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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편집시각 2000년12월12일18시38분 KST
    노성두의고전미술현장 한겨레/문화생활/노성두의고전미술현장

    [고전미술현장] 독재자 암살한 이유는 '내 애인 집적거리지마'


    4년마다 돌아오는 판아테나이아는 올림픽 경기에 버금가는 그리스 최고의 축제다. 각지에서 아테네로 모여든 씩씩한 청년들이 전차 경주를 벌이고, 지체 있는 집안 어여쁜 처녀들이 아크로폴리스의 에레크테이온에 모셔둔 아테나 신상에다 새 옷을 지어 입히며 나라의 결속을 다지고 안녕을 기원한다. 기원전 514년. 시민 축제가 무르익을 무렵 히피아스와 히파르코스가 군중들 가운데 모습을 드러냈다. 헤라클레스를 자처하던 선대 참주 페이시스트라토스의 두 아들이다. 탬버린과 피리 소리가 소란스럽고, 향기로운 꽃줄을 목에 두른 황소들이 제단 앞에서 차례를 기다릴 때였다. 어디선가 자객 두 사람이 축제 행렬에 스며들었다. 이날 피비린내 나는 사건을 예감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동성애 삼각관계 얽혀

    먼저 히파르코스가 피를 뿌리며 쓰러졌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그를 수행하던 심복이 재빨리 칼을 뽑아들어 젊은 자객을 후리자 다른 하나는 줄행랑을 놓고 말았다. 덕분에 히피아스는 목숨을 건졌다. 뒤늦게 도망자를 붙잡아서 다그치자 어처구니없는 자백이 나왔다. 애정 문제 때문에 암살을 결심했다는 것이다. 제가 애탐하는 미소년을 참주가 넘보길래 본때를 보여주려고 했단다. 결국 실컷 고문을 받고나서 아크로폴리스 언덕에서 처형당했다. 남자 셋이 얽힌 삼각관계를 칼로 해결하려고 했다가 셋이 다 죽었다.

    민주화 상징으로 '각색'

    히피아스는 동생을 잃고 일인 참주로 나섰다. 그는 그후 4년 동안 무자비한 폭압 정치를 펴다 결국 510년 도시에서 추방당하고 만다. 아테네 시민들은 지긋지긋한 참주제를 떨쳐내고 민주정체를 세우기로 한다. 이때 그들의 기억 속에 참주 살해자들이 떠올랐다. 하르모디오스와 아리스토게이톤. 이 둘은 원래 애정행각을 벌이다가 목숨을 잃었지만 그런 과거야 어때도 상관없었다. 새로운 정치제도를 표상할 상징적인 역사가 딱히 없었던 아테네 시민들은 서슴없이 두 사람을 무덤에서 끄집어낸다. 무덤에서 나온 그들은 자신도 모르게 참주 독재의 심장에 칼을 겨눈 용사가 되어 있었다. 한낱 치정 살인자가 민주정체를 위해 목숨을 버린 구국 영웅으로 추앙받게 된 내력이다.

    5세기 초 페르시아와 수 차례 전쟁을 거치면서 이들의 주가는 계속 상종가를 친다. 아테네 시민들은 지난 그리스의 참주제를 숙적 페르시아의 군주제와 동일시하고,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는 참주 살해 사건을 노예적 예속에 굽히지 않는 굳센 저항정신으로 해석했다. 또 5세기 중반께 자유의 개념이 민주정체와 어울리면서 마침내 자유와 목숨을 바꾼 순교자로까지 신격화되었다. 심지어 동성애야말로 참주제를 견제할 유일한 수단이라고 떠벌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어쨌거나 아테네 밤거리에는 술자리마다 이들을 칭송하는 노랫소리가 드높았다고 한다.

    참주 히피아스가 추방되던 해, 아테네 시민들은 하르모디오스와 아리스토게이톤을 청동 조각으로 빚는다. 민주 정체에 관한 주제들이 시와 논문으로 다루어진 게 5세기 중반부터니까 미술이 민주주의를 말하기 시작한 건 이보다 반세기나 빨랐다. 또 하나. 위대한 치적이나 눈부신 업적을 남긴 영웅들을 기리는 조각작품들은 대개 묘역이나 성역처럼 초현실적인 장소에 세우기 마련이지만 이번엔 달랐다. 아테네 시민들의 정치적 삶의 중심부인 도시 한 복판 아테네 시장 광장을 청동 조각의 전시 장소로 택했다. 이런 일은 일찍이 없었다. 심지어 참주 살해자 군상 부근에는 어떤 영웅 조각상도 세울 수 없다는 법령까지 만들었으니 좀 심하지 않았나 싶다.

    벗은게 아니라 알몸을 걸친 것

    나이 든 아리스토게이톤은 텁석부리 수염인데 어린 하르모디오스는 턱이 맨숭맨숭하다. 수염 깎는 걸 남자답지 못한 행동이라고 생각했던 그리스 사람들 눈으로 본다면 키는 훌쩍 컸지만 아직 볼이 붉은 소년이다. 군상 조각에서 두 사람의 자세는 쌍동이처럼 닮았다. 둘을 옆에서 보면 앞으로 내민 팔만 빼고 몸 윤곽선이 거의 겹친다. 이처럼 성년과 소년의 키를 맞추고 행동을 일치시킨 건 시민 개개인이 모두 정치적으로 평등하다고 보는 `이소노미아' 의식에 기반한 민주정체 사상과 다르지 않다. 그렇다고 개인적인 특질과 개성을 딱히 강조하지는 않았다. 역사 기념물이면서도 두 사람 얼굴에 초상적인 특징은 보이지 않는다.

    오른쪽에 선 하르모디오스는 근육이 미숙하고 뼈가 여물지 않았다. 그러나 칼을 휘두르는 동작이 날래고 패기에 넘친다. 칼날을 머리 뒤로 젖혀 올렸다가 크게 내려치는 자세는 공격자의 오른쪽 옆구리가 상대에게 노출되는 위험이 있다. 그래서 맞대결에서는 나오기 어렵고 상대가 이미 전의를 잃었거나 크게 상처를 입었을 때 가하는 마지막 일격이다. 실제로 히파르코스를 죽인 건 하르모디오스였다고 한다. 한편, 왼쪽에 선 아리스토게이톤은 칼을 뒤로 감추었다. 앞으로 뻗은 팔에 겉옷 자락을 걸친 건 상대를 기만하는 전술이다. 불쑥 내민 칼집에 상대가 당황하는 순간을 노려 숨겼던 칼로 번개처럼 후빌 요량이다. 억센 근육과 살집 좋은 체구에다 노림수까지 밝아서 나잇값에 잘 어울린다. 하르모디오스가 젊은 영웅 테세우스나 아폴론을 닮았다면, 아리스토게이톤은 용맹과 지략을 고루 갖춘 오딧세우스에 가깝다.

    조각 군상에는 참주들이 포함되지 않았다. 역사를 증언하는 기념물인데 왜 그랬을까? 또 둘을 알몸으로 벗겨둔 것도 사실적인 재현과 거리가 있다.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운동 경기를 할 때를 제외하곤 공공장소에서 옷을 벗는 일이 없었으니 알몸으로 암살을 기도했을 리는 만무하다. 그렇다고 이런 문제들을 조각가 개인 취향으로 치부하기는 어렵다. 공공 미술에는 시시콜콜한 조건들이 몹시 까다롭게 붙기 때문에 그 당시 예술가가 누릴 수 있는 표현의 자유는 극히 제한되어 있었다. 참주 살해자의 경우 연적에 대한 복수가 정치적인 가치로 채색되어 새로운 덕목의 상징으로 영웅화된 작품이다. 그렇다면 세상의 옷을 벗은 게 아니라 신성의 알몸을 걸쳤다고 보는 편이 낫겠다. 질투심도 사무치면 신의 경지에 오르나 보다.미술사가 노성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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