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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독교'에 대한 단상 ②

사리사욕을 채우기에 급급한 거짓 기독교와 거짓 목사, 거짓 신도. 거짓교회들에게 고한다.

필자는 기독교집안에 태어나지 않은 것을 요즈음 감사하게 생각한다. 또한 아랍지역에 태어나 숙명적으로 이슬람교를 받아들여야 하는 멍에를 지지 않은 것 또한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리고 유태인이나 흑인으로 태어나지 않은 것에 대해 눈물겹도록 안심하는 바이다.

바로 집 앞에는 밤이면 밤마다 벌겋게 타오르는 '거대한' 십자가가 창밖 너머로 시야를 가린다. 그래서 이제는 하늘을 보는 것도 중단했다. 이미 우리나라의 교회는 전국의 다방숫자보다 많아졌으며 '종교의 자유'란 미명하에 지하철, 도심 한 거리 등 공공장소에서 안하무인처럼 떠들어대는 그들의 소리에도 이젠 지칠 지경이다.

그리고 교회는 우리나라의 천민적 자본주의와 결탁하여 점차 대형화돼 가고 있으며, 세금한푼도 내지 않고 부유한 신자들의 헌금으로 자신의 교회를 금빛 찬란한 장식물로, 으리으리한 대리석 건물로 몸단장하기에 바쁘다.

또한 연간 수 조원에 달하는 신자들의 헌금과 장부상에 기록된 신자들의 수로 인해 정치적인 로비마저 단행해서 대통령이나 국회의원들이 그들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을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그들에 반하는 법안은 통과되기 만무하며 앞으로 대성할 정치인은 반드시 천주교든 기독교든 불교신자든 어디 한 종교단체에 소속이 되어야만 유권자의 표를 얼마간이라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최근엔 엽기적으로 장남에게 교회재산을 물려주는 부의 세습화에 골몰하고 있다. 그들의 재산은 하느님이란 신 앞에 바쳐지는 제물이 아니라, 자신들의 이익에 봉사하는 비자금이 되어가고 있다.

그들은 항상 우리나라 역사에서 저질러온 온갖 만행과 과오 앞에서 반성하기는커녕 다 하느님의 뜻이라고 옹호하고 있으며, 그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내비치지 않고 있다. 최근 천주교가 이와 달리 자신의 과거를 반성하는 활동은 상당히 고무적이라 생각한다.

언제나 기독교를 반대하는 사람들과 그들에 의해 유린당하는 반대파들에 대하여 그들은 항상 '이단'이라고 공공연하게 떠벌리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무엇이 이단이고 무엇이 정통인가의 논쟁은 접어둔 채 중세시대의 마녀사냥처럼 이단이라고 함부로 낙인을 찍고 있다. 도대체 누가 누구에게 이단이라고 규정하는가? 그들이 믿고 의지하는 성경에 따라 이단이라고 규정한다면, 필자는 내가 믿고 내가 의지하는 내 자신의 신념에 따라 그들 또한 이단이라고 규정하고 싶다.

평균적인 사람들이 다 자신의 신념대로 행동하고 책임을 지듯이, 기독교인들 또한 그들의 신념대로 행동하고 책임져야 할 것이다. 신념이 옳다고 해서, 그들의 성경이 경건하다고 해서 하느님의 뜻이라고 규정하면서 행해지는 온갖 사회의 악행은 마땅히 사라져야 될 것이라고 본다. 이러한 책임 있는 기독교인이 우리나라에서도 많아질 때 그들 또한 진정으로 포교할 수 있는 권리가 나오게 되는 것이다. 신실한 기독교인들이여, 적극적인 포교활동이 배타적 신앙생활로 연결되는 이단 개독교들이 기독교의 이름을 거는 것을 막아야 한다.

안티조선일보가 있다면 안티기독교 세력이 있다. 왜 조선일보에 유독 많은 종교중에 기독교에 안티가 있을까? 한번 신실한 기독교인들이라면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필자는 기독교라는 종교가 대부분의 상식있는 사람들에게 비친 시선이 그리 곱지 않음을 느낀다. 사람들에게 기독교라는 이미지가 풍기는 들끊는 여론을 무시 할 수 없어 쓰라린 아픔으로 글을 썼다.

전북 전주의 안디옥 교회, 생긴지 몇 십 년이 됐지만, 아직도 쓰러져 가는 건물 안에서 생활하며, 정직한 사람들의 작지만 소중한 헌금의 90%이상을 구제와 선교에 쓰고있다고 한다. 아마 그들은 사회의 그늘진 곳에서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는 또 다른 이들을 찾아, 또 그들과 생사고락 하느라 필자의 기사를 접하기 힘들 것 같다.

독자여러분, 이같은 독실한, 진실한, 신실한 기독교인들의 애뜻하고 감동적인 미담사례를 소개하여 필자를 반박해 주길 바란다. 예수님은 이번 크리스마스때도 늘 그러셨듯이 '대도시의 큰 교회' 보다는 작지만 사랑이 넘치는 작은 '안디옥 교회'를 찾아 그들과 기쁨을 함께 나누며 생일을 맞을 것 같다.

하니리포터 김태혁 기자 p-eye@hanimail.com


  • '개독교'에 대한 단상 ①



    편집시각 2000년11월21일16시19분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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