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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편집시각 2000년10월24일21시42분 KST
    노성두의고전미술현장 한겨레/문화생활/노성두의고전미술현장

    [고전미술여행] 목욕탕이라기보단 종합놀이시설


    카라칼라 대욕장

    “목욕, 여자, 포도주는 인생을 망친다. 하지만 그 셋이 없으면 무슨 낙으로 살겠나?”(로마 목욕탕 낙서)

    로마인들은 목욕을 무척 즐겼다. 하루 한 차례는 목욕탕에 드나들어야 시민 행세를 했다. 욕장은 때 벗기는 일 말고도 음악과 시를 음미하거나 정치와 철학을 논하는 장소였다. 패를 나누어 운동시합을 벌이거나 음식을 시켜먹기도 했다. 상거래도 했다. 말하자면 어른들을 위한 종합놀이시설이었던 셈이다.

    여탕과 남탕은 대개 섞지 않았다. 건물을 따로 나누어 쓰거나, 오전 10시~오후 1시는 여성 전용, 오후 1시~5시는 남성 전용으로 시간을 쪼개는 게 보통이었다. 그러나 욕장 안팎의 낯뜨거운 사건들을 보다 못한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2세기 초 대욕장에는 남자들만 드나들게 하고 여자들은 뒷골목 공중목욕탕에 가라고 혼욕금지령까지 내린 걸 보면 간혹 알몸의 남녀들이 섞이는 일도 드물지 않았던 모양이다.

    로마인보다 앞서 그리스 사람들도 목욕탕을 찾았다. 그러나 올림피아에 남아 있는 5세기 이전 그리스 식 목욕탕 유적을 보면 간단한 물뿌리개 몇 개가 고작이다. 기원전 4세기 들어 온욕 습관이 유행하면서 목욕 설비도 현대화되었으나 숯 곤로를 지피는 온탕 공기가 워낙 탁한데다가 자칫 목욕하러 갔다가 되레 재나 검댕이로 칠갑을 하는 수가 있었다. 이런 문제가 해결된 건 기원전 1세기께. 물을 끓여서 뜨거운 공기를 토관을 통해 돌리는 방법으로 욕실 바닥과 외벽을 데우면서 숯 곤로가 사라지고 그 대신 욕탕 바깥에 설치한 아궁이에다 장작을 지피게 되었다. 목욕탕에다 도서관이나 체육시설을 함께 부설한 것도 기원전 1세기 헬레니즘 시대. 이로써 목욕탕은 몸과 마음을 닦고 살찌우는 명실상부한 교양 쉼터로 탈바꿈한다. 우리나라 남탕에다 흔히 묵은 잡지 나부랭이나 무쇠 아령 따위를 갖다놓는 전통도 알고 보면 헬레니즘 목욕 문화의 계승이다.

    로마의 대욕장은 강과 숲을 끼고 지어졌다. 물과 땔감의 조달이 용이하고 도심에서 멀지 않은 곳이 적지로 꼽혔다. 바닥난방으로 욕실 온도를 조절하는 열탕의 경우, 외부 온도가 0도일 때 내부를 25도로 유지하려면 바닥은 65도까지 올려야 한다. 만약 외부 온도가 영하 5도로 떨어지면 나무 샌들을 신지 않고서는 도저히 발을 못 댈 만큼 바닥이 달구어진다. 주인에게 주먹을 휘두른 노예 둘을 열탕 바닥에 동댕이쳐서 구워 죽였다는 기록도 있으니 거의 불가마를 방불케 했을 것이다.

    이 정도 군불을 때려면 웬만한 숲 하나가 한 철을 못 넘기고 거덜났다. 그러나 황제들은 `로마 시민의 청결과 건강을 위해서' 너나 없이 대욕장 건설에 앞장섰다. 아그리파가 로마에 최초의 공공 욕장을 건설한 뒤, 네로 황제가 마르스 들판에, 티투스 황제는 콜로세움 바로 옆에, 그리고 트라야누스 황제는 로마를 도배하다시피 많은 욕장을 세워서 칭송이 하늘을 찌를 듯했다. 기원전 33년 170곳에 불과했던 욕장이 300년이 못 지나 공공 욕장만 856곳으로 늘어났으니 황제들의 물쓰듯하는 선심정책 덕택에 나라 곳간이 말라붙을 지경이었다. 그렇다면 공공 목욕탕 입장료는? 당연히 공짜! 미술사가

    맘대로 못하고 순서대로

    탈의실에서 옷을 벗으면 목욕 시작이다. 하인과 노예를 얼만큼 거느렸는지 보면 사회적 지위를 알 수 있다. 일단 욕실에 들어서면 체질 따라 온탕이나 냉탕을 선택할 자유가 없다. 물론 냉탕과 열탕을 번갈아 가며 담금질하는 `스파르타 식' 목욕법도 있지만, 로마식 목욕은 어디까지나 경건한 의식을 닮아서 순서가 까다롭다.

    먼저 증기탕 세 곳을 차례로 거치면서 훈증으로 몸을 데운다. 땀구멍이 다 열리면 열탕에 든다. 바닥에는 수로를 따라 끓는 물이 흐른다. 열탕은 남서향. 자욱한 수증기 틈으로 오후 햇살이 스며든다. 뒷머리에 노린내가 날 무렵 어둑한 온탕으로 옮겨가서 마지막 땀방울을 짠다. 그 다음은 냉탕. 불가마를 뒤로하고 눈앞에 펼쳐지는 냉탕은 폭이 마흔 보, 너비가 백 보나 되는 시원하고 밝은 공간이다. 높이는 무려 30m. 현대식 10층 건물 높이다. 높직한 이층 창문에서 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진다.

    “벽과 바닥은 짙은 적색, 자주색, 청색 대리석을 깔아서 목욕하는 알몸들이 더욱 돋보인다.”(루키아노스)

    “천장에는 색유리 모자이크가 휘황하고…대리석 욕조, 청동제 의자, 통은으로 구운 대야에다가 늘어선 대리석 원주와 조각상들의 아름다움이 더해서 눈이 핑글 돌 정도다.”(세네카)

    냉탕에서 땀을 씻은 다음에는 대리석 조각상들이 시중하는 노천 수영장에 첨벙 뛰어들거나 옆자리 휴식공간에서 미끈한 노예들의 시중을 받으며 마사지를 하면 이걸로 때 벗기는 순서는 종료. 그러나 이때 반가운 사람을 만나면 처음부터 다시 한 바퀴.

    '연방 씨근덕, 헐떡...못봐주겠군

    훗날 네로 황제의 가정교사 노릇을 했던 세네카는 한 때 목욕탕 뒷집에 살았다. 친구에게 보낸 편지글에서 철학적 명상을 방해하는 목욕탕 소음에 대해 한껏 불평을 늘어놓았다. “얼마나 시끄러운지 자넨 상상조차 못 할 걸세. 귀가 뚫린 게 후회된다면 말 다했지. 덩치들이 예서 운동을 한답시고 아령을 휘두르며 비지땀을 흘리는데…숨을 잔뜩 참았다가 신음을 뱉어내는 건 그렇다 치고, 연방 씨근덕 헐떡대는 꼴은 차마 못 봐주겠더군. 한가롭게 향유 기름 뒤집어쓰고 마사지를 받는 축들도 있네. 손바닥을 납작 펴거나 오므려서 어깨 짝을 죽어라 두들기는데, 내려칠 때마다 쩍쩍 달라붙고 퍽퍽 바람 터지는 소리가 아닌 말로 일품일세…욕실에서 가수가 탄생하는 경우도 있지. 천장이 무너져라 신이야 넋이야 목청껏 내지르면, 아니, 듣고 있는 사람은 무슨 죄졌나? 날 보란 듯이 첨벙 물보라를 튀기면서 잠수 솜씨를 뽐내는 꼬락서니도 곱게 볼 일은 아니지…심지어 남의 겨드랑이 털을 뽑아 가는 못된 놈도 있다네. 심심풀이 떡이나 소시지, 과자가 맛있다고 외치는 꾼들, 목욕 끝나고 시원하게 한 잔 유혹하는 호객꾼들, 그리고 벼라별 장사치들이 저마다 보따리를 풀어놓으니 이게 뭐겠나? 바로 목욕탕 풍경일세.”미술사가 노성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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