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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편집시각 2001년01월16일19시05분 KST
    노성두의고전미술현장 한겨레/문화생활/노성두의고전미술현장

    [고전미술현장] 1800년뒤 다시 그린 '미와 사랑의 여신'


    알렉산드로스 대왕에게 아름다운 애첩이 있었다. 대왕은 화가를 시켜 판카스페의 눈부신 젊음이 사그라들기 전에 그의 알몸을 그리게 한다. 불변하는 예술의 거울에다 자연의 드문 기적을 담아두려는 생각이었다.

    알렉산드로스왕 애첩과 '불륜'

    신성한 의무를 떠맡은 화가는 아펠레스. 헬레니즘 최고의 붓을 자랑하며 숱한 회화의 전설을 뿌린 명장이다. 어느 날 그림이 잘 되어가나 싶어 화가의 작업실에 들렀던 알렉산드로스는 어처구니없는 광경에 그만 아연하고 만다. 아펠레스와 판카스페가 꼭 끌어안고 있는 현장을 목격한 것이다. 젊은 대왕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아니, 저것들이?' 두 연인은 고개를 떨구었다. 어림없는 만행의 대가로 모가지가 달아나게 생겼다. 옛 기록에 따르면 세상의 모든 적수를 제압했던 알렉산드로스는 이날, 가장 무서운 적수와 싸움을 벌였다고 한다.

    그러나 젊은 대왕은 자신의 노여움과 질투조차 거뜬히 누름으로써 참된 영웅의 면모를 과시한다. 벌을 기다리던 화가는 뜻밖에 상을 받았다. 아끼던 애첩을 선사한 것이다. 이 일을 두고 플리니우스는 무력의 대왕이 예술의 제왕 앞에 무릎꿇었다고 해석하기도 했다. 일화의 미학적 얼개를 풀이하자면, `예술이 권력의 속박을 떨치고 아름다움의 덕목과 결합한다'쯤으로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아펠레스는 그 일이 있은 후 더욱 분발했고, 기량도 한층 무르익었다. 또 판카스페를 모델로 세우고 절정의 예술을 쏟아서 `바다 거품에서 태어나는 비너스'를 그렸다. 갓 태어난 알몸의 조형에다 새벽별처럼 어여쁜 아내에 대한 사랑을 담아서 미와 사랑의 여신을 완성한 것이다.

    엣기록 읽고 '나도 그려보자'

    피렌체 화가 보티첼리는 플리니우스가 쓴 옛 기록을 읽고 무릎을 쳤다. 당장 붓을 들어 1800년 전 까마득한 옛 거장 아펠레스의 붓을 흉내내기로 결심했다. 애첩을 뺏기고도 관용을 베풀 대왕은 오래 전에 죽고 없었지만, 판카스페에 필적할 모델이라면 자신 있었다. 클레오파트라를 능가한다는 시모네타 베스푸치가 이곳 피렌체에서 눈부시게 영글어가고 있지 않은가? 더군다나 인문학자 폴리치아노가 그녀를 두고 `신성한 아름다움'이라고 단정했으니, 미의 여신을 대신하기엔 아주 그만이었다. 때마침 피렌체에는 호메로스가 인기였다. 아펠레스도 붓을 들기 전에 호메로스를 읽었을 것이다. 보티첼리는 폴리치아노한테서 얻은 서사시를 꼼꼼히 들추었다. 비너스의 그리스 식 이름은 아프로디테.

    “나는 아름답고 정숙한 아프로디테를 노래하려네.

    황금수관을 머리에 쓰고

    바다로 둘러싸인 키프로스 도성을 지배하는 여신을.

    여신은 서풍 제피로스의 부푼 입김에 떠밀려

    물살 거친 파도에 실려서

    부드러운 거품을 타고 왔다네.

    황금 머리띠를 두른 계절의 여신들이

    아프로디테를 기쁘게 맞이하며

    그녀의 몸을 신성한 의복으로 감싸고

    신성한 이마 위에 황금 관을 씌워 드렸네.”

    보티첼리는 영감의 빛에 손놀림을 맡겼다. 성화를 그릴 때처럼 기도와 묵상에 의존하지 않았다. 제 어깨에 상상의 날개를 걸어 매고 단숨에 올림포스의 산정에 날아올랐다. 그리고 키프로스의 금빛 해안으로 직행했다. 오래 전 그리스 고전기 조각가 피디아스가 올림피아의 제우스 신상을 지으면서 썼던 방식이었다.

    보티첼리의 붓은 마침 첫 돌을 올리기 시작한 인문주의의 신전에 시들지 않는 예술의 향기를 헌정했다. 눈먼 시인의 상상력에 붓을 적셔서 고대의 은성한 예술을 되살린 것이다. 마침내 그림이 완성되자 사람들은 “아펠레스가 다시 살아난다 해도 보티첼리의 붓은 따르지 못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고 한다. 미술사가 노성두

    고대작품 흉내내기 르네상스 시대 유행

    르네상스 시대에는 보티첼리처럼 고대와 겨루었던 예술가들이 많이 나왔다. 이들은 고전 문헌을 뒤적이며 옛 대가들의 일화를 따라잡으려고 애썼다. 그림 속의 포도송이에 날아들었다는 제욱시스의 참새 이야기를 본떠서 조토가 스승의 그림에다 붓으로 파리를 그려 넣은 일은 15세기에 모르는 사람 없이 유명했다. 미켈란젤로는 제가 그린 그림에다 연기를 쏘였다가 오래 묵은 작품이라고 속여서 팔았고, 직접 새긴 대리석 조각을 골동품인척 흙 속에 묻었다가 파내는 깜짝쇼를 연출하기도 했다. 새들이 밤새 시끄럽게 지저귄다고 구렁이를 그려서 나무 허리에 감았다는 고대 일화는 17세기에 이르러 꽃이나 과일 정물 틈새로 스며드는 거미와 도마뱀 따위로 변신하기도 한다.

    르네상스는 고대 예술을 부지런히 흉내내고 옛 대가들의 행적을 따를만한 귀감으로 삼았다. 그러나 단순히 고대 미술의 이름값에 홀리거나 착시적 자연주의를 답습한 건 아니었다. 아름다움의 궁극을 추구하는 미술의 숙성과정에서 고대 일화들을 요긴한 촉매로 썼을 뿐이다. 르네상스 첫 세대는 아펠레스나 피디아스와 겨루어 이겼다는 찬사에 만족했다. 그 다음 세대부터는 예술의 어머니 자연과 우열을 다투었고, 마침내 전능한 창조주의 몫까지 넘보기 시작한다. 어둑한 공방을 지키던 화가나 조각가들이 하잘 것 없는 일꾼의 지위에서 신성의 위격을 찬탈하기까지는 불과 백년이 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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