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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편집시각 2000년12월05일18시57분 KST
    노성두의고전미술현장 한겨레/문화생활/노성두의고전미술현장

    [고전미술현장] 그리스 수학 + 로마 공학 = 건축의 기적


    로마 로톤다 광장 동쪽을 막아선 판테온은 겉모습이 수수하다. 흔한 그리스 신전과 생김새가 비슷해서 잘 모르면 그냥 지나치기 십상이다. 그러나 이집트 산 화강암 통돌 기둥을 지나서 신전 내부로 들어서면 누구나 입이 떡 벌어지고 만다. 만약 그리스 신전이라면 좁아터진 감실에 신상 한 점 모시는 게 고작이겠지만, 이건 끝이 잘 보이지 않는 아득한 공간이다. 한 틀의 우주가 눈앞에 근사하게 펼쳐지는 것이다. 이처럼 겉 다르고 속 다른 퓨전 건축을 지어서 사람을 놀래키는 건 다분히 헬레니즘적이다.

    15층 건물 높이...벽두께 6.2m

    지금은 신전 장식이 다 떨어져나가서 우중충하지만 원래는 둥근 천장 가득히 짙은 청색을 입힌 동판을 씌우고 황금별을 빼곡하게 붙여 놓아서 별빛 총총한 밤하늘의 장관을 연출했다. 고개를 젖히고 올려보면 천장 한복판에 뚫린 구멍을 통해서 빛살이 눈부시다. 빛의 궤적은 하루의 경과와 절기의 변화에 따라 달라진다. 이를테면 여름철에는 둥근 빛발이 대리석 바닥을 쓸어내고 겨울에는 둥근 격자 천장에 달라붙는다. 또 밤낮 길이가 같은 춘분과 추분에는 정오 시각에 천장 개구부를 통과한 빛 기둥이 정확히 출입구 들보의 윗모서리를 스친다. 로마인들은 천장 구멍을 `눈'이라고 불렀다. 하늘 배꼽을 통과한 태양과 행성들이 지구의 자전 운동을 좇아서 작은 우주의 건축 안에 빛의 자취를 뿌리니 판테온 안에 들어선 사람은 모두 신성의 세례를 받지 않을 수 없다. 실제로 범신론과 친숙했던 스토아 철학자들은 우주가 신적 이성이 쏟아내는 씨앗 `로고이 스페르마티코이'로 충만하다고 믿었다.

    판테온은 그리스의 수학과 로마의 공학이 힘을 합해서 빚어낸 건축의 기적이다. 그러나 기적 치곤 구조가 퍽 단순하다. 둥근 원통 위에다 직경이 같은 반구를 덮어씌운 꼴이다. 그래서 신전 내부의 수평 지름과 세로 높이는 똑같이 43.2m. 거의 15층 건물 높이니까 달팽이 계단을 따라 올라가서 꼭대기 눈구멍에서 내려다보면 밑에 있는 사람들이 개미처럼 보인다.

    이만한 크기로 둥근 천장을 얹은 건 예사 솜씨가 아니다. 르네상스 교황들은 베드로 성당 둥근 지붕을 올리면서 무조건 판테온보다 커야 한다고 막무가내를 부렸다고 한다. 건축가들이 내놓은 시안들이 줄줄이 퇴짜맞은 끝에 결국 판테온보다 1.3m 짧아진 이야기는 너무도 유명하다. 과연 판테온 건축의 비밀은 무엇일까?

    우선 기초를 든든하게 다졌다. 깊이 4.5m, 너비 10m의 콘크리트를 지하에 타설하고 그 위에 원통 벽을 두께 6.2m로 올렸다. 대포를 웬만큼 쏘아도 끄떡없는 철옹성이다. 반구형의 지붕은 조금씩 얇아지다가 맨 위는 두께가 2m까지 줄어든다. 중요한 건 배합재료. 아래쪽은 단단하고 무거운 석회질을 많이 섞었고, 맨 위는 가볍고 질긴 경석을 주로 넣었다. 두터운 벽체 중간에는 빈 공간을 고루 팠다. 그래야 콘크리트 양생도 빠르고 건물의 전체 하중도 덜 수 있기 때문이다. 판테온 내부에 빙 둘러 서 있는 원주와 각주들은 상부구조를 떠받치는 기둥의 본래 역할과 무관하게 순전히 폼으로 서 있는 셈이다. 또 워낙 벽이 두꺼워서 곁 창문을 낼 수 없어서 천장 복판의 개구부를 유일한 채광원으로 삼은 데는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물론 비가 오면 젖는 게 흠이지만, 제사 지낼 때 자욱한 연기를 빼는 굴뚝으로도 요긴했다.

    황제가 금, 교황이 청동 뜯어가

    판테온은 고대 신전 가운데 보존이 제일 잘 된 걸로도 유명하다. 그러나 수난도 적지 않았다. 여러 차례 지진으로 지붕이 갈라지고, 티베리우스 강이 범람해서 지반을 훑어내기도 했다. 콘스탄티우스 황제는 663년 판테온 지붕에서 금을 씌운 청동기와를 벗겨서 몽땅 콘스탄티노플로 빼돌렸다. 그 전에는 인근 언덕에서 내려다보면 판테온의 지붕이 태양처럼 번쩍거렸다고 한다. 현재 지붕을 덮은 납판은 교황 그레고리우스 3세가 씌웠다. 또 교황 우르바누스 8세는 판테온 정면부 발코니 지붕에서 청동을 25톤이나 떼어냈다. 그걸 녹여서 대포도 만들고 조각가 베르니니를 시켜 베드로 성당 제단부의 천개를 만드는 데도 썼다. 이 일로 바르베리니 가문 출신이었던 교황은 “바르바리안(야만족)도 가만히 놔둔 걸 바르베리니가 그만 싹쓸이했다”는 군소리를 들었다. 이탈리아의 옛 선조들이 남긴 문화재를 교회의 수장이 앞장서서 파괴했으니 교황은 입이 열이라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미술사가

    모든 신을 모시다가 지금은 하나의 신만

    판테온은 로마 건축 가운데 용도변경하지 않고 여태껏 종교적 기능을 수행하는 유일한 보기다. 물론 처음에는 모든 신들을 모시다가 나중에 기독 유일신을 섬기게 되었다는 차이는 있다. 기원후 608년 비잔틴 황제 포카스가 판테온을 교황 보니파티우스 3세한테 선물했다. 그 덕택에 요행히 교회로 변신해서 파괴되지 않았다. 로마 시민들은 로마 공회장에 포카스 기념주를 세워서 황제의 호의에 답례했다고 한다.

    609년 교황 보니파티우스 4세는 수레에다 기독교 순교자들의 유골을 바리바리 싣고 와서 판테온에다 부려놓았다. 신전도 판테온이라고 부르지 않고 `성모 마리아와 모든 순교 성자들의 교회'라고 이름을 새로 붙였다. 때아닌 유골을 부려놓은 건 이교의 신들을 누르고 마침내 승리하는 기독교회의 면모를 과시하려는 의도였다. 새 교회 봉헌일은 11월 1일. 그후 이 날은 가톨릭의 만성절 축일이 되었다. 미술사가 노성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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