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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편집시각 2001년02월13일18시46분 KST
    노성두의고전미술현장 한겨레/문화생활/노성두의고전미술현장

    [고전미술현장] “엄청 못생긴 꼬락서니” 적나라한 자연주의


    1714년 뒤셀도르프 선제후 요한 빌헬름은 로마에서 부친 묵직한 소포를 받았다. 추기경 오토보니의 애장품을 본 선제후는 입이 쩍 벌어졌다. 단단히 포장해서 마차를 타고 알프스를 넘어온 건 <술주정뱅이 노파>. 여행자들과 예술애호가들에게 로마의 가장 유명한 고대 조각이라고 알려진 진귀한 명품이었다. 그러나 그후 만하임을 거쳐 뮌헨에 도착한 대리석 조각은 어이없는 푸대접을 받는다. 바이에른 국왕 루트비히 1세의 궁정 건축가 레오 폰 클렌체가 앞장서서 고전조각관의 삼엄한 품격에 이따위 저속한 작품은 어울리지 않는다며 가로막고 나선 것이다. 시성 괴테와 고고학의 아버지 빙켈만조차 주정뱅이 노파의 적나라한 자연주의에 기겁해서 슬그머니 뒷전에 밀어두었으니 헬레니즘의 조형을 몰랐던 당시의 편견이 어땠나 짐작할 수 있다. 못난이 노파의 가치를 미술사적으로 정당화하려는 시도는 1912년 하인리히 불레가 처음이었다.

    사제? 어머니? 창녀일까?

    “엄청 못 생겼다. 주름투성이 얼굴은 이빨이 듬성하고 목살은 여위었고 불거진 빗장뼈 밑으로 젖살이 쪼그라붙어서 눈꼴사나운 노파의 꼬락서니에 웃음을 참기 어렵다…. <바르베리니의 파우누스>처럼 추한 모습이 예술을 통해서 겨우 볼만하게 되었다. 주정뱅이 노파는 헬레니즘 기 이후에 만들어진 것 같다. 진짜배기 풍속주제인 만큼 조각가도 만들면서 재미났을 것이다. 아마 돈 많고 오지랖 넓은 디오니소스 숭배자의 정원에 갖다둔 게 아닐까?”

    노파는 길바닥에 주저앉았다. 조각의 좌대를 낮추고 바닥 높이에다 전시한 건 로댕이 만든 <칼레의 시민들>이 처음이라고 미술교과서에 나와 있지만, <주정뱅이 노파>는 그보다 2200년이나 이르다. 격에 안 맞는 커다란 술병을 귀여운 손주처럼 품에 얼싸안고 얼근한 표정으로 지나는 사람을 올려보는 노파는 고단한 하루를 술기운과 바꾸었다. 대리석 위에 처음 발랐던 색채가 남아 있었더라면 노파의 속치마와 겉옷, 상큼한 머릿수건과 서리맞은 머리카락, 큼직한 술병과 파릇한 인동넝쿨, 불콰하게 달아오른 얼굴 색 따위가 또렷이 구분되어 보였을 것이다. 노파는 누굴까?

    고고학자들은 노파의 정체가 궁금했다. 조각 크기가 실물대에 가까우니 공공 장소에 전시되었던 건 분명했다. 그런데 왼손에 굵직한 반지가 둘, 귀에는 금속 귀고리를 걸었던 흔적이 남았고, 공들여 만진 머리카락에다 어깨 끈 달린 속곳까지 신경을 쓸 정도면 상당한 지체가 틀림없는데, 웬일로 백주대로에서 술통을 끌어안고 있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헬레니즘 조각에서 풍속 주제가 될만한 걸 줄줄이 늘어놓았다. 신이 올라 기도하는 디오니소스의 여사제, 아들을 찢어 죽인 펜테우스의 어머니, 엘레우시스 미스터리 제전에 참가한 알키비아데스의 어머니 등등. 마지막으로 고고학자들의 눈길을 끈 건 어깨와 젖무덤이 훤히 드러나는 대담한 옷매무새였다. 어깨 까기 패션은 기원전 5세기 파르테논 부조에서 첫선을 보인 뒤 뭇 남성의 시선을 설레게 하며 아티카 반도를 달구었고, 헬레니즘 기에 이르러 사랑의 신 아프로디테까지 키톤 단추를 깊숙이 벗긴 다음에는 고급 창녀들도 너나 없이 따랐던 유행이다. 또 하나. 바닥에 가지런히 깔린 옷주름도 문제였다. 치맛자락이 이렇게 꽃부채처럼 얌전하게 펼쳐지려면 앉을 때 치맛단을 풍선처럼 부풀렸다가 두 무릎을 붙이고 사뿐히 내려앉아야 하는데, 잠깐 무릎 위 아찔한 풍경이 노출되면서 낯선 시선을 유도하는 고난도 자세에서 왕년에 드날리던 가닥을 엿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조각의 소재는 늙은 창녀가 술기운을 빌려서 화려한 옛 기억을 반추하고 있는 장면이 된다.

    그러나 술 취한 늙은 창녀를 공공 미술의 소재로 삼은 건 좀 심했다. 적어도 고전기 미술 이념 `칼로카가티아'에 익숙한 4세기께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칼로카가티아는 “몸과 마음을 고루 연마하고 다듬어서 정치적 도덕적 인격의 완성에 이르게 하는 자유시민에 응당한 교육 이념”이다. 조각도 그땐 사회적 가치기준에 들어맞는 신과 영웅의 영광과 치적을 기리는 목적성 미술이었다. 그래서 공공 예절에 어긋나지 않게 지팡이를 짚거나 유연하게 서 있는 자세가 보통이었다. 처녀, 총각, 전사, 영웅, 운동선수, 정치가, 철학자 등으로 유형화된 `민주적' 조형을 기준으로 보면, 남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거나 몰상식하게 튀는 개별 행위는 안 될 말이었다. 심지어 속옷과 겉옷도 격식 따라 반듯하게 주름의 길이와 방향을 맞추었으니까. 조화롭고 영속적인 아름다움을 높이 쳤던 안목에 주정뱅이 노파의 가공되지 않은 자연주의 조형은 한 마디로 충격이었을 것이다.

    대담한 매무새…술병은 업소용

    술 마시는 법도도 달랐다. 성년 남자들이 가까운 이들과 어울려 연회를 마련하고, 우선 신들에게 예주를 올린 다음 정해진 법도에 따라 술을 마시는 게 올바른 음주법인데, 한 가지 주제를 두고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면서 마시는 `작은 디오니소스 축제'의 형식을 바람직하다고 여겼다. 또 포도주는 반드시 물에 희석해서 마셨다. 그런데 늙은 창녀가 길바닥에 주저앉아 잔도 없이 술병 주둥이에 직접 입을 대고 스트레이트를 불사하다니! 더군다나 술병은 보통 2~3리터 용량의 소비자용이 아니라, 그보다 두 세 배가 들어가는 업소용 `라귀노스'로 밝혀졌다. 이런 괴짜 노파를 도대체 누가 주문해서 어디에다 전시했을까?

    작품 발생에 얽힌 궁금증은 옛 문헌에서 해결되었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장 에라토스테네스가 쓴 기록이었다.

    “프톨레마이오스 왕은 알렉산드리아에서 온갖 축제와 희생제들을 새로 제정했는데, 그 가운데 디오니소스 축제가 으뜸이었다. 왕비 아르시노에가 하루는 올리브 가지를 들고오는 사람을 불러 세우고 오늘이 무슨 날이기에 무슨 축제 준비를 하느냐고 물었다. 그의 대답이 이랬다. `오늘은 라귀노스 술병 축제랍니다. 사람들이 저마다… 짚풀 위에 드러누워 갖고 온 제 라귀노스를 기울이는 날이지요.' 그를 보내고 왕비는 우리를 돌아보시며 말하셨다. `지저분한 자리가 되겠군. 소나 개나 다 와서 마신다니 외양간 냄새나는 더러운 축제일거야.'” (<아테나이오스> VII 276B)

    노파가 끌어안은 술병 라귀노스의 어깨에 디오니소스의 신성을 상징하는 인동넝쿨이 걸쳐져 있다. 디오니소스는 이때 가난하고 천대받는 이들의 핍박받고 고단한 삶을 위로한 신으로 추앙 받았다. 늙은 창녀나 거지들이 한 잔 술에 시름을 달랜 건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에우리피데스는 이렇게 노래한다.

    “그는 포도즙 음료를 발명하시어

    가난한 이에게 주시고 고통을 더시며

    포도줄기 잔을 비우는 사람은 누구나

    눈꺼풀을 덮고 일과의 노동을 잊게 하시니

    이처럼 고통을 잠재우는 이 어디 있으랴.

    다른 신들 제쳐두고 디오니소스 신께 축배 드세.

    모든 재화가 다 우리 것이 될 터이니.”(<바쿠스의 여사제들> 279~285)

    미술사가 노성두

    창녀 부자 4세기 등장

    그리스의 창녀 `헤타이라'는 풍류를 아는 기혼 남성의 파트너로서 기원전 5세기부터 도회의 시민사회에 등장한다. 4세기에는 거액을 벌어들이는 고급 창녀 `메갈로미스토이'가 출현해서 난다하는 귀족과 이름난 예술가들이 창녀들의 몸치장을 감당하는 일로 경쟁을 삼았다. 명연설가 데모스테네스는 라이스의 환심을 사려고 1만 드라크마를 쏟아 부은 뒤, 연설사례비 갖곤 감당이 안 된다며 탄식했다고 한다. 인기 있는 창녀들은 자존심도 높았다. 앞다투어 성전에 조각상을 헌정하며 부를 뽐내는가 하면, 프뤼네는 창녀라는 직업을 명문에다 써넣는 조건으로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허문 성벽 재건에 뒷돈을 충당하겠다는 제안을 내놓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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