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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03.07.14(월) 18:30

'온라인 친구에겐 우정을 묻지마!'


온라인 동호회 열기가 식을 줄 모른다. 포털사이트 다음( www.daum.net)의 커뮤니티(인터넷카페)는 250만개로, 하루에만도 7000여개가 새로 문을 연다. 이용자 수도 3200만명을 넘어서 전체 회원(3500만명)의 90%가 카페에 가입한 셈이다. 다른 포털사이트를 이용하는 네티즌들을 감안하면, 그 숫자는 가히 천문학적이다.

온라인 친구, 뻔질나게 만난다.

온라인 커뮤니티가 폭발적으로 확산되면서 “어디서 처음 만났느냐”는 질문에 동네·학교·직장 대신 ‘인터넷에서’라고 대답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인기사이트 동호회원 3200만명
학교·동네 친구보다 자주 만나

회사원 정진희(22·여)씨는 인라인스케이트·볼링 등 온라인 동호회 4곳에서 활동한다. 온라인에서 만나 번개모임·정기모임 등을 통해 일주일에 서너번씩 만나는 친구가 15명 정도 된다. 정씨는 “취미가 같고 인터넷을 통해 어디서나 실시간으로 소통할 수 있다는 점이 관계의 긴밀성을 높여주는 것 같다”며 “또래 친구들 대부분이 동창모임·직장모임 등 오프라인 만남보다 온라인 채팅·동호회 등에서 사귄 친구들이 더 많다”고 말했다.

유쾌하지 못한 오프라인모임

온라인 만남이 오프라인에서도 반드시 유쾌한 만남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서울 마포경찰서는 최근 온라인 채팅방에서 만나 번개모임을 갖던 중 “나이도 어린 것들이 반말을 한다”며 김아무개(21·여)씨와 한아무개(20·여)씨를 폭행한 오아무개(22)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마포경찰서 담당 형사는 “온라인 동호회 모임을 갖던 중 폭행이나 패싸움 등으로 경찰서 유치장 신세를 지는 사례가 한달이면 2~3건씩 있다”며 “주로 술 먹고 무시한다거나 잘난 척한다는 이유로 싸우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오프라인 모임에서 싸움이 살인으로 이어진 사건도 있었다. 지난달 26일 수서경찰서는 ㅎ채팅방 뱀띠동호회 정기모임에서 가발을 벗겨 창피를 줬다는 이유로 온라인 친구인 전아무개(38)씨를 살해한 홍아무개(38)씨를 구속했다. 언론이 ‘가발 살인’이라고 보도한 이 사건은 사실은 온라인 동호회에서 맺은 ‘설익은 우정’이 빚어낸 우발적인 살인사건이었다.

당시 사건을 맡았던 형사는 “온라인에서 만난 두 사람이 금방 친해져 겉으론 친구처럼 보였지만 속내를 털어놓거나 깊은 우정을 나눈 사이는 아니었다”며 “온라인에서 인간관계가 오프라인으로 그대로 이어질 것이란 생각은 착각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이 동호회 회원인 김아무개(38)씨는 “비록 온라인에서 만났지만 힘들고 외로울 때 위로하고 다독여줄 친구들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일이 터지고 나니 인터넷에서 사람 사귀는 게 겁이 난다”며 “그들이 동창회처럼 오프라인에서 오래 만나온 사이였다면 살인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은 면할 수 있었을 것이란 생각도 들었다”고 털어놨다.

'가발 살인'등 부작용 발생도
책임감·신뢰 관계 기본돼야

남종원 에이원클리닉 원장(신경정신과 전문의)은 “온라인은 얼굴을 직접 대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현실과 다른 ‘나’의 모습을 충분히 가공할 수 있다”면서 “그러나 가공의 캐릭터가 오프라인 모임에서 깨질 때 심각한 박탈감이나 소외감을 느끼고 폭력이나 살인 등 우발적인 충돌로 이어질 개연성이 높다”고 풀이했다.

소통은 활발, 신뢰성은 의문

비대면적이고 익명성이 특징인 인터넷은 깊은 인간관계가 부담스러운 사람들에게 매우 매력적인 활동공간을 제공한다. 인터넷으로 인간관계의 범위와 소통가능성은 더욱 넓어졌다. 하지만 우정의 척도라고 할 수 있는 서로에 대한 책임감이나 신뢰의 깊이 등은 오히려 약화되고 있다. 그래서 인터넷상의 우정은 모두 허상이라고 단정짓는 극단적인 주장도 제기된다.

남 원장은 “온라인 만남이 관계의 넓이와 다양성은 제공하지만 관계의 깊이를 채워주진 못하는 것 같다”며 “친구 사이의 신뢰감은 상대의 결점까지를 감싸는 마음의 여유에서 형성된다는 것을 네티즌들이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종찬 <인터넷한겨레> 기자 pjc@news.hani.co.kr


신경정신과전문의 남종원 에이원클리닉 원장


-인간관계 형성에서 온라인 공간이 갖는 특성은?

=온라인에선 다중인격이 가능하다. 소심한 사람이 활동적인 성격으로 변할 수 있고, 외모가 뛰어나지 않아도 섹시한 아바타로 자신을 재창조할 수 있다.

친밀감이 오프라인보다 강하다. 억울함을 호소하면 순식간에 답글이 붙고, 이를 통해 심리적 위안을 받는다. 일상생활에서 이런 관심은 쉽게 찾기 힘들다. 익명성과 상대방과의 거리두기가 얼마든지 가능해 첫대면에서 생기는 경계심이 쉽게 허물어진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온라인에서 훨씬 빨리 친해진다.

-온라인 만남의 특성이 일상생활에 어떤 영향을 끼치나?

=온라인이 주는 인간관계 맺기의 편리함에 빠지면 현실의 인간관계에 만족하지 못할 수 있다. 온라인에 집착하면 현실에서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오프라인 방식의 만남을 거부할 수도 있다. 온라인에선 잠재된 다양한 성격이 표출되기도 하는데 소극적이고 수줍음을 잘 타는 성격이 적극적이고 대범한 성격으로 변화할 수도 있다.

-번개모임이나 정기모임 등에서 폭력 등 우발적 사고가 잦은 이유는?

=오프라인에서 대인관계의 성숙도가 떨어지는 사람일수록 가상공간의 대인관계에 집착하며, 이런 사람은 온라인에서 다중인격을 형성할 가능성이 높다.

온라인에서 형성된 가공의 캐릭터는 오프라인 모임에서 깨질 수밖에 없고, 이때 심각한 박탈감이나 소외감을 느끼게 된다. 그런 뒤틀린 심정이 상대에 대한 공격적 성향으로 표출된다. 특히 술을 마시면 충돌조절 기능이 급격히 약해지게 되므로 폭력·살인 등 우발적인 행동을 할 수도 있다.

-온라인 모임을 건전하게 발전시키려면?

=지나치게 온라인 모임에 열중해서는 안 된다. 온라인에 쏟는 에너지를 실제 인간관계에 투자하고 재미를 붙여야 한다. 실제 만남에 규율이 있는 것처럼 온라인에서도 통용되는 규율을 만들어야 한다.

박종찬 〈인터넷한겨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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