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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편집시각 2000년10월10일20시44분 KST
    노성두의고전미술현장 한겨레/문화생활/노성두의고전미술현장

    [고전미술현장] 흙벽 털어내자 대리석 거인들이 꿈틀꿈틀


    페르가몬의 `제우스 제단'

    독일인 도로 설계사 카를 후만이 터키 정부의 공식 요청으로 베르가마에 도착한 것은 1864년. 고고학에 무지하지 않았던 그는 이곳이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후계가 건설한 고도 페르가몬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옛 영화의 자취를 더듬어 벼랑 위의 도시에 오르던 그는 때마침 기세 좋게 연기를 뿜어대는 대형 석회 가마를 보았다. 가마 옆에는 횟가루를 구으려고 끌어다 둔 대리석 덩어리들이 지천으로 널려 있었다.

    “슬펐다. 넋을 잃고 서서 어른 키만큼 높고 웅장한 코린토스 기둥머리와 대리석 받침돌과 건축의 파편들이 아무렇게나 발에 채는 광경을 비통한 심정으로 바라보았다. 파란 돌무화과 넝쿨이 돌무더기 사이로 얽혀 있었다. 일꾼들은 쇠망치로 잘게 부순 대리석을 불붙은 석회 가마에 쉴새없이 쏟아 넣는 중이었다…일찍이 무적의 영광에 빛나던 아탈로스 왕조의 자랑스런 예술이 불가마 속에 스러져가고 있었다.”

    독일인 도로 설계사가 발견

    그러나 모든 역사가 가마터 푸른 연기로 사라진 건 아니었다. 아탈로스 이후 이곳을 지배하던 비잔틴 왕국은 기원후 715년 아랍인의 공세에 페르가몬을 빼璣若鳴?이태 뒤 재탈환하면서 성벽을 새로 축조한다. 서둘러 지은 비잔틴 시대 흙벽을 살피던 후만의 눈이 빛났다. 흙을 털어내자 희끄무레한 대리석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2000여 년전 올림포스의 신들에게 패배한 거인족들이 울부짖고 있었던 것이다.

    성벽에 갇힌 채 요행히 살아남은 조각들이 고도 페르가몬의 제우스 제단 부조였다는 사실은 금세 밝혀졌다. 4세기께 루키우스 암펠리우스의 <리베르 메모리알리스>가 첫 단추였다. ‘갈대 숲에서 수은을 줍는’ 고고학자들에게 이쯤이야 대수롭지 않은 성과다.

    “페르가몬에는 높이 40피트나 되는 거대한 대리석 제단이 있다. 거인족과의 싸움을 다룬 대형 조각들도 볼만하다.” 후만의 소식을 들은 독일 고고학계는 지체없이 학술 원정단을 구성한다. 1871년 우연한 발견 이후 거인족들은 속속 베를린으로 옮겨졌다. 독일 정부가 터키에 지불한 발굴보상비는 무려 2만 제국 마르크. 그러나 그로부터 15년이 더 걸린 본격 발굴에는 이보다 여섯 곱이 더 소요되었다. 헬레니즘 예술의 영광을 불 가마에서 끄집어낸 대가로는 그리 아깝지 않은 지출이었다.

    독일 정부의 후원으로 이루어진 제단 부조의 발견과 복원은 루브르나 대영박물관에 필적하려는 바이마르의 정치적 야심과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대부분 ‘작은 예술’로만 남아 있던 기원전 2세기의 큰 공백이 메꾸어졌다는 역사적 성과도 스쳐 지날 수 없다. 이로써 알렉산드로스 이후 분쟁과 경계다툼으로 얼룩진 속칭 ‘아류 시대’는 헬레니즘 문화의 전성기로 재해석되었다. 고고학의 향후 판도도 달라졌다. 고작 팔 떨어진 밀로의 <비너스>나 머리 잘린 <사모트라케의 니케>에 만족했던 헬레니즘 연구가 고대 미술의 양식사에서 으뜸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후만의 발견은 ‘위대한 고고학의 시대’인 19세기를 마감하는 영웅적 사건이었다. 그가 만약 고대 도시를 답사하지 않았더라면? 성벽의 저주에서 풀려 나온 거인족들은 모슬렘 사원의 벽토 장식에 다시 감금되었을 것이다. 제우스 제단은 고사하고 페르가몬 아크로폴리스가 통째로 불 가마의 엽기적 운명을 피하지 못했을 것이다. 미술사가

    목숨 구걸하는 눈빛 애처로워

    제우스는 큰 자세로 옷주름을 휘날린다. 오른손에 치켜든 벼락을 내다 꽂을 참이다. 왼쪽 구석에 주저앉은 거인은 허벅지에 벼락이 관통했다. 목숨을 구걸하는 그의 눈빛이 애처롭다. 제우스의 기세에 또 다른 거인도 무릎 꿇었다. 두 번째 벼락이 그의 등짝을 겨냥한다. 그의 운명은 바람 앞에 까부는 검불과 다름없다. 등을 돌린 거인은 다리 대신 뱀 꼬리가 둘이다. 거인족의 우두머리 튀폰이 아닐까? 제우스의 신조 독수리가 그를 상대한다. 이 싸움은 독수리와 뱀, 또는 하늘과 땅 사이의 오랜 다툼을 보여준다. 우리에게도 까치와 구렁이의 설화로 잘 알려진 소재다.

    바닥면에 달라붙은 부조 형식이지만 신과 거인들의 움직임이 크게 돌출했다. 살갗과 머리카락과 옷주름에다 울긋불긋하게 채색을 하고 쇠를 두들겨 만든 무기를 쥐어주었으니 조형의 실물감이 더했을 것이다.

    아테나 승리에 도취하다

    아테나가 바람을 일으킨다. 코린토스 투구를 쓰고 둥근 방패를 들었다. 군신의 부푼 가슴에는 분노와 격정이 가득하다. 왼쪽 가슴에 패용한 아이기스가 눈알을 부라린다. 여신이 보낸 바다뱀이 거인 알퀴오네우스의 겨드랑이를 옥죈다. 제아무리 날개를 퍼덕거려야 소용없다. 죽어가는 아들의 비명을 어머니가 들었다. 대지의 여신 ‘게’는 왼쪽 어깨에 풍요의 뿔을 들었다. 일찍이 헤라클레스가 제 어머니를 깔보는 강의 신 아켈로오스의 이마에서 뿔을 뽑아 버린 적이 있었는데 요정들이 그걸 주워다 꽃과 과일을 채워서 풍요의 상징물이 되었다고 한다. 지표를 가르고 산발한 머리를 내민 ‘게’의 탄원이 승리에 도취한 아테나의 귀에 들릴 리 없다. 승리의 여신 니케가 오른쪽에서 서둘러 달려온다. 아테나의 빛나는 머리에 승리의 영광을 씌울 참이다.

    미술사가 노성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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