개혁운동의 하나인 ‘안티조선’ 운동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문부식 - 어떤 분들이 어떤 방법을 선택해서 기고나 인터뷰를 하지 않겠다고 하는 입장은 존중합니다. 하지만 그 방법론에 내가 동참하느냐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동참을 강요하는 방식이어서는 안됩니다. 추구하는 모습이 다른 사람을 설득할 수 있어야지, 그렇지 못한 사람을 몰아붙이는 방식이어서는 안됩니다.

그 분들의 문제의식에 동의하고, 방법 역시 존중하지만, 제가 아나키스트보다는 어슬픈 인문주의자라고 생각할 때, 그런 방법은 인문주의적인 것 같지 않습니다. 얼마전 강준만 교수도 ‘이 방법이 옳다고 몰입하는 것이 잘못일 수 있다’는 말씀을 하셨더군요.

몰입함으로써 다른 사람에 대해 공격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이 옳으냐는 것은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인물비평이나 평전은 가장 어려운 분야입니다. 사람이나 사회를 통합적으로 이해한다는 것은 그만큼 어려운 일입니다.

인물비평, 실명비판이 필요하지만, 한 사람을 평가하는데 있어서 ‘과연 올바른 이해에 도달하고 있는가?’, ‘일관성 있게 파악하고 있는가?’에 의문을 가지고 고민을 해야합니다.

한편으로는 사회적 모순 파악에 있어서 ‘조선일보 환원주의’에 빠져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물론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조선일보만 없어지면 모든게 해결된다는 식의 도미노 이론, 중심타격론 식의 얘기는 옛날 방식의 이야기입니다.

안티조선운동이 조선일보를 긴장시키는 등의 일정한 기여가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존중하지만 ‘조선일보 환원주의’에 빠질 우려는 경계해야합니다. 우리 사회에는 좌, 우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진영 밖으로 시선을 돌린다면 그런 세력 이외에도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봅니다. 특정한 운동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민주주의를 바라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지승호- 우리의 반성도 필요하지만, 국가 혹은 기득권의 거대한 폭력을 지적하기도 부족한데, 그에 맞서 항거하는 개인이나 집단의 저항폭력을 문제삼느냐는 지적도 있는데요.

=문부식 - 동의하기 힘든 것은 ‘타협적인 지식인들이 조선일보에 기고하지 않았으면 벌써 달라졌을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좀 더 자기 엄격성을 가지고 접근할 때 민주화 운동이 더 설득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비판하고자 하는 대상의 불의함이 우리의 정당함을 보장해주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운동에 몰입하는 분들은 ‘내부의 비판’은 적을 이롭게 한다는 식으로 진영론에 몰입되면 자기 성찰에 소홀하거나, 자기가 놓치고 있는 맥락이나 실수를 상대방에게 전가하는 방식이 되기 쉽습니다.

상대방 집을 무너뜨린다고 우리집이 저절로 좋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진영론에 몰입되면 자신의 결점을 보지 못하는 수가 있습니다. 일시적으로 불리하더라도 우리 안의 문제를 극복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올바른 태도라고 봅니다. 상대의 문제에 대한 지적과 그것은 동시적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조선일보 인터뷰가 제 정치적 실수이고, 오류일수도 있고, 그렇게 중요한 고민도 안해봤느냐고 질책할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조선일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거나 조선일보 활용론 이런 식의 이론을 세우고 싶지도 않습니다. 저는 지금 고민의 과정에 있지 완결된 것이 아닙니다. 전 그 분들과 다른 문제, 다른 고민을 하고 있는 과정입니다. ‘그것은 기본이야’라고 말씀하시면 저는 할 말이 없습니다.(웃음)

-지승호 - 문학평론가 김명인씨가 “새삼 내 안의 폭력을 거론하며 문제제기하는 것은 2000년대의 인간으로서 80년대의 인간을 몰아붙이고, 학대하는 일”이라고 했는데요.

=문부식 - 비유적 표현이 과장되어 있지만, 김명인씨의 견해일 수 있다고 봅니다. 80년대 운동은 비공개, 소수였고, 대중운동세대로 넘어오면서 넓어지고, 얇아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운동이 대중화되면서 앎과 실천 사이에 괴리감이 발생하기 시작했습니다. 실제 운동주체들이 공부를 하지 않았구요.

김명인씨는 과잉된 비판이 아니냐는 지적인데,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중요하게 따져봐야할 부분이 있는 발언이고, 경청할 수 있는 견해라고 생각합니다.단, 이제와서 이 문제를 제기햐냐고 하는 것은 비판하는 상대방에 대한 기본적인 성실함을 가지지 못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91년 출옥후부터 학생운동의 경향에 대한 비판과 반성적인 성찰을 해왔습니다. 상당히 오래전부터 해온 것이죠. 예전에 남총련이 아메리칸 센터를 공격하다가 경찰차 불태우고 공개사과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 후 남총련에서 강연요청이 와서 기분 나빴습니다. 방화범이라 부르는 것 같아서요.(웃음) 그들은 격려를 원했을지 모르지만 전 그 자리에서 학생운동의 잘못된 부분을 비판했습니다.

‘노동운동에는 직업적 운동가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직업적 학생운동가는 있을 수 없다. 그들은 학교를 떠나는 것이 좋다’구요. 학생운동이 전략적 중심으로 서야한다고 고집하는 것은 오류입니다. 청년학생운동이 전략적 중심에 서야만 한다는 사고방식 역시 잘못된 것입니다.

8월에는 통일운동 이런 식의 달력운동방식 역시 지양해야합니다. 이번 인물과 사상 9월호에도 제 얘기가 실렸던데, 강교수의 장점 중 하나가 자료를 철저히 검토하는 것입니다. 상대방을 비판할 때 꼼꼼히 자료를 살펴보고, 그것을 토대로 비판하는 성실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다 읽어야지만 비판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비판할 때, 그것의 맥락이 뭘까 정도는 고민해줘야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강교수의 비판은 그것이 적합하냐, 아니냐를 떠나서 제 글을 많이 보고 쓴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지승호 - 강준만 교수 얘기가 나와서 묻는 건데요. 강 교수가 임지현 교수의 조선일보 기고에 대해 ‘매명주의’라고 비판한 적이 있지 않습니까?

=문부식 - 임교수와는 개인적으로 가장 많이 이야기한 분입니다. 그래서 공정할 수 있을까 의문이지만(웃음) 조금 과잉되고, 과장된 부분이 있다고 봅니다. 조선일보에 이름이 나서 유명해졌다는 것은 임교수의 지적실천에 대한 과소평가가 아닌가하는 생각입니다.

매명의 측면도 가질 수 있지만, 매명주의라는 것은 다릅니다. 그건 계산된 이름팔기라는 것이거든요. 임교수도 즉각적으로 대응한 측면이 있습니다. 감정과잉의 분위기 때문에 서로 놓쳐버린 맥락들이 있는 것 같아요. ‘두더지’란 시를 인용한데 강교수가 발끈했죠.

문학적 비유고 그 시에서는 두더지를 연민의 대상으로 본 것이긴 한데, 사람을 동물에 비유한 것에 기분이 상한 것 같아요. 그런 식으로 감정들이 상해가는 것은 피했으면 합니다. 일리있는 비판, 놓친 부분에 대한 비판은 수용해야겠지만, 맥락을 넘어선 인신공격, 언뜻언뜻 비치는 악의는 자제할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논란이나 상호비판을 제 3자적인 입장에서 지나치게 말리는 것도 곤란한 것 같구요.

-지승호 - 혹시 진중권, 강준만 논쟁 보셨습니까? 진중권씨는 강준만씨의 철저한 자료수집이 어떨땐 ‘원형감옥’처럼 느껴진다고 하기도 했는데요.

=문부식 - 그럴 수도 있겠지만, 강교수에 대한 성실함이 부족해서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자료주의가 빠질 수 있는 함정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난 너에게 관심이 있는데, 넌 왜 없냐?’ 이런 식의 우월감(?)으로 논쟁에 임할 수도 있구요. 논지의 정당함을 자료의 양이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니까요.

-지승호 - 전 그것이 본의 아니게 비판을 사전봉쇄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지 않나하는 생각입니다. 어떤 사안에 대해 논쟁을 하고 싶어도 그 사안을 떠나 과거의 모든 데이터가 공격에 동원된다면 웬만한 사람은 논쟁할 엄두를 못낼 것 같기도 합니다.

=문부식 - 그럴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제가 얘기하기 힘든 부분인 것 같습니다. 원론적으로 얘기하자면 개인이 감당하고 분석할 수 있는 자료는 한정되어 있을 수도 있고, 다 안다는 것이 다 모르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지승호 - 국가폭력을 옹호해온 조선일보에 정치적으로 예민한 주제를 털어놓음으로서 결과적으로 이용당했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문부식 - 결국 ‘왜 하필이면 조선일보냐?’하는 것인데요. 사실 제 책의 90% 이상이 국가 폭력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우리 안의 광기라기 보다는 국가가 강제화하고 있는 규율을 내면화하는 부분까지 같이 성찰해보자는 거죠. 한국 사회의 국가주의, 국가폭력에 대한 비판이 주입니다. 조선일보를 제 식으로 비판해온 부분도 많구요. 조선일보가 문제삼은 사안에 대해 꽤 많은 문제를 제기해왔습니다. 아무튼 유감스럽게는 생각합니다.

공개토론회에 다른 매체가 와서 보도했더라면 이렇게 소모적인 논쟁은 피할 수 있지 않았겠느냐는 생각이 듭니다. 동의대 문제를 이야기하는데 조선일보에 실리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았다고 봅니다. 하지만 현장취재를 막을 수는 없는 것이고, 왜곡과 과장을 피하고 싶어 인터뷰에 응했습니다. 거기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구요. 불가피했다 해도 사회적, 정치적 효과에 대해서는 비판도 받아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괴로웠던 것은 그것입니다. 사설, 주필의 칼럼을 통해 이상한 방식으로 옹호되고 있고, 가까운 쪽으로부터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오류를 중심으로 한 비판은 지식인으로서 환영하지만, 이제는 그런 논란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 이미 책이 나왔고, 여러지면에 이야기가 나가고 있습니다. 최근 현대사에 대한 것으로 논쟁의 지점들이 옮겨갔으면 좋겠습니다.

-지승호 - 윤평중 교수는 ‘이번 논란이 열린 사회의 실현에 보탬이 될 수 있는 가능성에 주목해야한다’고 했는데요. 논의가 어떤 식으로 전개되었으면 하십니까?

=문부식 - 짧은 시론이라 그 분이 뭘 얘기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긍정적으로 얘기해서가 아니라 ‘뭘 지점으로 삼자’는 선언적 제언으로서 동의합니다. 그것은 서로 같이 찾아내야할 것입니다. 윤교수는 일상적파시즘 테제라고까지 표현했지만, 이념의 정합성, 타당성을 함께 토론해보자는 추상 수위에서 제언한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 사회가 단절적으로 진행된 것이 아니라 과거 군사정권의 물적 기반, 정신적 기반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최근대사와 직결된 것을 어떻게 반성, 성찰하느냐에 따라 향후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봅니다.

이제 특정한 분야가 아니라 소수자의 문제들, 좀 더 다양한 사회운동에 대한 의제들을 준비해야합니다. 진보운동이 자기를 반성하는 것이 상대방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를 준비시키는 것으로 작용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이적행위로 표현하는 것은 사회적 실천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비판에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자기반성, 성찰을 함으로써 다른 부분을 반성케하거나, 다른 사람을 설득할 수 있습니다. 극우세력이든 자유주의적 지식인이든간에요. 그들이 도덕적 압박을 받을 수 있게 해야합니다.

과거의 양진영론은 설득력을 갖기 힘듭니다. 운동이 좀 더 다양하게 전개되야한다는 것을 왜 이해하지 못할까요? 예전엔 중심과 주변이 존재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중심문제가 해결되지 못하면 다른 문제를 제기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소수의 다양한 문제를 제기하면서 전선을 넓혀가야 합니다. 다양한 주체들이 평등하게 연대하는 것을 상상해야합니다.

과거의 이념이나 운동방식에 대한 비판을 배반으로 보는 것은 상상력의 부족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저는 한국사회운동을 폭력이라는 코드로 읽으려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상대적으로 외국에 비해 덜 폭력적이었다고 봅니다. 하지만 폭력을 이론화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고 봅니다. 쉽게 이론화된 측면, 과잉방어의 측면도 있었다고 봅니다. 한국의 특수한 상황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학생운동이 퇴조하게 된 계기가 된 어느 사건에 대한 인터뷰에서 ‘연세대 대첩’이라고 성공적인 투쟁이라고 평가를 호도하는 것을 봤습니다. 그때 ‘쇠파이프를 준비한 적 없다’고 할 것이 아니라 ‘왜 준비했다. 공권력에 항거할 수 있는 수단은 그것 밖에 없었다’라고 정직하게 말해야합니다. 그럼 쇠파이프는 어디서 나온 겁니까? 적이 나쁘기 때문에 ‘우리는 속여도 된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지승호 - 홍윤기 교수가 “적지 않은 이들이 언어적 폭력을 당하고 있다고 느낀다. 어떤 이들에게 폭력은 자기에게 남은 자기 표현의 마지막 매체일 수 있다”고 했습니다.

=문부식 - 전적으로 맞는 말이고, 멋진 말이고, 실제로 그렇습니다. 하지만 모든 게 정당한 폭력이었다고 얘기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는 겁니다. 자기 성찰을 해야한다는 거죠. 바우닌의 ‘전쟁의 슬픔’에 보면 북베트남 민족해방투쟁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전쟁에 길들여져 있다가 전쟁이 끝나는 날, 적들의 여성 시체를 발로 차고, 쓰레기 더미에 던져버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불가피하게 쇠파이프를 들더라도 상대방에 대한 연민이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은 다릅니다. 폭력에 대한 감수성이 ‘성찰’이 없는 경우 무뎌집니다. 프락치로 오인한 사람을 운동의 이름으로 죽이는 경우도 있었지 않습니까? 그런 것에 대한 책임은 져야합니다. 수천명을 죽이고도 책임지지 않는 권력과 다른 점을 보여줘야 합니다.

‘우리 안의 폭력을 반성해야지만, 국가의 폭력을 제대로 성찰할 수 있다’는 말에서 제대로에 방점이 찍혀야지, 순서론이 될 수는 없습니다. 우리 안의 폭력을 반성한 다음에야 국가의 폭력을 성찰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분단체제하에서 한국의 국가 권력은 ‘국가 안보’를 명분으로 자행한 극악한 폭력은 물론이고, 자신이 행사해 온 모든 폭력을 정당한 공권력 행사였다고 주장해왔습니다. 이러한 권력으로부터의 폭력은 그에 비례하는 다른 형태의 저항의 폭력을 낳게 되고, 어느 순간부터 폭력은 상호적인 것이 됩니다. 이렇게 폭력이 연쇄와 순환의 법칙을 따르게 될 때 폭력은 반성의 계기를 찾기가 더욱 어려워집니다. 폭력에 대해 숨기기는 대항폭력의 경우도 마찬가지라는 거죠. 저 역시 국가폭력과 저항폭력을 동일시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무차별적으로 섞는 것은 반대하지만, 폭력에 대한 성찰은 동시적이어야 한다는 것이죠.

-지승호 - 그렇다고는 하더라도 국가폭력에 대응하려고 했던 사람들에 대한 과도한 공격일 수도 있다는 비판은 여전히 남아 있는데요.

=문부식 - 군사정권의 폭력행사가 다반사로 이루어지고 현실의 정세를 변화시켜야 하는 절박한 요구가 존재하던 시기에 운동진영의 과잉된 폭력들을 감추는 것은 상황 논리상 이해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상당 기간이 지난 지금도 과장된 명분에 의해 뒷받침되고 갈수록 관성화되어 갔던 지난 시기의 폭력들과 그것이 낳은 결과들에 대한 성찰이 지체되고 있는 현상은 더 이상 옹호할 수도 납득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적과 싸우면서 닮아가는 것, 우리 안의 파시즘을 비판하자는 것은 우리 안에 남아 있을 수 있는 국가폭력을 보자는 것이고, 국가의 광기가 내 안에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성찰해보자는 겁니다. 국가폭력 비판하기 바빠서 못한다는 것은 과장된 것입니다. 상주도 매일 울기만 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국가폭력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사람이 정작 자기 쪽의 폭력에 둔감할 수는 있더도, 자기 자신의 폭력과 허위에 진정으로 엄격한 자가 현실의 불의한 권력에 무관심한 경우는 없습니다.

-지승호 - 조선일보는 “80년대의 폭력과 광기에서 벗어나고 싶었다”는 맥락으로 운동진영을 비판하는데 사용했는데요.

=문부식 - 조선일보는 언제나 그랬습니다. 모든 논의와 맥락을 자기화하는 것, 그것은 조선일보의 탁월한 능력입니다. 그런 재주로 버텨온거죠.(웃음) 제가 스스로 잘 변별해내지 못하고, 설명하지 못하는 한계도 있을 수 있습니다. 차별이 있는 것을 균질화하거나, 무조건 섞음으로서 문제를 호도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한나 아렌트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폭력은 정당화될 수는 있다. 그러나 정당한 것은 아니다”.

이 말처럼 폭력은 항상 정당화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폭력의 확대는 그것을 정당화하려는 이데올로기를 야기합니다. 폭력이 본질일 수는 없으며, 폭력이 이론화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제가 정교하지 못했고, 조선일보에 인터뷰가 실림으로서 빌미를 줄 수 있었다고는 생각합니다.

-지승호 - 시집도 한권 내셨죠? 그 중에서 '목숨을 위하여'라는 시에서 '상고마저 기각되면 반성문 한 통 쓰도록 하자는 아버지의 부탁에 가슴이 찢어졌다'는 구절이 나오는데요. 반성문으로 목숨을 구걸하게(?) 만드는 국가의 폭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문부식 - 김대중 정부하에서도 준법서약서는 강요되고 있습니다. 아직 국가가 사회구성언의 양심에 간여하는 수준이죠. 그것이 이번에 나온 책 중 몇가지 글의 주제이기도 합니다. 준법서약서를 쓰는 문제에 있어서는 지나치게 비판한 면도 있는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는 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노모가 아픈데 돌볼 사람이 없다든지 하는 등의 개인의 절박성까지도 무참하게 구분할 생각은 없습니다. 하지만 박노해씨의 경우 그것을 과잉합리화하는 것에 대해 비판한 것입니다.

-지승호 - 어느 인터뷰에서 박노해씨에 대해 '그분이 지금까지 생태주의를 견지하지만, 개념장사나 하고 구호화시키는 일은 경계해야한다'고 하셨는데요.

=문부식 - 그땐 금방 귀농할 것 같은 분위기였는데요.(웃음) 요즘은 '생태'라는 단어가 생태적 사유의 폭을 가지고 있다기 보다는 유행어로 작용하는 것 같아요. 생태를 거부하는 사람은 없잖아요. 그런데 그분들의 공통된 특징 중의 하나가 '과도한 시대구분'에 기초해 자신의 변화된 사고 방식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그 점은 다시 생각해봐야할 문제인 것 같아요.

아직도 '지도자'라고 생각하는 과거의 연상선상에 있는 것 같고, 지도자상을 제시해야한다는 강박관념을 여전히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전의 운동방식에 대한 성찰없이 깃발만 옮겨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 분이 서태지를 얘기하는데, 자기 세대의 경험을 성찰하면서 새로움과 만나는 것이고, 세대간의 경험과 경험이 만나야 하는 것입니다. 박노해씨의 경우 '노동의 새벽'부터 추구했던 나름의 치열한 삶을 통해 새로운 세대와 만나 들어가야 한다고 봅니다. 그런 면에서 '강박관념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이 순서였지 않을까?'하는 생각입니다. 새로운 운동상품으로서 느껴지는 부분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것에 대한 즉자적인 판단보다는 분석을 해야하는데, 그런면에서 과도한 비판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고, 비판하는데 있어서의 기본적인 성실성 면에서 부족한 것 같아 미안한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지승호 -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에 대해 미국은 처음에 가벼운 일탈로 생각했는데, 우린 사형선고를 내렸습니다. 그리고 성조기를 미국에서 태우면 정치적 의사 표현이지만(수정헌법에 의한 판례가 있음), 한국에서 태우면 국가보안법 위반이 된 판례가 있습니다. 이런 상황들이 현재의 반미 감정을 부추기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요.

=문부식 - 언젠가 월간조선에서 문제를 제기한 적이 있습니다. '왜 모든 언론이나 지식인들이 미북관계라고 하지 않고, 북미관계라고 하나'는 사상심문을 한 적이 있는데요. 유치하기 짝이 없지만, 미국을 생각하는 한국인들의 인식을 반영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미국에 대한 비판, 성찰 작업이 사회적으로 깊이, 또 넓게 자리잡아 나가야 하는데, 미국이라는 타자에 대한 이해가 '오리엔탈리즘'적인 측면도 있겠지만, 그 반대의 측면도 있습니다.

북한에서는 '반미'가 국가정체성 아닙니까? 그것이 자신들의 체제 억압성을 가리고 있기도 하죠. 우리 역시 그런 측면이 있구요. 우리 스스로 주체적으로 미국에 대한 고민을 해야합니다. 우리는 미국 비판을 '촘스키'를 통해 보고 있는데, 주체적 분석을 해야합니다.

-지승호 - 미군 궤도차량에 의한 사고로 여중생 2명이 죽었습니다. 그 사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문부식 - 예전에 윤금이 사건이 났을때 이런 구호가 나왔습니다. '민족의 순결한 딸 죽인 주한미군 물러가라'. 사실 이 주장에도 허구성은 있습니다. 윤금이 사건이 미군 철수를 위해 도구화될 수도 있는 거구요.

우리 스스로가 평소에 윤금이를 민족의 순결한 딸이라고 생각했느냐는 점도 반성해야합니다. 우리는 그녀를 멸시하고, 차별했지만, 살아 생전에 그녀에게 미군은 따뜻하게 감싸주는 존재였을 수도 있습니다. 그 사건에 대해 분노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우리 안의 차별구조까지 가려서는 안됩니다. 과거 기지촌을 만들고, 과잉성적 서비스와 친절을 베푼건 우리 정부였습니다. 미군의 존재방식은 나라마다 다릅니다.

유독 우리가 굴욕적인 것은 미군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우리 안에 있는 사고들, 그들을 차별하는 구조도 같이 봐줘야 합니다. 미군 주둔은 필요악적인 측면이 있습니다. '얘들만 물러가면'으로 관치시키는 것은 문제입니다. '오노'에 대한 한국민들의 분노가 대중적 반미운동을 촉발했지만, 그런식으로 민족 대 민족으로 미국에 대한 상이 단순화되면 곤란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심각하게 생각했던 건 아니겠지만, 월드컵때 '미국전을 이기면 통일될 수 있다'는 플랙카드를 봤습니다. 반미운동이 이런식으로 감성적 수준으로 희화화되고, 단순화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현실적으로 미북으로 써야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직 설득력 있는 사회입니다.

-지승호 - 그럼 우리가 어떤 식으로 문제에 접근해야할까요?

=문부식 - 오키나와 사건을 배워야합니다. 주일미군 철수 문제를 언급하지 않고, 존재 방식 속에서의 논의를 통해 시민사회의 합의를 이루어 나갔습니다. 높은 수준을 설정해버리면 많은 사람이 모이기 힘듭니다. 그들의 존재를 인정하되 그들이 존재하는 방식 또는 그들의 범죄가 불평등하며, 반인륜적인 것을 문제삼아야 합니다. 한국 정부의 문제도 많다고 봅니다. 정부가 나서야될 측면에 대해서도 강한 비판을 제기해야 합니다.

-지승호 - 김규항, 진중권씨에 대해 "그들의 작업이 지니는 의미를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왠지 외줄타기를 하는 것 같다. 이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모든 것을 상품화시키는 구조와 스타를 만들어내는 시스템으로서의 광고자본주의의 속성에 대한 경계심이다. 자본이 운동하는 방식에 올라탄 경우를 보면 거품이 존재한다"고 하셨는데요.

=문부식 - 저도 논란의 대상으로 자유로운 사람이 못되는 것 같아요(웃음) 개인적으로 했어야 할 말 같기도 합니다. 강준만 교수의 경우 '스타를 활용하자'고 말하는데, 일리는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그런 영향력을 주시해야 하지만, 의존해서는 안된다는 것이죠.

담론이 늘 그렇게 쏠려다니고 하는 그런 것에 대해 경계하자는 뜻입니다. 운동에 명망 있고, 학식 있는 사람들이 많이 참여하기를 바라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스컴에 의해 만들어진 명망에 지나치게 끌려다녀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막말로 '어떤 사람을 씹으면 잡지는 팔립니다' 그것이 발전을 위해서 도움이 되기도 하겠지만, '우리안의 가학성'과 새디즘적인 요인들도 간과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유명한 개인에 대한 칭찬이든, 비판이든 그것이 과도하게 대중사회에 영향을 끼치는 것 역시 경계해야할 일입니다. 광고효과에 집착하다보면 오히려 자기를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김규항의 경우 안티조선 운동이 공익광고 수준이 되었을때 빠져나가는 모습이 건강해 보였습니다. 운동은 생성, 발전, 소멸의 과정을 거치는데, 변질될 수 있는 것을 경계해야합니다.

-지승호 - 저는 진강(진중권-강준만) 논쟁을 보면서 논쟁 자체보다 더 우려되었던 점이 소위 그 분들을 지지하는 분들 중 상당수가 자신이 지지하는 지식인의 주장을 맹목적으로 받아들이고, 상대방에 대한 적개심을 품는 것이었습니다. 스타 지식인이 됨으로서 지지자의 통제를 전혀 안받을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던데요.

=문부식 - 스타와 자기동일화죠. 예전에 양김 역시 그랬잖아요. 변하고 싶은데, 변할 수 없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거 그것이 스타의 고독이자, 비극입니다.

-지승호 - 김어준씨에 대해 '김어준은 나도 좋아한다. 하지만 사회 전반을 꿰뚫는 눈이 있어야 패러디에도 힘이 실린다. 그렇지 않으면 단순히 튀는 것, 그 역시도 하나의 패션으로 전락한다'고 하셨는데요.

=문부식 - 권위와 위계를 비웃는 패러디 방식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대중 사회의 재미, 취향에 집착하는 것은 경계해야합니다. 가끔은 대중사회가 동원된 측면들에 대해 비판해야 하는 것이 맞는데,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거나, 상품화하는 것은 경계해야한다고 봅니다.

-지승호 - 전 그것이 딴지의 고민 중 하나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월드컵에서 많은 지식인들이 '부작용'을 우려할때 딴지는 대중을 위로(?)했습니다. 그것이 딴지의 중요한 역할이었다고 봅니다. 하지만 대중과 관련된 문제제기를 해야할때 논조가 바뀌면 '딴지 너마저도 대중에게 등을 돌려?'라는 배신감을 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부식 - 딴지의 힘, 딜레마가 함께 한다고 봅니다. 당대비평 역시도 그렇고.

-지승호 - '부미방'(부산 미문화원 방화) 당시 중앙일보는 사설을 통해 '반공과 친미는 헌법 이상의 국민적 합의'라고 했는데요. 현실적으로 미국을 벗어나기 힘든 상황에서 관계를 어떻게 설정해나가야한다고 보십니까?

=문부식 - 다른 공존의 방식을 찾아야죠. 미국 스스로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일원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미제 축출 구도가 불가능해진 지금 단절적 의미에서의 반미, 비자본주의적 발전의 길을 걷는 것들이 현실에서 불가능해졌습니다.

주한미군이 아시아에서 힘의 균형추 역할을 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북한조차 '통일 이후 주한미군 주둔 인정할 수있다'고 하고 있구요. 하지만 존재방식은 바뀌어야 합니다. 미국이 한국에 있어 '국가 그 이상의 국가'이며, '한국의 국가 주권은 미군정으로부터 받은 것'이라고 말하는 미국인이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만, 과거와 같이 축출, 단절, 철수 등으로 제기될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범죄 문제도 '철수'라는 구호로 진전되는 것은 '폭'을 좁힐 수 있습니다. 영화 '수취인 불명'에 나오듯이 기지촌은 복잡하게 존재합니다. 복거일의 소설 '캠프세네카의 기지촌'은 그것이 이미 우리 현실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작가로서의 시선은 비판하고 싶지만, 오히려 현실적으로 직시하는 시선도 필요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반미소설처럼 이미 정해진 운동구호로서 전략적으로 인식하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현실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실제 더 효과적일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지승호 - 김규항씨가 '80년대의 청년은 80년 광주에 근거했다. 그들이 세상을 고쳐나가기 보다는 갈아엎어야 한다는 합의에 이른건 80년 광주에서의 미국의 역할을 알아차리고부터다. 문부식과 그의 동료들이 미문화원에 불을 지른 일은 그 합의의 시작이었다'고 했는데요. 본인은 지금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문부식 - 저는 방화범이었습니다. 살인의 의도는 없었다 하더라도 사람이 있는 건물에 불을 질러 한 사람의 생명을 잃게 하고, 그 외에도 세 사람을 다치게 한 이른바 '방화치사상죄'를 범한 사람입니다. '나는 정말 최선을 다했을까? 내가 가진 정의를 실현하려하기 전에 그로 인해 다치고 죽게 될 다른 사람의 생명에 대해 최선을 다해 고민해 왔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것 밖에 방법이 없었나?'를 고민하게 됩니다.

그것은 이미 사회화된 사건입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이 자리매김을 하고, 규정하고, 평가해야지, 제가 하는 것은 코미디가 됩니다. 전두한 파시즘과 우리안에 있는 미국에 대한 허상에 대한 호소이기는 했습니다. 그것을 지금 와서 투사들의 항쟁이라고 할 것이 아니라 때로는 비굴했고, 도망쳤던 상처, 기억들이 드러내고, 그것을 끝없이 회의하고, 갈등하고, 많은 고민들을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제 사건을 얘기하면서 '중요한 합의' 운운하는 것은 코미디가 되겠죠. 운동진영이 자신의 행위들에 대해 일정부분 인정을 하면서 반성하고, 갈등하고, 고민하고, 번뇌하는 모습을 보여줄때, 그것의 정치적 의미 부여, 역사적 평가를 떠나 그 구성원들의 갈등, 고민들이 더 감동을 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주위에서 인정하고, 환호하는 그런 부분에 '내가 도취된 부분은 없나?' '한계를 얘기하지 않은 건 아닌가?'하는 반성을 합니다. 스스로 환상, 신비, 추상화시키는 부분을 스스로 집어줄 필요가 있는데, 그러지 못하면 다음세대의 자신이 되지 못합니다. 창피한 부분도 같이 검토해야합니다. 전부 철의 혁명가라면 소수의 운동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비루하고, 치사한 면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로 하여금 뭔가 결심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운동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승호 - 대통령 선거에 대해서는 어떤 견해를 가지고 계십니까?

=문부식 - 제가 얘기하기 어려운 부분인데요. 하지만 이회창씨는 절 사형확정했던 대법관 중의 하나고, 노무현씨는 제 변호인단 중 하나였습니다. 누굴 지지할지는 상상에 맡기겠습니다.(웃음) 하지만 묘안이 없다는 게 답답합니다. 권영길과 손잡으면 표떨어진다고 하는데, 여러 정파들이 연합해서 큰 적(?)을 쓰러뜨리는 외국 사례가 우리에게는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지승호 - '1980년 5월의 광기는 전두환에게서 나온 것이지만, 동시에 그것은 우리들 모두가 지닌 광기가 아니었던가?'하고 반문하셨는데요.

=문부식 - 인문주의적인 질문입니다. 정치적, 사회적인 것이 그런 설명으로 커버된다고 보진 않지만, 광주 밖에 사람들의 광범위한 침묵은 이해하기 힘든 것이었습니다. 영남 지역 사람들은 아직도 '미안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봅니다. 권력은 지지하는 군중들이 존재함으로서 성립되고, 보존됩니다.

전두환이 광주학살 후 그토록 짧은 시간 안에 국민적 지지를 얻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국가의 혼란과 북한의 남침 위협이라는 권력의 담화가 뿌리 깊은 반공주의 의식을 전면화시켰다고 할 수도 있지만, 이것만으로 광주에서의 비극을 모두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박정희가 18년간 절대권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 중의 하나는 그가 내세운 근대화 시나리오에 대한 국민적 지지가 있어서 가능했습니다. 그 토대는 반공주의와 근대화주의와 속도주의였죠. 박정희 사후 한국 국민들에게 전두환과 신군부야말로 속도 숭배의 사회에서 권력을 담당하기에 가장 적합한 집단이었습니다. 권력의 야만을 비판하면서 동시에 우리안의 근대화주의, 속도주의도 같이 비판해야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모든 사람이 거짓된 권력의 부역자였다는 의미에서 나온 말은 아닙니다. 김우창씨는 '발포를 현장에서 명령한 하급장교도 법정에 세웠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처벌하자는게 아니라 그렇게 함으로써 아무리 국가에서 명령하더라도 그것이 부당할때 발포하지 않는 사람이 나타날 수 있고, 그런 사람이 생겨날때, 자율적 개인으로서의 시민의 탄생을 볼 수 있지 않나 하는 것입니다. 몇몇 사람들을 단죄하고, 지도자를 처벌함으로써 역사는 청산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제도적 절차가 필요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국가와 파편화된 개인이 아니라 국가를 성찰할 수 있는 개개인들의 연대가 시민사회입니다.

-지승호 - 민주화 운동보상문제에 대해서도 이의를 제기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문부식 - 국가의 보상행위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식으로 보상받은 사람도 있고, 보상심의위원회가 한일은 큰 사건 위주였는데,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고통에도 더욱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불행했던 과거사를 재생시키는 작업은 희생자들을 우선 배려하는 원칙에 따라서 진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범위가 독재권력에 자각적으로 항거한 민주화 운동 관련자들만이 아니라 어쩌면 민주화 운동도 할 수 없었고, 그리하여 국가 공권력에 의해 최소한의 인권조차 고려되지 못한 채 짓밟히고, 삶의 존립 기반이 박탈당한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오히려 앞서는 것이 이 사회를 살만한 사회로 만들고자 애써온 민주화 운동의 본성적 원칙에 부합한다고 생각합니다.

자기 주장의 능력이 있는 사람들로 앞줄이 채워진 명예 회복과 보상 작업은 사회 구성원들로부터 '너희들만의 잔치'로 인식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니리포터 지승호 /triana@freechal.com
웹진 시비걸기/"http://www.freechal.com/sibi"

  •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반성은 아름답다 (하승우)


    편집시각 2002년08월26일14시48분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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