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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편집시각 2001년01월30일20시10분 KST
    노성두의고전미술현장 한겨레/문화생활/노성두의고전미술현장

    [고전미술현장] 기계인간은 그만 살아있는 인체여 오라


    옛날 사모스에 조각가 형제가 살았다. 텔레클레스와 테오도로스. 둘이 따로 일감을 찾아 나섰다가 신상을 하나 의뢰 받는다. 제작 기일이 촉박했던지 형제는 온전한 조각을 반절씩 따로 만들었다가 나중에 만나서 붙이기로 했다. 약속한 날, 수레에 싣고 온 두 짝을 맞추어 보니 상반신과 하반신이 한 몸처럼 가뿐히 붙는 게 아닌가. 두 사람이 따로 만들면서도 나머지 반쪽이 어떻게 나올지 훤히 알고 있었다.

    이처럼 인체의 전체와 부분들을 기계 인간처럼 떼었다 붙였다 하는 건 이집트 조각의 특징이다. 아르카익 시대까지도 그리스 조각은 이집트 전통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기원전 5세기에 이르러 고전기 조각가들은 덧셈 뺄셈식 말고 살아 있는 인체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다. 기계적 조형에 만족하지 않고 유기적 인체의 비밀을 찾아 나섰다.

    최초의 유기적 인체는 기원전 450년께 아르고스 조각가 폴뤼클레토스가 만들었다고 한다. 그 당시 그리스의 정치 중심지는 아테네. 그러나 아르고스는 그리스를 통틀어 가장 빛나는 조각 전통을 자랑하고 있었으니 이곳에서 미술 형식의 혁신이 이루어졌다는 건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 하지만 아테네의 명장 피디아스는 시골뜨기 조각가에게 선수를 빼앗겼다고 내심 속상해하지 않았을까?

    기원전 450년 조각의 진보

    폴뤼클레토스는 두어 차례를 제외하곤 평생 한 우물만 팠다. 피디아스가 이것저것 다양한 재료를 구사하면서 거대 신상이나 풍속 주제를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일감을 맡았던 데 비해서, 폴뤼클레토스는 오로지 실물 크기에 근사한 남성 알몸 청동 입상만 줄기차게 구워내면서 새로운 조형을 실험하고 다지는 데 혼신을 쏟았다.

    그의 야심작이 <큰 창을 든 사내>다. 왼손에 들었던 큰 창은 보이지 않는다. 청동 원작을 로마 시대에 대리석으로 모각하면서 부러지기 쉬운 창대는 청동으로 만들어서 쥐어주었을 텐데 빠져서 달아났을 것이다. 기원전 450년께, 마침내 작품이 완성되었다는 소문을 듣고 조각가와 화가들이 떼지어 몰려들었다고 한다. 미끈한 조각을 구경하고 앞다투어 베끼면서 `카논'이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카논은 원래 `자'라는 뜻이지만 본보기, 표준, 전범이라는 말도 된다. 말하자면 모든 예술가가 본받을 만한 조형의 길잡이가 된 것이다. 폴뤼클레토스 자신도 제 작품을 예술의 원형으로 생각하고 딴 작품들을 만들면서 곧잘 응용하곤 했다니까, `작품 한 점을 통해서 예술 그 자체를 이룬 최초의 조각가'라는 플리니우스의 찬사가 잘 어울린다.

    폴뤼클레토스는 끌과 망치로 청동 인체의 입술에다 생명의 숨결을 불어넣었다. 수치와 눈금대신 조형의 원리를 예술의 영혼으로 삼았다. 고전기 시대 처음 선보인 유기적 인체의 비밀은 어디에 숨어 있을까?

    고고학은 인체 조각을 읽을 때 발바닥부터 시작한다. 큰 창을 든 사내를 순서대로 읽으면 앞으로 내민 오른발에 체중을 싣고 왼발은 발바닥 한 뼘만큼 뒤로 젖혔다. 버틴 다리와 젖힌 다리의 자세에 따라 양쪽 무릎과 어깨의 높낮이가 달라진다. 조각을 옆으로 돌려서 보면 왼쪽 무릎과 오른쪽 어깨가 조응하면서 앞으로 돌출하고, 오른쪽 무릎과 왼쪽 어깨가 후퇴한다. 발바닥부터 시작한 움직임의 출발은 시간적 전후관계를 타고 공간을 밀고 당기며 사지의 마지막 매듭에 이르기까지 동세와 반 동세의 논리로 전개된다. 심지어 머리카락 한 타래, 한 올까지도 같은 조형원리로 빗질했다.

    창은 빠져 달아났을 것

    그리스 사람들은 이런 원리를 서로 다른 두 요소 사이의 조화로운 관계를 뜻하는 균제비례라고 불렀다. 차고 더운 것, 무겁고 가벼운 것, 빠르고 느린 것, 길고 짧은 것, 무르고 단단한 것이 긴장과 이완을 거듭하면서 떨어지지 않고 서로를 보듬는 모양을 가리키는 말이다. 예컨대 오른쪽 사타구니 선과 가슴선이 접근하면서 오른쪽 서혜인대가 움츠러들고, 이에 따라 상체 내부의 긴장이 옆구리의 윤곽선을 따라 불거져 나온다. 오른쪽 옆구리가 안팎을 묶으며 접혀들면, 왼쪽 옆구리는 위 아래로 늘어나며 벌어진다. 또 두 팔의 움직임은 두 다리에서 출발해서 복부에서 구체화한 역학적 질문에 대한 잘 계산된 답변에 불과하다. 공간의 여섯 축으로 달리는 움직임의 중심을 배꼽으로 보면, 복부의 상하좌우 움직임은 맷돌처럼 묵직한 순환운동의 낌새를 보인다. 또 오른쪽 가슴선이 기하학적으로 경직되는 순간 왼쪽 가슴선이 완곡한 원호를 그리는 것도 흥미롭다. 오른쪽 대흉근은 단단하고 납작하게 가슴뼈에 밀착했는데, 왼쪽 가슴은 말랑하고 푸짐하게 부풀었다. 흉곽 아래 이어지는 복직근과 외복사근도 동일한 조형 논리의 반복이다.

    가슴과 배의 변화는 등과 엉덩이에서도 똑같이 반복된다. 사지를 이루는 뼈와 근육의 움직임, 그 움직임을 덮거나 드러내며 내포하고 외연하는 피부의 상관관계, 몸의 동세와 함께 걸어가는 보이지 않는 영혼의 움직임이 죄다 같은 원리의 바탕 위에 구축되었다. 또 다음 순간 큰 창을 든 사내가 뒤로 젖혔던 왼발을 앞으로 내딛는다면 인체의 전후좌우 균형관계는 거울에 비친 모습처럼 순서를 바꿀 것이다. 또 사내의 걸음이 멈추지 않는 한, 인체의 좌우와 전후는 변화의 파도를 타고 쉼없이 넘실댄다. 이런 움직임은 이집트 비례론의 수치와 눈금으로 도저히 정의할 수 없다. 마치 생명을 계수화할 수 없는 것처럼. 폴뤼클레토스는 순간의 재현을 통해서 불변하는 균형의 관계성을 포착하는 데 성공했다. 그가 르네상스 시대에 다시 태어났더라면 미의 규범이 큰 창을 들고 조각의 진보를 내딛었다는 사실을 두 눈으로 목격했을 것이다. 미술사가 노성두

    '건강과 아름다움의 원리는 같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시의였던 갈레노스는 폴뤼클레토스의 조각 이론을 건강의 원리와 비교했다. 아름다움과 건강의 본질이 다르지 않다고 보았다. 조각가가 쓴 책을 직접 읽고 쓴 건 아니지만 100 종 넘게 전해지는 고대 문건 가운데 가장 체계적이고 신빙성이 높은 기록이다. 이집트 조형 원리로부터 자유를 얻어서 저곳의 본질이 아닌 이곳의 생명을 탐구하는 폴뤼클레토스의 방법을 잘 설명한다.

    “크뤼시포스는 앞에서 분명하게 밝히기를 인체의 건강은 인체의 구성요소들, 곧 차고 더운 것, 마르고 젖은 것 사이의 균형에서 나온다고 했다. 그러나 인체의 아름다움은 인체의 구성요소 사이의 균형이 아니라 부분지체들 사이의 균제비례에서 나온다고 믿는다. 한 손가락과 다른 모든 손가락들, 모든 손가락과 손바닥, 그리고 손가락 끝에서 손목까지의 길이, 또 손목까지의 길이와 아래팔, 아래팔과 위팔, 그리고 폴뤼클레토스의 카논에 씌어 있는 모든 부분 지체들 사이의 관계에서 아름다움이 나온다는 것이다. 폴뤼클레토스는 인체의 모든 균제비례를 그의 책에서 다루었다. 그뿐 아니라 그의 논문에서 주장한 규칙들의 가르침을 뒷받침하기 위해 입상조각을 한 점 제작했는데, 이를 두고 똑같이 <카논>이라고 불렀다. 그러니 모든 의사들과 철학자들이 말하는 대로 인체의 아름다움은 부분 지체들 사이의 균제비례에서 나온다고 하겠다.”(de plac.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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