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한겨레
문화/생활

  • 영화/비디오
  • 만화/애니
  • 여행/여가
  • 문학/출판
  • 방송/연예
  • 대중음악
  • 언론/미디어
  • 생활/건강
  • 음악미술연극
  • 전시/공연
  • 종교

  • 전체기사
    주요기사
    지난기사

    기사검색

    기획연재
  • 클래식산책
  • 고전미술현장


  • 편집자에게
  • 광고안내
  • 서비스지도
  • 신문구독신청

  • 편집시각 2000년12월19일19시22분 KST
    노성두의고전미술현장 한겨레/문화생활/노성두의고전미술현장

    [고전미술현장] 이름없는 시골구석 수줍음 많은 처녀처럼


    피렌체 산 마르코 박물관 이층 계단을 오르면 옛 수도원 수사들이 쓰던 독방들이 복도 양켠에 늘어서 있다. 하루의 노동과 기도를 갈무리하고 고단한 육신을 눕히는 침소의 크기는 두 평 남짓. 요 한 장 깔면 탁자 하나 들어갈 자리도 빠듯하다. 허리를 구부려야 들어가는 빈방 안에는 가구 한 점 없이 덧문을 씌운 서너 뼘 크기의 창문 하나가 전부다. 벽과 천장은 회백색. 이곳을 찾는 방문객은 경건한 수도자의 향기에 이끌려 누구나 목마른 영혼이 되고 만다. 멀리 대성당 종루의 종소리가 귓전을 울릴 때면 저도 모르게 마음 문의 빗장을 여미고 하루만치의 축복을 감사하며 돌 바닥에 무릎꿇는 가난한 수사가 된다.

    동료수사 방에 그려

    프라 안젤리코. `천사 신부님'이란 뜻이다. 얼마나 사랑스런 영혼을 소유했기에 그런 별명을 얻었을까? 세속명은 귀도. 묵주와 붓을 같이 들었던 그는 동료 수사들 방마다 돌아가며 조그마한 프레스코 벽화를 한 점씩 그렸다. 바사리의 기록을 보면 그는 기도를 올리지 않고 붓을 드는 법이 없었고, 그림을 그릴 때면 더운 눈물이 솟아올라 그의 깡마른 뺨을 적셨다고 했다. 한번 그린 그림에다 다시 손대서 고치는 일도 없었다. 하느님의 보이지 않는 손길이 자신의 붓을 인도한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모든 미술을 씻을 수 없는 죄악이라고 몰아치며 피렌체 시민들에게 불을 뿜는 듯한 설교를 뱉어냈던 `신의 채찍' 사보나롤라조차도 오직 안젤리코의 그림만은 가장 신성한 진실에 가깝다고 고백했다. 복도머리 왼쪽 몇 번째 방에선가 걸음을 멈추니 그림 한 점이 눈에 들어온다. 마리아에게 천사가 나타나 성령 잉태의 기적을 예고하는 장면이다.

    붉은 옷, 붉은 날개의 천사가 흰옷 입은 마리아에게 다가선다. 천사의 옷 그림자에 성처녀의 옷섶이 새삼 물들었다. 가슴이 제대로 부풀지 않은 여린 몸매지만 다문 입술이 야무지고 오똑한 콧매가 강고하다. 밝은 이마 아래 빛나는 눈빛도 침착하다. 낯선 존재의 난데없는 출현과 예기치 못한 예고에 누군들 이만큼 침착할 수 있을까?

    기도서를 손에 쥔 마리아는 천사의 출현에 몸을 낮추었다. 두 팔을 엇접어서 가슴에 모은 자세는 겸손과 순종을 뜻한다. 기독 미술에서 전통적으로 마리아가 이때 취하는 다섯 가지 반응, 곧 놀람, 사색, 반문, 순종, 은총 가운데 `순종'의 계기가 선택되었다.

    장식 없이 정갈하게

    이 그림에는 여느 그림과 다르게 이상한 데가 있다. 천사와 마리아의 만남 말고는 아무 장식도 없다는 점이다. 마리아의 순결을 뜻하는 흰 백합과 투명한 물병, 빛살의 파도를 타고 날아드는 성령의 비둘기, 금빛 광휘에 휩싸여 이들을 굽어보는 성부의 모습도 그림에 보이지 않는다. 한 순간 새들의 지저귐이 침묵하고 바람도 부푼 입을 다물었다. 마리아의 차림새도 수수하다. 늘 입던 진청색 겉옷도 눈부신 장식솔기도 없다. 헐렁한 속옷 한 벌이 전부다. 가죽 신발도, 머리에 드리우는 베일도 벗었다. 옥좌도, 휘장도, 발아래 황금빛 자수 방석도 치워냈다. 마리아에게는 이런 장식들이 하나도 소용없었을 것이다. 안뜰이 내다보이는 수도원 회랑의 마리아는 영광스런 천상의 여왕이라기보다 이름 없는 시골구석 수줍음 많은 처녀처럼 보인다. 안젤리코는 1500년 전 나사렛에서 있었던 만남의 기적을 한 시골 처녀의 겸손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수도원 고적한 회랑 풍경을 순결한 태중의 작은 우주로 바꾸어 그렸다. 세상 죄악을 속량할 어린양을 점지받은 마리아는 표정과 자세가 더없이 진지하다. 신성과 인간의 만남을 이보다 간절하게 그려낼 수 있을까? 기쁜 소식 전하는 천사의 간곡한 기품과 말없이 순종하는 성처녀의 즐거운 헌신을 이보다 정갈하게 헹궈낼 수 있을까? 안젤리코는 천사의 영혼을 소유한 화가였다고 한다. 정말 그랬던 모양이다.

    살아있는 주님을 영접합니까? 그렇지 않다. 마리아

    천사가 먼저 인사를 건넨다. “아베, 마리아.” 아베는 `안녕'이란 뜻이다. 마리아는 천사의 출현을 보고 몹시 놀랐다고 한다. 라벤나의 페트루스는 이렇게 설명한다. “천사의 모습은 더없이 달콤했으나 천사의 말씀은 더없이 끔찍했다. 천사의 모습을 보고 기쁨에 넘쳤던 마리아는 천사의 말씀을 듣고 기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기야 낯선 이가 불쑥 찾아와서 곧 태중에 아기를 가질 거라고 말한다면 소스라치지 않을 사람이 드물 것이다.

    그러나 마리아는 이내 두려움을 진정하고 되묻는다. “이 몸은 처녀입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천사를 다그치는 마리아의 당찬 질문을 두고 교부 아우구스티누스는 당연한 반응이라는 해석을 내놓았다. 이건 천사에 대한 불신과 의혹의 표현이 아니라 처녀성의 순결한 서원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한편, 야고보 외경은 루가 복음서에 빠진 내용을 수록한다. 성령 잉태의 예고를 듣고 나서 마리아가 하느님이 혹시 인간으로 변신하여 자신과 동침하는 게 아닌지 물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제가 살아 있는 주님을 영접하여 이 세상 여인네들과 같은 방식대로 아기를 가지게 된다는 뜻인가요?” 천사는 고개를 가로젓는다. 루가 복음서는 천사의 대답을 이렇게 기록한다. “성령이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감싸주실 것이다.” 이 대목은 우리말 성서 번역이 조금 어긋났다. 라틴 성서의 표현은 `옵움브라비트 티비'. 다시 옮기면 이렇다. “그렇지 않다, 마리아. 주님의 기운이 너에게 그림자를 드리울 것이다.” 그러나 빛의 존재이신 하느님이 그림자로 변신하다니? 성 베르나르두스는 그 까닭을 이렇게 풀이했다. `비물질적인 신성이 인간의 몸을 가진 마리아에게 깃들기 위해서', 그리고 `마리아의 몸이 신성을 감당하게 하려고' 그랬다는 것이다. 미술사가 노성두





    [Home| 사설칼럼|기획연재|정치|경제|사회|스포츠|국제|증권|문화생활|정보통신|만화|전체기사] [↑]
    copyright(c)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