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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편집시각 2001년01월09일18시30분 KST
    노성두의고전미술현장 한겨레/문화생활/노성두의고전미술현장

    [고전미술현장] 공사비 4조3천억원 로마 최대의 건축


    기원 후 247년. 건국 천년을 맞은 로마 콜로세움에는 밀레니엄 행사를 보려고 몰려든 인파가 연일 미어터졌다. 1000명의 조련된 검투사들이 칼 끝에 목숨을 다투는 짜릿한 볼거리가 시민들의 발걸음을 재촉했다. 기념행사에 동원되어 살육된 야생동물은 코끼리 32마리, 엘크 10마리, 호랑이 10마리, 사자 60마리, 표범 30마리, 하이에나 10마리, 하마 6마리, 코뿔소 1마리, 얼룩말 10마리, 기린 10마리, 나귀 20마리, 야생마 40마리…. 그러나 이 정도 가지곤 로마 전성기 칠현시대에는 명함도 못 내미는 수준이다. 일찍이 티투스 황제가 콜로세움 완공 기념식에서 동물 5000마리를 희생했고, 트라야누스 황제는 다키아 승전 기념으로 자그마치 검투사 1만 명과 맹수 1만1천마리의 목을 잘랐으니, 로마를 관류하는 티베리스 강은 더운 핏물로 끓어올라 범람할 지경이었다.

    이처럼 산 자의 피를 뿌려서 죽은 자의 영혼을 정화하는 피의 축제는 오랜 매장 관례에서 비롯된 로마인들의 믿음이었다. “산 자의 피로 죽은 자의 영혼을 달랠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럴 목적으로 사온 싸구려 노예들이나 전쟁포로들의 목숨을 제단에 올렸다.” (테르툴리아누스)

    기록에 남아 있는 첫 검투 기록은 기원 전 264년. 검투사 세 패가 사람들이 우글대는 소 시장에서 칼싸움을 벌인 게 처음이었다. 이후 공화정 유력 인사들은 합법적인 칼싸움의 흥행 가능성을 간파하고 순전히 시민들의 인심을 사려고 검투 시합을 주선하기 시작한다. 율리우스 카이사르도 선친의 서거 20주기를 기념한답시고 기원 전 65년 320패의 검투사들을 조달해서 결투를 붙였다고 한다.

    인공호수 자리에 높이 57m

    콜로세움은 원래 네로 황제의 황금 궁성에 부속된 인공호수 자리였다. 갈대 숲이 우거지고 백조가 떠다니던 늪을 걷어내고 그 위에다 로마 최대의 극장 건축을 올렸다. 그리스 극장이라면 대개 산비탈을 조개껍질처럼 오목하게 파내서 자연의 품안에 쏙 안기게 짓지만, 콜로세움은 휑한 평지 위에 저 홀로 우뚝하다. 게다가 그리스식 반원형 극장을 두 짝 맞붙여서 타원형으로 길게 늘여 붙였다. 연극 뿐 아니라 볼거리를 다양하게 제공하는 것도 로마 식 극장의 특징이다. 객석 경사도는 37도. 아찔하게 가파르다. 이런 설계는 관객 모두에게 트인 시야를 제공한다는 편익은 있지만, 건축 하부에 부하가 과중하게 실리는 문제가 생긴다. 더구나 인공호수 연약 지반 위에 높이 57m짜리 4층 구조물을 올리기란 아무래도 무리가 아닐 수 없다. 로마의 공학은 이런 난제를 어떻게 해결했을까?

    노예 4만명이 5년만에 뚝딱

    먼저 바닥에다 콘크리트를 무려 12m 깊이로 타설해서 기초를 보강했다. 또 수직 하중이 집중되는 외벽에는 인근 티볼리에서 채석한 트라베르티눔을 쌓아올리고, 맨 꼭대기 층 객석은 목재로 짜서 무게를 크게 줄였다. 건축자재로 트라베르티눔 10만㎥와 콘크리트 23만㎥, 그리고 석재를 얽어매는 고정쇠 300톤이 들어갔다. 노예 4만명 이상을 동시에 투입해서 5년 동안 뚝딱 지어낸 초고속 공사였다. 동원된 인력과 자재를 현재 기준으로 산출하면 공사 총비용은 4조 3천억원 이상이다.

    1층 도리아식...2층 이오니아식...

    콜로세움은 르네상스 이후 서양미술사의 살아 있는 교과서가 된다. 화가, 조각가, 건축가들이 먼 나라의 여행가와 순례자들과 섞여서 로마의 기적을 답사했다. 이들은 `아름다움 그 자체'로 일컬어지던 고대 미술의 비밀을 밝히기 위해 막대자와 컴퍼스를 지참하고 스러진 폐허를 배회했다. 영광스런 고대의 희미한 신기루에 들떠서 영원히 마르지 않는 예술적 영감의 젖줄을 빨았다. 예컨대 르네상스는 콜로세움의 허물어진 외벽에서 1층 도리아식, 2층 이오니아식, 3층 코린토스 식으로 적용된 기둥질서를 읽었다. 이걸로 고대 건축의 비밀을 깨쳤다고 믿고 실용 건축에 활용했다. 그러나 이들이 터득하고 즐겨 응용한 3양식의 원리가 실은 콜로세움에서만 나타난 예외 사례라는 건 몰랐다. 실제 고대 로마 공공 건축에선 4층 3양식보다 도리아식과 이오니아식, 또는 혼합 양식 주두와 코린토스 주두의 2층 2양식이 가장 일반적이다. 건축을 무조건 3층으로 올리고 정면부에 3양식 원리를 갖다 붙이면 고대 건축 이념을 충실히 계승한다고 믿었던 르네상스의 자부심은 좀 심하게 말하면 한 시대의 맹목적 착각이 낳은 집단적 오해에 불과하다. 물론 이들의 천재적 맹목과 영감에 찬 오해가 그후 눈부신 문화로 꽃피긴 했지만. 미술사가 노성두

    '콜로세움 무너지는 날 로마도 멸망하리...'

    콜로세움의 본디 이름은 플라비움 암피테아트룸. 플라비우스 가문의 황제 베스파시아누스가 시작하고 티투스 황제가 80년에 완공한 원형극장이다. 콜로세움이란 이름이 인근에 서 있던 네로 황제의 황금 거상 콜로수스때문에 붙었다는 속설은 확인되지 않았다. 콜로세움 완공을 눈으로 목격했던 로마 시인 마르티알리스는 <연극의 책>에서 역사의 명예를 노래한다.

    “이집트 멤피스는 피라미드의 기적일랑 입을 다물라.

    아시리아는 바빌로니아의 영광 따위 뽐내지 말라.

    얌전한 이오니아는 아르테미스 신전을 기리지 말라.

    뿔 달린 델로스의 제단도 잠자코 있으라.

    카리아는 허공에 솟은 마우솔레움 영묘가

    별들과 어깨를 겨룬다는 칭송을 그만 그쳐라.

    로마 황제가 지은 원형극장에 견준다면

    장차 어떤 역사의 명예도 함부로 입에 올리지 못하리.”

    원형극장에다 콜로세움이란 명칭을 처음 붙인 건 8세기 승려 베다 베네라빌리스. 그는 고대 건축과 세상 운명을 한데 묶어서 보았다.

    “콜로세움이 서 있을 동안,

    로마는 무너지지 않으리.

    콜로세움이 무너지는 날,

    로마도 멸망하리.

    로마가 멸망하는 날,

    세상도 서 있지 않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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