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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편집시각 2001년02월06일19시17분 KST
    노성두의고전미술현장 한겨레/문화생활/노성두의고전미술현장

    [고전미술기행] 시민의 초상화에 첫미소가 피어나다


    <모나 리자>. 이탈리아에서는 이 그림을 <라 조콘다>라고 부른다. 모나는 마돈나, 리자는 엘리자벳을 줄인 말이다. 리자는 1479년 피렌체 남쪽 시골에서 태어나 열여섯 나이로 열아홉 연상의 홀아비 프란체스코 델 조콘도와 결혼한다. 이때부터 조콘다라는 이름을 얻었다. 지참금은 겨우 170플로린. 삼십 년 뒤 리자의 조카딸 카산드라가 시집가면서 챙겨간 1400플로린에 비하면 거저나 다름없다. 그러고 보면 피렌체에서 비단 장사로 큰 돈을 번 남편은 어린 리자의 미모에 단단히 반했던 모양이다. 리자의 초상 그림을 당대 최고의 화가 레오나르도에게 부탁한 것도 아내 사랑이 지극하지 않고서야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다.

    1500년대 피렌체 비단상인의 부인

    <모나 리자>는 미소가 일품이다. 만약 보험설계사한테 미소의 가치를 매겨보라고 맡기면 클레오파트라의 콧대나 양귀비의 발바닥보다 더 후하게 쳐줄지 모른다. 실제로 루브르 박물관도 그 덕에 한 몫 알뜰히 챙기고 있으니까. 미소 이야기는 1550년 바사리가 레오나르도의 생애를 정리하면서 처음 썼다.

    “물기 밴 두 눈의 광채는 흡사 살아 있는 사람을 보는 듯하다. 눈가에 더없이 섬세한 연보랏빛 그림자가 드리웠고, 믿을 수 없이 정교한 붓으로 완성된 속눈썹도 기가 막힐 따름이다. 눈썹은 보일 듯 말 듯 솜털부터 시작해서 점차 짙어지는 터럭들이 하나하나 솟아 나와 이마와 눈 사이에 융기한 눈썹뼈의 흐름을 따라 새겨졌는데, 살아 있는 자연이라도 이보다 더 나을 수는 없다. 코의 생김새와 발그레한 콧구멍은 살아서 숨쉬는 듯하다. 입술 가장자리는 알 듯 모를 듯 부풀어올랐고, 바로 여기서 입술의 붉은 색조와 뺨의 살색조가 만난다. 그래서 이 여성은 붓으로 그린 그림이 아니라 피와 살로 빚어낸 창조물처럼 보인다. 목우물에서 맥박이 느껴진다…얼굴 표정에서 사랑스런 미소가 피어나는데, 이 미소는 지상보다는 천상에 속한 것 같다. 어찌나 생생한지 사람들은 그림을 보고 한결같이 입을 모아 예술의 기적이 탄생했노라고 말한다.”

    <모나 리자>의 미소가 그후 크게 유명세를 타게 된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지나치게 유명해지자 이를 못마땅하게 생각한 사람들도 있었다. 예컨대 1858년 테오필 고티에는 사랑스런 천상의 미소는 커녕 “뱀처럼 꼬여드는 입술이 도도하고 우아하고 달콤한 미소를 뿌리며 남성을 제압하고 쪼그라들게 만든다”고 탄식했고, 1873년 월터 페이터는 한 술 더 떠서 “병든 관능의 고통이 영혼 속에 녹아들어…무수한 죽음을 경험하고 무덤의 비밀을 품은 흡혈귀의 아름다움”이라고 몸서리쳤다. 이런 주장들은 <모나 리자>를 두고 레오나르도가 거울에 비친 제 얼굴을 여성으로 바꾸어 그리면서 입가에 비웃음을 흘린다고 보거나, 싸구려 창녀가 지어 보이는 음탕한 미소일 뿐이라고 얕잡아보는 입장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또 레오나르도가 어려서 헤어진 친모의 자애로운 미소를 떠올리며 리자의 초상에다 옛 추억을 투사했다는 심리학자 프로이트의 설명도 그리 딱 부러지지 않는다. 화가가 왜 어머니가 죽은 뒤에야 뒤늦게 그리움이 사무쳐서 초상을 그렸을까 의아하기도 하고, 모델 없이 그린 사후 초상이 그토록 생생한 느낌을 뿜어낼 수 있을지도 미심쩍다. 이 모든 의문들은 그림에 작가 서명이 없고 주문 기록도 전해지지 않아서 더욱 깊어졌다. 4년 넘게 붙들고 있던 초상화를 다 그린 다음에도 주문자한테 안 넘긴 까닭도 석연치 않다. 레오나르도는 뭐 하러 남의 안사람 얼굴 그림을 죽을 때까지 끌어안고 있었을까?

    미술사학자들은 해결되지 않는 문제를 놓고 허둥대기 시작했다. 우선 바사리의 말이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까지 <모나 리자> 연구는 바사리의 기록을 엉터리로 보고, `숨은 진실'을 밝히려는 쪽으로 치우쳤다. 바사리가 <모나 리자>를 본 적이 없다는 건 분명해 보인다. 레오나르도가 죽었을 때 바사리는 겨우 여덟 살이었고, 커서도 퐁텐블로에는 간 적이 없으니 그곳에 걸린 실물 초상화를 뜯어볼 기회도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눈썹 없는 <모나 리자>의 눈썹 터럭이 볼만하다는 둥, 콧구멍이 발그레 숨을 쉰다는 둥, 꼭 제 눈으로 본 것처럼 써놓은 건 어림없는 흰소리라는 것이다.

    그때까지는 꽉 다문 입술이 관행

    이 문제는 1994년 프랑크 쵤너가 옛 기록들을 찾아내면서 해명되었다. 바사리가 예술가 전기자료를 수집하러 피렌체에 갔을 때 메디치 저택에 머물곤 했었는데, 리자가 거기서 멀지 않은 곳에 살고 있었고, 남편 프란체스코도 이전부터 메디치와 거래를 트고 자주 내왕했으며, 피렌체에 살고 있던 남편의 사촌 둘하고 바사리가 가깝게 지냈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진 것이다. <모나 리자>의 탄생을 설명할 일차 정보원에게 접근이 가능했다면 전기기록의 신빙성에 대한 의혹도 해소된 셈이다. 또 16세기초에는 유랑화가들이 많았다. 종교 개혁 이후 뒤숭숭하던 시기에 예술가들은 새로운 주문을 찾아서 알프스를 넘나들며 피렌체와 퐁텐블로를 오갔다. 그렇다면 누가 <모나 리자>를 보고 와서 바사리에게 얼마쯤 과장을 섞어가며 들려주지 않았을까?

    그런데 바사리는 왜 하필 <모나 리자>의 미소에 주목했을까? 피렌체 시민 초상화들을 훑어보면 16세기까지 웃는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우는 표정도 없다. 화가들은 한사코 진지한 눈동자, 굳게 다문 입술만 고집했다. 비탄과 희열의 표현은 성모나 성자들에게만 유보된 종교화의 특권이었다. 그러나 레오나르도는 달랐다. 그는 영혼의 움직임을 포착할 줄 알았다. 붓 끝에 미소를 묻혀서 성과 속의 경계를 물렀다. 그의 붓이 미소를 머금고 백 년이 지난 뒤, 초상화 장르는 만면에 주름을 잡으며 웃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미술사가 노성두

    영혼을 빛내기 위해 더없이 수수하게

    레오나르도는 <모나 리자>를 더없이 수수하게 그렸다. 검은 너울과 나무 의자를 빼고는 아무 장식도 덧붙이지 않았다. 심지어 왼손에 결혼반지도 빼고 그렸다. 화가는 그림에 착수하기 몇 해 전, 유랑 수사 사보나롤라가 피렌체에서 영혼의 덕목을 설교한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여자들은 미모를 뽐내지 말라. 추악할 따름이다. 진정한 아름다움을 보고 싶은가?…경건한 이들의 내면에서 신성의 아름다움과 열기가 솟아나는 것을 보아라. 기도하는 이들의 얼굴에서 신성의 아름다움이 거울처럼 비추어 천사처럼 빛나는 것을 보아라.”

    피렌체 시인 단테도 영혼의 아름다움이 오직 눈과 입에서 드러난다고 말한다.

    “영혼의 표정은 두 군데서 드러난다. 눈과 입이다…눈빛과 부드러운 미소는 보는 이의 눈길을 끌고 기쁨을 선사하기에 충분하다. 그러니 눈과 입을 두고 육신의 건축에 거주하는 영혼의 창이라고 말한 비유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너울을 쓴 여성일지라도 영혼은 눈과 입을 통해서 말하기 마련이다.”(연회, III,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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