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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편집시각 2000년09월26일18시32분 KST
    노성두의고전미술현장 한겨레/문화생활/노성두의고전미술현장

    [고전미술현장] 원반이 얼만큼 날아갈지 무슨 상관이랴


    미론의 ‘원반 던지는 사내’

    뮌헨 고전 조각관은 아침부터 내노라하는 정치 거물들과 문화계 인사들로 북적거렸다. 1938년 7월 11일. 이윽고 군화 소리와 함께 히틀러가 등장하자 박수소리가 요란하게 터져 나왔다. 제2회 `위대한 독일 미술전'에 부쳐 제국 총통이 국민에게 주는 선물을 공개할 참이었다. 덮개를 걷어내자 파로스 대리석이 눈부신 살결을 드러냈다. 히틀러는 모자를 벗어들고 <원반 던지는 사내> 앞에 고개를 숙였다. 베를린 올림픽을 치른 지 다섯 해. 이탈리아 문화에 대해 적이 열등감에 시달려왔던 그는 때마침 무솔리니가 옛 로마 유적들을 깔아뭉개고 콜로세움에서 베네치아 궁까지 제국로 공사를 강행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파쇼적 야만의 극치였다. 이날 히틀러가 고대의 알몸 조각 앞에 경의를 표한 건 단순한 문화적 자부심의 표현을 넘은 일종의 상징이었다.

    이대로 던지면 땅바닥에 내동댕이

    그의 연설은 `기쁜 오늘'로 시작해서 `고대 조각의 완전하고 아름다운 인체는 다만 독일인이 뒤따르고 능가할 것'이라는 주장으로 끝났다. 먼저 청중의 감정을 흔들고, 아리안 우월주의로 마침표를 찍은 셈이다. 그러나 뮌헨에서 베를린으로 옮겨온 독일 고고학의 자부심은 패전 후 다시 로마로 되돌려지고 만다. 제값을 다 치르고 산 작품이지만, `전범들 간의 거래는 법적 효력을 상실한다'는 데야 패전국민으로서 도리 없이 내줄 수밖에.

    1781년 <원반 던지는 사내>가 로마 에스퀼리노 언덕에서 발굴되었을 때 사람들은 두 번 놀랐다고 한다. 돌로 쪼았다고는 보기 힘든 대담한 자세에 혀를 내둘렀고, 똑같은 자세로는 원반을 던질 수 없다는 걸 깨닫고 다시 고개를 내저었다.

    원반이 멀리 나가려면 투척 각도가 제일 중요하다. 미론의 운동선수는 원반을 쥐고 팔을 크게 들어올렸다. 시계추처럼 늘어뜨렸다가 다시 던져 올리려는 자세인데, 이렇게 후려치듯 던져서는 맘먹은 각도가 나올 턱이 없다. 원반이 자칫 땅바닥을 구르거나 뒤로 날아가기 십상이다. 그러나 고대 조각이 이처럼 엉터리 자세를 취한 까닭은 무얼까? 누구 작품인지도 수수께끼였다.

    작품을 둘러싼 궁금증은 2년 뒤 우연찮은 계기로 해결되었다. 이탈리아 고고학자 카를로 페아가 옛 문헌을 뒤적이다가 눈이 번쩍 띄는 구절을 찾았다. 루키아노스의 <필롭세우데스>에서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었다. `허리를 구부리고 얼굴을 돌려서 원반 쥔 손을 응시하며 두 다리를 웅크렸다가 곧 다시 퉁겨 오르려고 하는'…`조각가 미론의 특이한 작품'을 설명하는 대목이 마침 그가 기억하는 작품과 거짓말처럼 일치했다. 원작자가 미론으로 밝혀지자 다른 문제들도 술술 풀려나갔다.

    미론은 아마 올림픽 오종 경기의 원반 시합 우승자를 위해 청동을 구웠을 것이다. 지금부터 쳐서 2500년쯤 전의 일이다. 그러나 훗날 자기 작품을 독재자들이 권력 선동에 사용하리라곤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권력과 정치보다는 자연과 예술이 그의 관심사였다. 관찰력이 남달랐던 미론은 미끈한 청동 암소를 실물처럼 뽑아내기도 했다. 아테네 아크로폴리스에다 아테나가 버린 피리를 줍는 실레노스를 군상으로 제작해서 찬사를 한 몸에 받은 적도 있었다. <원반 던지는 사내>는 사실 그의 뜨르르한 걸작 목록에 명함도 못 내미는 실험작에 불과하다. 무슨 실험이었을까?

    운동역학보다 심미성이 먼저

    미론은 모래밭에서 원반을 가지고 훈련하는 알몸을 수도 없이 보았다. 그러나 자연 관찰을 곧바로 조형으로 옮기지는 않았다. 원반이 얼마만큼 날아가느냐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예술의 과녁을 겨냥하는 미론의 원반은 운동역학보다 심미성이 먼저였다.

    원반 던지는 자세치고는 좀 아닌 듯 싶지만, 상체와 하체가 바람개비 날개처럼 엇접혔고, 활짝 펼친 두 팔과 어깨는 오디세우스의 강궁처럼 탄력이 팽팽하게 실렸다. 그렇게 보면 활에 매겨진 화살은 운동선수의 등뼈에 해당한다. 마침내 예술이 자연의 울타리를 걷어내고 설득력 있는 조형을 얻었다.

    왼발 오른발 근육 달라야 하는데 똑같아

    미론보다 150년쯤 전에 그리스 조각가들은 이집트 전통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인체 조각이 숨을 쉬기 시작했다. 머리가 어깨 위에 제대로 얹히고, 발을 떼고 팔을 흔들면서 세상으로 걸어나왔다. 움직임이 생명을 표현한다고 믿고 인체의 사지를 마음껏 내질렀다. 미론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나 고고학자들은 아름다운 미론의 인체 조각이 고전기의 문턱을 넘지 못한다고 말한다. 그건?

    원반 던지는 사내는 온몸의 체중을 오른발에 실었다. 왼발은 모래를 긁으며 가볍게 미끄러진다. 당연히 두 발의 근육이 생김새와 탄력이 달라야 할 텐데 이상하게 똑같다. 장딴지와 종아리, 무릎 뼈도 닮은꼴이다. 두 팔도 마찬가지. 무거운 원반을 쥐고 힘껏 쳐든 오른팔이 가만히 늘어뜨린 왼팔과 어쩌면 핏줄 한 가닥까지 같을 수 있을까. 더군다나 흉부와 복부까지 가면 어처구니가 없을 지경이다. 허리를 거의 직각으로 접고 상체를 용수철처럼 비틀었는데 왼쪽하고 오른쪽이 완벽한 대칭을 이루고 있으니 이건 정말 너무 했다. 사실대로라면 배꼽 부근을 지나는 배 주름이 부챗살처럼 펴져야 마땅하다.

    미론은 머리 속에 쌓아둔 지식을 가지고 인체를 빚었다. 오른팔과 왼팔이 어떻게 어울리는지는 관심 밖이었다. 팔 하나, 다리 하나만 알면 된다고 생각했다. 움직임의 원리를 탐구하기보다 겉보기에 닮았으면 됐다고 믿었다. 미론이 고전기 조각가들을 따라잡지 못한 이유였다. 미술사가 노성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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